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게 행복해
2012년 9월 5일 수요일
날씨 : 쾌청, 바람이 불다
걷기 : 프로미스타(Fromista)에서 까리온(Carrion)까지 (20.9km)
아침에 일어났더니 준영이가 건너와 "이모 같이 가요!"를 외친다. 뭐 가다가 보면 내 걸음이 빨라질 터이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헤어질 터이니 그러자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산. 내가 쉬면 쉬고 내가 걸으면 걷고, 미치겠다. 전반의 3시간이 이렇게 지루하고 길게 느껴질 수가 없다. 같이 걸어도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페이터가 있다면, 이들은 껌딱지처럼 느껴진다. 준영의 치덜치덜 거리는 신발 끄는 소리도 듣기 싫다. 가방에 무겁게 넣어온 것들을 나눠 주는 것을 당연스럽게 생각하는 저 아무것도 모름도 싫다. 거기다 오늘은 온몸이 근질근질하다.
저 앞에 아르헨티나 여자 둘이, 내가 호기심을 품고 있던 중국 남자아이와 더듬거리는 스페인어와 영어로 이야기하며 걷고 있다. 그들의 대화로 중국 남자아이의 이름은 '챠오'이고 26살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스페인어를 자기 나라에서 3개월 공부하고 왔다는데 어지간히 말을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챠오는 스페인에서 6개월째 스페인어를 배우는 중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대개 말을 못 하는 거였다.)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것이 저거였는데. 어느 정도 공부해 오고 현장에서 더 늘려간다는 것. 언어가 되지 않는 여행은 무엇이 너무도 부족한 여행이다.
길에서 한국 아가씨를 만났다. 그녀는 일본어를 잘했는데, 일본 여성을 만나 며칠째 같이 걷고 있었다. 저런 '같이 걸음'이 내게는 안 된다. 인도네시아인 스테파니와 중국인 샤란도 같이 걸었다. 나는 누굴 기다려 주고 시간 맞춰 움직이고 하는 것이 귀찮다. 그날그날의 내 기분에 맞춰 일어나고, 걷고, 쉬고, 자고, 마시고, 먹는다. 대단히 괜찮은 사람이면 모든 것이 참아지려나?
까리온에 들어오기 5km 전에 비야까사르 데 시르가(Villacazar de Sirga)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이 너무 예쁘다. 마을 중심에 있는 성당은 1층집 하나 높이만큼 높은 계단 위에 지어져 있고 그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그림 같다. 한참을 보고 또 본다.
성당에서 내려다보면 레스토랑이 하나 있어, 야외 테이블에서 순례자들이 점심을 먹는 것이 보인다. 누가 뭘 먹는 것을 보니 준영과 정현도 먹고 싶어 졌는지, 닭 날개 튀김과 콜라를 사들고 온다. 그들을 떼어낼 좋은 기회다. "이제 5km 남았으니 너희들은 천천히 먹고 와, 이모는 천천히 가고 있을게." 마지막 5km를 남겨두고서 겨우 준영과 정현을 떼어 낸다.
그곳에서 묵어가도 괜찮을 삔 했나? 다음날 끊어갈 수 없는 18km(18km 동안 마을 하나 없다)가 있다는 것과, 생각했던 것보다 여유가 없다는 것 때문에 최소 20km는 채워야지 하고 또 전진한다. 그들을 떼어내고 혼자 걸으니 좋다. 생각을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길에 '염원' 하나를 가져본다. 이 길에서는 뭐든 염원하면 될 것 같은 아우라가 있다.
오늘은 받이 많이 아프다. 어제 맨소래담을 얻어 바른 발은 감쪽같이 회복되었다. 약을 바른다고 발이 나으리라고 생각지 않았었다. 나는 '약이 병을 낫게 한다.'는 상식적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경연이 주니 거절하지 못하여, 약을 발랐다기 보단, 친절을 발랐을 뿐이다. 30km씩 갈 수 있도록 발이 버텨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니, 아니, 비행기 표에 맞춰 돌아가는 날까지 무사히 걸어지기만 하면 좋겠다.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산타 끌라라(Sante Clara) 알벨게에 머물기로 한다. 오늘 아주 많은 한국인들이 들었다. 대안학교의 열홍쌤 팀, 한국인 가족 한 팀. 그리고 나까지. 내가 마지막 30번째 침대를 차지한다. 5유로, 부엌은 없다.
발이 많이 아파 동네구경 다닐 형편이 아니다. 알베르게 안마당 벤치에 앉아 발을 쉬며 별을 쬐고 있자니, 5시가 다 되어서야 알베르게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 알베르게는 이미 방이 다 차서 문 앞에 '꼼쁠레또(completo, 만원임)'을 갖다 불였다. 그걸 보지 못했는지, 읽지 못하는지, 오스피탈레로를 부르느라 벨을 누르고 있다. 나는 도와준답시고 방은 이미 다 찼다고 말해준다. 자기들은 예약하고 왔단다. 5유로짜리의 30 베드는 가난한 순레자들을 위해 있지만, 예약할 수 있는 20~30유로짜리의 근사한 독방들도 있었던 것이다. 괜한 간섭을 하고는 민망해졌다. 유럽 애들이 항상 나보다 똑똑하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유럽 애들은 자기 나라 정보인 냥 깨알같이 안다.
똥을 싸고 났더니 금세 배가 고프다. 오늘 저녁은 뭘 먹나. 슈피마켓에서 간단히 장을 봐온다. 버터와 잼을 바른 바게트빵으로 배를 채우고 누웠다. 초저녁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나 온몸의 간지러움을 느끼고 일어나 긁어대기 시작한다. 버터를 잘못 먹었나? 늘 먹던 상표가 없어, 요리용 버터를 샀더랬다. 온몸이 화끈거리도록 간지럽다. 어차피 누워 있어도 간지러워 잘 수도 없을 테고, 나가서 맥주나 한잔하기로 한다. 브라바스와 함께 먹고 싶었으나, 없단다. 알 수 없는 고기와 양송이버섯으로 만든 삔초로 맥주를 마신다. (인젠가 케밥 집에서 이 비슷한 향을 느꼈는데, 양고기가 아니가 싶다.) 이곳 삔초는 왜 그렇게도 짠지. 이곳 사람들도 아는 게지. 그러니 빵과 함께 준다. 그렇게 먹자면 한 끼 식사가 되어 버린다.
위증 침대는 난간이 없어 혹여 떨어질까 불안했고, 그것보다도 간지러워서 진짜 하나도 못 잔 것 같다.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여행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참아낼 수 있는 간지러움이 아니다. 고통스럽도록 간지럽다. 긁으면 더 간지러워지므로 참아야 하는데 나는 밤새 그냥 긁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