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켜는 케런

비굴한 저녁 테이블 조인 협상

by 김동해

2012년 9월 7일 금요일

날씨 : 쾌청, 바람이 잦아들다

걷기 : 테라디요스(Terradillos)에서 깔사다 델 꼬또(Calzada del coto)까지 (24km 이상)


8시쯤에 일어나 출발한다. 이곳은 알베르게와 바를 겸하고 있었는데, 한국 아가씨가 바에 앉아 아침을 먹고 있다. 걸어 나가다 보니 어제 가려고 했었던 알베르게가 문을 열긴 했다. 그녀가 들렀던 딱 그 시간에 문을 잠시 닫았던 모양이다. 그곳에서 아직도 출발 않고 있는 경연을 본다. 그는 너무 빨리 도착하는 것이 걱정인 사람이다. 와이파이가 되는 알베르게 앞에서 검색이나 실컷 하다 가겠단다. 경연은 한국으로 돌아갈 방법을 궁리 중이었다. 파리 아웃(out)이었기 때문에 나보다 챙길 것이 많았다.


오늘은 마을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시골길 가운데 혼자 한적하니 서있는 바에서 아침을 먹으려 한다. 바는 현대식 느낌으로, 참 예쁘다. 스페인의 바들은 오래도록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선 전통성이 좋아 보이는데, 이 바는 순례자들이 늘어나면서 급히 생겨난 것 같다. 커피와 빵을 주문했더니, 이건 마치 유명한 광장을 끼고 있는 레스토랑급의 가격이 아닌가. 너무 비싸다. 1.5유로에 커피만 마신다. 커피는 충분히 맛있긴 했다.


아침을 먹고 나오다 챠오를 만난다. 오늘 챠오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걷는다.

"네 이름이 챠오인걸 들었어. 너 그거 알아? 이탈리아이로 '챠오(ciao)'는 안녕이라는 인사말이야."

그는 크리스마스 때에나 중국으로 돌아간단다. 까미노 순례가 끝나면 스페인어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에서 농사짓는 봉사활동을 할 거란다. 자원봉사 신청에 20유로를 낸단다. 그러면 스페인 농가에서 무료로 먹여주고 입혀준단다. 나는 이 말에 챠오가 중국 내륙의 가난한 촌놈인 줄로 착각하게 된다.

알고 보니 챠오는 스페인의 살라망카(Salamanca)에서 6개월째 유학 중이었다. 왜 이 길을 걷느냐고 했더니, 미래에 대한 생각을 좀 하고 싶단다. 어떤 직업을 찾을 것인가 하는 것들.

나는 이치도 마음에 들었다. 챠오를 보면 "챠오, 챠오!" 하며 장난을 쳤다. "앞에 챠오는 네 이름이고, 뒤에 챠오는 인사야." 하면서.


챠오를 보내고 경연을 만나 지루한 고원 길을 같이 걷는다. 작은 마을을 거처 가게 되어 먹을 만한 것이 있을까 하고 가게에 들른다. 복숭아가 어찌 탐스럽다. 우리나라 천도복숭아 같은 때깔이다. 두 알을 사기로 한다. 빨간 복숭아 두 알을 들고 앞서간 경연을 따라 걷는다. 저 앞에 경연이 보이긴 하는데 따라잡는 것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가게에 들른 것이 한 5분이나 될까? 하긴 이 길을 걸으면서 5분 앞서간다는 것이 얼마나 앞설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경연의 걸음이면 0.5km는 너끈히 갔다.

복숭아 한 알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죽어라고 따라잡을 이유가 없었다. 가방에 넣어 아침부터 들고 온 것을 나눠주는 데는 '마음'이 필요하지만 길 위에서 동전 몇 푼주고 산 과일을 나눠주는 데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걸 주겠다고 용을 써서 그의 걸음을 따라잡는 데는 '마음'이 필요해졌다. 그의 걸음을 따라잡으면서 내가 뭐 하러 저치에게 마음을 쓰나 슬쩍 화가 났다. 그러나 손에 들고 있는 복숭아는 주려고 샀고, 그러니 줘야 했다.

