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절 통과

by 김동해

학과 규정에는 업무일만 쳐서 10일 전에 논문 프로포절 구술시험을 신청하라고 되어 있었고, 내가 방학중에 온라인으로 진행할 것이어서 특별히 학과 조교에게 문의했을 때, 그녀가 내게 당부한 것은 15일 전이었다. 아마, 방학인 것을 고려해서 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주말을 포함해서 6일 전에야 신청을 했다. 내가 이메일로 여차여차해서 이렇게 촉박하게 신청하게 되었다고 예의 있게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불친절하기로 온 학과 학생들의 불평을 사고 있는 학과 조교가 아무 말 없이 행정처리를 해 준 것은 10일 전에 신청해야 한다는 규정이 공문화된 규정이 아니라, 학과의 업무 편의를 위해 비공식적으로 덧붙인 규정이 아닌가 싶다.

시험일이 결정 난 것은 토요일이고, 발표 PPT와 발표 원고를 완성한 것은 수요일이고, 지도교수는 목요일 저녁에 발표 PPT를 검토해 볼 수 있도록 다시 내게 시간을 내줬다. 내 지도교수가 한 말은 "어, 이러면 되겠는데?"였다. 나는 하나하나 좀 뜯어봐줬으면 좋겠는데, 내 지도교수는 늘 이렇게 너무 헐렁하다.

"교수님, 지금 시간이 좀 오버돼서, 뭘 좀 줄여야 하거든요. 용어규정 부분 없애도 될까요?"

"응. 없어도 될 것 같아. 심사위원들이 이미 논문 다 읽어보셨으니까."

"마지막에, 결어 부분 없애도 될까요?"

"응. 아직 연구 결론이 나온 게 아니니까, 결론을 말할 수 없지."

나는 결론을 쓴 게 아니고, 결어로 이 논문이 어째서 연구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한 페이지 작성했더랬다. 내 지도교수가 가끔 미리 검토해보지 않은 것 같은 대답을 할 때, '읽어는 보셨어요?'가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그렇게 물어볼 순 없다. 어떻게든, 지도교수는 날 졸업시켜 줄 거니까, 이딴 거 따질 필요 없다.

"문헌탐구 부분은 너무 자세히 하지 않아도 돼. 너무 길게 이야기하면 심사위원들이 듣기 싫어하셔. 인내심들이 없으셔. 20분으로 맞추고, 많아도 25분을 넘기지는 마."

"네."

"교수님들이 뭘 물으실까요?"

"프로포절이니까, 교수님들의 의견을 제시하는 거니까, 넌 많이 들으면 돼."


나는 시간 제약이 있는 이런 발표는 발표원고를 쓰고, 원고를 읽었을 때 시간 안에 가능한지 체크를 한다. 군더더기 말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시간이 오버된다. 그러니 줄이고 또 줄인다. 그러고 나서 원고를 외운다. 열 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아무 근거 없이 외우는 것은 아니고, 우리에게는 PPT가 있기 때문에, PPT내용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정도의 문장만 외우면 된다. 그렇지만 아주 달달 외워야 한다. 나는 발표할 때 긴장을 좀 하는 편이라 입에 붙도록 달달 외워놓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난다.

온라인으로 시험을 보니까, 원고를 써놓고 보고 읽으면 되지 않겠나 싶지만, 이것도 안 되는 것이 발표를 할 때는 긴장이 돼서, PPT조작과 함께, 원고를 볼 여유가 없다. PPT조작만으로도 정신이 없다.


시험 당일, 첫 몇 페이지에서는 외웠던 원고가 퍼뜩퍼뜩 생각이 안 나 느적느적 한 글자 한 글자 뱉어내다가, 몇 페이지쯤 진행하자 긴장이 좀 가라앉았다. 발표를 다 하고 나면, 발표원고를 한 글자도 안 틀리게 다 외워냈다 하더라도, 늘 발음이 불만스럽다. 내 중국어 발음은 너무 한국인스럽다. 자연스럽게 대화할 때는 이 지경은 아닌데, 어째 발표할 때는 최대한 어색해진다.

발표가 끝나고, 한분 한분 교수님들이 돌아가며 의견을 제시하셨다. 내 지도교수를 제외한 네 분의 교수님들은 내가 만들려고 하는 중국어교재가 어떤 형태인지 감을 못 잡고 계셨다. 내 머릿속에는 훤하게 펼쳐져 있는데, 왜 그들의 머릿속에는 조금도 상상이 안되었을까? 나는 글로 충분히 설명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역시 사람들은 자기가 보지 않은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모양이다. 한 교수가 그걸 지적했다.

"네가 쓴 100 페이 넘는 논문에 네가 제작하겠다는 교재가 어떤 모양인지 한 장의 그림도 없어."

또, 내가 제작할 교재에 참고가 될만한 기존 교재 분석을 4장에 쓰겠다고 했더니, 어느 교수는 그건 의미가 없다며 하지 말라고 했다. 교재를 제작한 후에 일반사용자들에게 사용해보게 하고 설문조사를 통해 효과성을 6장에 쓰겠다고 했더니, 어느 교수는 그건 정말 의미가 없는 거라며, 전문가도 아닌 그들이 뭘 알겠냐며 전문가 몇몇의 점검을 받으라고 했다.

마지막에 진행자가 교수님들의 지적에 대해 지금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느냐고 했을 때, 그들의 의견에 반박하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제대로 말할 자신이 없어 당황하고만 있자, 내 지도교수가 나를 대신해 당신들은 이렇게 저렇게 지적했지만, 이 친구의 생각은 이렇고 저래서, 그 지적은 좀 적합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해줬다.

'맞아요! 제 생각이 바로 그거예요!'

지도교수가 내 논문을 자세히 안 읽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오늘 보니 그는 내가 어떤 교재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

지도교수를 제외한 네 분 심사위원들의 지적과 제안이 있은 후에, 교수님들끼리 잠시 토론을 하시더니, 합격을 통보해 주셨다.

구술시험을 쳐보고서야, 지도교수가 말했던, '넌 많이 들으면 돼'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심사위원들이 제시한 의견이 합리적으로 느껴지던 않던, 반박하지 말고 '네, 네, 감사합니다'하고 수용하면 빨리, 조용히 끝날 수 있는 절차 같은 거였다.


심사위원들은 내 발표를 듣고 심사의견서를 써서 학과에 제출하는데, 학과조교가 5분 중에 3분만 제출한 상태라며 다음날 내게 이걸 보내줬다. 심사의견서에는 심사의견을 쓰는 란과 심사결과를 체크하는 곳이 있었는데, 심사결과에는 1. 통과, 2. 수정 후 지도교수 검토 통과, 3. 수정 후 재심사, 4. 미통과의 4개 항목이 있었다. 두 분은 통과에 체크를 했고, 한 분은 수정 후 지도교수 검토 통과에 체크를 하셨다. 나이가 아주 어린 아가씨 교수님이 계신데, 그분은 다른 교수님들이 심사의견서에 한두 줄 쓴 것과 달리 제시된 박스란을 빼곡히 다 채웠는데, 거기 '논리가 명확'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어머, 내가 '논리가 명확'하다고?'

나는 프로포절이 통과한 어제보다, 평생 들어보지 못한 '논리가 명확'이라는 평가를 들은 게 더 기분이 좋았다! 사실, 아가씨 교수님이 쓴 전체 문장은 '문헌 회고가 상세하고 논리가 명확하다'였지만, 나는 나를 형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혼자 즐거워한다.

'나, 이제 논리가 명확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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