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남자 크리스티안
2012년 9월 8일 토요일
날씨 : 잠시 여우비가 오다
걷기 : 깔사다 델 꼬또(Calzada del coto)에서 비야렌떼 델 뿌엔떼(Villarente del Puente)까지(33km 이하)
아침 요기로 경연과 수프를 끊여먹는다. 경연이 슈퍼마켓에서 수프가 아닐까 하고 사가지고 다니던 것을 오늘 아침에 끓여 먹기로 한 것이다. 오스피탈레로가 그게 아침이냐고 묻는데 그 표정을 보자면, 그게 수프가 아닌 건 확실하고, 아침으로 먹을 만한 것도 아닌가 본데, 뭔지는 모르겠다.
국적 파악이 안 되는 한 커플, 내가 좀 재수 없다고 생각했던 커플과 캐런은 오믈렛을 요리해서 아침을 거나하게 먹는다. '든든한 아침으로 오믈렛 참 좋구나, 나도 언제 한번 해 먹어야지'하는 생각을 한다.
국적 파악이 안 되는 키플은 따로따로 이 길을 왔고 걷다가 연인이 된듯하다. 내가 그들을 재수 없어라 한 것은. 막 시작한 연인들의 눈꼴 시려움 때문이기도 했고, 놈이 모국어처럼 잘하는 영어로 시시껄렁하게 내게 농담을 해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농담을 되받아칠 만큼 재치가 있지도 못하고 영어를 잘하지도 못해서 그저 "No!"로만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경연보다 먼저 출발하지만 그가 곧 나의 발걸음을 따라잡는다. 캐런의 바이올린 짐이 궁금했는데 그녀는 통 나타나질 않는다. 경연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차를 타고 가면서 인사하더란다. 그녀의 정체는 뭐야?
경연은 '그녀가 음식을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제공하고, 바이올린 연주로 이 길 위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닐까'란다. 그의 해석은 너무 선량하다. 저녁 식탁에 포크 둘 더 놓기 위해 벌인 내 찌질한 노력을 안다면 이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남자친구가 책을 쓰고 있고, 그녀는 소재가 될 만한 이벤트를 위해 온 것이 아닐까 싶다'라고 했다. 'build the book'을 분명 들었는데, 이게 '책을 쓰다'의 뜻도 되지 않느냐면서.
어제, 길을 잘못 든 탓에 오늘 길은 마을을 만나지 못하는 채로 24km를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경연이 말한다.
"에? 그걸 이제 말하면 어떡해요?"
물통에 물 대신 수박을 넣었고, 먹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아찔해진다. 물통에 남은 레몬 조각을 넣고 레몬티 만드는 캐런을 보고, 나와 경연도 남은 수박을 잘라 담았었다. 어제 샀던 수박이 참 맛나기도 했고, 반통 넘게 남아 그냥 두고 가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스페인에서 물 인심이야 워낙 후하니, 다음 마을에서 채우면 될 것이었다. 하루 종일 마을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말이다. 그런데, 24km 동안
마을을 못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아찔했다. 스페인의 태양은 그 짱짱함만으로도 갈증이 이는데, 그 속을 걸어야 하니 물 없이는 힘들다.
그나마 경연이 끓여준 수프가 물기 있는 음식이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 2시간 후에 수박을 몇 쪽 먹고, 4시간 후에 몇 쪽 먹으면 대충 견뎌지지 않겠나 게산한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는 물 대신 수박을 담았다. 왜 그랬냐고 공허한 타박을 한다. 어찌하리. 우리는 이미 길 위에 있고, 걷는 수밖에 없다. 금세 '그런들 어떠리.' 하는 안정적 마음이 든 것은, 순례자들에게 물을 구걸할 심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뙤약볕 길을 걷다 보면 목말라 죽지 않기 위해 그 정도는 부끄럽잖게, 아니 아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이 길로 들어선 순례자는 몇 안 되고, 그 몇 안 되는 순례자들은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렀던 자들이고 나는 거의 꼴찌로 출발했으니, 내 뒤에 따라올 순례자들이란 이제 거의 없음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알았더라면 내 목은 호들갑스럽게 갈증을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 걷는 길은 중세시대부터 산티아고를 가기 위해 걸었던 진짜 유적으로서의 길이다. 어제 길을 잘못 든 덕에 24km를 물 없이 걷게 되더라도, 이렇게 멋진 길을 걷게 되어 기뻤다. 천년 전에도 존재했던 이 길을 천년 후에 내가 걷고 있는 것이다. 천년의 역사 속을 오가는 듯한 감성적 만족감이 물 걱정 따윈 잊게 했다.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마을이 나타난다. 그는 맥주, 나는 커피를 주문한다. 그 바는 맥주에 타파스(tapas) 한 조각을 그냥 줬다. 스페인어로 타파(tapa)는 덮개라는 뜻인데, 와인 잔 위에 뚜껑처럼 올려서 즐긴다고 해서 타파스라는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내가 스페인에서 본 대부분의 타파스는 떡국 셀 듯 어슷하게 썬 바게트 한 조각에 간단하게는 햄, 하몽, 베이컨, 또르띠야 한 조각을 올렸다. 또 어떤 바에서는 간단히 요리된 무엇이든 올려 아주 여러 종류의 타파스를 만들어 냈다.
