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염을 진단하다

아줌마의 경험능력 발휘

by 김동해

2012년 8월 24일 금요일

날씨 : 늘 그렇듯이 하늘은 청명하고 볕은 뜨거움

걷기 : 뿌엔데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에스떼야(Estella)까지 (22.4km)


술 때문이었나, 일찍 일어나 진다.

아침에 본 골목길의 분위기는 어제와 사뭇 다르다. 식당 테이블들이 나와 있고, 순례자들이 어슬렁거리던 골목은 말끔히 비워져 막 세수한 듯해 보인다. 골목 등이 켜져 있어 내가 일찍 출발하는 듯한 뿌듯한 기분을 준다. 그러나 이미 사방은 원해서 등은 밝히는 기능이 아니라, 어두운 돌 색의 건물 벽에서 오렌지 색으로 빛나며 분위기를 자아내는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아침나절에 작고 고요한 마을 시라퀴(Ciraqui)를 지난다. 어제저녁, 수첩에서 시라퀴 알베르게에 대한 메모를 발견했다. <산티아고에서 가장 멋진 알베르게, 침대 수 34개, 숙박비 7유로, 식당 운영, 풀코스의 멋진 저녁 10유로> 산타아고 책을 읽으면서 꼭 머물고 싶은 알베르게와 피해야 할 곳을 메모했었는데, 시라퀴는 꼭 머물고 가리라 생각했던 곳이다. 며칠 전에 이 메모를 발견했더라면 걷는 거리를 조정해 볼 수 있었겠지만, 오늘 이곳에서 자기에는 거리가 너무 짧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하나의 경험을 포기하면 또 다른 경험이 기다릴 것이다.


시라퀴를 지나 또 다른 작은 마을 나바라(Navarra)에 들어선다. 뭘 좀 먹어야겠기에, 이 동네에 슈퍼마켓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저 골목을 돌아가면 나온단다. 그제야 순례자를 위해 슈퍼마켓이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인다. 노란 화살표만 보고 걸었으면 결코 찾지 못했을 만한 곳이다. 이렇게 깊숙한 슈퍼마켓을 찾아낸 나 자신이 기특하다. 그런데, 웬걸. 나보다 더 똑똑한 순례자들이 이미 슈퍼마켓을 누비고 있다.

과일과 요거트를 샀다. 요거트 스푼이 없다. 스푼이 동이 나서 없는 것이 아니고 원래 없다. 요거트에 일회용 스푼이 있는 것은 당연한 줄 알고 스푼을 달라고 했다.

"무슨 스푼?"

"요거트 떠먹을 스푼."

슈퍼 아줌마가 옆집 바에서 커다란 일회용 스푼을 구대하 준다. 미안하고도 고마워라.

그 스푼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여러 차례 요거트를 사 먹게 되는데, 요거트를 4개 묶음으로 팔기 때문에 꼭 몇 개는 남아서 가방 안에 넣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먹고 싶어 꺼내다가도 스푼이 없어 난감해하다 도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종일 볕을 쬐며 들고 다닌 요거트는 밤이 되면 상해서 먹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기내식 때 나온 일회용 스푼과 나이프를 챙겨두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풍경이 아름다운 교회 마당의 돌 벤치에 앉아 슈퍼에서 장만한 늦은 점심을 먹으며 쉬어가기로 한다. 볕도 좋고, 풍경도 좋고, 교회 마당에서 놀고 있는 스페인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좋다. 어떤 아이들은 웃옷을 벗은 채로 햇볕에서 놀고 있다. 일곱여덟쯤 되어 보인다.

녀석들에게 영어 할 줄 알면 스페인어 좀 가르쳐주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누가 누가 영어를 한다고 추켜세우며 우르르 다 몰려온다. 어제 적어두었던 스페인어 동사를 보여주며,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앞다투어 설명해 준다. 한 녀석의 설명에 내가 잘 모르겠다고 하면, 옆에 있던 녀석이 기다렸다는 듯이 신나게 설명을 가로챈다.

