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에서 발견된 병
2012년 8월 26일 일요일
날씨 : 맑고 뜨거움
걷기 : 또레스 델 리오(Torres del Rio)에서 로그로뇨(Logrono)까지 (19.5km)
잡친 기분을 달랜답시고 마셔댄 포도주가 과했나 보다. 겨우 일어났더니 8시가 다되어 간다.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8시면 침대를 비워줘야 한다. 얼른 씻고 출발한다. 볼리비아 녀석에게 '아디오스(Adios, 안녕)'를 외쳐준다. 그의 따뜻한 답례가 돌아온다.
"아디오스!"
오늘 길은 단조롭고 말동무까지 없어 좀 무료하다. 드디어 누군가 뒤에서 나타난다.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같은 방을 썼고 에스떼야에서는 무료 박물관이 있다고 알려줬던 스페인 커플이다. 그런데, 스페인어로 '삐까 에스또'라고 지껄이더니 눈인사도 없이 쌩 지나간다. 한국인인 나를 보고 '여기 똥 있다'라고 말한 것 같은 이 느낌은 뭔가? 듣는 순간 그런 기분이 들었다. 스페인어 에스또(esto)는 영어의 디스(this)이고, 삐까는 이태리어의 삐삐(pipi, 소변)를 생각나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이 길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도 최소한 눈인사는 하지 않았던가? 하물며 우리는 아는 사이가 아닌가.
삐까가 무슨 뜻이냐고 스페인 사람들을 잡고 물어봤지만 그게 뭐냐고 한다. 사전을 찾아봐도 없는 것을 보면 내가 잘못 들었거나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이다.
어쨌든 그 스페인 커플은 악의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서양인의 얼굴을 금방 못 알아보는 것처럼 그들도 동양인인 내 얼굴을 못 알아봤을 것이다. 알베르게에서는 풀어헤친 파마머리의 나를 보았고, 길에서는 돌돌 말아 올려 모자까지 써버렸으니 그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길 위에서 서너 번 이런 식으로 주눅이 드는데, 이건 다 내 병이었다. 이걸 깨닫는 날이 곧 온다.
(그걸 깨달은 날!
언제쯤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초반 일주일이 지나 기운이 좀 빠지기도 했고, 도로를 따라 난 지루한 직선 길을 걷느라 마땅히 쉴 곳도 없어 더 힘이 들던 어느 날이었다.
앉을만하지 않은 노란 화살표 표지석에 엉덩이 한쪽 겨우 붙이고 앉아 지친 기분을 달래고 있었다. 자전거를 탄 한 무리가 속도를 늦추더니 나를 보며 낄낄 웃음부터 흘리고는 '아니몰!'하며 지나갔다. 뭐? 애니멀(animal)? 아무 데나 앉아 있는 지저분한 동양애라고 지금 나한테 동물이라고 한 거야?
이게 어디 다른 해외여행에서 당한 일이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기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거룩한 까미노가 아닌가! 두 다리로 걷던, 자전거로 달리던 이 길은 힘든 길이고,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동지애가 생기는 길이 아니던가? 며칠간 그들이 내게 뭐라고 한 건지 찝찔한 상태였다.
며칠 후, 그라피티로 꾸며진 터널을 지나가다 여러 낙서들 속에서 'A', 'N', 'I', 'M', 'O'라는 글자를 발견한다. '아니모'라는 단어가 있구나! 며칠 전 자전거 그룹이 내게 한 말은 '애니멀'이 아니라 바로 저거였구나!
스페인 사람에게 '아니모'가 뭐냐고 물어봤다. 영어로 'Cheer up!'이란다.
그가 웃으며 내게 한 말은 "기운 내!"였던 것이다!
아, 이게 내 병이었구나!
한 남자가 내 이태리어를 흉내 냈을 때도 나는 기분이 나빴고, 스페인 커플이 내게 인사도 안 하고 지나가며 낄낄거릴 때도 기분이 나빴다. 이건 피해망상증이다..... 내게는 피해망상증이 자랐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제 나는 어른이고, 내게 그런 병이 있는 줄을 알았으니, 거뜬히 벗어날 수 있다!
내 속에 숨겨진 병을 깨달은 것은 이 길에서 얻은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하여간, 오늘은 말동무도 없으니 혼자 무슨 생각을 하면서 걸어볼까 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때, 포도 한 송이를 꺾어든 청년이 나를 앞질러가며 길을 묻는다. '뭐 이 길이겠지'하고 가르쳐준다. 그가 그라찌에(Grazie)라고 답한다. 이건 이태리어가 아닌가. 반가워서 "세이 이탈리아노?(Sei Italiano?, 너 이태리 사람이냐?)"했더니 자기는 브라질 사람이고 스페인어를 쓴 거란다. 엥? 스페인어로는 그라시아스(Gracias)인데? 내가 잘못 들었나? 그렇게 그와 말을 튼다.
