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성급 불편함

호텔급 알베르게 에마우스

by 김동해

2012년 9월 1일 토요일

날씨 : 정말 춥다. 아침 5도씨, 낮 8도씨

걷기 : 부르고스(Burgos)에서 부르고스(Burgos)까지 (0km)


간밤에 김양호 씨와 2층 침대를 위아래로 나란히 썼다. 아침에 일어나니 김양호 씨 침대가 깨끗하다. 그가 나를 포기하고 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데, 그가 배낭을 메고 다시 들어온다. 또 왜?

같이 걷던 외국인 패거리들이 부르고스에 메시지 남겨두기를, 자기들이 어느 마을에서 기다릴 테니, 오늘 꼭 거기까지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부르고스에서 한 40km 떨어진 마을이다. 그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떠난 뒤로는 더 이상 보이지도 소식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원해서 이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등 떠밀려온 사람처럼 이 길을 즐기지 못했다. 그에게 걷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기 때문에 비행기 날짜에 맞춰 일부러 발걸음을 늦춰야 했다. 그는 차라리 빨리 걸어버리고 비행기 표를 바꿔서 일찍 돌아가는 게 낮겠다고도 했다.

그는 나처럼 파리로 입국했는데, 파리 지하철에서 여행경비의 반을 소매치기당하는 경험으로부터 여행을 시작한다. 나는 그의 여행 태도를 나쁜 경험 때문이라고 이해해주지 못하고, '찌질하다'고 평가해 버린다. 나도 그다지 멋진 사람은 못되어서.


부르고스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큰 도시에 도착하면 도시 구경을 하고, 발도 쉬어주기 위해 하루씩 더 쉬어가는 순례자들이 많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대도시를 만날 때마다 이틀씩 쉬어가리라 계획을 세웠다. 걷다 보니 발은 아프고 걸음은 느려져, 하루씩만 묵어야 날짜 안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사실은 도시 구경도 핑계고, 발이 아픈 것도 핑계에 불과하다. 동갑과 지연이 하루 더 머문다는 소리에 나도 그만 있고 싶어진 것이다.

지연 씨는 대안학교 학생들을 돌봐주느라 하루 더 머무는 것이다. 대안학교 B팀 인솔교사는 맹장수술을 받은 나영이를 퇴원시키러 가며 우연히 만난 한국아가씨 지연에게 학생들을 부탁해 놓은 것이다. 지연 씨는 자신의 계획은 엇다 던져두고 학생들 챙기는 일에 뿌듯해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그녀의 심성을 칭찬해 준다.

하루 더 묵더라도 일단 아침에는 알베르게에서 나와야 한다. 오전은 알베르게 청소하는 시간이다. 동갑은 김양호 씨만 빠진 어제저녁 멤버들을 이끌고 알베르게 뒤의 언덕을 오른다. 알베르게 뒤 언덕은 옛 성터의 유적이 남아있고, 부르고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동갑님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멋진 경치를 볼 수 없었을 것이라며 감탄을 한다. 기념사진을 찍자 했더니 동갑이 카메라를 뺏어든다. 기념사진에 꼭 넣고 싶었던 그의 얼굴이 빠지고 만다.


동갑은 부르고스에 사는 친구와 약속이 있어 점심때에나 다시 만나기로 한다. 그를 보내고 우리는 부르고스를 배회했다. 순례자들이 사라진 이른 아침의 한적한 도심을 배회하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진열장을 구경하느라, 전망 좋은 벤치에 앉느라, 다른 순례자와 경합할 필요도 없고, 거기다 동행도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부르고스의 아침 날씨는 거리로 나선 것 자체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원래 부르고스가 인접한 다른 도시들에 비해 대체로 기온이 낮긴 한데, 어제오늘은 스페인에 이상 저온현상이 나타나 더 추운 거란다. 아침 온도가 5도였다. 이건 우리나라 겨울날씨가 아닌가. 강렬한 스페인 햇볕으로도 대낮 최고 기온이 18도까지 밖에 올라가지 않았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돈을 아끼기 위해 바에는 안 가겠다고 하니, 아침거리를 사들고 볕 좋은 곳에 앉아 일단 아침부터 먹기로 한다. 나는 페이스트리 빵을 샀다. 밀가루 반죽을 종이처럼 얇게 밀어 여러 겹 쌓아 과자처럼 바싹하게 구워내고, 겉면에는 설탕물을 반지르르하니 발라 놓은 하트모양의 빵이다. 스페인에서 먹은 최고의 빵이었다.