빠가르, 베베르, 도르미르, 안다르, 꼬체르, 꼼쁘라르, 꼬노세르, 다르, 엔세냐르, 엔뜨라르 등등. 베스띠르세(vestirse)를 설명하면서는 한 녀석이 옷을 훌렁 벗은 후에 그걸 도로 입으며 그게 베스띠르세라고 했다.

사실 나는 그 단어들의 뜻을 다 알고 있었다. 이탈리아어의 빠가레(pagare)가 스페인어로 빠가르(pagar), 베베레(bebere)는 베베르(beber), 도르미레(dormire)는 도르미르(dormir)였으니 알 수밖에. 나도 즐거웠지만 녀석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도 모르는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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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들의 열정적인 설명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 최소한의 무게를 지향하는 내 가방 속에는 줄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사진을 찍자고 했다. 스페인어 선생님이 되어준 선물로 한국에 돌아가면 이 사진을 보내겠다고. 몇 달 후에 도착할 것이라고 말해 두었다. 그런데, 아직 보내지 못했다. 사진은 컴퓨터 안에 옮겨 담은 것으로 그냥 던져준 상태다. 여차여차 시간 안에 해치워야 할 긴급한 일들을 해치우느라, 아직 여행을 정리하지 못했다. 올해가 지나기 전에 녀석들에게 사진을 보내야겠다.

나는 약속을 지키지만 기한에 대해서는 별로 강박하지 않는다. '언제고 지키면 지켜지는 것이다'가 내 기준이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하비와 크리스티안도 와있다. 대안학교에서도 두 팀이 와 있다. 한국 아이들을 피해 침대를 잡다 보니 하비와 한 방에서 자게 되었다. 어제 일로 하비를 대하는 것이 부끄러워 인사만 슬쩍하고 일부러 피한다. 또 그 방에는 작고, 야무지고, 예쁘게 생긴 중년의 여성이 홀로 침대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웃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어느 날에는 통성명을 하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쥬느비에브이다.)

잠잘 곳을 잡았고, 옷가지도 빨아 널어 두었으니 동네 구경을 나선다. 간밤에 같은 방에서 잤던 스페인 커플이 크레덴시알을 가지고 가면 무료로 입장 가능한 박물관이 있다는 정보를 준다. 스페인 내전에 관해 알려주는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을 안내하는 젊은이는 동양인인 내게 스페인 내전에 대해 꼭 이해시키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가진 듯이 달라붙어 영어로 설명을 해댔다. 그가 나의 영어 실력을 알았더라면 헛되이 떠든 것에 갑자기 목이 마를 것이다.

전시된 물건과 그림 등을 통해 파악한 것은, '스페인이 공화국이 되었는데, 왕이 왕정으로 복고한다. 이에 반대하며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게 된다.' 정도.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의 스페인 내전은 1900년대 초반의 일인데, 이 박물관의 스페인 내전은 그보다 오십여 년 앞선 것이었다. (지금 찾아보니 스페인이 공화국이 된 것은 1931년이라고 되어있다. 내가 박물관에서 본 것은 분명 1800년대 말의 스페인 내전이었는데..... 난 뭘 본거야?)

박물관을 둘러본 후 동네 광장을 찾아다니다, 높은 계단 위에 세워진 성당을 하나 발견한다. 성당 건축물이 예쁘기도 했지만, 계단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는 골목 풍경은 더 멋졌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지만, 사진은 내가 눈으로 보는 만큼을 담아내지 못한다.


알베르게를 많이 벗어나 다리 하나 건너에 있는 광장까지도 구경을 갔다. 동네 깊숙이 있는 아담한 광장의 바에는 다 그 동네 사람들인 것 같아 차마 들어가 앉지 못했다.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큰 광장 주변이 맘 편했다.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피자집을 하나 발견한다. 오늘 저녁은 저걸 먹어야지 싶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피자가 땡기는 자들이 있나 물어본다. 넙죽넙죽 잘 나서는 도열이만 피자를 먹겠다고 나선다. 그러니, 그의 인솔 교사도 그러자며 합류한다. 진짜 맛있어 보였던 광고판 이미지와는 달리, 이건 뭐 피자도 아니고 토스토도 아니었다. 대 실망.