그는 탐스럽게 익은 포도송이를 먹으라며 내민다.
"막 따먹어도 되냐?"
나는 산티아고 책에서 포도밭에 손대지 말라는 조언을 읽었던 때문에 그의 스스럼없는 행동이 스페인 사람들의 미움을 받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많은데 하나쯤 따먹는다고 뭐가 어떻게 되겠냐며 능청이다.
그에게 얻어먹은 포도 맛은 진짜 대단했다. 포도주용으로 재배되는 것인데, 한국에서 흔히 보는 포도보다 알이 작다. "진짜 맛있다"를 연발하며 그와 나란히 포도를 먹으며 걷는다.
포도를 다 먹고 나서는 그의 걸음이 워낙 빨랐기 때문에 그를 먼저 보낸다. 그는 만나서 반가웠다며 이별 인사를 하는데 손등에 입맞춤을 하며 윙크를 날려주신다. 스페인 커플 때문에 다소 뿌루퉁했던 기분이 확 풀린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다 좀 멋진 것 같다. 며칠 전에도 멋진 아르헨티나 할아버지 둘을 만나지 않았던가.
오늘의 중간지점인 비아나(Viana)에서 아침을 겸한 이른 점심을 먹었다. 비아나에는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것으로 유명한 산타 마리아 성당을 맞은편에 두고 일렬로 바들이 들어서 있다. 모든 바에는 순례자들로 가득하다. 저 많은 순례자 중에 내가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맛있을 것 같은 바에 들어가 진열대 너머의 가장 맛있을 것 같은 보까디요(bocadillio, 샌드위치)를 고른다. 샌드위치에 물기 있는 속이 들어가 있어 좀 추잡스럽게 먹어진다. 익힌 파프리카였는데 제법 맛있었다. 그 맛에 행복감이 든다.
나는 이렇게 단순한 사람이었다. 아니, 원시적인 사람이었다. 맛있는 것을 먹으면 행복하고, 춥지 않고 따스하면 만족스럽고, 노곤해서 생각 없이 잠이 오면 좋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로그노료(Logrono)다. 로그로뇨는 조금 큰 도시다. 알베르게를 어떻게 찾을 것인가 조금 걱정이 된다. 로그로뇨로 들어서며 긴 삐에드라 다리(Puente de Piedra)를 건너게 되는데, 다행스럽게도 생각지도 못하게 다리 입구에서 순례자 인포메이션을 발견한다. 내가 조금 늦었더라면 시에스타 시간에 걸려 문이 닫혀있을 뻔했다. 그랬더라면 그 큰 도시를 지도 없이 엄청 헤매었을 것이다. 안내원이 지도에 알베르게의 위치를 동그라미 해주고, 둘러볼만한 곳까지 표시해 준다.
이 도시에는 알베르게가 셋 있다. 첫 번째는 중심가에서 멀어 통과한다. 두 번째는 공립 알베르게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여기 머문다. 나는 들어가려다 대안학교 팀이 여럿 들었다는 소리를 듣자 당기지 않는다. 뿌엔떼 라 레이나에서 대안학교의 두 팀과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며 인상을 확 구겼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이 밤새 술 마시며 욕을 해대서 같은 한국인인 내가 다 창피했다. 나는 고등학생이면 맥주 정도야 마셔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외국인들의 눈에는 그 애들이 열 한두 살로밖에 안 보인다. 내가 이십대로 보인 것처럼. 그들은 같은 한국인인 내게 인솔교사는 뭐 하냐고 따져 물었다.
또 욕이란 것이 생판 처음 들어도 그 뉘앙스로 욕인 줄 알 수 있다.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저질의 한국어를 순례자들은 자정이 넘도록 들어야만 했다. 뒤척이다 뒤뜰로 나가 그들에게 충고했다. "순례자들에게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너희들이 여기서 떠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그리고 욕 좀 하지 마라." 인솔교사가 해야 할 꼰대 짓을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들과 같은 알베르게에 드는 것이 달가울 리 없다. 물론, 내가 만난 모든 팀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세 번째 알베르게를 찾다가 한/국/인/남/자/를 만났다! 내 나이 또래의 한국 남자를 처음 만난 것이다. 물론 대안학교 인솔 교사들도 생물학적으로 남자이긴 했지만, 심정적으로는 아니었다. 그러니 처음으로 한국 남자를 만나 내가 얼마나 기뻤을 것인가. 나의 목적이 오로지 걷기였다 하더라도 언제나 로망은 숨어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골목에 우뚝 서서, 언제 출발했고, 하루에 몇 킬로를 걷고 있으며, 귀국은 언제인가 등등을 서로 물어본다. 그는 오늘 아침에 일찍 출발한 것 치고는 꽤 늦게 도착했다. 걸음이 늦은가 했더니, 대안학교 학생을 만났는데 다리가 아프다고 절뚝거려 그냥 버려두고 올 수 없어 같이 오느라 이렇게 늦은 것이란다. 옴마, 이런 천사 같은! 그 여학생을 인솔 교사와 무사히 만나게 해 줬으니 자기는 오늘 나바레떼까지 갈 거란다. 나는 그가 가버리는 것이 몹시 아쉽다. 그가 하루에 걷는 거리로 보건대, 다시는 만나 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더 그렇다. 어쩌면 로맨스를 만들어 볼 수도 있는, 처음으로 만난 한국 남잔데 말이다. 그렇다고 초면에 이것보다 뭘 더 어떻게 찐득거려 볼 수도 없고, 진짜 인상 좋고 성격 좋으시다고 한참을 감탄해 주고 헤어진다.
