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레온

레온에서 만난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

by 김동해

2012년 9월 9일 일요일

날씨 : 쾌청, 저녁 무렵 빗방울 잠시

걷기 : 비야렌떼 델 뿌엔떼(Villarente del Puente)에서 레온(Leon)까지 (15km)


레온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느지막이 일어나 어제 사두었던 오렌지 주스와 빵으로 여유 있게 아침을 먹는다. 8시가 다 되어서야 걷기 시작한다.

대도시가 가까워오면 큰 도로와 현대식 상업 건물들을 만나게 된다. 근 도로를 건너기 위해 육교에 올랐더니 저 멀리 레온이 보인다. '드디어, 레온이구나'하며 복잡한 도시 건물을 배경으로 두고 연신 셀카를 찍었다. 레온은 큰 도시다 보니 도시로 접어들었다 싶은 곳에서부터 한참을 걸어도 중심가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일찍 도시에 들어섰고, 그다지 급할 것은 없다. 풍경 좋은 공원마다 앉아 쉬며 갈 것이다. 조그마한 공원에 앉아 어제부터 먹고 있던 오렌지 주스와 빵을 먹고 있자니, 공원 음수대에 물통을 채우러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기름통만 한 물통을 여러 개 가져와서 물을 받아간다. 저기서 나오는 물이 특별히 맛나나 보다. 우리나라의 약수 같은 건가? 그 물맛을 봐야겠다고 내 물통도 들고 나섰을 법한데, 나는 가만히 벤치에 앉아 물 뜨러 오가는 동네 주민들만 구경했다. 스페인에서는 흔해 빠진 물에는 조금도 욕심이 일지 않았다.


레온의 입구에서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알베르게가 문을 닫았다며, 이 길이 아니고 저 길로 가라며 소식을 전한다. 저치들을 따라가면 새로 문을 열었다는 알베르게를 쉬 찾을 수 있을 것이지만, 나는 막 들어선 도시 레온에 이리저리 눈길 주며 천천히 걷고 싶다. '긴 서양 컴퍼스들을 따라 걷느라 종종거리고 싶지 않은데......'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문을 닫았다는 옛 알베르게라도 찾아질 것이고, 그 문 앞에 새로운 알베르게의 위치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분명 붙어있을 것이니 혼자라도 걱정은 없다. 그렇지만 꼭 그럴 생각은 아니 있다. 저치들을 놓쳤을 경우에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저치들의 뒤를 밟아 쉽게 알베르게를 찾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편하다.

도심을 한참 따라 들어가다 옛 순례길의 돌담을 보게 된다. 너무 예뻐서 보느라, 사진을 찍느라, 지체를 한다. 그러고 났더니 그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없다. 알베르게는 나 혼자 찾아야 할 판이다.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겠지...... 걱정 없다.


레온의 까데드랄로 들어선다. 맨 먼저 경찰서 건물을 만났고, 회색돌과 파란 지붕의 예쁜 건물을 만난다. 사람들이 그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느라 난리인 것을 보면 유명한 건축물인 것 같다. 레온의 까떼드랄은 지금껏 봤던 어느 도시보다 더 예쁘다. 레온이 예쁜 도시라더니, 과연 그렇다.

까데드랄을 쭉 걸어 올라가자 레온의 대성당이 나온다. 이 정도 규모의 대성당이면 보통 입장료가 있기 마련인데, 활짝 열려 있다. 들어가 본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참으로 예쁘다. 사진을 찍지 말라고 되어있었지만 연신 찍었다. 대성당에서 독일인 부부를 만났는데, 가방 없이 슬리퍼를 끌고 나온 것을 보면 알베르게에 이미 짐을 풀었다는 뜻이렸다. 부부는 아직도 가방을 메고 있는 나를 보더니 알베르가 어딘지 가르쳐 준다. '화살표를 조금만 거꾸로 따라가다 보면 바닥에 알베르게 방향을 알려주는 화살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다.

대성당을 구경하고 알메르게를 찾아 되돌아 걸었다. 그러나 곧 나타날 거라던 화살표는 나타나지 않았다. 화살표를 거슬러가는 것을 관두고 그냥 화살표 방향으로 쭉 가보기로 한다. 다시 까데드랄을 지나고, 대성당을 지나고, 뒤편 음식점을 지나 공원이 하나 나온다. 예쁜 분수가 물을 뿜이내는 공원에 앉아 빵을 먹으며 좀 쉰다. 그때 반갑게도 경연이 아는 척을 한다. 경연은 나보다 먼 마을에서 출발했는데, 나와 비슷한 시간에 레온에 도착한 것이다.