돌 벤치는 차갑고, 바람은 차다. 배는 고프니까 추위를 참아가며 먹는다. 다 먹고 나자 더 이상은 추위를 견딜 수 없다. 돈이 들더라도 바에 들어가기로 한다. 까페꼰레체를 시켜 마시며 죽치고 있는다. 드디어 슈퍼마켓이 문을 열 시간이다. 이번엔 슈퍼마켓을 흐느적거리며 따뜻한 공기 속에 있기로 한다. 건물 밖으로 잠시도 나와 있을 만한 기온이 아니었다. 떼 지어 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났더니 알베르게가 문을 열 시간쯤이 된다.


공립 알베르게는 1박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오늘은 부르고스에 있는 또 다른 알베르게에 가보기로 하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얼마 전에 문을 연 '에마우스(Emaus).' 중심가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라 찾기가 힘들다. 친절한 스페인 아주머니가 서너 블록이나 같이 걸으며 에마우스로 통하는 길을 가르쳐주고 가셨다.

"무쵸 그라시아스(Mucho grasias, 정말 고마워요)!"

12시면 열까 싶었는데 2시에 연단다. 그때까지 배낭은 보관해 주겠단다. 배낭만 없어도 걷는 것이 얼마나 더 편한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따뜻하던 등이 서늘해진 것이 더 크게 느껴진다.

지연 씨는 추워서 도저히 안 되겠다며 옷을 사러 가야겠단다.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다. 자라(ZARA) 매장에 들어간다. 15세 아동용 남방을 사면 딱 맞겠는데, 내가 원하는 색으로는 15세용이 없어서 여성용 카디건으로 마음을 바꿔야 했다. 저렴하고 따뜻한 것으로 고르다 보니 그녀와 나는 똑같은 걸 골라 들고 계산대 앞에 섰다. '그녀도 갈색을 골랐네.'

나보다 먼저 계산을 마치고 매장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고 있던 지연 씨는 나를 보더니 황급히 담배를 끈다.

"안 그래도 돼요, 지연 씨. 나도 다 해봤어요."

내가 그래도 어른이라고 신경 써주는 모습이 고맙다.


2시가 되자 알베르게 문이 열린다. 오스피탈레로가 한국인 그룹을 보더니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다. 이 알베르게는 성당 건물 안에 있고, 수도사들이 밤낮으로 기도하고 있어서 '엄격한 조용함'이 요구된단다. 또 알베르게에 들어와야 하는 시간도 꽤 이르다.

"너는 괜찮지만 젊은 애들은 받아줄 수 없어."

학생들이 오늘 이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사정 이야기를 하고 겨우 오케이를 받아낸다. 그러나 이번에는 학생들이 분위기를 감지하고 차라리 어제 갔던 알베르게에 가서 부탁을 해보겠단다.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나는 에마우스에 남고, 지연 씨는 학생들의 잠자리를 잡은 후에 결정하겠다며 그들을 인솔해 간다.


오스피탈레로를 따라 성당 건물로 들어간다. 대리석 계단에, 높은 천장에, 중세풍 가구와 샹들리에에 입이 딱 벌어진다. 고급호텔에 온 기분이다. 침대와 샤워실을 알려주고, 식당 겸 응접실로 안내한다. 한쪽 면은 고풍스러운 벽난로를 잘 살려 둔 채 책장으로 꾸미고, 그 아래 나지막한 천소파를 두었는데, 그 아름다움이 실내 인테리어 책에서 한 장면을 빼온 것 같다. 내 입에서 너무 예쁘다는 감탄이 쏟아져 나온다.

그녀는 도네이션이긴 하지만 1박에 5유로라며 받아 챙기고, 에마우스가 재건축된 과정을 담은 사진을 보여준다. 3년 전만 해도 낡은 유적지처럼 버려져있었는데, 신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했다는 것이다. 그녀는 에마우스의 품격이 자기인 냥 황홀한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가방만 던져두고 동갑과 지연을 만나러 갔다. 학생들을 떼어놓고 우리끼리 맥주 한잔하기로 한다. 튀김감자에 소스를 뿌려 주던 것이 먹고 싶다고 했더니, 그가 아는 곳이 있다며 안내한다. 그 안주 이름이 브라바스(bravas)다. 배가 고플 때 맥주와 브라바스 한 접시면 딱이다. 브라바스는 여러 차례 먹게 되는데 빰쁠로나에서 하비랑 크리스티안이랑 먹었던 브라바스가 최고였다.

내가 에마우스의 호텔급 포스를 이야기했더니 지연도 에마우스에서 묵겠단다. 에마우스 가는 길에 한잔 더 하기로 한다. 뿔뽀(pulpo, 문어요리)와 샹그리아를 시킨다. 맥줏집에서 내가 상그리아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래서 나를 위해 일부러 주문한 것이다. 샹그리아가 한 항아리 가득 나오자 우리는 그 양에 흐뭇해한다. 뿔뽀도 입맛에 딱 맞고, 샹그리아는 알맞게 사람을 취하게 하고, 딱 좋다.