경연의 타파스가 맛있어 보였다. '나도 맥주를 마셨을걸.' 하는 간절함이 들었다. 내 식탐어린 눈빛이 그에게는 들통나지 않았는지, 그는 인사치레로라도 한입 먹겠느냐고 하지 않았다. 이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 입이 말하기 전에 얼굴이 말한다고, 절대 포커페이스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에게는 내 포커페이스가 통한 것이다.
스페인을 걸으면서 나도 내 식탐에 놀랐다. 식탐을 '자기 통제도 못하는'으로 받아들였고, 식탐 있는 자들을 미련하다 생각했다. 내 어디에 식탐이 숨어 있다가 이 먼 스페인에서 반갑잖게 발견되어 버린다. 스페인의 필그림 메뉴는 전체, 메인, 후식으로 세 번에 걸쳐 나온다. 전채 요리로 스파게티를 택하고, 메인 요리로 어떤 류의 고기를 시키든 감자튀김은 수북이 따라 나오고, 후식으로는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이 나왔을 경우, 내가 이걸 남김없이 다 먹는다고 치면 평소 한끼 식사량의 세 배 치를 먹는 것이 된다. 거기에다 꼭꼭 와인 반 병씩은 마셨다.(스페인에서 발견된 식탐은 한국까지 따라왔다.)
경연은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Mansilla de las Mulas)에서 멈추고 나는 한 마을 더 진행하기로 한다. 마을을 빠져나오기 전에 혼자 점심을 먹었다. 거의 사기당한 듯한 또르띠야 보까디요를 4유로나 주고 먹었다. 보통은 3유로면 된다. '이게 무슨 또르띠야에요, 이건 계란프라이지요'라는 말이 치밀어 올랐지만, 언어가 안 되는 내가 참는 수밖에.
보통 또르띠야는 적어도 엄지손가락 한마디 두께로는 나온다. 그 두 배 만한 두께의 또르띠야도 봤다. 그런데, 오늘의 또르띠야는 하몽 슬라이드 해놓은 듯 얇다. 그 억울함이란! (알고 보니 또르띠야와 또르띠야 프란세사는 좀 다른 거였다. 나는 그날 또르띠야 프란세사를 시켰었다. 또르띠야 프란세사는 치즈와 베이컨이 살짝 들어간 얇은 형태다. 이날 먹은 것은, 어느 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은 것과 맛은 엄청 차이가 났지만, 두께가 얇은 건 맞았다.)
오늘은 충분히 많이 걸었지만 좀 더 걷기로 한 것은, 내일 큰 도시 레온에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내일의 거리가 짧아야 발이 아프지 않아, 레온에 도착했을 때 도시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간절한 이유는 '걸어서 지치고 싶다!'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 올라 시에스타 시간을 알릴 때, 나는 대체로 지쳐있지 않다. 태양을 피한다고 새벽길을 걷는 법이 없이, 훤해서야 걷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기운이 쫙 빠지고, 다리는 뻐근하고, 발바닥은 자글자글 아프고 싶다.
