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저래 체면 구긴 날

'여왕의 다리'라는 이름의 마을

by 김동해

2012년 8월 23일 목요일

날씨 : 뜨거움

걷기 : 빰쁠로나(Pamplona)에서 뿌엔떼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 (24.6km)


간밤 별일이 있었다!

여자의 신음 소리가 가늘게 들린다. 헤수스 이 마리아 알베르게는 2층으로 되어 있고, 1층 천장이 열린 구조라 소음이 고스란히 들린다. 독일 코미디언이 쓴 책에 옆방 커플의 그 짓 하는 소리가 들리고 어쩌고 하는 대목이 떠올랐다. 잠결에 참 해괴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또 까묵 잠이 든다.

또 들린다. 확실히 젊은 여자아이의 그 짓 하는 소리 같다. 그때부터 잠이 올 리 있나. 2층에서 난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으니 앓는 소리인 것도 같다.

'누구지? 왜 저러지?'

또 자세히 들어보니 한국아이 같다.

'한국 여자아이의 신음소리?'

그러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누가 아파요?"하고 2층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물어본다.

"쉿!"

나보고 조용히 하라는 위협이다. 저 소리에 나 말고도 이미 깬 자들이 많다는 소리다. 순례자에게 잠이 아무리 중요해도 누군가 아파서 저렇게 끙끙거리고 있는데, "쉿!"이라니.

같은 한국인인 내가 모른 척할 수 없다. 조용히 일어난다. 어디로 해서 2층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마침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며 뭔가를 찾고 있는 샨티 대안학교의 여자아이가 내려온다.

"왜 그래요?"

누가 많이 아프단다. 그런데 인솔 선생님이 안 보이신단다.

"내가 찾아볼게요."

인솔 선생님은 잠이 안 와 한 학생과 밖에서 다음날 일정을 궁리하고 계셨다.

"선생님! 누가 아프대요. 빨리 올라가 보세요."

선생님이 올라갔으니 안심해도 되겠지.

술기운이었는지, 침대로 돌아와서는 금방 다시 잠들었다. 2층에서 후딱후딱, 왔다 갔다 하는 소리를 몇 번 듣긴 했다. 다음날 들어보니 병원에 가서 진통제를 맞고 와서야 잠들었다고 한다.


간밤에 몇 번 깼던 때문인지 늦게 일어난다.

오늘 아침은 꼭 챙겨 먹어야 한다. 800미터의 경사진 언덕을 하나 넘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가 끝나갈 쯤에 한 바(bar)에 들러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신다. 한국에서도 아침은 늘 커피와 토스트였기 때문에 그 정도면 된다. 한두 시간 걷다 출출해지면 다시 사과 하나 부셔먹으면 완벽한 아침이 된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마주쳤던 한 가족도 들어와 아침을 먹는다. 우리는 서로 '알베르게에서 본 적 있지?' 하는 뜻이 담긴 눈인사만 한다. 큰 알베르게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좀 그렇게 된다. 작은 알베르게에서는 공간이 적다 보니 얼굴 부딪히는 횟수도 많고, 또 어떤 알베르게는 아침이나 저녁을 제공하기 때문에 한 테이블에서 먹는 내내 보다 보면 이미 친해진 기분이지만, 일이백씩 묵는 큰 알베르게는 그렇지 않다. 모녀가 내 샤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말 한마디 건네게 되어 그나마 얼굴이라도 기억나는 것이다. 나중에 또 보자는 의례적인 인사를 남기고 먼저 걷기 시작한다.


만족스럽도록 긴, 내 그림자를 앞세우며 도시를 빠져나온다. 햇살이 뜨끈해진다. 이쯤에서 모자를 쓰고 팔 토시를 해야지 싶다.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아차 싶다.

'돈을 안주고 왔어.'

명색이 순례잔데, 음식 값을 안내는 것은 면(面)이 뜨거워지는 일이 아닌가. 그 바(bar)로부터 몇 분이나 걸어왔지? 몇 km나 될까? 한 삼십 분 되는 것 같다. 삼십 분을 다시 걷는 것은 할만하다. 그러나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생각하면 한 시간이다. 한 시간이면 5km. (그때는 그랬다. 갈수록 느려지지만.) 아침의 1시간은 얼마나 금쪽같은 것인데.....

'돌아가지 못하겠다.'