경연도 레온에서 미물 것이라고 하여 같이 알베르게를 찾아보기로 한다. 독일인 부부가 화살표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바닥에 적힌 '알베르게'를 발견할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찾지 못해서 그냥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쭉 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도 그러자고 한다. 닫힌 알베르게를 발견하면 거기에 새로운 알베르게를 알려주는 메시지가 붙어있지 않겠나를 기대하는 것이다.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도시의 알짜배기는 다 보게 된다. 뭔지는 모르면서 근사한 건축물들과 공원을 여럿 지난다. 다리를 건너고부터는 도시 외곽을 향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이상하지 않아요? 도시가 끝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경연도 그런 것 같단다. 지적장애를 가진듯한 딸아이와 산책을 나온 스페인 아저씨에게 물어본다.

"돈데 알베르게 무니치팔?"

무니치팔은 문을 닫았고, 또 다른 알베르게가 까데드랄의 경찰서 부근에 문을 열었단다. 돌아가는 수밖에.


다시 다리를 건너고, 큰 광장을 끼고 있는 근사한 호텔 앞을 지난다. (이 건물은 산 마르꼬스(San Marcos)로, 16세기 무렵 가난한 이들과 순례자를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병원이었으나 현재는 고급 호텔로 사용되고 있다.) 이 호텔 앞의 넓은 광장에는 청동의 순례자 상이 있다. 순례자는 오래 신고 다녀 발가락 모양으로 밑창이 눌린 샌들을 벗어 놓고 돌 십자가에 등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을 감고 있다. 기도하는 듯한 표정이다.

순례자상과 멀지 않은 벤치에 크리스티안이 맥 놓고 앉아 있다. 어제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렀던 그 크리스티안이다.

"헤이, 크리스티안! 반가위! 레온은 그냥 지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레온에서 자고 갈 거야?"

그는 큰 도시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었다. 큰 도시가 나타나면 일부러 얼른 걸어서 건너가 버린단다. 작고 조용한 마을이 좋다던 크리스티안이 널찍한 도시 광장 벤치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 모양새라......

레온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사이에 가방을 도둑맞았단다. 쌀가마니처럼 무거운 등 배낭을 훔쳐간 것은 아니고, 허리에 차고 다니던 허리쌕을 도둑맞았단다. 아주 잠시였단다.

"거기 뭐가 들어 있었는데?"

세면도구 같은 것들이란다. 다시 사면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라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크리스티안은 아주 절망스러워했다. 크리스티안은 도둑질당한 물질적 피해에 충격을 먹은 것이 아니라, 그렇잖아도 도시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자기한테 도시가 한 짓이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아직 알베르게를 찾아 화살표를 거슬러 가는 중이라 경연이 말은 않지만 느긋해하고 있지는 않아서 크리스티안과 기념사진을 찍고는 금세 헤어진다. 그 뒤로는 크리스티안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는 하루에 40km 이상씩 날아다녔으니까.


화살표를 거슬러 예쁜 까데드랄을 지나고 경찰서 건물까지 돌아온다. 이제 여기서부터 집중 수색이다. 경연은 보수적인 한국 남자스럽게 누군가에게 물어보는 일 없이 늘 스스로 찾아다닌다. 나는 길에 있어서는 늘 자신이 없는 관계로 알아도 물어보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터고, 알지 못하는 길이야 백번 물어본다.

나는 경연이 매번 도시에 들이설 때마다 알베르게를 잘 찾지 못해 도시를 훤히 알도록이나 많이 헤맨다는 소리를 들었던지라, 이번에는 스스로 찾아서 도시의 압박감을 이기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오늘은 나까지 달고 도시를 헤맨 꼴이 되었다. 나는 지쳤다. 이제 그만 들어가 쉬고 싶다.

