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요리하던 날

한국불고기로 생일파티

by 김동해

2012년 8월 28일 화요일

날씨 : 바람 한 점 없는 진공의 맑음

걷기 : 나헤라(Najera)에서 신토도밍고 델라 깔사다(St.Domingo de le Calzada)까지(21.2km)


주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일어난다. 타이머를 맞춰놓거나 일찍 일어나겠다고 별러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늦게 도착해 공립 알베르게가 다 차버렸으면, 좀 비싼 알베르게에서 자면 된다. 이 길 위에서 건강을 최고로 챙기고 있는 나는 충분히 자고, 내 속도로 걸으려고 한다.

짐을 다 챙겨 리셉션 테이블로 나왔더니, 어젯밤에 아코디언을 연주하던 자가 떠나는 순례자들에게 자신의 노트를 내밀며 그들의 국어로 뭐든 적어주기를 요청하고 있다.

'멋진 연주를 들려주던 자가 파파 할아버지였구나.'

간밤에 알베르게 밖에서 아코디언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그냥 잤었다. 굽슬굽슬한 긴 하얀 머리에 긴 하얀 수염을 하고 있어 겉보기로는 가장 순례자스럽다. 영화 해리포터에 나오는 덤블도어 교장이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마법사 간달프를 떠올리면 된다.

이 할아버지처럼, 길 위에서 만난 친구들의 메시지를 담아 가기 위해 자신만의 노트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추억을 간직하는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 그는 매우 가난한데, 한국인 누가 비용을 대주어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단다.

"어젯밤에 네 아코디언 연주소리를 들었다. '벨라 챠오(bella ciao)'를 한번 더 연주해 줄 수 있느냐?"라고 했더니 그가 아코디언을 펼쳐 잡는다.

'벨라 챠오'는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정권에 대항하는. 파르티잔(partisan)들이 불렀던 군가다. 파르티잔은 우리나라 말로 풀면 '비정규군 유격대'쯤 되겠다. 내일이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장으로 길 떠나는 청년이 자신의 애인을 생각하며 불렀단다. 군가가 부르기에 따라 씩씩한 행군가가 되기도 하고 애잔한 슬픔이 흐르기도 하는데, '벨라 챠오'의 대단한 비장미를 내가 많이 좋아한다. 우나 마띠나, 미 소노 알자또, 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벨라 챠오 챠오 챠오(Una mattina, mi sono alzato, o bella ciao bella ciao bella ciao ciao ciao).... 가슴이 간질거린다.


그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그날 아침에 깨어났을 때, 침략자들을 발견했다오.


파리티잔이여 나를 데려가 주오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파르티잔이여 나를 데려가 주오, 조국 위해 투쟁할 수 있도록.


내가 파르티잔으로 죽거들랑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내가 파르티잔으로 죽거들랑 나를 묻어주어야 하오.


나를 산 밑에 묻어주오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나를 산 밑에 묻어주오, 아름다운 꽃그늘 아래.


그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그곳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꽃이라 말할 것이오.


이것은 파르티잔의 꽃

오, 내 사랑 안녕, 안녕 내 사랑, 안녕 안녕 안녕

이것은 파르티잔의 꽃, 자유를 위해 죽어간 꽃


오늘 처음으로 다리가 아프다. 허벅지에서 엉덩이 쪽으로 통증이 느껴진다. 발이나 무릎처럼 많이 걸어서 생긴 통증이 아니어서 쉬면 금방 나을 것을 알았다. 어제 아침에 사람 좋아 보이는 김양호 씨와 이야기하며 걷느라 너무 성큼 걸은 탓이다. 그는 다리가 긴 데다 걸음이 날다람쥐 수준이었다. (남의 보폭으로 걷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톡톡히 느꼈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아무리 매력적인 사람을 만나도 내 보폭을 바꿔가면서까지 이야기 나누려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모든 사람들이 나를 앞질러갔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아프니까 모든 사람들이 내게 친절해졌다. 얼굴만 알았지 눈인사도 한번 안 했던 순례자조차도 괜찮으냐고 온 얼굴에 진심을 담아 걱정해 줬다. 그들을 휙휙 제치며 지나갈 때는 따뜻함을 보여주지 않던 그들이 지치고 힘 빠져 도움이 필요해 보이자 우리가 오랜 친구였던 마냥 부드러워진다.


이런 거야? 그래, 지금까지 나는 너무 씩씩했던 것이다!


계속되는 밀밭을 걷다 보니 나보다 더 심각한 환자가 있다. 멀리서부터도 보였는데, 순례자들이 걷다 말고 한 번씩 멈춰 한참을 지켜보다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뭔 일이 생겨도 크게 생겼나 보다. 뭔 일인지 볼 거라고 내 느린 걸음으로 그들 곁에 드디어 당도하는데 막 출발해 버렸다. 그 사건 현장에서 한참 걸음을 지체하고 있던 김양호 씨로부터 무슨 일인지 설명을 들었다. 물집이 심해서 그걸 치료하느라 그랬단다. 고작 물집으로 그 많은 순례자들이 호들갑! 이 길 위에서는 아프면 이렇게 대접받는다.


