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친화력

나의 폐쇄성

by 김동해

2012년 8월 27일 월요일

날씨 : 한결같이 청명하고 뜨거움, 바람은 잠잠

걷기 : 로그로뇨(Logrono)에서 나헤라(Najera) 까지 (28km)


알베르게에서 준비해 준 아침을 먹는다. 끝가지 남아 테이블을 정리하는 여인이 있다. 내가 '완전 까칠'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 여자애다. 그녀의 차림새는 집시 같다. 귀, 코, 눈썹 할 것 없이 주렁주렁 피어싱을 했고, 머리도 치렁치렁, 걸친 옷도 너저분 스타일이었다. 길에서 몇 번 얼굴을 봤지만 인사를 건네기는커녕 받는 것도 귀찮다는 표정이어서 그녀에게 까칠하다는 딱지를 붙였다.

그런데 그녀가 아침 식탁 테이블을 다 정리하더니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까지 한다. 나는 뭐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간밤에 만난 한국 남자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녀를 거드는 바람에 나도 얼떨결에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여러 차례 이 길을 걷고 있는데, 돈을 아끼기 위해 도네이션 알베르게에서 자게 되면, 돈을 기부하는 대신 노동을 기부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더니, 자기한테는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었단다.

설거지를 거든 이후로 그녀는 내게 눈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나도 '까칠하다'했던 평가를 거두기는 했지만 여러 차례 더 만나고도 사이가 발전하지는 못한다. 바로 오늘 밤에도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된다.


아침이 일정한 시간에 제공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일어났고, 지금껏 중에 최고로 일찍 출발하게 되었다. 밖이 어둑해서 화살표가 잘 안 보인다.

로그로뇨를 걸어 나가다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도시가 훨씬 크다. 어제는 7시 반 미사에 참석하고, 8시에 다 같이 저녁을 먹는 바람에 도시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알베르게에서 조금만 걸어 나와 봤어도 멋진 조형물들에, 멋진 성당 건물들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왜 알베르게 주위만 뱅뱅 돌았는지....

사실 왜 그랬는지 안다. 나에게 스페인 바 문화를 가르쳐준 크리스티안과 하비를 다시 만나게 되길 바라며 공립 알베르게 주위의 바와 광장을 어슬렁거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로그로뇨까지 걷지 못했는지, 알베르게 안에서 꿈쩍도 않는지, 만나 지지 않았다.


오늘 길은 거의 쭉 혼자 걸었다. 아 참, 초반에는 간밤 같은 알베르게에서 묵었던 한국 남자와 함께 시작한다. 오늘에서야 통성명을 한다. 김양호란다. '양호선생님 할 때 그 양호.' 이 길 위에서는 무거운 배낭을 내렸다 열었다 하는 것이 무척 귀찮은 일이어서 메모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머리에 이렇게 정교화해 둬야 잊어버리지 않는다.

가족이 어떻게 되냔다. '내 가족 상황이 알고 싶은 것일까, 자신의 가족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것인가?' 나는 이 질문에서 그가 유부남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딸, 아들이 있단다. 급 실망.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독립적으로 움직인다기보다는 실해 보이는 외국인 일행을 따라가며 생존하고 있달까? 뭐 나도 혼자 생존하는 것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저녁을 먹을 때나, 술을 마실 때는 친구들과 함께인 것이 보기에 좋아 보인다. 걷는 것은 혼자여도, 머물러 있으며 혼자인 것은 사교성이 없어 보인다.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와 비슷한 족속을 찾아대는 처절함이 분명 있다. 내가 편안해하는 상대란 꼭 나 같다는 느낌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오늘 마누엘이 혼자 걷는 것을 보았다. 그가 그룹으로 움직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혼자였다. 혼자 걷고 있는 그는 좀 더 친절해 보였다. 내가 마누엘을 보는 것처럼, 이 길 위에서 나는 어떻게 평가되고 있을까?

나바레떼(Navarrete)의 광장에서 본 중국인 아줌마 같지 않을까? 언어 구사도 안되고, 제대로 된 여행 정보도 없으면서 자기가 가겠다고 맘먹은 성당을 찾느라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지만 아무도 그곳이 어딘지 모르자 당황하고 동동대는 모습이 딱 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언어는 안 통하고 눈치도 없고.


오늘의 중간지점인 나바레떼에 11시도 되기 전에 도착하다. 나바레떼는 작고, 깨끗하고, 조용하고, 품위 있는 마을이었다. 내게 어떤 마을이 품위 없는 마을이냐면, 그 동네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순례자를 포함한 관광객 위주로 돌아가는 마을이 그렇다.

