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 공용어를 몰라서

스페인 대 비스페인으로 나뉜 저녁테이블의 불쾌

by 김동해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날씨 : 여전히 맑고 뜨거움

걷기 : 에스떼야(Estella)에서 또레스 델 리오(Torres de Rio)까지 (31km)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외국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인천에서 2년 정도 사셨단다. '함 뭐시기'라는 한국인 이름도 가지고 있단다. 함도빈이라고 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나는 따라 걸으랴, 대화하랴, 숨이 차다. 다시 만나질까 싶었지만 워낙 걸음이 빨라 다시는 보지 못했다. 이 길에서 외국인과 한국어로 그렇게 긴 대화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안녕하세요', '언니', '고마워요' 따위로 말 건네는 오스피탈레로(알베르게 주인장)은 쉽게 만난다.


또레스 델 리오의 알베르게에 도착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아줌마와 아들이 방 배정 문제로 이러쿵저러쿵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청년은 한국인만 가득한 방에서 좀 머쓱한 기분이 들었던지, 자기 엄마와 같은 방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좀스런 녀석.' (저녁식탁에서 그 녀석의 좀스러움은 더 활짝 드러난다.)

그 방은 일부러 여성에게만 제공하고 있어서 곤란하단다.

'여성들만 묵는 방이 있어?'

나도 그 방으로 달라고 했더니, 그는 한국인들이 많은 방이 있는데 거기가 편하지 않겠느냐 한다. '아니, 전혀!' 그러나, 그의 선량한 눈빛이 맘에 들어 그냥 그러마 한다.

배정받은 방의 한국인은 대안학교 팀이었다. 그 팀은 오늘 처음 본다. C팀이라고 칭하겠다. '오늘로써 세 팀을 보았군.' 인솔교사의 성씨는 생각나지 않고 아이들이 '열홍쌤, 열홍쌤'하던 것만 기억난다.


알베르게의 침대 배정 방식은 대략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대규모 공립 알베르게는 침대마다 번호가 딱딱 붙어있고, 오는 순서대로 번호표를 부여한다. 감히 침대를 바꿔달라니 말라니 하는 소리를 못할 분위기다. 하지만, 가능하다. 세상에 절대 안 되는 것은 없다. 안 될 것이라 생각하고 아예 요청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또 어떤 공립 알베르게는 원하는 아무 침대나 선택하라고 한다. 이게 좋을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늦게 도착하는 순례자는 먼 거리를 걸어 가장 지쳐 있기 마련인데, 그에게는 나쁜 자리밖에 남지 않게 된다.

또 어떤 알베르게는, 주로 소규모의 사립 알베르게일 경우가 많은데, 오스피탈레로가 적절히 조절하여 젊은이는 젊은이들끼리, 아줌마는 아줌마들끼리 한방을 쓰도록 만든다. 오늘 만난 오스피탈레로가 이렇게 방을 배정하고 있다. 세상 어디에서건 '끼리끼리'가 편한 법일까?


오늘 묵게 된 알베르게의 오스피탈레로는 볼리비아인인데, 가족이 모두 스페인으로 옮겨왔단다. 유명한 '우유니 소금사막'이 있는 그 볼리비아다. 엄마와 매형은 알베르게 근처에서 릴리(Lili)라는 레스토랑을 꾸리고 있다. 자기 누나와 조카 사진도 보여줬다.

같은 스페인어권이면 되니 볼리비아 사람들은 세계지도를 펴놓고 직업을 찾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그것이 부러우냐 하면, 아니. 자기들을 식민 지배하던 나라에 와서 하급 노동을 담당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같은 언어를 쓰고 있지만, 스페인 사람과는 다른 가무잡잡한 피부색으로 어떤 직종에 종사하든지 간에 그들은 이미 구분 지어질 것이다. 비록 또레스 델 리오의 오스피탈레로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주인에게 아양을 떠는 강아지처럼 이미 한풀 꺾인 온화한 표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은 선택의 여지없이 레스토랑 릴리에서 먹어야 한다. 동네를 한 바퀴 둘러봤으나 달리 바(bar) 비슷하게 생긴 것도 없다.

오늘 이 마을에 머무는 스페인 사람들은 식당 입구에서부터 음악을 틀어놓고 춤추며 흥겹다. 내가 식당으로 들어가려 하자 흥청거리는 몸을 옆으로 비켜주며 2층이라고 알려준다. 스페인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셔서 흥청거리는 것이 아니다. 와인 한두 잔에도 밤새 술 마신 사람처럼 금방 몸이 달아오르는 모양이다.