절뚝거리며 힘겹게 걷고 있는 이베타를 만났다. 로그로뇨의 교구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모델 포스의 아가씨다. 긴 몸매에 금발머리였는데 슈퍼급으로 에뻤다."너 괜찮니?"하고 그녀의 발 상태에 대해 위로를 보낸다. 그게 이 길 위에서의 인지상정이다. 지치고 아픈 자에게 위로를! 발을 절뚝거리는 상태만으로 심각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뭔 처치를 겁나게 많이 했다. 하얀 붕대도 감겨 있고, 그 위에 고정용 밴드로 처치되어 있어 누가 봐도 '많이 아픈가 보다'가 느껴진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에 갔었는데, 의사가 무조건 쉬라고 하더란다. 이 길을 걸어야 하니 쉴 수는 없고 뭔가 다른 처방을 해달라고 하니 쉬라고만 했단다. 그녀는 어찌나 빅 마우스(Big mouse)인지, 나는 "아 유오케이(Are you ok?)" 한마디 했는데, 그녀의 말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것도 자기 발 이야기로만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하는지......
순례자들은 이미 알베르게에 들 시간이라 길에는 걷는 자가 거의 없다. 시에스타 시간을 훨씬 지나서까지 걸으면 '한적하다'는 보너스가 생긴다. 이 광활한 길에 혼자만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텅 빈 길에서 이탈리아 할아버지 프랑코를 만난다. 그도 나처럼 레온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 오늘 무리를 하는 것이란다. 그와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이야기했다.
프랑코는 느리게 걸으며 나와 계속 이야기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칠십이 넘은 그의 걸음에 맞추자니 나의 인내 수준으로는 불가하여 그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는 매우 인텔리젠트 했는데, 나이 든 치들의 보수성 때문이었을까, 그가 가진 지성의 딱딱함때문었을까, 나는 그와 그다지 맞지는 않았다. 그와 내가 같은 마을에 도착한 것이 맞을 텐데, 그를 못 만난 것을 보면 그는 나와 다른 알베르게에 묵었나 보다.
알베르게가 셋 있다고 알고 있었다. 알베르게가 여럿일 때는 기왕이면 싸고 최고로 멋진 곳에서 자고 싶다. 첫 번째 알베르게는 마을 초입에 있어 들어가 보지도 않고 지나쳤으나, 나머지 알베르게의 위치를 찾지 못해 결국 이곳으로 돌아간다. 분명 셋이라고 들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면 모두가 하나같이 마을 초입의 알베르게를 가리키는 것이다.
산 펠라요(San Pelayo) 알베르게는 겉은 별로지만 속은 예쁘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놓았나 모르겠다. 접수대는 오래되어 반질거리는 고가구이고, 공간마다 놓인 벤치도 엉덩이가 자주 닿았겠지 싶은 곳은 등글게 파여 있도록 낡았다. 집안 기둥들도 모두 오래되어 각진 곳이 없다. 거기에 락카칠을 해놓아 새로 단장한 듯 반질한 느낌이 든다. 건물 뒤로 멋진 정원도 있다. 건평보다 클 듯한 정원은 잔디가 파랗게 심겨져 있고 썬 베드가 몇 개 펼쳐져 있다. 잔디정원 바깥으로 처마밑 그늘에 야외테이블이 놓여있고 순례자들은 그곳에서 오후를 보내고 있다.
상현이 이미 와 있다. 일본인 마이와 함께 걷던 한국 아가씨다. 외국인을 만나면 이름이 뭔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를 물어보게 되지만, 한국인에게는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면 그만인지라 오늘에서야 이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불친절하다가 주스와 요거트를 나눠주며 다가가자 조금 친절해진 듯하다. 몇 마디 나눠보니 불친절하다기보다는 그녀의 스타일인가 보다. 젊은이 스타일. 늙다리에게 청춘은 대체로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던가.
정원에서 독일인 크리스티안을 만났다. 론세스바에스에서 만났던 크레이지 한 크리스티안과 이름이 같다. 그도 내가 걸었던 깔사다 델 꼬또(Calzada del coto)를 거쳐 왔단다. 가이드북에 그 마을을 막 벗어나는 길에 펼쳐진 누렇게 변한 야생풀들이 사막처럼 보인다고 쓰여 있더란다. 그 장관을 보겠다고 일부러 둘러왔단다. 그가 사막처럼 찍히도록 찍은 사진을 몇 보여준다. 사막으로 느끼고 싶었던 크리스티안의 사진에는 그렇게 찍혔지만, 버려진 땅에 몹쓸 풀들만 가득하다고 보았던 내게는 그저 황량한 길로 찍혔다.