경연과 함께 사하군에 도착한다. 사하군은 출발점 생장에서 도착점 산티아고까지의 딱 중간 지점이란다. 어느 바에서 맥주와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다. 또르띠야 샌드위치가 만들어지는데 20분이 걸린단다. 뭐 기다렸다. 그깟 20분 싶었지만, 같은 한국인끼리 할 이야기가 더 없었다.

경연은 한국에서 산이고 길이고, 걷는 곳이라면 몇 번씩이고 죄다 걸었단다. 한국 땅에 더는 갈 곳이 없다 할 지경이 되어 외국으로 눈을 돌렸단다. 자기가 왜 진작 해외여행을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된단다.

드디어 까메리에레가 따끈한 보까디요를 들고 나오는데, 정말 푸짐하다. 바게트 빵은 내 팔뚝만 한 크기고, 그 안에 든 또르띠야는 두툼하다. 그는 다 먹지 못하고 반을 남겨간다. 나는 1/4만 남긴다. 1/4 조각이 햄비거 하나만 하니, 나는 햄버거 3개를 먹어치운 것이다. 나는 요즘 점점 대식가가 되어가고 있다.


경연은 먼저 출발하고 나는 약국에 가야 했다. 아르헨티나 여인들이 야외 바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가 아는 체를 한다. 모니카와 세실리아다. 언젠가 길에서 만났을 때 이들에게도 내 팔뚝을 보여주며 베드벅한테 물렸다고, 견딜 수 없이 간지럽다고 칭얼거린 적이 있다. ('이 길 위에서는 고통을 당하면 친절한 대접을 받게 된다.'라고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고통'에는 모든 고통이 다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세실리아는 "약 사는데 도와줄까?"하고 묻는다. "고마워. 혼자 살 수 있어." 자기들은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있을 테니 약국에 갔다가 도움이 필요하면 부르란다. 친절한 그녀들. (그러나 레온(Leon)에서 반전이 기다린다.)

스페인 약국들은 이름이 없다. 그냥 전부 파르마샤(farmacia, 약국)이다. 우리나라는 성심 약국, 온누리 약국, 하는 식으로 이름이 있지 않나. 약국에 들러 벌레 물린 자국을 보여주고 알레르기 반응일 수도 있지 않냐고 물었다. 내가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다. 블로그에서 베드버그에 물렀다는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나처럼 널찍하게 뭉글뭉글 올라오는 것이 아니고, 수두의 붉은 점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알베르게에서 자고 그랬다면 베드버그가 틀림없을 거란다.

약은 5유로다. 너무 비싸지 않아서 다행이다. 약이 20유로 이상이면 그냥 나올 작정이었다. 약국을 만나지 못해 며칠째 그냥도 참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비싸면 약 없이 시간의 치유력에 의지할 생각이었다. 20유로면 3만 원인데, 까미노 길에서는 숙박에 5유로, 필그림 메뉴 10유로, 커피 1유로, 이런 식이여서 20유로가 굉장히 크게 느껴졌다.

사하군을 걸어 나오다 스테파니를 만난다. 그녀는 사하군에 배낭을 풀고 막 슈퍼마켓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 사하군의 알베르게는 마치 호텔 같단다. 한 방에 4명이 잔단다. 멋지다. 그 소리를 들으니 여기서 그만 자고 갈까 싶기도 하다. 빨리 걷고 며칠 남겨서 톨레도(Toledo)를 구경하겠다는 욕심으로 또 전진한다. 그녀에게도 별레에게 물린 팔뚝 자랑을 하며, 그녀가 측은한 눈빛으로 위로해 주길 바랐다.


