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고궁박물관 청동기

가이드 직업 훈련 후에 치르는 구술시험 6번 문제

by 김동해

(구술시험을 준비하면서 찾아봤던 내용이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좀 기록해 두기로 한다.)


청동기는 인류 문명사에서 중요한 이정표이다. 청동기 제작은 야금술(冶金)과 공예 미술의 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용도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실용적 도구에서 권력과 신앙을 상징하는 예기(禮器)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청동기 시대에 사회 계층이 분화되었음을 보여주며, 통치자는 청동기를 소유하고 숙련된 장인은 그 생산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 형성되었다. 특히 제사용 청동기는 제례 의식에서 통치 엘리트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합법적이고 신성한 권위를 상징하였다. 이처럼 청동기 문화는 의례와 전쟁, 사회 계급과 국가 건설이 결합된 양상을 통해 고대 중국의 정치·종교·사회 체계의 핵심 요소로 기능하였다. 더 나아가 청동기 생산에는 원료 확보를 위한 광대한 영토 지배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는 초기 국가의 출현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관의 3대 인기보물은 옥배추(翠玉白菜), 육형석(肉形石), 모공정(毛公鼎)이다. 옥배추는 옥의 색을 살려 만든 배추 모양의 옥 조각품이고, 육형석은 동파육이라고 오겹살을 이용한 돼지고기 요리처럼 보이는 자연석이다. 모공정은 발이 세 개 달린 반원형의 솥처럼 생긴 청동기 대표 보물이다.

사람들은 모공정은 3대 인기 보물이라니 한번 찾아보지만, 그 밖의 청동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왜 그럴까? 많은 관광객들이 이렇게 말한다. “색깔이 어두워서 다 비슷해 보인다.” “위에 적힌 글자가 이해가 안 된다.” “굉장히 엄숙하고 학술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사실, 청동기 전시실을 놓친다면, 고궁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진실한 인간의 이야기를 놓치는 셈이다.

청동기들은 대부분 3천 년 전 상(商)·주(周) 시대의 것으로, 고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신을 섬겼는지, 어떻게 권력을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중국 역사를 배울 때, 맨 처음이 하(夏), 그다음이 상(商), 그다음이 주(周) 아니던가. 바로 그 까마득한 고대의 상(商), 주(周) 시대의 유물이다. 그 시대 청동기는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정치, 종교, 신분을 나타내는 도구였다. 고대에는, 얼마나 많은 청동기를 사용할 수 있느냐가 곧 신분을 나타냈다. 즉, 청동기는 일종의 신분증이었다.


청동기를 볼 때 이렇게 해보시라.

첫째, 글자부터 보지 말고 “얼굴”을 찾아보라. 청동기에 가까이 다가가 정면을 보면, 많은 기물에서 하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큰 눈, 굵은 눈썹, 코, 심지어 뿔까지 있는 문양이 있다. 이를 수면문(獸面紋)이라고 한다. 고대인에게 이것은 장식이 아니라 수호신이었다.

이미지 출처 : https://kknews.cc/culture/k8ly6n8.html

둘째, 손잡이와 뚜껑을 보라. 많은 귀여운 디테일이 여기에 숨어 있다. 소의 머리, 양의 뿔, 새의 부리, 둥글게 말린 작은 뱀들, 혀로 물을 핥는 개 등등. 3천 년 전 사람들도 동물을 좋아했고, 그걸 앙증스럽게 표현해 놓은 것을 보면 유머스럽기까지 했던 것 같다.

셋째, 용도를 추측해 보라. 이것은 솥처럼 생겼는데 밥을 짓는 용도였을까? 고기를 삶았을까? 저것은 술잔처럼 생겼는데 정말 술만 마시는 용도일까? 등.

무엇보다도, 청동기를 볼 때 약간의 상상력의 발휘하여 이게 금빛을 낸다고 느껴야 한다. 청동기는 처음 주조되었을 때는 지금 우리가 보는 청록색이 아니라, 눈부시게 빛나는 황금색이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은 이를 ‘길금(吉金)’이라 불렀다. 현재 우리가 보는 녹색은 땅속에 수천 년간 묻혀 있으면서 금속이 산화되어 발생한 청동 녹이다.


고대 청동기(구리와 주석 또는 납의 합금)는 주로 다음의 두 가지 핵심 공법으로 제작되다.

첫째, 도범법 (陶範法, 분할 주조법)은 중국 상·주 시대의 가장 주류가 된 방법으로, 공정이 매우 엄격하다. 먼저 점토로 기물과 똑같은 형태의 모델을 만든다. 그런 후에, 모델 겉면에 점토를 입히고, 건조 후 이를 분할하여 떼어냅니다. 이를 ‘외범’이라 한다. 다음으로 외범의 안쪽 벽면에 정교한 문양을 새긴다. 이제 내범을 제작할 차례다. 원래의 모델 겉면을 한 겹 깎아내거나, 별도의 작은 점토 심을 만들어 ‘내범’으로 사용한다. 이제 외범과 내범을 조립하면 그 사이의 틈이 기물의 두께가 됩니다. 녹인 구리물을 틈새에 붓고, 냉각 후 거푸집을 깨서 기물을 꺼낸다. 기물을 꺼낼 때 거푸집이 파괴되므로, 모든 청동기는 기본적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이다.