크리스티안과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햇볕에 널어두었던 빨래를 걷어 처마 밑으로 옮긴다. 빨랫줄에 아직 빨래가 남아있다. 남의 것에 손대고 싶은 생각은 없고, 얼른 방으로 뛰어가, 비가 온다고 알린다. 내가 묵는 방에 에마우스에서 만났던 프랑스 아줌마 둘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내 손짓발짓도 알아채지 못했다. 빨래는 비에 젖어 가는데, 나 참. 한참 만에 그녀들이 알아채고는 고마워하며 달려 나간다. 민망하게도 비는 곧 그쳤다. 제법 굵게 왔지만 여우비였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런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었다.
저녁은 이곳 알베르게에서 먹을 수 있다. 발도 아픈데, 나가서 레스토랑을 찾느니, 안에서 먹기로 한다. 오늘 저녁식사 테이블은 외톨이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스피탈레로가 영어를 외국어로 쓰는 자들로만 한 테이블, 프랑스어와 기타 언어권을 또 한 테이블로 모아 앉혔다.
샐러드를 먹으며 자기소개부터 시작된다. 혼자서 온 영국 여인 쟈켓과 덴마크 여인 비키타, 북부 벨기에에서 온 부부인 미야와 제크, 독일인 크리스티안, 자전거로 이 길을 순레하고 있는 스페인 할아버지 까를로스, 그리고 내가 한 테이블에 앉았다.
내 옆에 앉은 독일인 크리스티안은 마흔다섯 살이다. 그는 뭔 남자가 말이 그렇게 많은지,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옆에 앉은 내게 주구장창 이야기해대고 있다. 그의 느낌에서 독일인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이 떠올랐고, 산티아고에 관한 책 중에 그 책은 단연 잘 써졌다고 칭찬했다. 그도 그 책을 읽었고, 자신이 이 길을 걷는데 어느 정도 기여를 했노라 한다.
하페 케르켈링의 본명은 한스 페터란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한스 페터는 구식 티가 팍팍 나는 이름이라서, 그가 세련되어 보이는 하페 케르켈링이라는 이름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한스 피터의 책이 번역되었다는 것을 놀라워했고, 내가 또 그것을 읽었다는 것을 대단한 인연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크리스티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은 다 좀 크레이지 한 것인지(카탈루냐인 크리스티안도 좀 그랬다), 그도 살짝 오버끼가 있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내가 영어를 너무 잘한다며 아주 극찬을 했다. 살다 살다 이런 소리는 처음 들어본다. 내가 그의 말을 잘 알아듣고 알맞게 대답도 잘 하긴 했지만, 이건 순전히 그가 또박또박 워낙 쉬운 단어로만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야기하느라 접시의 음식이 줄지를 않았다. 다들 메인 접시가 비워지고 후식을 주문하는데, 그의 메인접시는 갓 서빙된 것처럼 가득하다. 그가 '다들 언제 그렇게 빨리 먹었느냐'며 민망해하는데, "네가 늦은 거지."라고 바로 되받아쳤더니, 테이블이 웃음바다가 된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크리스티안의 말 많음에 다소 크레이지한 느낌을 품고 있었는데, 내가 완전 직설적으로다 그를 타박하자 다들 웃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경상도 말로 하면 '니 혼자 지끼니라꼬 못 무찌.'를 담은 '네가 늦은 거지'였다.
내가 이 길에서 만난 기적 같은 일 중의 하나가, 독일인 크리스티안을 만나 '너 진짜 영어 잘한다'는 극찬을 들은 것이고, 또 하나는 그와 호흡이 맞아 한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든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웃길 줄도 아는 것이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자 포도주도 거의 비워진다. 오스피탈레로가 포도주가 더 필요하냐며 포도주병을 들고 한 바퀴 도는데, 닭고기 뼈를 바르느라 정신이 없던 나는 그녀가 막 등을 돌려 저쪽 테이블로 건너갈 때 고개를 든다. 앞에 앉았던 미야가 너 포도주 더 마시고 싶은 표정인데, 오스피탈레로를 불러줄까 한다. 엥? 내 얼굴에 그렇게 빤히 드러나나? 미야는 내 표정을 흉내 내며 빤히 보인다고 말한다."나는 항상 포커페이스를 원했는데, 외국인인 네 눈에까지 선명하게 드러났다니 실망스립다."라고 했더니, 포커페이스보다 드러나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계속 그 자세를 유지하란다.
오늘 밤도 수백 번을 깨서 베드버그 연고를 발라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