2층으로 올라가니 스페인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만 쏙 제쳐져 필그림 메뉴의 첫 번째 접시를 먹고 있다. 외국인인 나도 그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처음 보는 헝가리 여자 둘(둘은 친구사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엄마와 아들(빰쁠로냐의 세탁실에서 만난 적이 있는 아줌마다), 네덜란드인 하나(내 친구 페이터), 그리고 내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1층에서 올라오는 흥겨운 음악 소리와 웃음소리에 우리는 완전 처량해진다. 어쩌다 오늘은 스페인과 비스페인으로 똑 쪼개지게 되었을까?

외국인들만의 식탁을 처량하게 느낀 것은 나만이었을까? 나와 마주 앉은 그들도 그걸 알아서 더 재미있다는 듯이 이야기에 열을 올린 것이 아닐까 싶다. 저녁 식탁의 그 분위기를 인정하는 말은 한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나는 그 거만스러움이 우스웠다. 영어를 쓰는 그들이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숨 술 틈 없이 이야기를 쏟아내며 1층의 음악 소리도, 웃음소리도 안 들리는 것처럼 굴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아줌마가 이야기를 주도해 간다. 헝가리 여자가 영어를 잘해서 둘이 죽이 맞아서 떠들어댄다. 그러나 한 번쯤은 동양인인 내게도 말을 걸어줘야 되겠다 싶어 말을 건네는데, 내가 오스트레일리아 아줌마의 대따 굴린 영어발음을 대체로 못 알아들어준다. 내게로 질문이 떨어지면 내가 "뭐라고?"만 하고 있으니, 그녀는 똥 싶은 표정이 된다. 내가 못 알아들어도 그녀는 다시 설명하거나, 더 쉬운 단어를 찾거나, 속도를 늦추거나 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대화가 목적이 아니라 자기는 세계의 주인인 영어로 '유창하게 떠들어야겠다' 뭐 이런 듯.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더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앞에 앉은 페이터가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페이터와 나는 '우리는 친해'라는 말을 써도 좋을 사이가 아닌가? 똑같은 문장이라도 오스트레일리아 아줌마의 버터 발음은 알아들을 수 없고 페이터의 정직한 발음은 알아듣는다. 페이터는 그걸 알고 있을 터인데, 그녀의 질문에 내가 "뭐라고?"를 연발하고 있어도 거들어 주지 않았다.

페이터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줌마 말을 다 알아듣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극적으로 대답만 하고 있었는데, 그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어 나를 도와주지 못한 것일까?

모국어로 떠드는 그녀를 같잖아하는 것이 내 얼굴에 보였나? 오스트레일리아 아줌마의 아들놈이 "넌, 뭐 다른 언어 할 줄 아는 것이 있냐?"라고 묻는다.

"(네 놈이 영어 하는 만큼이나 나도) 한국어는 아주 잘하지! 이태리어는 제법 할 줄 알지. 영어는 (보시다시피) 아주 조금 할 줄 알고, 스페인어는 이 길을 걸으면서 배우고 있지. (어쩔래?)"

'한국어는 아주 잘하지'에서 내가 비꼬고 있다는 것을 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다 알았으리라. 내 말이 끝나고 분위기가 아주 싸해졌으니까. '네 놈은 그 알량한 영어만 믿는지라 이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스페인어는 한 마디도 못 배웠을 테지만'을 품고서 최대한 잘난 척하며 답해줬다. '너도 모국어밖에 못하잖아'하는 뉘앙스로 물어봤는데, 나의 반응이 제법 거칠자, 그이 얼굴이 떨떠름하게 된다.

헝가리 여자가 몽블랑 갔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창한 영어로 자랑을 늘어놓고 싶은 것이다. 어딜 갔고, 어딜 갔고, 어딜 갔노라. 내게도 한마디 건네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모양, 88 올림픽 때 아버지를 따라 한국을 방문했었다며, 호응을 바라며 나를 본다. 그녀에게도 영어는 외국어다. 그러니 그녀는 봐준다.

그녀는 오스트레일리아 아줌마와 영어로 죽을 맞추느라 그녀의 헝가리 친구를 완전 소외시켰다. 그녀의 친구는 영어를 거의 못 알아듣는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음식 접시만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는 더듬거리는 영어로 잘 통할 수도 있었겠지만 나와 그녀는 서로 대각선 끝에 앉아 있어, 두 여자의 유창한 영어를 뚫고 대화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오늘 저녁 식탁에서 나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국어로 잘난 체하는 그들로부터 소외된 당혹감에, 친구의 배려 없음에 대한 서운함.