경연의 저어하는 눈빛을 무시하고, 뚱뚱한 스페인 청년을 잡고 물어보았다. 스페인어 답을 대충 솎아 들어보자니, 공립 알베르게는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고, 새로운 알베르게가 문을 열었는데, 무슨 교회 부근이라고 했다. 문을 닫았다는 공립 알베르게는 기부제였다는데, 공립이어도 국가의 허가를 받아 개인이 운영하는 거라서 망할 수도 있단다.

경찰서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알베르게를 알리는 화살표를 발견한다. 맨 처음 독일인 무리들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보이지 않던 곳이었고, 처음에 길을 되돌아 걸었을 때 50미터만 더 갔더라면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멀쩡한 화살표를 어떻게 놓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덕에 화살표를 따라 걸으며 레온을 맘껏 구경했고, 딱 맞춤한 시간에 대성당에 이르러 공짜로 예쁜 스테인드글라스를 구경했고, (점심과 저녁 미사시간에는 열려 있지만, 다른 시간대에는 입장료가 있었다.) 크리스티안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고, 경연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알베르게에는 아직 자리가 남아있었다. 이곳 알베르게는 오스피탈레로가 직접 따라와 침대를 배정해 주었다. 알베르게를 찾느라 두 시간여 넘게 종종걸음 했고 때가 훨씬 지나도록 점심을 못 먹있더니 아주 고달프다. 편안한 침대 아래칸을 쓰고 싶다. "아바호, 뽀르 파보레(avajo por pavore, 아래 칸으로 부탁해.)" 했더니, 네가 나만큼 늙었냐며 위층을 쓰란다, 넌 새파랗게 젊으니까 하면서. 그러는데야 뭐 어쩔 수 있나, 위층에

짐을 푸는 수밖에. 내 주위로는 요란스러운 프랑스 아줌마 몇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

이층 침대에 짐을 주섬주섬 푸는데, 모니카와 세실리아가 몇몇 프랑스인 아줌마와 프랑스어로 하는 이야기 속에서 '꼬리아'와 '베드벅'이라는 단어가 들린다. 이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사하군'에서 만났다는 말도 들은 것 같다. 자기가 약국에서 물어봤는데 그 벌레는 가방이며 옷에 계속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나는 프랑스어를 전혀 모른다. 이탈리아어와 비슷한 단어가 많아서 대충 감으로 때려잡는 스페인어와는 차원이 다르

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나는 세실리아와 모니카가 프랑스 아줌마들과 하는 이야기 속에서 뭔가를 알아들은 것 같단 말이지.

내가 지나가는데 프랑스인 아줌마들이 옷깃이라도 스칠까 봐, 침대에 바짝 몸을 붙이며 통로를 내어주는 것 같은 이 느낌은 또 뭐야? 모니카와 세실리아는 '너 참 안 됐다, 약을 꼭 사서 발라, 약국에서 스페인어가 필요하면 내가 도와줄게' 했던 자들이 아닌가. 하여간 기분 별로다. 프랑스어로 속닥거릴게 뭐람.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샤워나 하고 한숨 자야겠다. 샤워실도 오늘 도움이 안 된다. 물 온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나오는 대로 쓸 수밖에 없었는데, 이건 뭐 얼마나 뜨겁던지, 살이 홀랑 익을 지경이다. 물을 트는 순간에 잠깐 미지근한 물이 나오다가 금세 뜨거운 물로 바뀌었다. 나는 물을 잠갔다 틀었다를 반복하며 겨우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밖에서 빨래를 하고 있자니, 샤위실에 들이간 프랑스 아줌마가 물이 너무 뜨겁다고 호들갑을 떠는소리가 들린다. 나도 샤워를 해봤기 때문에 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안다. 프랑스 아줌마가 옆 샤워실 아줌마에게 너는 물에 문제가 없냐며 난리 블루스다. 물론 그녀의 대답은 "내 물도 뜨겁다"였다. 내가 여기저기 샤워꼭지를 다 틀어봐서 아는데, 한 샤워꼭지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 꼬시다' 하며 즐거워했다.


