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과, 다른 교수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 지도교수는 학생들의 논문 심사위원 교수들을 직접 섭외한다. 아, 기억났는데, 우리 과의 어떤 교수는 학생에게 직접 섭외하라고도 했다. 한국어를 좀 할 줄 아는 대만인 형여씨가 한국학생을 연구대상으로 하는 논문을 썼더니, 한국과 관련한 내용을 살펴봐줄 분이 필요하다며 한국 교수 한 분을 섭외해 오라고 했다. 형여씨는 생판 모르는 한국교수에게 메일로 논문 심사를 부탁하는 일을 꽤 힘들어했다. 그녀는 자기가 한국어로 쓴 메일이 예의에 어긋나는 부분은 없는지 나한테 점검해 달라고 했었다.
하여간, 그건 그렇고, 내 지도교수는 내가 이미 구술시험 심사위원 명단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전 모르는데요?"
"네가 연구토론회에 제출한 논문 두 편을 심사할 때 그분들이 하셨잖아."
"아, 그런가요? 그럼 제가 찾아볼게요."
연구토론회에 제출한 두 편의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통지서에는 언제, 어느 연구토론회에 무슨 논문을 발표했다는 문구만 있었고, 이 논문을 누가 심사했다는 말은 없었다.
"교수님, 연구토론회 논문 심사가 통과된 후, 학과 조교로부터 통과했다는 서류를 받았지만, 그 안에는 다섯 명의 심사위원 명단이 없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교수님이 찾아보시고 좀 알려주셔야겠어요."
5일이나 지나서 명단을 보내주셨다. 기다리는 며칠간, 나는 가당찮게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은 지도교수가 구술시험 날짜까지 조율해 주시려나 보다' 하고 혼자 즐거운 기대를 했다. 내 지도교수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평소에 학생들에게 워낙 친절하다. 심사위원 명단만 딱 날아오고 달리 말씀이 없는 것을 보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 기대가 너무 컸군.'
다섯 교수님께 메일 보내, 23일부터 30일까지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고, 가능한 시간대에 표시해 주십사 했다. 또다시 5일 여가 지나, 겨우 세분 교수님만 답을 보내왔는데, 기가 막힌 것은 세분 교수님이 일치하는 시간대가 없는 것이다.
'오, 마이갓!'
이번 학기에 프로포절을 통과하려면, 내가 논문만 써내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다섯 분의 심사위원이 동시에 짬이 나는 날로 맞춰, 구술시험 날짜를 잡는 일이 쉽지 않을 줄 미처 몰랐다.
무슨 방도가 있나 하고 '박사논문 프로포절'로 검색해서 몇몇 경험담을 읽어봤다. 누구는 구술시험 날짜를 못 잡아서 계획한 학기에 졸업을 못했다 하고, 누구는 영 짬이 안나는 교수님의 경우에는 직접 찾아가 1대 1로 프로포절을 했다고도 했다.
답신을 보내주신 세 분 교수님은 일치하는 시간이 없지, 나머지 두 분은 답신도 없지, 이번 학기에 프로포절 통과하는 일은 물 건너간 것이 아닌가 반쯤 포기하고 있는데, 지도교수로부터 먼저 문자가 왔다.
"너 구술시험을 21일에서 24일 사이로 앞당길 수 있겠니?"
'21일로 잡힌다면, 겨우 10여 일 남았는데?'
끝내주는 게으름으로, 지도교수와 지난번에 토론한 내용을 하나도 수정 안 하고 있었더란 말이지. 일단 논문부터 다듬고, 발표 PPT를 만들고, 발표 원고를 쓰고, 지도교수와 발표 내용에 대해 다시 한번 더 토론을 하자면, 10일로 가능할 것 같지가 않은 것이다.
'아, 너무 촉박하잖아.'
나는 잠시 망설이고, 곧장 답장을 보냈다.
"가능해요!"
거기에 이어, 다섯 분 교수님이 공통적으로 비는 시간을 찾을 수 없다면, 두 분, 세 분으로 나눠 두 번 발표하는 것도 나는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지도교수는 내 구술시험이 온라인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21일부터 31일까지 오전 8시에서 10시, 오전 10시에서 12시, 오후 2시에서 4시, 오후 4시에서 6시까지로 나눠 다시 한번 조사를 해보라고 했다. 거기에 이어, 채교수의 이메일주소를 잘못 적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라며 다시 메일 주소를 보내주셨다. 내 지도교수 생각에도 평소 재깍 답변을 주시던 채교수가 여즉 회신이 없는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애당초 지도교수가 메일 주소를 잘못 알려준 거였다.
'교수님, 이러시면 곤란하잖아요? 이번 학기가 며칠 안 남았다고요.'
이번에는 다섯 분 교수의 회신을 다 기다리지 않고, 세분 교수님의 메일을 받고는 토요일이건 말건 지도교수에게 연락을 넣었다. 이렇게 4개 시간대에 세분 교수님이 일치한다고. 아침에 문자를 보냈더니, 오후에 답문이 오기를 나머지 한분 교수님과 의논을 했는데, 22일 오후 4시에서 6시에 하는 것으로 정했단다.
"너무 기뻐요! 발표 PPT를 준비해서 다시 교수님과 토론 좀 할게요. 발표는 15분 준비하면 되나요?"
정말 기쁘긴 했다. 이번 학기에는 희망이 없나 보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느닷없이 시험일이 정해지다니! 한편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며칠 안 남은 시간 동안 발표 준비를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음 언제든 날 찾아. 발표는 20분이야."
내 교수의 '요우원티쉐이쓰짜오워(有問題隨時找我, 문제가 있음 언제든 날 찾아)'는, 혹시 커타오화(客套話)*일지라도 사람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이제 남은 일은 것은 학과사무실에 구술시험을 치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하는 일이다. 주말을 제외하고 업무일만 계산에 넣어서 10일 전에 신청하라고 했는데, 주말을 포함해도 일주일 밖에 안 남은 시점이라 내 구술시험 신청을 받아줄지 조금 걱정이 된다.
* 커타오화(客套話) : 격식적인 인사말, 의례적인 말, 형식적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