시나리오를 써본다. 그 가족과 다정히 인사를 하고 헤어졌으니 가게 주인은 그들과 내가 동행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들이 계산하려 할 때, 방금 나간 여자의 커피 값을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까미노길이란 것이 걷다 보면 또 만나지는 것이니, 그때 받으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내 몫도 지불한다. 길 어디에선가 그들을 만나면 나는 호들갑스럽게 "내가 깜빡 잊고 그냥 와버렸지 뭐야, 혹시 네가 냈니? 그렇다면 여기."하고 아침 값을 주는 것이다. 그러면 동양에서 온 순진한 순례자는 체면을 구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쓰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출입구에 계산대가 지키고 선 한국음식점 같은 구조가 아니다 보니 깜빡하고 말았다. 그러나 길 위에서 그들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림자는 짧아지고 경사는 높아진다. 경사는 곧 페르돈 고개가 나타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사진에서 페르돈 고개를 많이 보았었다. 얇은 철 구조물이 녹슬어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모습, 별 기대가 없다. 페르돈 고개에 바람이 세다더니 멀리 하얀 풍력 발전기가 보인다.

정상에 오르자 많은 사람들이 페르돈 고개의 바람과 경치를 즐기며 쉬고 있다. 직접 본 페르돈 고개는 어땠느냐? 나는 엉성한 철 구조물을 생각했었는데, 단단한 예술 조형물이었다. 사진은 그 조형물의 탄탄함과 자연스러운 산화를 찍어낼 수 없다.

페르돈이 무슨 뜻인가 하고 막 찾아보니 '용서'다. '빼르돈, 돈데 알베르게 무니치팔?(Perdon, Donde albergue municipal?, 실례지만, 공립 알베르게가 어디예요?)'의 그 '뻬르돈'인 것이다. 영어의 익스큐즈(excuse) 같은 거고, 이탈리아어의 스쿠지(scusi)였던 것이다. 스페인 길에서 내내 빼르돈, 빼르돈 하고서도 그게 그 단어인지를 몰랐다가 오늘 안다. 내 센스가 이렇다.

이탈리아 꼬맹이에게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한다. (이 이탈리아 꼬맹이들은 인솔자도 없이 네댓 명이서 온 것 같다. 아무리 많이 보아도 갓 입학한 중학생으로밖엔 안 보인다. 다시 만나지지 않은 것을 보면 이 길을 다 걷지는 않았나 보다.) 페르돈 고개에서 달랑 2장 찍었는데 사진기가 멈췄다. 그마저도 꼬맹이가 찍은 사진은 흔들렸다. 이쩔 수 있나. 기억에 담는 거지 뭐.

앉을만한 곳을 찾는데 저기 페이터가 보인다. 그와 자주 만나지는 것은 발걸음 속도가 비슷한 탓이다. 복숭아를 꺼내 먹으며, 그와 참 예쁜 곳이라며 감탄하고 있자니 흑인 정년이 다가와 새로 지은 알베르게를 홍보한다. 다리 건너 100미터쯤 더 오면 되는데, 수영장 시설을 갖추고 있단다. 페이터는 '새로 지었다'는 것과 '수영장이 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나 보다. 나는 '수영장이 있다'는 말에서 좀 아니다 싶어 진다. 수영장이 있는 곳은 젊은 애들이 많이 모이고, 알베르게는 '쉬자'가 아니라 '놀자'가 되어버려서 나는 불편하다.

페이터가 내 사진을 찍는다. 보내달라며 이메일을 적어 준다. 이때만 해도 우리가 반복해서 만날 줄 몰랐다. 많이 쉬었으니 이제 움직여야겠단다. 나도 같이 따라나선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오후 시간이 많이 남자, 바람도 햇살도 사랑스럽던 페르돈 고개에 '좀 더 앉았다 올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되었다.


어디쯤에선가 페이터와 헤어져 혼자 걷고 있다. 뒤에서 성큼성큼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이가 있다. '올라.(Hola, 안녕)'하고 인사한다. 이 이탈리아 남자는 하루에 40km씩 걷고 있단다. 팔뚝과 허벅지 근육을 보니 거의 말(馬) 수준이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지낸 적이 있다고 하자 이것저것 물어온다. 이날, 기억에 남아있는 이태리어 단어를 모조리 써버린 것 같다. 한국에서 1년 넘게 이태리어 공부를 하고 갔으나, 이탈리아 현지에서 일주일 만에 밑천이 바닥났던 허탈감을 이날도 맛본다. 몇 분 후부터는 영어로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더 이상 이태리어를 할 줄 안다고 말 못 하겠다.

그를 먼저 보내고 나는 마을에서 좀 쉬어가기로 한다. 남자 몇이 분수에 발을 담그고 있다. 나도 받을 담그면 참 시원하고 좋겠는데, 늙다리 아저씨들뿐이다. 나는 돌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 내 눈빛에 '하고 싶다'가 담겨버렸나? 크리스티안이 오라고 손짓한다. 민망한척 꾸물거리며 다가가 나도 발을 담근다.