산토도밍고(St.Domingo)에 도착하여 방을 배정받는다. 대안학교 학생 셋과 같은 침대를 쓰게 되었다. 2층 침대가 두 개 나란히 붙어있어 2층의 더블베드인 셈이다. 이들 셋과는 여러 차례 만나게 되어 날로 가까워진다. 고3 혜인이, 고1 정현이, 중1 준영이. 정현이와 준영이는 사귀는 사이다.

오늘이 정현이의 생일이라기에, 그걸 핑계 삼아 벼르던 대로 한국요리를 해 먹을까 싶다. 요리는 혼자 해 먹으면 재료값이 더 들기 때문에 실속이 없다. 그러니, 적정한 규모의 사람들을 모아. 각출해야 한다. 대안학교 학생들은 보통 팀별로 저녁을 해 먹었는데, 오늘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기로 했단다. 잘 됐다. 정현이의 생일이니 이 이모가 한국요리를 해주겠다고 꼬신다. 좋단다. 우리 넷으로는 인원이 좀 부족한듯하여 누굴 더 포섭해볼까 싶은데, 마침 옆 침대를 쓰는 여자가 동양계이다. 한국요리해 먹을 건데, 합류할 생각이 있냐고 했더니 단박에 오케이 한다. 또 슈퍼마켓 가는 길에 김양호 씨를 만나 그도 끼운다. 6명, 적정하다.

슈퍼에서 간장을 발견하고는 돼지불고기를 메뉴로 정한다. 가장 기름기 있는 부위를 아주 싼 값에 샀다. 스페인은 기름기 없는 부위가 비싸다. 아침거리까지 사고도 1인당 겨우 4유로. 필그림 메뉴가 보통 10유로인 것을 생각하면 원더풀한 가격이다.

아침거리를 사지 않았으면 3유로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아침에 버터와 잼을 바른 빵이 너무 먹고 싶었다. 유럽은 버터도, 잼도, 빵도 우리나라와 달리 너무 맛있다. 버터를 사면 혼자서 다 먹을 수도 없고, 남았다고 가지고 갈 수도 없는지라 여섯 명이나 모였을 때가 기회라고 생각하고 얼른 아침거리까지 샀던 것이다.


대부분의 공립 알베르게는 주방시설을 갖추고 있어 순례자들이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 (갈리시아(Galicia) 지방으로 넘어가면 달라진다.) 오늘 주방은 이탈리아 남자 하나와 내가 경쟁을 하듯 자국요리를 만들고 있다. 이탈리아 남자는 해물 리조또를 만든다. 그 요리가 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다. 그는 하필 그 요리를 선택했다. 냄비로 부들부들한 쌀밥을 만들어내는데 이미 한 시간이 걸리니, 한국요리는 해물리조또를 능가하게 시간이 걸린다. 어제까지는 공용의 주방을 내 것처럼 쓸 자신도 없었는데, 시간 잡아먹는 한국요리를 하며 주방을 오랫동안 독차지하고 있으면서도 당당하다. 내 어디에 이런 것이 숨어있었던지....

그들이 그릇 세팅하는 것만 도와주면 나 혼자 요리를 할 작정이었다. 쌀밥에 돼지불고기, 호박전, 양송이버섯 전을 만든다. 하다 보니 일손이 딸린다. 좀 도와줄 것이 없나 하며 구경 나온 동양계 아가씨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그녀에게 전 부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남은 전을 마저 굽게 했다. 그녀, 후딱후딱 부쳐내는데 나보다 솜씨가 좋다.

외국인들은 돼지불고기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흘깃흘깃 그 맛을 궁금해 하지만, 다 맛 보여줄 수는 없었다. 맥주를 곁들여 정현이의 생일파티를 한다. 맛있었나 보다. 다들 만족해한다. 다행!


요리를 도와준 아가씨의 이름은 '스테파니'이고 인도네시아인이었다. 이 길에서 만난 유일한 인도네시아인이다. 그녀도 영어를 아주 잘했다. 어떻게 이 길을 걷게 되었는지 물어보니, 그녀도 나처럼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도 걷는다>를 알고 있다. 나는 그 책들 때문에 걷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영향을 받은 것은 맞다. 그녀에게 좋은 감정이 생긴다.


뭐 그건 그렇고, 김양호 씨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그는 함께 다니던 외국인 친구들을 이 저녁 테이블에 초대하고 싶어 한다. 그의 패거리는 대여섯 명이나 되고, 요리는 십몇 인분이 안된다. '이건 내 요리라고!' 그의 친구들이 자기들은 숫자가 너무 많아서 안된다면 그의 초대를 알아서 내빼줬으니 망정이지....