한참을 걷다가 한적한 시골길의 도로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화살표가 이상하게 되어 있다. 언제나 걷는 방향, 즉 해를 뒤통수에 두고 걷는 길 쪽으로 화살표가 하나, 약간 반대 방향으로 화살표가 또 하나 나 있다.

산티아고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걷는 것이기 때문에 해가 뒤에서 따라온다. 그래서 내가 제대로 걷고 있는지 잘못된 길로 들어섰는지는 그림자를 보면 알 수 있다. 해를 뒤통수에 두고 걷도록 안내하는 화살표를 택한다. (그것이 나를 목적지와 다른 곳으로 가게 한다.)

한참을 가다 그 길에서 경연을 다시 만난다. 갈라진 화살표를 발견했을 때, '베르씨아노스 델 레알 까미노(Berciano del real Camino)'까지는 5km라고 바닥에 적혀있었는데 가도 가도 마을이 나오지 않는다. 뭔 놈의 5km가 이렇게 긴지 참 이상하다.

드디어 마을을 만났을 때 우리가 이상한 이름의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게 된다. 알베르게에서 만난 쥬느비에브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전말을 안다. 도로를 진입할 때 두 갈래 길이 있었고, 우리가 선택한 길은 한참을 더 우회하는 힘든 길이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내일 길은 짧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 길을 선택하는 순례자는 적지만 있긴 하단다. 경연이 함께 있어 참 다행이다.

경연은 그곳에 와 있던 일본인 마이(Mai)를 알고 있었다. 한국 아가씨와 함께 걷던 일본 아가씨가 바로 마이였다. 그녀는 히잡을 쓰듯 두 눈만 빼꼼 내놓고 다녀 목소리만 들었지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경연은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는 바로 나프탈렌을 나눠줬다. 길 위에서 그를 만나기만 하면 내가 배드버그의 간지러움에 대해 하소연했던 때문이다. 내게 나프탈렌 2알을 나눠줬고, 마이에게도 2알을 나눠줬다. 베드버그가 나프탈렌 냄새를 싫어한다는 소리를 이디선가 들어서 가방에 나프탈렌 8알을 넣어왔는데, 옷이며 침낭이며, 경연의 물건들에는 나프탈렌 냄새가 배여서 그런지 베드버그한테 한 번도 물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이와 나는 베드버그에 물린 자국을 내 것이 더 심합네 하며 보여줬다. 먼 이국땅의 빈대에게 피 빨리는 불쌍한 처자들을 위해 그는 아무렇잖게 4알이나 나눠준 것이다. 나는 마이에게 가는 2알마저도 나한테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마이는 그 알베르게에 든 몇몇과 아주 친했다. 그들과 장을 봐와서 저녁을 해 먹는다고 했다. 알베르게에 든 순례자가 몇 안되니, 한국요리를 준비해서 저들과 같이 먹으면 좋겠다 싶다. 말 건네기 가장 편한 동양인 마이에게 우리도 한국요리 뭐 하나쯤 준비할 테니, 저녁 식탁에 조인(join) 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마이는 초절정으로 밝고 유쾌하다. 예스, 예스란다.

경연과 나도 한국음식을 만들 장을 보러 슈퍼마켓엘 갔다. 양송이전이나 호박전이나 그도 안 되면 피망에 참치와 양파 다진 속을 넣은 전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밀가루와 기름은 알베르게에 있으니 되었고, 채소들만 있으면 된다.

아주 조그마한 동네의 잡동사니 슈퍼마켓에는 쓸 만하고 안 쓸 만하고를 따질 것도 없이, 부침개로 둔갑시킬 수 있는 채소 따위가 없다. 빵을 제외하고는 하루 이틀 후에 상하는 품목들은 취급을 안 했다. 과일도 멜론과 수박처럼 껍질이 튼실해서 두어도 상하지 않는 과일만 있었다. 한국요리를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난감하게 되었다. 후식용으로 수박 한 통을 샀다. 후식과 설거지 담당으로 조인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하면서.