나바레떼를 걸어 나오다 내 맘을 정말 흡족하게 해주는 광장을 본다. 너무 황홀해서 가 앉지 않을 수 없었다. 돌 벤치에 앉아 과일 한 알 꺼내 먹으며 광장의 청정한 공기, 풍성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따스한 볕, 마을의 품위 있는 정적, 오래된 건물을 즐겼다.

광장 가운데에는 음수대가 있고, 거기서 물 한 항아리 떠 머리에 이고 막 걸어 나오는 여인 조각상이 있다. 물 항아리를 능숙하게 머리에 이고, 두 손은 항아리가 아니라 허리를 받쳤으니 살림에 솜씨가 좋은 성숙한 여인일 것이다. 간소한 옷차람새에 풍만한 엉덩이 윤곽이 드러난다. 현대의 눈으로 보지 않고 중세의 눈으로 보면 그녀는 하녀이겠다. 가까이 가보면 그녀의 얼굴에 피로가 묻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앉은 벤치에서 멀찍이 보이는 조각상의 그녀는 이 광장처럼 평화로운 표정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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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리도록 보리라 하며 앉아 있다. 이 광장에 들어와 앉지 않고 그냥 지가 나는 순례자들도 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어디서 많이 본 여자가 사박사박 걸어오더니 내 옆에 와 앉는다. 쥬느비에브였다. "이 광장이 너무 아름답지 않으냐, 난 너무 마음에 들어 떠나지 못하고 있다"라고 했더니, 자기는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자고 갈 거란다. 오다 들으니 이 마을에는 교구에서 운영하는 도네이션 알베르게가 아주 오래된 성당 건물 안에 있는데, 자기는 그 오래된 건축물 안에서 자보고 싶단다.

"11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멈추려고?"

"안될게 뭐가 있니?"

오래된 건축물이라니 혹하는 마음이 들지만, 벌써 멈추기가 뭐 하다. 산티아고까지 걸어가다 보면, 어쩌다 아파서 내 의지에 반해 멈추어야만 할 때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이래저래 혹하는 마음으로 마구 쉬어버릴 수는 없다. 쥬느비에브를 부러워하며 안녕을 고하고 나는 또 걷는다.

나바레떼의 광장에서도 딱 2장의 사진을 찍자 사진기가 멈춰버린다. 광장을 요리조리 담지 못해 안타깝긴 하지만, 내 얼굴 사진은 광장처럼이나 평화롭게 나온 것 같아 마음에 든다.


목적지 나헤라(Najera)에 도착했는데 걷고 걸어도 알베르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저 다리만 넘으면 마을이 끝날 것 같은데 왜 알베르게는 나타나지 않는 걸까? 내가 놓쳐버렸나?'

마을 끝에 있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 공립 알베르게가 어디 있는지 물어본다. 다리를 건너서 오른쪽으로 가란다. 15유로짜리 방은 다 나갔고, 20유로짜리 트윈룸이 있는데 괜찮겠냔다.

'이건 무니치팔(공립)이 아니잖아.'

내겐 좀 비싼 것 같은데, 공립 알베르게는 없냐고 물어본다. 그녀가 친절히 가르쳐준다. 다리를 건너 왼쪽이었던 것이다.

'순례자들의 빨래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니 저기로군.'

골목을 뱅글뱅글 몇 바퀴를 돌고서야 겨우 찾았다. 오전 중에는 수월하게 걸었다 싶었는데, 알베르게에 도착할 때쯤에는 완전 녹초가 되어 있었고, 빨리 출발한 것에 비해 시간도 꽤 늦었다. 하긴 30km 가까이 걸었으니 많이 걷긴 했구나.

지금까지 본 알베르게 중에 가장 실망스럽다. 도시 외곽에 덜렁 던져진 컨테이너 박스다. '오래된 건축물에서의 하룻밤'에 대비되어 실망감이 더 크다. 완전히 통으로 된 공간에 2층 침대를 빼곡히 채워 넣어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침대를 최대한 많이 넣기 위해 침대를 두 개씩 붙여서 배열해 놓다 보니 낯선 자와 더블 침대에 눕는 꼴이 되어버린다. 또 컨테이너 건물이다 보니 스페인 햇볕에 달궈져 내부가 뜨끈뜨끈하다. 그러나 이건 괜한 트집이다. 늦은 오후에 에어컨을 틀어주기 때문에 실내는 쾌적하고, 최대한 수용하기 위해 침대를 때려 넣었다 싶은데도 안은 아늑한 감도 있다. 부엌시설과 샤워시설도 편리하게 갖춰져 있었다.