두 번째, 실랍법 (失蠟法, 왁스 몰드법)은 춘추전국시대에 등장한 방법으로, 매우 정교하고 투과된 형태를 만드는 데 적합하다. 먼저 왁스(밀랍)로 기물 모델을 조각한다. 왁스 모델 겉면에 진흙을 입히고 가열하면 왁스가 녹아 나오면서 완벽한 빈 공간이 생긴다. 이 공간에 구리물을 주입하고 냉각 후 겉면을 깨뜨려 완성한다.


청동기의 주요 용도는 대체적으로 네 가지로 범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예기(禮器)로 이는 가장 중요한 용도였다. 정(鼎)은 고기를 삶았던 솥이고, 궤(簋)는 음식을 담는 그릇이었다. 작(爵), 존(尊), 호(壺) 등은 조상과 신령에게 제사 지낼 때 사용하던 술그릇이다. 반(盤)과 이(匜)는 제사 전 세정 의식에 사용하던 물그릇이다. 이(匜)에 물을 담아 손에 부으면 반(盤)이 손 씻은 물을 받는 역할을 한다.

둘째, 병기(兵器). 청동은 경도가 높고 마찰에 강해 당시 가장 선진적인 군사 장비였다. 과(戈, 창), 모(矛, 투창), 극(戟), 검(劍), 화살촉 등이 있다.

셋째, 악기(樂器). 대규모 제사나 연회에서 음악은 예법(禮制)의 일부였다. 가장 유명한 것은 편종(編鐘)과 뇌(鐃)이며, 이는 고도의 음향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넷째, 생산 도구 및 일상용품. 상대적으로 적지만 존재했다. 도끼, 자귀, 끌 등 수공업 도구나, 구리거울(銅鏡), 허리띠 고리(帶鉤), 마구 및 수레 장식 등이 있었다.


이어서,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의 대표 청동기 세 점을 소개한다. 고궁의 청동기들은 청나라 말기 황실의 소장품이었으나, 이후 전쟁을 겪으며 대만으로 옮겨졌다.

그림출처 : https://zh.wikipedia.org/zh-tw/毛公鼎

첫째, 모공정 (毛公鼎). 이 청동기는 서주(西周) 말기의 것으로, 만청사대국보(晚清四大國寶) 중 하나이자, 고궁에서 가장 사랑받는 유물 중 하나이다. 겉보기에는 소박하지만, 내부에는 거의 500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긴 명문이 새겨진 청동기입니다.

사실 진짜로 적힌 글자는 477자이다. 그런데, 어떤 글자들에는 부호로 표시하여 다른 음으로 한번 더 읽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500자가 된다. 청동기는 글자가 많이 새겨져 있을수록 가치가 높다. 왜냐면 그 문자들을 통해 고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공정에 적힌 내용은 왕의 명령서이다. 3천 년 전에는 종이가 없었기에 중요한 명령은 청동에 새겼는데, 주나라 선왕이 모공(毛公)에게 내린 책명(冊命)이 기록되어 있다. 선왕이 모공에게 국정 운영을 권면하는 내용으로, 군신 간의 신뢰와 책임감이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외관은 단순하면서도 기품이 넘치는 서주 말기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반구형의 깊은 몸체와 짐승 발 모양의 다리(獸蹄足)가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진 출처 : https://theme.npm.edu.tw/selection/Article.aspx?sNo=04001043

둘째, 산반(散盤). 이 청동기도 서주(西周) 말기의 것으로, 겉보기에는 손 씻는 그릇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토지 분쟁을 기록한 기물이다. 내부에는 350자의 명문이 있는데, 당시 ‘측국(夨國)’과 ‘산국(散國)’ 두 나라가 경계를 정하고 토지 계약을 체결한 과정이 기록되어 있어, 고대 지권 제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문헌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동산 계약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글자 구조가 생동감 넘치고 변화무쌍하여 서예가들 사이에서 금문(鐘鼎文)의 걸작으로 꼽힌다.

셋째, 종주종(宗周鐘). 서주(西周) 말기 것으로, 악기다. 여기에도 123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주(周) 왕이 남방 소수민족을 정벌하고 승리한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주나라 왕이 직접 명령하여 제작한 것이다. 마치 현대 국가 경축일의‘기념주화’나 ‘다큐멘터리’처럼 왕조의 전성기 모습을 보여준다. 종 표면에 36개의 돌출된 ‘매(枚, 유두 모양 장식)’가 있어 위엄 있는 모습이다.


청동기가 보여주는 것은 중국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이야기다. 중국 역사를 몰라도 청동기를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이 조상을 어떻게 기억했는지, 갈등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청동기를 통해 신분을 어떻게 나타냈는지 등. 다음에 고궁박물관을 방문한다면, 청동기 전시실을 놓치지 마시길!


매거진의 이전글중타이선사(中台紳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