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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기관찰

브런치는 갱신되고 있지 않지만

by 김동해

나는 뭔가를 매일 열심히 쓰고 있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안되기 때문에, 날마다 논문을 쓰느라고 글짓기를 하다 보니, 브런치에 글 쓰는 일은 소홀해지고 만다. 남들은 논문을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완전히 '문학적 글쓰기'다. 내 연구는 어떤 교육 이론을 바탕으로 중국어 교재를 설계하는 것이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창작에 가깝기도 하다. 논문을 쓰느라 하루 종일 앉아 뭔가 이야기를 짜내다 보니, 브런치에 뭔가 쓰려고 하면 이미 기력이 바닥단 느낌이었다. 그래서 쓸 수 없었다.

나는 뭔가 하나가 끝이 나야, 그다음 뭔가를 할 공간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남들보다 뭐든 속도가 느린 것 같다. 하지만 그게 덕이 될 때도 있다. 박사논문에서 손을 떼기 전까지는 다른 것에 관심을 쏟을 수 없는 뇌구조다 보니, 열심히 박사논문에만 올인하게 되고, 그래서 남들보다 빨리 졸업에 다가가고 있다.


브런치가 갱신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요사이 뭔가 쓰고 싶을 때 손 편지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동에 머물고 있는 독일 아가씨 만란이 우표가 붙여지고 우체국 소인이 찍힌 편지를 받고 싶다고 해서, 나도 그게 참 낭만적일 것 같다며, 둘이 짝짜궁을 치며 그러자 해서 편지 교환이 시작됐다. 모국어 보다 중국어가 더 재밌다고 생각하는 우리 둘은 중국어로 편지를 쓰고 읽으며, '아, 너무 재밌잖아!'하고 있는 중이다.

만란은 나보다 20살 정도가 어린, 서양식 교육을 받은 아가씨다.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하고, 그걸로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는 일에 관심이 있다. 반면, 나는 만란의 부모님 나이뻘이고, 안 그런 것 같으면서 알고 보면 초절정으로 보수적이며, 외롭지만 또 사람을 귀찮아하는, 온통 모순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많이 다른 우리가 서로를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브런치에 뭔가 끄적여보는 것은, 그게 엉망진창이건 말건, 일단은 논문을 다 썼기 때문이다. 무려 270페이지를 썼다. 지도교수가 한번 훑어봐줄 때까지는 좀 쉴 수 있다. 논문에서 손을 뗀 순간, 바로 브런치로 달려오는 것을 보니, 내가 글쓰기를 싫어하지는 않는가 보다. 논문을 쓰는 동안, 브런치 글이 도무지 안 써져서, '글쓰기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은 아닌가 보다'하고 조금 낙담을 했더랬다. 이것마저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나는 도대체 취미라곤 없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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