경연은 맘 편히 돌 벤치에 앉아 이치 저치와 이울리며, 금세 맘 맞는 구석을 찾아냈는지 껄껄거리고 있다. 경연의 웃음도 김양호 씨의 사람 좋아 보이는 전략으로서의 웃음과 약간은 닮은 것이, 그의 평소 모습을 내가 알바는 없으나, 그렇게 요란을 떨며 웃어대는 스타일로 보이지 않는데, 이 여행에서는 천진한 눈빛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듯이 웃어대는 것이다. 그의 선량한 속은 늘 흐뭇하게 미소 짓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주방에서는 할머니 한분과 캐런이 요리를 맡고 있다. 마이는 우리 둘까지 조인시키고도 주방에 한번 나와 보지도 않고 있다. 뭔가 좀 이상한데...... 나 혼자만의 저녁밥 문제이면 모르겠으나, 가만있던 경연까지 끌어들였는데, 우리 몫이 없는 저녁테이블에 떡하니 앉아 기다리는 멍청한 짓을 할 수 없다.

스파게티 소스를 끓이는 캐런에게 다가가, 나와 경연도 이 저녁 테이블에 조인해도 되는 것이지 한 번 더 확인해 본다.

"NO."

장도 다 봤고, 요리도 거의 마쳐가는데 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 헛소리냐는 듯이 빤히 날 본다.

"마이가 된다고 했는걸."

잠시 말없이 소스냄비만 젓던 캐런이 결단이 섰다는 듯이 표정 없는 일굴로 너희들도 뭔가 가져오면 저녁 테이블에 조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Thank you."

나도 한국요리를 좀 하려고 했으나 마땅한 재료가 없어서 다 같이 먹으려고 수박을 사 왔다는 말로 비굴한 조인이 성립된다.

그제야 캐런이 한 정년에게 접시 2개를 더 내다 놓으라고 지시한다. 그랬던 거다. 저녁 테이블의 접시 수가 아무래도 나와 경연까지 포함된 것 같지 않더라니.

마이는 자기가 컨트롤할 듯이 넙죽넙죽 오케이, 오케이 하더니, 캐런에게 전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렇잖아도 처음부터 캐런에게 방어벽이 가동되어 호감은커녕 적대감이 느껴졌더랬는데, 그녀를 상대로 비굴한 저녁 테이블 조인 협상을 벌여야 헤서 기분이 까짓것 상해 버렸다. '아니, 쟤는 뭐니?' 이것은 마이에 대한 원망. 하나 도움 안 되는 경연을 향해서도 짜증이 슬쩍 일었다.

다들 배가 고픈 데다가, 캐런이 계산에 넣지 않았던 한국인 둘이 끼는 바람에 먹는 도중에 스파게티 면을 더 삶아야 했다. 캐런은 마지막 스파게티 소스를, 그녀에게는 염치없게 되어버린 한국인 둘에게 남겨준다. 자기들은 스파게티 면에 올리브기름만 있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서. 마지막 소스를 부어 먹고도 모자라, 그녀처럼 스파게티 면에 올리브기름을 붓고, 치즈가루만 뿌려 더 먹었다. 하, 그게 토마토소스 스파게티보다 더 맛있었다!

캐런 앞에서 비굴한 기분이 들었고, 마이의 무책임함에 화가 났고, 경연의 도움 안 되는 허허허가 짜증스러워 기분을 잡치고도, 스파게티는 때려 붓듯이 배속으로 들어갔다. 환상적인 맛이라고 느끼면서.

그들은 후식으로 멜론을 준비했었다. 그러니 우리의 수박은 여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길 위에서 수박 먹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 여럿이 모일 때가 아니면 해결이 곤란하기 때문에, 멜론보다 더 잘 팔리긴 했지만, 수박은 꼭 있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경연과 내가 당연히 저녁 설거지를 자처한다. 배가 부르니 기분이 연해져서, 경연에게 여차저차해서 오늘 우리가 이 맛있는 저녁을 못 먹을 뻔했다는 말을 하며 오늘의 꿀꿀한 기분을 푼다.