동갑은 우리를 에마우스까지 데려다준다. 오스피탈레로는 단박에 동갑을 맘에 들어하더니 에마우스의 내부를 구경하고 가라며 불러들인다. 미사가 있다는 소리에 가톨릭 신자인 동갑이 자기도 미사에 참석해도 되냐고 묻는다. 오스피탈레로, 대환영한다. 그리고 저녁도 먹고 가라고 적극 권한다. 공짜가 아니라 도나띠보(donativo, 기부)라고 누누이 강조하긴 했지만.

나는 오스피탈레로의 눈치가 보여 미사에 참석하기로 한다. 참석하지 않겠다 하면 '가톨릭에 대한 존경심도 없으면서 뭐 하러 하필 여기서 자겠다고 한 거니'하는 핀잔이 날아올 것 같았다. 미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여 로그로뇨에서 참석해 본 적이 있다. 그러니 미사는 내게 더 이상 흥미로울 것이 없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설교를 듣고 있자니 잠이 온다. 신자들이 대부분 파파 할머니셨는데 성가는 멋지게들 부르셨다. 미사의 끝머리에 까미노(camino, 걷는 사람)들 앞으로 나오란다. 까미노를 위해 특별히 축복을 해주신다. 그게 고마운지도 모르겠다.

미사가 끝나고 바로 저녁을 먹었다. 전채는 양상추에 토마토 몇 조각 겨우 들어간 빈약한 샐러드이고, 메인은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리조또와 그 양이 너무도 적어 서로들 눈치를 보며 양보해야 했던 소시지가 나왔다. 후식으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치즈가 나왔다. 저녁과 아침은 '도나띠보'라고 반복에 반복을 하는 것은 잊지 않더니 부실하기 그지없다. 그 양에 더 울컥했다. 순례자들에게 소식(少食)을 요구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노(vino, 포도주)도 없었고!


프랑스인이면서 영어와 이탈리아어를 잘했던 오스피탈레로는 저녁 테이블의 가장 상석에 앉아 프랑스인과는 프랑스어로, 이태리인과는 이탈리아어로, 한국인에게는 영어로 말을 건넸다. 그녀 혼자 분위기를 주도해 버려 몇 안 되는 사람과 저녁을 먹고도 그 테이블에 누가 앉아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프랑스 아줌마 둘과는 거의 산티아고에 가까워서야 우리가 에마우스에서 처음으로 만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또 뭔 '나눔의 시간'을 갖는다. 가톨릭에서는 원래 그런 시간이 있단다. 한국인인 우리에게 노래 하나를 요구한다. 동갑이 없었더라면 난감할 뻔했다. 그가 선창을 하자 어쩔 수 없이 따라 불렀는데, 상당 부끄러웠다. 외국인들이야 노래가 원래 그러려니 하고 들었을 테지만, 한국인인 동갑과 지연은 나의 음치를 고스란히 느꼈으리라. 나는 남 앞에서 절대 노래 같은 건 안 부른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깐깐하고 도도해 보이던 내 이미지가 '영구 어~없다'의 '영구'가 되어버린다.


'에마우스'를 못마땅해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발도 아프겠다, 오후 시간은 인테리어 잡지에서 속 빼온 듯한 예쁜 응접실에 느긋하게 앉아 책도 보고 일기도 좀 쓰고 할 생각이었으나, 그 공간은 잠겨있었다. 오스피탈레로의 출입에 맞춰 열쇠로 열렸다 닫혔다. 그곳은 그녀의 공간이었지, 순례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아름다움을 이용할 수 없게 만든 그녀에게 화가 났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마자 오스피탈레로가 어디선가 나타나 다급히 나를 부른다. 샤워실에서부터 방까지 걸어오면서 낸 발자국을 좀 보란 것이다. 슬리퍼에 물기가 묻어있었으니 당연히 발자국이 났지, 뭐 물기를 헐렁하게 뚝뚝 흘린 것은 아니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비스듬히 봐야 겨우 보이는 슬리퍼 자국에 뭔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나무랐다.

'내가 뭐 귀신이냐? 날아서 다니리?'

뭐 이런 편하지 않음이 다 있나.


도네이션 알베르게의 잠자리와 음식에는 특정한 가격이 매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더 감동적이다. 순례자가 얼마를 낼지 모르면서도 대접해 주기 때문이다. 에마우스는 도네이션의 감동이 없다. 돈에 있어서는 사설 알베르게처럼 굴면서, 손님의 행동에 대해서는 겸손한 수사(修士) 같기를 원하고, 봉사자였어야 할 오피스탈레로는 귀부인처럼 굴었다.

호텔급 알베르게에서 5성급 불편함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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