그렇게 떠들어대고도 우리는 호탕하게 한번 웃지 못했다. 떠듬거리는 영어 몇 마디로도 얼마나 웃을 일이 많은데... 그러니 오늘 저녁 식탁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가?

후식이 끝나자 예의고 뭣이고 나는 먼저 일어나겠다고 인사한다. 그랬더니 그들도 피곤을 가장하며 줄줄이 일어선다. 스페인사람들의 흥겨움에 대항하여 최대한 떠들어는 보았지만 이 저녁이 유쾌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고 뭐겠냐. '흥!'


레스토랑을 나오다 흠뻑 취하고도 한 손에 포도주를 들고 있는 하비와 마주친다. 하비는 1층의 즐거운 스페인 파타에 있었다. 하비는 기분이 꽤 좋은가보다. 나를 불러 세운다.

"동해, 우리가 레온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쌈띵'을 하자."

"쌈띵?"

만나게 되면 뭘 하자는 것이니까 뭔지 알아야 약속을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럴 때는 못 알아듣고서 대충 알아들은 척할 수 없다.

"쌈띵이 뭔데?"

술에 취해서 더 바보스러워 보이는 하비는 낄낄 거리며 "쌈띵, 쌈띵."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내가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짓자, 내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쓰기 시작한다. SOMETHING.

"아하, 섬씽! 좋아, 좋아."

하비는 올해는 레온까지만 걷고 레온에서 버스를 타고 마드리드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러니, 그의 마지막 날에 오늘처럼 거나하게 취해보자는 것이겠는데, 안타깝게도 하비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만다. 내가 부르고스에서 이틀을 머물러버린 탓에 길을 걷는 친구들이 물갈이되어 버렸다. 하비와 크리스티안을 다시 만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하비의 바보스런 웃음과 백만 불짜리 속눈썹, 크리스티안의 크레이지함과 순박한 눈빛은 그래서 잊히기 더 힘들 것이다.


들어가 눕는다고 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알베르게 앞에 내다 놓은 테이블에 앉아 '오늘의 이 기분은 뭔가?' 하며 추스르고 있자니, 요 조그마한 동네에 아이들이 제법 보인다. 스페인어 좀 가르쳐주지 않겠느냐며 불러 앉혔다. 이 동네에 학교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근처 큰 마을의 학교에 다닌단다. 보통은 그곳까지 부모님이 태워주신단다. 그들에게 배운 몇 문장을 옮겨본다.

'에스또이 에스뚜디안도 에스빠뇰(Estoy estudiando espanol,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다.)'

'에레스 운 쁘로페소르 빠라 미(Eres un profesor para mi, 너는 나를 위한 선생님이다.)'

스페인어는 발음이 좋다. '스스'하며 문장을 관통하는 규칙적인 음이 흐른다.


그리고 구스따르(gustar, 좋아하다) 동사의 변형에 대해서도 배웠다.

'요 구스또(Yo gusto, 나는 좋아한다),

뚜 그스따스(Tu gustas, 너는 좋아한다)

엘 구스따(El gusta, 그/그녀는 좋아한다)

노소뜨로스 구스따모스(Nosotros gustamos, 우리는 좋아한다)

보소뜨로스 구스따이스(Vosotros gustais, 너희들은 좋아한다)

에요스 구스딴(Ellos gustan, 그들은 좋아한다).'


1인칭 동사변화만 배웠으면 훨씬 간단하다 느꼈을 것이고, 포기하지 않고 많은 단어들로 늘려갔을 텐데, 나는 무슨 믿음으로 동사 하나가 등장하면 매 인칭의 단복수 동사변화를 몽땅 알아야겠다고 덤볐는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아, 어려워'하고 나가떨어지고 만다. 첫 일주일보다 마지막 일주일에 써먹은 스페인어가 더 적었다는 거.


자려고 들어가니, 알베르게 안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축구를 보고 있다. 대단한 경기였다고 하는데, 나는 축구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원. '난 너무 상식이 없어...' 하고 또 한바탕 울적해한다. 대구에서 유니버스대회가 있던 해에 2주간 이탈리아 축구팀을 따라다니면서도 축구에 대해 내가 늘린 지식은, 우리나라는 'K리그'라고 하고, 이탈리아는 '세리에 A'라고 한다는 거, 세리에 A, B, C가 있다는 것이 다다. 영어만 만국 공용어가 아니라 축구도 만국공용어가 될 수 있다. 다음번 여행을 위해서 축구 상식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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