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체험지 만하린(Manjarin)

물도 전기도 없는 알베르게

by 김동해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날씨 : 오전에 맑음, 오후에 구름이 꼈음, 바람도 붙었음

걷기 : 아스토르가(Astorga)에서 만하린(Manjarin)까지(31km)


벼르지 않았는데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버렸다. 저녁에 사두었던 것으로 요기를 하고 출발한다. 밖이 어두워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도시를 벗어나는 길을 좀 봐두었어야 했는데, 어제는 너무 늦게 도착했고 너무 피곤했던 탓이다. 어쩌지 하며 새벽녘의 풍경을 찍고 있자니, 드디어 지나가는 주민 등장.

"어디로 가야 하죠?"

"바닥에 불빛 보이지? 그 전구들을 따라가면 돼."

과연, 바닥에 전구가 박혀있다. 아스토르가는 새벽길 나서는 순례자들을 위해 이런 세심한 설계를 해둔 것이다. 멋져.

딱 출출할 때쯤 바가 나타난다. 많은 순레자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아침 요기는 하였으나 커피가 간절하다. 나도 들러 먹고 가기로 한다. 바 안에 진열된 빵들이 군침 돌게 한다. 이탈리아 할아버지 프랑코는 마침 다 먹고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맛있더라며 추천을 해주고 간다. 프랑코가 추천해 준 빵과 커피를 주문한다.

바의 여주인은 인텐리젠트해서 이 언어, 저 언어를 막 구사하는데, 이건 장사치들의 짧은 단어 수준의 언어 구사가 아니다. 인텔리젠트한 만큼 히스테리도 좀 있다. 계산을 해주면서 웬 놈의 순례자가 이렇게 미어터지게 오는지 모르겠다면서,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 뒤치다꺼리하느라 휴가도 못 가고 이게 뭔 꼴이냐는 신세 한탄을 줄줄 늘어놓는다. 그러느라 게산은 느려지고, 주문한 아침이 나오는 대도 시간이 엄청 걸린다. 누군가는 계산을 치르러 왔다가 음식 값이 비싸다며 컴플레인을 하는데, 그녀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에 본전도 못 찾고 내뺐다.

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도록 바 내부도 멋지게 꾸며져 있고 음식 맛도 대단하다. 내가 주문한 빵이 한 덩어리 크게 나올 줄 알았는데, 얇게 슬라이드 되어 나왔다. 대신 토스트 두 조각이 버터와 잼과 함께 나왔다. 맛은 정말 좋았다. 잼도 집에서 직접 만든 듯하다. 그런데, 계산을 치르다가 놀라버린다. 6유로 란다. 1, 2유로 비싼 것도 아니고, 이건 완전 2배의 값이다. 왜 그 남자가 음식 값을 가지고 컴플레인을 했는지 알겠다.

주문한 음식이 너무 늦게 나와 소중한 아침 시간을 바에 앉은 채로 1시간 넘게 죽여 버렸다는 것에도 좀 화가 났다.


버려진 돌집들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저 멀리 풍력 발전기도 보인다. 히토시 씨의 뒷모습도 촬영했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의 걷는 뒷모습을 찍고 있다. 걷는 뒷모습은 자신이 찍을 수 없으므로 내가 찍었다가 주면 좋은 선물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던 때문이다. 꼭 뒷모습이 아니라 친구들의 앞모습을 도찰해도 좋았을 것을 나는 왜 그렇게 뒷모습만 열심히 찍었나 모르겠다.

언젠가부터 또 경연과 함께 걷고 있다. 오늘 참 많이 걸었다 싶은데도 다른 날보다 덜 지쳐있다. 라바날(Rabanal)까지는 20km라 육체가 지치기에는 거리가 부족했고, 폰세바돈(Fonsebadon)에 도착해서는 머물고 싶은 생각이 가셨다. 폰세바돈은 지대가 높은 곳인데, 돌집들은 다 허물어져 유령 마을 같았고, 오로지 순례자들을 재워주는 알베르게 건물만 모양을 갖추고 있었다. 폰세바돈에서 알베르게 문이 얼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베타와 인사 나눈다.

"넌 여기서 자니?"

"그래, 지쳤어."

"난 좀 더 가보고 싶어. 나중에 또 봐."

이베타가 그러는데, 폰세바돈을 지나면 바로 크루즈 데 페로(Cruz de Ferro, 철십자가), 일명 근심의 십자가가 나타날 것이란다. 그 소리를 들으니 오늘 꼭 근심의 십자가를 지나고 싶다. 근심을 털어버리는 데는 오후가 더 어울린다. 나는 더 걷기로 한다. 혼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경연도 더 걷고 싶단다. 어쩔 수 없다. 같이 간다. 가다 보니 산길이라 같이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설핏 든다.

드디어 철십자가를 만난다. 그런데 사진에서 보던 그 장엄함은 어딜 갔나. 이건 뭐 길 한편에 철십자가 올려진 볼품없는 거대한 나무 기둥 하나 박아 놓고 그 아래에 통일성도 없는 돌 부스러기들을 엉망으로 쌓아놓은 모습이랄까. '뭐 이래?' 하면서 실망을 하고 있는데, 이베타가 등장한다. 기다려도 알베르게 문이 열리지도 않고 해서 좀 더 걸을 생각으로 왔단다.

"너희 나라에서 돌 하나 가져왔니? 그게 전통인데."

