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도교수는 너무 헐렁해

by 김동해

지도교수에게 논문 초고를 넘기고 토론 시간을 잡아주십사 했는데 답이 없다. 지도교수와 온라인 토론 시간이 잡히는 동안 논문에 논리적으로 안 맞는 부분은 없는지, 오타는 없는지, 좀 살펴보면 초안 수정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겠지만, 구역질이 나올 지경으로 한 글자도 보기 싫었다. 한 일주일쯤은 차라리 잘 됐네 하면서 쉬었다.

그런데, 무려 2주나 교수의 회답이 없다. 다른 교수라면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내 지도교수라면 이건 뭔가 잘못됐다. 내 지도교수는 지금까지 그날 안에 회신을 보내오거나, 늦어도 다음 날이면 답을 줬다.

'날 이번 학기에 통과시켜 줄 생각이 없는 건가?'

'LINE으로 보낸 파일은 며칠 지나면 열리지 않는데, 바쁜 며칠을 지내고 보려고 했더니 파일이 안 열려서 아예 검토도 못해서 연락을 안 하나?'

'너무 바빠서, 내가 연락한걸 아예 잊어버렸나?'

6월 말이 되자 더 이상은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이러다간, 이번 학기에 논문 프로포절을 해치우겠다는 계획이 물 건너가겠다. 지도교수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교수님, 논문 초고를 토론할 시간을 좀 잡아주십사 연락을 드렸었는데요, 늘 빨리 답장 주시는 교수님께서 아직 회신이 없어서, 제가 쓴 내용이 이번 학기에 구술시험을 치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아닌지 조금 걱정이 됩니다."

"수요일 저녁 8시 가능하니?" 지도교수로부터 곧장 답이 왔다.


나와 교수는 구글미트를 통해 온라인으로 만난다. 코로나 시절에 석사논문을 쓰면서, 온라인으로 만나는 것이 이미 자연스럽게 훈련되었다. 교수는 오늘 밖에서 막 돌아왔는지, 반듯하게 차려입고 있다.

그는 평소답지 않게, 방학이 얼마나 바쁜지, 오늘도 박사생 둘의 구술시험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를 한다. 내 지도교수는 자신에 관한 이런 사적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인데, 오늘 이렇게 바쁨을 떠는 것은 너무 늦게 연락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혼자 추측해 본다.

이름 붙이기는 내 논문 초고에 대한 '토론'이지만, 사실 토론이라기 보단, 지적을 받거나, 궁금한 것을 묻어보는 식이다.

"논문 초록에 단락 구분이 하나도 없네? 단락을 나눠."

"네."

"이건 범위가 너무 커. 키워드로 안 잡는 게 좋아."

"네."

"용어규정에 이 용어는 없어도 될 거야. 네가 뭔가 특별한 의미를 담지 않았잖아. 그냥 일반 개념으로 받아들여도 문제가 없는 거니까 빼."

"네."

"APA격식에서는 참고문헌을 각주로 적는 법이 없어."

"이건 논문이 아니고, 인터넷 신문에서 참고한 건데요?"

"그것도 마찬가지로 참고문헌 부분에 넣어야 해."

"네."

"이 표는 원래 중국어였나?"

"제가 번역한 건데요."

"원래 영어였던 것을 네가 번역했다면, 그렇게 했다는 설명을 밑에 적어 넣어.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가 번역한걸 네가 재인용한 줄 알아."

"네."

"여러 학자를 인용한 후, 여긴 자기 생각을 요약해 적는 부분이 있어야지."

"한 학자의 것을 인용해서 딱히 요약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서 안 썼어요."

"그래? 그럼 필요 없겠다."

"이건 '연구 도구'에서 설명할 게 아니라 4장으로 옮겨야겠는데?"

"네."

"여긴 왜 외국어학습이라는 용어를 썼어? 네가 서술하는 입장이니까 중국어학습이라고 써야 할 거야."

"네."

내 지도교수는 내 논문 내용 전반에 대한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아주 사소한 것들만 이야기한다. 내용 전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걸지 않으면 다시 고치지 않아서 좋긴 하지만, 다른 4분의 교수님이 시비를 걸어올 때 감당해 내려면 힘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내용은 빼거나 더할 부분이 없을까요?"

"일단 이렇게 구술시험을 보고, 다른 교수님들의 의견을 듣고 수정하기로 하지."

"네."

내 지도교수는 이렇게나 헐렁하다. 학생을 곤란하게 하는 법이 없다.


다음으로 할 일은 다섯 분의 교수님에게 메일을 보내, 언제 시간이 되시는지 물어보고 구술시험 날짜를 잡는 것이다.

'아, 이번 학기에 구술시험을 칠 수 있으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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