우리의 저녁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야, 지쳐 도착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도 도착하고 보니 그들이 목적했던 마을이 아닌 것이다. 그들도 나와 경연처럼 2시간을 넘게 걸으면서 무슨 5km가 이렇게 긴가 하는 생각에 지쳤을 것이다. 마침 뒤늦게 더 삶은 스파게티 면이 많이 남아있어, 캐런이 우선 이것부터 먹고 씻으라고 하니, 구원을 받은 마냥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허겁지겁 먹는다.

나는 하루 일과나 정리할까 하고 알베르게 앞 돌 벤치에 앉아 수첩을 편다. 캐런이 바이올린을 들고 나오더니 연주를 시작한다. 순례자들과 동네 주민들은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노래도 하고 신이 났는데, 동양인인 나는 처음 들어보는 가락이라 멀찍이 앉아 구경만 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이리저리 휘몰아 제 맘대로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카리스마가 부럽다. 그녀는 주인공이 되어 분위기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영어권이니까 가능하겠지로 나 자신을 좀 위로해 보지만, 성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일 터.

나는 캐런의 주인공 노릇에 심한 질투를 느꼈다. 내 여행의 주인공은 나였는데, 오늘은 캐런 덕에 초라해진다. 그녀의 연주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도 하나 없으니, 듣고는 앉아 있었지만 그 속에 낀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마지막 곡을 연주하기에 앞서 마무리 멘트를 한다. 그녀의 남자 친구가 까미노 길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는 건가? 그래서 자기가 무사히 이 길을 마쳐야 한다, 뭐 이랬나? 아이, 된장. 영어가 안 되니까 사태 파악이 안 돼서 싫다.

그리고 마지막 연주를 하는데, 드디어 내게도 익숙한 음이다. '글루미 선데이'를 지금까지의 연주 톤과는 달리 슬프게 연주하는데, 그제야 새로운 감정, 질투를 경험하게 해 준 캐런의 태도도, 그녀의 연주도 약간 고맙게 느껴진다.

그녀의 연주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찍이 앉아있는 나에게 쥬느비에브가 다가와 앉는다. 다들 좋아하니까 나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야 할 것 같다. '글루미 선데이'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이런 곳에서 바이올린 연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는 바이올린을 어떻게 들고 올 생각을 했을까'하고 말을 건넸다.

쥬느비에브가 바이올린을 넣어온 배낭의 크기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째 샐쭉한 느낌이다. 그녀도 캐런이 바이올린으로 주인공이 된 이 저녁을 이째 탐탁지 않아 한다는 느낌이 든다. 쥬느비에브는 나처럼 가지지 못한 것에 질투를 하는 스타일은 아닌 줄 알았는데, 뭐가 그녀의 심기에 불편을 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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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알베르게 벽에 붙어있는 낙서다. 빼레그리노(Peregrino, 순례자)의 앞 글자를 가지고 순례자의 성질을 잘 표현해 주는 형용사들을 나열해 놓았다. 단연, 빠시엔떼(paciente)가 가장 그럴싸하다.


'Paciente(빠시엔떼, 인내심 있는)

Entregado(엔뜨레가도, 몰두하는)

Responsable(레스뿐사블레, 책임감 있는)

Elegante(엘레간때, 우아한)

Gracioso(그라시오소, 사랑스러운)

Respetuoso(레스빼뚜오소, 존경심이 있는)

Invencible(인벤시블레, 무적의)

Navegante(나베간떼, 항해하는)

Organizado(오르가니싸도, 정연한)'


사하군에서 산 연고를 잔뜩 바르고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간지러워서 잠이 깨면 또 바르고 또 발랐다. 침낭이 연고 범벅이 되건 말건 잠을 자야 내일 또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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