아, 시원하다. "몰또 께네!(Molto bene, 너무 좋다)" 이런 감탄사들은 영어보다 이태리어가 더 쉽게 튀어나온다. 한 남자가 나의 이 말을 흉내 냈다. "모올또~ 베에네~" 이것은 '너, 이태리어를 할 줄 아는구나.'의 뉘앙스가 아니라, 조롱하는 듯이 느껴졌다.(나는 이런 식으로 여행 초반에 타인이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아 울적한 기분에 몇 번 빠진다. 이것이 내 마음의 병임을 뒷날 깨닫게 된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한다. 알베르게가 여럿 있다. 이럴 때가 힘든다. 선택해야 하니까. 페이터는 수영장이 있는 새 알베르게로 가겠단다. 나는 이디서 잘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공립 알베르게에 한국 아이들이 보인다. 대안학교 학생들이었다. (아직까지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반가워하지만, 곧 달라진다. 피해 다니는 날이 온다.)

"페이터, 난 여기 묵을게."

론세스바예스와 빰쁠로나의 시설이 너무 좋았던 탓에 이곳 시설이 낡고 불편해 보인다. 결정적으로 샤워실에 옷을 벗어둘 만한 선반이 없다는 것 때문에 '뭐 이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지나 보니 그 정도면 '완전 멋지구려' 수준이었던 것을.

아직 점심을 안 먹은 여자애가 있어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한다. 그녀는 아직 한 번도 필그림 메뉴를 먹어보지 못했단다. 위층은 호텔이고 아래층은 레스토랑인 건물이었는데 건물이 고풍스러이 예뻐 보여 음식도 그럴 것이려니 하고 들어간다.

그녀는 전채 요리로 가스파초, 나는 삶은 야채를 시킨다. 가스파초는 시원한 토마토 수프 같은 것이다. 그녀의 가스파초를 한 입 맛보았는데 저런 걸 어떻게 먹나 싶은 맛이었다. 나의 삶은 야채도 깔끔한 맛은 아니다. 이거 뭐 이런가, 슬쩍 걱정이 된다. 필그림 메뉴를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는 여자애는 기대가 클 터인데.

그녀가 해외 여행했던 이야기며 대안학교에 가게 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녀의 허영에 대화의 한 줄기도 즐겁지가 않다. 내가 왜 얘를 데려왔을꼬. 여자애는 열광적으로 떠드는데, 참을 수 없는 하품. 이 일을 이찌할거나.

후식을 주문받으러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아주 늑장을 부린 후에, 분명 남미에서 왔을 여종업원이 커피를 마실 건지 차를 마실 건지 묻는다. 과일이나 요거트는 없냐고 물어본다. 그녀는 영어를 조금도 못 알아듣는다. 스페인어로 계속해서 커피 마실건지 차 마실 건지만 묻는다. 어쩔 수 없지. "커피."

한참을 기다려도 커피가 나오지 않아 그냥 일어서기로 한다. 그리고 계산서를 받아 드는데, 3유로가 더 나왔다. 커피가 후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린 후식인 줄 알았다, 지금 커피를 취소할 수는 없느냐고 묻는다. 계산대를 맡고 있던 여주인, 안된단다. 멀찍이서 남미 종업원은 여주인의 눈치를 살치며 얘들이 주문해서 오더 넣은 것이라고 어필하고 있다.

커피를 내리기도 전인데 왜 안 된다는 거야? 여주인, 신경질적으로 커피를 내리더니 커피에 우유를 부어 카페꼰레체(cafe con leche, 밀크커피)를 만든다. 커피 속에서 우유가 뭉글뭉글 뜬다. 저건 또 뭐 저래? 우유가 상했던 것이다. 여주인, 신경질로 얼굴이 뻘개져서 커피를 쏟아버리더니 다시 만든다. 이 꼴을 하비와 스페인 순례자 몇이 보았다. 쪽팔렸다. 하비를 볼 때마 그 쪽팔림이 올라와서 몇 번은 하비를 피했다. 그 길위에서 후식 없는 필그림 메뉴는 이 레스토랑이 유일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낮잠을 청한다. 엎 자리의 스페인 커플이 한 침대에 누워 닭살을 떤다. 영 신경이 쓰인다. 침낭을 들고 뒤뜰로 나간다. 잔디에 침낭을 펴고 누웠으나 침낭이 뜨끈뜨끈하여 땀이 삐질 난다. 에이, 실패! 뒤뜰 테이블에 앉아 스페인어 공부나 하기로 한다. 알베르게에 마침 스페인어 동사변화에 관한 책이 있었다. 이태리어와 유사한 단어들은 뜻이 대충 느껴지므로 동사의 어미변화만 외우면 활용할 수 있을 듯해서 수첩에 쭉 적어본다.