씻고 뭘 좀 먹으러 나가다가 리셉션 테이블에 앉아 메모하는 페이터를 발견한다. 부르고스에서 헤어지고는 처음 만나지는 것이라 무척 반갑다. 나는 부르고스에서 이틀을 머물러 버려 지금껏 만나던 친구들을 다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이다. 페이터는 레온에서 이틀째 머물고 있었다. 그와 다시 만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페이터는 오늘에서야 나이 들어 보인다. 감기에 걸려있었고 얼굴에 피로가 누적된 듯 보였다. 걷기 초반에는 젊은이 같던 그가, 중반으로 접어들자 힘이 드는지 희끗한 수염도 보이고 몰골이 초췌하다. 부르고스에서는 나와 같이 공립 알베르게에 들었다가 몸이 영 좋지 않아 호텔로 옮기고 하루를 더 머물렀다한다. 나도 부르고스에서 하루를 더 머물렀으니 나는 페이터보다 하루 늦게 레온에 도착한 것이다. 페이터는 참 끈질기게도 만나진다. 내일은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는 정보를 준다.

챠오와 쥬느비에브도 다시 만났다. 레온의 알베르게에서 새로운 한국인 무리들도 만난다. 자전거로 이 길을 가고 있는 할아버지 그룹과 스페인에서 유학 중인 상천 군이다.

레온에서 빰쁠로나의 바(bar) 순례를 함께 다녔던 하비와 크리스티안을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하비는 레온까지 걸었다면 레온에서 하루만 머물지는 않았을 터, 분명 어느 하루와는 겹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비가 레온까지 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여자 친구와 싸웠다가 이 길을 걷는 중에 여자 친구와 화해 전화를 하는 것 같아 보였는데, 그는 레온까지 오지 않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은 "네가

산티아고까지 걸어서 도착하면 내가 한턱 쏘지." 했었는데...... 크리스티안은 나를 아주 약골로 봤다.

일본어를 잘하던 상현과 일본 아가씨 마이도 만났다. 그녀들은 아직도 같이 걷고 있는 것이다. 대단하다. 그녀들은 베드버그에 물린 자국 때문에 이 알베르게에 들어오기 전에 전체 소독을 당했단다. 샤워하러 들어가면서 모든 옷가지와 가방을 벗어 줬단다. 그리고 알베르게에서 내주는 옷으로 갈아입었단다. 가방을 소독하고 모든 옷가지들을 빨아 말려주는데 8유로를 지불했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알베르게에서 잘 수 없다 했단다. 나도 팔에 물린 자국이 가득했는데, 접수할 때 그들이 왜 눈치채지 못했나 모르겠다.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베드버그의 만행을 잘 몰랐기 때문에 소독료 8유로를 내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뭐라도 좀 먹은 후에 아름답다는 레온을 다시 한번 찬찬히 둘러볼 생각이다. 아까는 알베르게를 찾느라 덜 관광객스러웠다. 가방도 내려놓고, 땀도 씻었으니 이제야 제대로 관광객 놀이를 하는 것이다.

알베르게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니 까데드랄이다. 다시 한번 파란 지붕 건축물 앞에 섰다. 지금은 시에스타 시간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만 아까는 사람들이 이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 찍느라고 난리였던 것을 보면 뭔가 유명한 건물 같다고 했더니, 경연이 가우디의 건축물이라고 알려준다.

"아, 진짜요?"

내가 드디어 스페인에서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을 만났단 말이야?

"경연 씨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도 가이드북 없이 여행 중이다. 그는 앞으로 나타날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른다는 것을 즐긴다. 내일은 이런저런 길이 나타날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자기는 어떤 정보도 듣고 싶지 않다며 자기한테는 제발 정보를 알려주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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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연은 여러 알베르게에 묵을 때마다 책들을 뒤적거렸는데,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물을 쭉 소개하는 책이 있어 열심히 공부를 했단다. 이 건물은 중앙 출입문 위의 조각품이 유명하단다. 그리고 이 건물은 정면에서 찍는 것보다 모서리 쪽에서 찍어야 멋지게 나온단다.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과연 출입문 위에 악어를 내려찍으려는 조각품이 보인다. 그리고 건축물 앞에 청동의 가우디가 청동의 벤치에 앉아 뭔가를 설계하는 동상도 보인다. 경연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뭘 보는지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가이드북이 없는 건 이런 것이다. 뭘 너무 모르게 된다.