우리가 내일 다시 만나게 되면 자기 친구들을 초대할 테니 나보고 요리를 하란다. 그 비용은 자기가 다 댄다면서. 그는 요리는 재료비만 대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이겠거니 하는 전형적인 한국남자다. '오늘의 요리가 참 맛있었어요.'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정신건강에 좋을까? 그가, 저 친구들을 당신도 알아두면 좋지 않느냐는 말을 덧붙인다. 오, 마이갓! '미안하지만, 난 저들이 필요 없다!' 그가 워낙 몇몇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갚고 싶은 것이겠지만, 날 끼우지는 말라고!


저녁을 먹고 어둑해지기 직전에야 마을 구경을 간다. 어느새 김양호 씨가 따라붙었다. 산토도밍고는 예쁜 건축물들이 많다. 유명한 '닭'이야기를 간직한 성당도 있다. 죽은 닭이 살아나 누명을 쓴 청년이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다. 나는 너무 늦어 성당 내부를 구경하지는 못했다. 김양호 씨는 벌써 이 동네를 다 구경했다며 '여기, 저기'하며 앞장선다.

마요르 광장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구경하며 오늘 하루의 일정을 정리해 볼 참이다. 그도 와서 앉았다가, 내일은 자기의 외국인 친구들 불러다 한국요리해 먹자는 소리를 했다가, 내 반응이 첫날 만났을 때의 무한한 따뜻함이 아닌 것을 느끼는지 먼저 들어가겠단다. 나는 광장에 어둠이 스미고, 오렌지빛 가스등이 켜지고, 그 빛이 어둠 속에서 환해지는 것을 지켜보고서야 자리를 떴다. 광장이 너무 예뻤기 때문에. 가스등이 켜지다 더 예뻤기 때문에.


가스등이 켜질 때까지 앉아 있었던 바로 그 광장이 세밀하게 그려진 엽서를 샀다. 조카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기 때문에. 조카와 약속하기를, 내 블로그에 글을 남기든, 엽서를 쓰든, 자주 소식을 보내기로 했다. 핸드폰을 달고 다니지 않고, 인터넷을 열어보지 않는 것이 자유를 주는 기분이라 좋았지만, 조카와의 약속이니 자유와 바꾸더라도 소식을 전해야 했다.

사고 보니 너무 예뻐서 한국까지 고이 들고 가서 액자에 넣을까 싶다. 아끼고 아끼다가 스페인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야 이 엽서를 사용한다. 그래서 엽서는 나보다 일주일이나 더 늦게 한국에 도착했다. 엽서의 뒷면에 빼곡히 사연을 적었더니 앞면에 스탬프가 찍혀서 와버렸다. 액자에 넣으려고 했더니만 커다랗게 찍힌 스탬프가 거슬려 그냥 뒀다. 지금 조카의 책상 서랍에서 굴러다니며 조금씩 낡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사진을 몇 장 못 찍었다. 밤새 충전을 하는데도, 한두 장 찍으면 먹통이 되어버렸다. 어떨 때는 줌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지 않아 애먹은 적도 있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고장 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몇 날 며칠 가만 지켜보니, 아침나절에는 수십 장을 찍어도 괜찮은데 오후에는 한 장만 찍어도 멈춰버리는 것이 아닌가.

배터리의 문제라는 확신이 들었다. 배터리가 저절로 방전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걸 어째 이제야 깨달았을까. 사진기 없이 오려고 생각했던지라 사진기가 고장 나도 별 미련이 없었다가 갈수록 예쁜 풍경들에 욕심이 나면서 카메라의 문제점이 뭔가 궁리해 본 것이다. 그렇다면 건전지를 다시 사면될 것이다. 이건 그냥 건전지가 아니라, 충천해서 쓰고 또 쓰는 건전지다. 이걸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는지, 어디서 사는지를 알면 된다.

스페인 사람 마누엘에게 물어본다. (마누엘은 오십이 넘은 아저씨다. 오십이 넘었을 것이라는 것은 내 짐작이다. 그는 가방 뒤에 'MANUEL'이라고 돋을새김 된 철제 이름표를 달고 다녔다. 그런 건 어디서 구하는지 궁금했지만, 그는 영어를 전혀 못해서, 내가 다가가 영어로 뭐라 말할라치면 선량한 그의 눈빛이 곤혹스럽게 떨기 때문에 물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스페인어로 인사만 하는 사이였다.) 마뉴엘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 스페인 친구를 데려와 내 질문에 답을 준다. 충전용 건전지는 필라스 레까르가블레스(pilas recargables)이고 페레떼리아(ferreteria)에서 살 수 있단다. 그렇긴 하지만 자기들이 동네 구경을 나갈 때 사다 주겠단다.

깜빡 잊고 있다가 늦은 밤에 찾으러 갔다. 마누엘이 하는 말이 페레뗴리아가 있긴 있었으나, 두 개에 30유로로 너무 비싸서 안 사고 왔단다. 보통은 10유로 정도면 된다고 했다. 비싸서 못 산 것이 자기 탓 인양 마누엘이 막 미안해한다.

"괜찮아, 괜찮아, 진짜 고마워, 마누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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