시에스타 시간이 지나, 태양이 세력을 좀 잃었다 싶어져서야 마실 구경을 나간다. 이 마을의 이름이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인데, '여왕의 다리'라는 뜻이다. 레이나 다리가 워낙 유명하니 다리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되었나 보다. 축조된 지 오래되어 유명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예쁘다. 레이나 다리는 베니스의 리알토 다리처럼 중앙부분이 높게 솟아있는데, 리알토 다리보다는 각도가 완만하다. 다리가 꽤 길어서 다리발의 아치가 여러 개인데 그래서 아름답다. 다리의 아치가 물에 비쳐 동그라미를 만든 모습이 실린 책을 보았는데, 내실력으로는 그런 사진을 찍지 못하겠다. 아니,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간대를 못 맞추겠다. 그녀는 새벽에 찍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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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수제비가 먹고 싶다. 마침 한국아이들도 있으니 같이 먹어도 좋겠다. 혹시 내가 오늘 저녁에 수제비 요리를 할 수도 있는데, 먹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같이 먹자고 소문을 내놓고 슈퍼마켓을 찾아 나선다.

가는 길에 히토시 씨와 모레인을 만난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길이란다. 빠에야(paella)를 먹을 생각인데, 이 메뉴를 먹어볼 생각이 있으면 같이 가잔다.

"빠에야가 뭔데?"

"먹어보면 알아."

그럴까 말까 하며 따라가는데 그들이 찾아가려는 레스토랑이 점심때 톡톡히 쪽 팔았던 바로 거기다. 발이 딱 멎는다.

"안 되겠다. 오늘은 너희들끼리 먹어. 우리 다음에 같이 먹자." 하고는 휘릭 사라진다.


슈퍼마켓을 찾느라고 길을 좀 헤맨다. '여기가 맞는 것 같은데.' 슈퍼마켓일 만한 건물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슈퍼마켓이 어디냐고 물어본다. 내가 딱 서 있는 건물이 슈퍼마켓이긴 한데, 막 문을 닫았단다. 스페인의 상점들은 간판이 요란하지 않아서 또는 없는 경우도 있어서 문을 닫으면 도통 분간이 안 간다. 시골일수록 그 차이가 심한 것 같다. 이런, 된장! 알베르게로 돌아가 오늘 수제비는 최소라고 다시 광고한다. 8시에 문 닫을 줄은 몰랐다.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 하나? 쓸 만한 레스토랑은 딱 거기뿐인 것 같은데, 거길 갈 순 없다.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뜸한, 동네 깊숙이 있는 바에 들어간다. 스페인 할아버지들 서넛이 들어와 딱 술 한잔을 가지고 오래도 떠들다 가셨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고 다른 바에서 또 한잔들 하시겠지.

스페인 아저씨들도 한 패거리 들어온다. 동양인 여자 홀로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지분 되기 좋아하는 아저씨가 내 옆에 와 앉는다.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해있다. 한국에서는 취객을 보면 무서웠는데, 스페인 아저씨의 취기는 두렵지 않다.

"일본? 중국? 한국?" 하면서 국적을 물어온다.

"South Korea."

뭐 하러 힘들게 산티아고까지 걷느냐며 조롱한다. 조롱기를 담지 않은 조롱이다. 그냥 외국인에게 말 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내가 몇 마디 대답해 주니 취기 어린 손을 내 어깨에 척 걸친다.

"논 똑까레.(Non toccaare, 건들지 마.)"

뭐라고 해도 좋지만 내 몸에 손은 대지 말고 말해줄래? 나의 제스처를 보고 알았을까, 이태리어를 알아들었을까? 그는 단박에 손을 떼고 내 어깨 위의 허공을 휘저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다.

바 주인은 내가 불편할까 봐 "야 이 사람아, 가서 술이나 마시게." 하며 그를 쫒는다.

'안 그러셔도 돼요. 나는 오늘 순례자의 눈길보다 이 아저씨의 술주정이 더 편해요.'


맥주 두 잔 마시고 달달하게 취해 알베르게로 돌아온다. 내일 일정을 짜기 위해 식당 테이블에 앉는다. 할아버지 두 분이 내 맞은편으로 와 앉더니 그들도 분주히 계획을 짠다. 이 길 위의 대화의 정석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할아버지는 형제고, 아르헨티나인이며, 컴퓨터 관련 일을 하신단다. 하루에 30에서 35km씩 걸으신단다. "난 너희들을 다시 만나고 싶은데, 너희들은 너무 빨라서 다시는 만날 수 없겠다."며 아쉬워하니, 내일 만나자며 어느 마을까지 오란다.

"거긴 너무 멀어서 난 도저히 갈 수 없어."

이렇게 매력적인 할아버지를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영어를 못하는데, 너희가 하는 말은 너무 이해가 잘된다고 신기해했더니, 발음 때문일 거란다. 모국어가 영어인 사람들이 하는 영어발음에 대해, "뭘 그렇게 굴려대는지."라고 했다.

맥주 때문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할아버지가 내게 보여준 친절한 미소때문에 포근하게 잠든다.


내일부터 나는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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