가우디의 건축물 까사 보띠네스(Casa Botines)를 구경하던 중에 우리처럼 관광객 놀이를 하는 모니카와 세실리아를 만난다. 나는 조금 전 알베르게에서 심하게 배신당한지라 그녀들이 반갑지 않다. 그런데 그녀들이 나보고 사진을 같이 찍잔다. 이건 또 뭔 시추에이션? 찍자니 찍는다. 무슨 명분으로 'No' 하겠나. 그런데 또 사진을 찍는 모양새가 수상쩍다. 보통은 이 정도 자주 만나 인사를 하고 지냈으면 어깨동무가 들어오거나, 팔짱

이 들어오거나 한다. 꼭 그렇진 않더라도 어떻게든 밀착된 포즈가 나오기 마린이다. 그녀들, 내게 밀착되어 보이면서도 내 몸에는 닿지 않으려는 어색한 포즈를 취한다. "얘가 베드버그에 물린 동양앤데......" 하며 써먹힐 사진이 아닌가 모르겠다. 경연도 포즈가 어째 이러냐고 했다. 알베르게 안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며 아마도 베드버그가 옮을까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줬다.


레온 대성당에 이르러서는 상천을 만나 다 같이 맥주나 한잔 하기로 한다. 상천은 자전거로 이 길을 가다 다친 한국 할아버지를 도와주게 되는데, 그가 스페인에서 유학 중이다 보니 스페인어도 잘하고 스페인을 잘 알기도 해서, 할아비지 그룹이 마저 도와주고 가라며 껌딱지지치럼 붙어버린 것이다. 한 할아버지가 다 나을 때까지는 걸어 다니는 모양인데, 짐 운반을 위해 택시를 부르는 것부터 생수 구해다 바치는 것까지 부림을 당하고 있었다. 상천은 달갑지 않으나 한국 어르신들이다 보니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고 자신의 일정을 좀먹어가며 종노릇을 하고 있었다.

브라바스와 또르띠야 보까디요를 맥주와 함께 주문한다.

"보까디요는 3등분 해주세요."

상천은 바르셀로나에서 2년째 유학 중이란다. 어디서 뭐, 이디서 뭐 공부했다는데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외국어만 못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한국말도 외국어 알아듣듯이 뜨문뜨문 들린다. 너무 배고프고 피곤해서, 정말 상천의 말을 반만 알아들은 것 같다.

스페인에 꿰차(Quechua)라는 아웃도어 브랜드가 있는데 매우 저렴하고도 질이 괜찮단다. 스페인의 웬만한 도시에는 꿰차 매장이 있으니 뭐 장만할 것이 있으면 한번 방문헤보라고 했다. 아,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꿰차 상표의 가방을 메고 있구나.

한 번은 케이블 TV 안테나처럼 생긴 둥근 꿰차 가방을 멘 젊은이들을 보았다. 그 둥근 것이 무엇인지 참 궁금했었는데, 텐트였단다. 그들은 거의 무전으로 이 길을 걷고 있고, 그 텐트로 노숙을 한단다. 씻는 것도 강물을 이용한다고 했다. 대단한 젊음이다!


허기를 채우고는 돌아와 좀 쉬기로 한다. 깜빡 졸았다 싶은데 일어났더니 9시가 가까워온다. 알베르게가 9시 30분에 문을 닫는다고 했는데.

'저녁으로 뭐든 좀 먹어야 되지 않을까'.

마음이 급해진다. 아까 언뜻 보았던 빅맥 햄버거 가게로 달려가 와퍼주니어를 시켜 허겁지겁 먹는다. 시원한 콜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는데 내가 엄청난 갈증을 느끼고 있었구나를 깨닫는다. 얼음까지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알베르게 문이 닫혀버릴까 걱정이 되어 감자튀김은 사들고 돌아온다. 햄버거 가게를 찾아갈 때도 몇 번을 헤매었고, 돌아갈 때도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몇 번을 물어야 했다. 나는 길에 있어서는 정말 자신감 제로다.

돌아오는 길에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 땅속에서 쑥 올라오는 차량진입을 막는 장치다. 어느 시간에 어떻게 가동하는지는 모르겠으되, 땅 속에 들어가 있던 것이 밤이 되자 찌징거리며 올라와 그 골목의 차량 진입을 막을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돌기둥이나 근 화분으로 막는 것이 보통이다. 스페인의 이 장치가 참 멋진 것이 '자동으로' 들어가고 '자동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낮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통행을 최대한 보장해 주는 섬세한 설계인 것 같아 멋져 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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