프로포절 논문 완성

by 김동해

우리 학과는 프로포절과 디펜스를 한 학기에 하나씩만 진행할 수 있어, 학생이 하루아침에 논문을 다 써낸다 하더라도, 졸업을 위한 논문 심사에 적어도 두 학기가 필요하다. 나는 박사장학금을 받는 4년을 다 채워서 졸업을 한다면 아직 3학기가 남아 있긴 하지만, 마지막 학기까지 끌면 어째 초조해질까 봐, 이번 학기에 박사논문 프로포절을 해치우기로 결심했다.

'이번 학기에 논문 프로포절을 하겠다' 함은, 3월부터 5월까지 3개월 동안 논문의 앞 3장을 완성하고, 다섯 분의 교수님이 공통으로 짬이 나는 시간을 잡아 구술시험을 치른다는 소리다.

왜 3개월이냐면, 우리 학교는 한 학기가 16주여서, 딱 3개월 수업하고 3개월 방학인 느낌인데, 나는 방학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대책 없이 게으르게 지내기 때문에, 방학은 셈에 넣지 않아서 그렇다. 사실, 한 학기는 학사일정으로는 3개월 하고 두 주쯤 더 된다. 하지만, 나는 늘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한국으로 돌아오고, 학기가 시작하고 최소 한 주는 지나서야 느적느적 대만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한 학기가 3개월이 채 안 된다. 양심 없게도 학생이 학기보다 방학을 더 길게 보낸다! 하하.


우리 학교는 논문 앞 3장을 쓰고 프로포절 구술시험을 친다. 1장은 연구동기와 배경, 연구목적과 연구 문제를, 2장은 내 연구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정리해 내는 문헌탐구 부분, 3장은 연구 방법을 써낸다. 논문을 쓸 때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2장 문헌탐구 부분이지만, 3개월 동안 써낼 자신은 있었다. 석사논문 한 편 전체도 3개월 만에 써냈는데, 까짓것 앞 3장을 쓰는 것 쯤이야!

하지만 웬걸! 방학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을 때까지도 논문 앞 3장을 완성하지 못했다. 3개월을 고스란히 논문만 썼더라면 해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호기롭게도 이번 학기에 딴짓을 좀 많이 했다. 한국어 가이드 1차 필기시험을 친다고 거의 한 달간 논문 쓰기를 손 놨고, 학기의 마지막 2주는 2025 월드마스터즈 대회 자원봉사를 하며 동시에 가이드 2차 구술시험을 준비한다고 오후 시간에는 논문을 안 썼다. 거기다가 처음으로 생긴 한국어 가르치기 알바를 하느라고 뜨문뜨문 오전 나절을 빼앗겼다.

'이 일을 어쩐다?'

'남은 일주일 동안 꾹 눌러 앉아 쓴다면 다 쓸 수 있을까?'

'아, 그건 좀 불가능할 것 같은데....'

'한국 가서 쓸까?'

'그래! 방학이 있잖아. 이번 방학에는 까짓 거 적게 놀고 논문 쓰지 뭐.'

인용해야 할 책은 많은데, 이걸 다 들고 한국에 갈 수는 없는 일이라, 필요한 부분만 사진으로 찍어서 PDF파일로 만들어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다음날 바로 비행기표를 끊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학기는 아직 일주일 남았지만.


시간이 상대적으로 느리게 흐르는 시골 엄마 집에서 2주를 꾹 눌러앉아 박사논문을 이리 고치고, 그리 보충하고, 저리 삭제했다. 썩 잘 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욕 얻어먹지 않을 수준 정도는 된 것 같았다. 한 번만 더 훑어봐도 완성도가 올라가겠지만, 다시는 한 글자도 다시 보고 싶지 않아, 틀린 곳이 있든 말든 그냥 지도교수에게 던졌다.

"교수님, 초고를 대략 썼는데, 언제 토론할 시간 좀 잡아주세요."

지도교수가 어디 어디를 고치라고 말해주면, 그때 손 좀 보면 될 일이다.


여름방학은 3개월이나 되는데, '늦어도 6월 중순까지는 논문을 다 써내야 해!'하고 압박감을 가져야 했던 것은 학사규정 때문이다. 이번 학기 안에 프로포절을 진행하고 싶다면, 다음 학기 시작 전까지가 아니라, 7월 31일까지 구술시험을 쳐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초고를 토론하기 위해 지도교수와 약속을 잡는데 대충 한주쯤이 걸릴 것이고, 지도 교수의 의견을 따라 초고를 수정할 시간이 1주쯤은 필요할 테다. 심사위원들에게 내 논문을 보내 읽을 시간을, 예의가 있는 학생이라는 인상을 주려면 한 달쯤은 드려야 하고, 예의 따위 모르겠다 하는 급박한 경우라도 2주는 드려야 한다. 거기에 더해 구술시험 신청서는 적어도 10일 전에 학과 사무실에 제출해야 한다. 이 절차들 간의 시간을 계산해 보니 늦어도 6월 중순까지는 논문을 써야 했다.


나는 내가 얼마나 게으른지 잘 알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지도교수를 이용한 '선언법'을 써두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하루 전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지도교수를 일부러 찾아가 연구실까지 따라 걸어가며, 이번 학기에 논문 프로포절 구술시험을 진행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지도교수를 귀찮게 해 가면서 선언을 했는데, 안 지키면 체면이 구겨지기 때문에 하게 된다.


나, 어쨌든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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