세 번째 알베르게는 교구에서 도네이션(donation)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기부제 알베르게에서는 처음 자보게 된다. 알베르게라고 굳이 알리고 있지도 않고 문도 닫혀있어, 한 청년이 알려 주지 않았으면 찾지 못했을 것이다.
벨을 눌렀더니 육중한 성당 출입문이 열리고 오스피탈레로가 나와 맞아준다. 신발은 여기다 벗어라, 방으로 안내하며 침대는 여기다, 샤워실을 보여주며 샤워는 여기서 이렇게 저렇게 해라, 2층 식당으로 안내하며 몇 시에 저녁을 먹고 아침도 줄 것이다, 우리가 다 준비하니 시간에 딱 맞춰서 오기만 해라, 상자를 보여주며 여기에 원하는 만큼 기부하면 된다며 살뜰히도 안내를 해준다. 매번 순례자가 도착할 때마다 이렇게 안내하면 진이 빠지지 않겠나 싶은데, 그는 나를 오늘 처음으로 맞는 순례자인 양 또박또박 친절히 설명을 한다. 차라리 부담스러울 지경.
1층 방은 침대이고, 2층 방은 바닥에 매트리스만 깔린 식이다.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자란다. 위층 침대밖에 남지 않았지만 침대 방에서 자기로 한다. 아직 2층 침대에서 자는 것이 편할 때가 아니었지만, 매트리스만 깔린 곳은 옆자리의 남자가 쉽게 지분거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까지도 하고 있었다. 이 하나 도움되지 않는 '동양 여자'의 자아는 오래도 따라다녔다.
2층 침대에 누워 다음날 계획을 짜고 있자니, 아까 만났던 한국 남자가 나를 보고 웃으며 다가온다. 자기도 오늘 여기서 머물기로 했고, 자기는 2층의 매트리스만 깔린 방에서 잘 거란다. 저녁에 식당에서 만나기로 한다.
식사 전에 저녁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가 어떤 것인지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고, 교구 알베르게에서 재워주니, 참석하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소심한 내 생각이고 미사 참석은 절대로 의무가 아니다.
우리나라 교회와는 달리 일어섰다 앉았다를 너무 자주 해서 귀찮았고, 스페인의 일상회화와는 달리 설교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지루했다.
오늘 이곳에 머무는 사람이 한 스무 명 남짓 되나 보다. 저녁 식탁에 접시가 그만큼 나와있다. 다들 정확하게 시간 맞춰 저녁 식탁에 모인다. 다들 배가 고프기 때문에 일분이라도 늦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 남자가 사람 좋은 얼굴로 헤벌쭉 웃으며 내 앞에 와 앉았다. 옆에는 상냥한 노부부가 앉았다. 그들의 국적이 기억나지 않지만, 할아버지는 영어를 참 잘했다. 무슨 이야기 끝에 내가 이태리어를 배운 지 너무 오래되어 다 잊어버렸다고 했더니, 몇 년이나 되었냐고 물었다. 이십 년이 다되어간다고 했더니, 고작 스무 살밖에 안되어 보이는 네가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고 하면 아기 때 배웠다는 것인데, 그건 말도 안 된다며 어찌 된 것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크크.'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나이를 잘 짐작하지 못하는 줄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를 이십대로 보아주다니 기분이 붕 뜬다.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오스피탈레로의 진행으로 신부님의 기도와 이 알베르게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관한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나는 도네이션에 처음 묵다 보니, 이건 많이 기부하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싶어 진다.
가톨릭 교구에서 운영하는 이 알베르게는 오스피탈레로가 저녁과 아침을 준비해 준다는 점에서는 환상적이었지만, 9시까지 들어와야 한다는 시간 제약이 있다는 점은 별로다. 큰 도시인 로그로뇨에서 9시까지 들어오라는 것은 스페인을 즐기지 말라는 소리다. 스페인의 9시는 초저녁이다. 하긴 그런 제약이 싫으면 다른 공사립 알베르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