처음 만난 대안학교 팀을 A라고 칭하겠다. A팀 인솔교사의 말에 의하면, 이 대안학교는 같은 기독교 단체의 사람들 몇몇이 돈을 모아 설립했고, 지금은 확장해서 문경 쪽으로 옮겼단다. 자기 딸로 이 학교에 다닌단다.

그는 교사는 아니고 학교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데, 자기가 다른 분야는 몰라도 회계에 있어서는 뛰어나단다. 나는 그 말에 그가 도열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열이는 어릴 때 사고를 당해서 뇌가 통합이 안 된다. 기억력은 뛰어난데, 구체적 사실들을 통합하는 능력이 전혀 없는 것이다. 넙죽넙죽 영어도 잘하고, 길도 잘 찾는다. 그런데도 어딘가 모자라는 듯하다. 이 교사가 그랬다. 오십이 다 되어가는 정상적인 남자의 머릿속이 아니었다. 나는 처음으로 만난 A팀의 인솔 교사 때문에 이 학교 아이들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갖지 못한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 다음날 계획을 세우기 위해 대안학교 학생들에게 가이드북을 빌리러 갔다. 여자아이 하나가 침대에 누워 끙끙거리고 있다. 그녀를 두고, 한 외국인 아저씨는 병원에 가야 한다며 호들갑 떨고 있고, 아이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한 인솔 교사는 느긋하게 듣고만 있다. 이 팀은 또 다른 팀이니 B팀이라고 칭하겠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내가 또 가만히 지나가지 못한다. "무슨 일이에요?"로 간섭을 시작한다. 외국인 아저씨가 묻는다.

"너, 의사냐?"

"아니, 넌 의사냐?"

그도 의사는 아니다. 내가 의사는 아니지만, 이 여학생을 도울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달래어 그를 보낸다.

인솔 교사에게 아이의 증세를 물었다. 며칠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고, 그래서 사혈을 했고, 좀 나아져서 오늘은 멀쩡히 걸어서 이곳에 도착했는데, 다시 아프다고 누웠다는 것이다.

"사혈이 뭐예요?"

피를 뽑는 거란다. 배가 아픈데 웬 사혈? 이 대안학교가 뭔 사이비 종교단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 누워있는 여자아이에게 이 아줌마가 체한 것은 정말 감쪽같이 낮게 할 수 있으니, 좀 일어나 앉아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다!) 아이는 아파서 절절매며 겨우 일어나 앉는다. 등을 톡톡 두드려볼 참인데, 온몸이 너무 뜨겁다. 이건 체한 것 이상이다.

'맹장염이 아닐까?'

내가 어떻게 그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배가 어떻게 어느 부위가 아픈지 물어보니 내가 맹장염에 걸렸을 때의 딱 그 부위였다. 배꼽선 아래의 오른쪽 배가 아픈 것이다.

"선생님, 맹장염 같아요. 병원에 가야 될 것 같아요."

인솔 교사, 내 말을 같잖아한다. 배는 며칠 전부터 아팠고, 어제는 멀쩡해졌고, 오늘은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맹장염이 아팠다 안 아팠다 하는 병이 냔다.

"네, 만성맹장염은 그래요. 아팠다 안 아팠다 해요."

만성맹장염은 피곤하면 아프고 푹 쉬면 괜찮아지다가 또 피곤하면 도진다고 확신해 줬다. 아픈 여자아이에게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고 "넌 꼭 병원 가야 한다."라고 이야기해 줬다. 인솔 교사가 있으니 내 맘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여자아이가 병원에 갈 결심이 서자 인솔 교사도 어쩔 수 없어진다.

택시가 도착하는 동안 '맹쟝염'이라는 단어를 찾아, 통역을 위해 따라가는 여자아이에게 적어주며 병원에 도착하면 의사에게 '맹장염'이 의심된다고 말하라고 했다. 스페인어는 잊어버렸지만 영어로 맹장염이 아펜딕스(appendix)인 것을 아직 기억한다. 며칠 후에 전해 듣기로 그녀는 이미 복막염 상태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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