나는 그나마 창이 있는 곳의 위층 침대를 잡는다. 위층 침대는 오르고 내리기 불편하여 사람들이 완전히 잠들기 위해서가 아니면 일부러 올라와 부스럭거리지 않아, 오후 시간에는 위층 공간을 독차지한 기분이 들고, 위에서 아래 침대의 순례자들을 흘깃 보는 재미도 있다. 나는 위층 침대에 올라 다음날 계획도 세우고 일기도 쓰고 지도도 보면서 부스럭댔다.

참 웃기지. 격조 없는 컨테이너라 맘에 들지 않았던 알베르게에서 항상 불편하게 느꼈던 위층 침대가 내 방에 홀로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주었다. 이날부터 나는 위층 침대를 더 편안하다 느낀다.


오늘 저녁은 모레인과 함께 먹었다. 그녀는 뉴질랜드인이고 간호사로 일하고 있단다. 역시, 그녀는 아이가 없단다. 나는 결혼을 했느냐고 물어보는 대신에 자식이 있느냐고 물었었다. 그 대답에 그녀가 결혼도 안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냥 그런 느낌이다. 나는 또 나 같은 이를 찾은 것이다. 내 주소를 발견하는 이런 기분, 별로다.

스페인의 레스토랑은 보통 8시에 저녁을 시작하지만, 배고픈 순례자들을 위해서 7시 30분에 시작하는 곳도 많다. 이 동네도 그렇겠거니 하고 7시 30분에 맛있을만한 최고의 레스토랑을 찾아 나선다. 이리저리 돌다가 들어가 앉으니 8시 십여분 전이다. 필그림 메뉴를 주문하니, 저녁은 8시에 시작되니 다른 걸 주문하란다. 고작 10분 차인데 말이다. 필그림 메뉴만으로도 배가 꽉 차는데 뭘 더 주문하겠나 싶어 나갔다 10분 후에 다시 오자 싶은데, 모레인은 술 한잔 마시며 그냥 앉아 있잖다. 그녀가 많이 피곤해 보여서 그러자 한다.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저녁 메뉴로 뽀요(Pollo, 닭고기)를 주문한다. 웨이트리스는 메뉴들을 꼼꼼히 설명해 줬다. 닭고기는 날개 부분이 튀겨져서 나올 거란다. 나는 평소 닭고기를 좋아하지 않는데, 스페인에서는 닭고기가 제일 먹을 만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비계가 한 점도 없는 부위로 요리되어 나와서 대체로 맛이 없었다. 뼈째 나오는 갈비부위는 괜찮았다.

오늘의 선택, 닭 날개 튀김요리는 환상적이었다. 나이프 대신 손으로 들고 뜯어먹었다. 모레인은 그런 것을 교양 없다고 생각지 않았다. 그건 그렇게 먹어야 한다며 신경 쓰지 말고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뉴질랜드인의 영어도 참 알아듣기 힘들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아줌마 질의 대따 굴리던 발음이 생각났다. 모레인은 일본이 히토시 씨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데,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히토시 씨와 어떻게 소통이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계산서에는 필그림 메뉴 값에 서비스 비용이 추가로 붙어있었다. 어쩐지, 웨이트리스의 메뉴 설명이 과하다 싶더라니. 워낙 만족스러운 맛이라 불만은 없었지만, '이런 곳도 있구나'를 안다.


이 길의 초반에 만났단 몇 명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친해지지 못하고 있다. 익숙하던 많은 이들도 중간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딜 가도 닫힌 이 느낌, 이 폐쇄성을 어찌할까.

나의 폐쇄성은 한국 남자 김양호 씨가 나타나면서 완전 더 부각되고 만다. 평소에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는 동양권에서 왔고 조심할 필요가 있는 여자여서 그렇다는 이유를 붙이며 스스로 위로를 했는데, 홀연 영어도 안 되는 그가 나타나서 엄청난 친화력을 발휘하며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혹시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닐까? 전혀 못 알아듣고서야 어떻게 저렇게 잘 어울리지? 아님 눈치 백 단? 그의 표현으로는 '생존을 위해서'란다. 생존을 위해서였으면 좋겠다. 나는 생존을 위해 친화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거든. '혼자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거든.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

<멋진 한국요리를 준비한다. 얼굴을 좀 익힌 이들을 초대한다. 한국음식을 통해 나에 대한 호의를 가지게 해 본다.> 이걸 실행할 정도로도 자신감이 없다. 한국음식을 근사하게 차려낼 재료는 충분치 않고, 누굴 초대하고, 공용의 부엌을 주인처럼 사용하는 것도 자신 없다. 영어가 능통하면 더 수월할까?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까미노 길의 주인공처럼 느끼려면 '한국음식'이 답인데.... 어느 슈퍼마켓에서 간장을 구할 수 있게 되기를!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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