근심의 십자가에서는 자기 나라에서 가져온 돌에 근심을 적어서 버리고 가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나는 알았지만 미처 돌을 준비하지는 못했다. 그녀는 가방에서 돌을 꺼내 경건한 마음으로 그곳에 버렸다.

나는 종이에 내 근심을 적어서 두고 가기로 한다. 적고 있자니 경연이 위로 올라와 보라고 한다. 근심의 십자가에 올라갔더니 여러 메시지가 보인다. 엄숙한 기분이 들었다. 그 울컥한 기분이란! 통일성 없이 엉망으로 보였던 돌들 하나하나에 뭔가가 빼곡히 적혀 있는 것이다. 독일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이 말한 '공간의 슬픔'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이 장소에 와서 자신의 근심을 간절한 마음으로 버리고 갔겠지. 이곳에 그 기운들이 맴돌며 그 공간에 들어선 자들의 마음까지도 흔들어 놓는 이런 것. 정말 눈물 날 뻔했다.


'근심하는 마음을 버리고 가겠어.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겠어.

내 근심, 잘 가!

2012년 9월 12일'


나는 이곳에 내 근심 하나를 두고 간다고 했더니, 경연이 잘 붙여 놓았냐고, 떨어져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냐고 농담을 한다.

이베타는 우리들에게 초콜릿을 한 조각씩 나눠주고는 먼저 출발했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가방은 가벼워야 한다.'에 너무 짓눌려 여분의 먹을거리라곤 없이 다니다 보니 남에게 사탕 하나, 초콜릿 한 조각 나눠주지 못했다. 초콜릿 한 조각이 그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초콜릿 한 조각을 받아먹는 것이 아니라 가방 속에 무겁게 넣어 이곳까지 들고 온 수고를 받아먹는 것이다.


산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만하린(Manjarin)이란 곳이다. 이베타가 이미 와 있다. 그녀는 이곳에서 자고 갈 거란다. 이곳은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돗물도 안 나온단다. 우리 보고도 자고 가란다.

"에? 수돗물도 안 나와? 땀범벅인데 씻지도 못한다고?"

"언제 이런 곳에서 자보겠니. 내일도 그다음 날도 전기가 들어오고 수돗물이 나오는 곳은 많아. 하지만 이곳은 '유니크(Unique)'한 곳이야."로 빅마우스의 꼬드김이 시작된다.

자기는 폰세바돈의 알베르게 문 앞에 앉아 가이드북을 보다가 '전기도, 물도 없는'이라는 말에 가방을 둘러메고 당장에 여기까지 달려왔단다. 그녀의 말에 약간 혹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다음 마을이 그렇게 멀지만 않았어도 나는 더 걸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마을은 너무 멀고, 나는 충분히 지쳐버려서 자고 가기로 한다. 경연도 자고 가겠단다,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오스피탈레로가 저 건물에서 자면 된다고 한다. 우리가 잘 곳은 이 건물이 아니고 바로 앞에 보이는 부서지기 직전의 창고 같은 건물이었다. 그런들 어쩌리. 나는 이미 묵어가기로 한 것을. 1층에는 먼저 온 벨기에 할머니와 손자, 또 다른 국적의 할아버지가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삐걱거리는 좁은 나무 계단을 밝고 2층으로 올라갔다. 지붕 아래의 다락방 같은 곳에 지저분한 매트리스만 여러 개 놓여 있다. 이곳은 손님을 받기 위해 청소 같은 걸 하는 곳이 아니다. 지붕 아래서 비만 피하기 위해 들어오는 자들에게 정말 비만 피하고 갈 수 있도록 제공되는 곳이다. 그 지저분함에 더럭 베드버그가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그런들 뭐. 나는 이미 베드버그의 공격을 받은 사람이고, 내 짐 어딘가에 베드버그가 따라다니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한 두 놈쯤 더 붙어 다닌 들 뭐 대수겠나.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매트리스를 정한 뒤, 어두워지기 전에 침낭을 꺼내 잠잘 준비를 갖춰둔다. 그리고 허탈하고도 재미있어하며 이 초라한 잠자리를 사진으로 남긴다. 이베타는 이 초라한 잠자리를 묘사하며 신이 났다. 혼자였으면 이 잠자리가 처량하여 울적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신난 이베타를 보자니 나도 막 재밌다. 신난 이베타에게 장단을 맞춰주려다 보니 경연이 못 알아듣는다는 것은 신경도 안 쓰고 이태리어로 막 떠들었다. 헤드렌턴이 없는데 어떻게 화장실엘 가지? 난 너무 무서울 것 같아. 내가 널 깨우면 좀 따라가 줄거니? 밤에 추우면 어떡하지? 쥐는 없겠지?


만하린은 우리가 막 도착한 토마스의 집 한 채가 끝이다. 마을은 토마스의 집 문 앞에서 시작하고 담벼락에서 끝났다. 토마스는 이곳에서 방목을 하고 있어서 1400m의 산꼭대기에 집이 필요한 것이다. 이건 살림을 하기 위한 집이 아니고, 가축들 돌보러 올라왔을 때 잠시 쉬거나 여차한 날에는 하루 정도 묵어갈 정도의 집이다.

토마스의 집은 세계 각국의 국기들이 걸려 있고, 각 도시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알록달록한 나무 팻말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누구 표현마따나 산속의 해적선 같은 분위기다. 산티아고까지 222km, 로마까지 2475km, 마추픽추까지 9453km, 예루살렘까지 5000km, 갈리시아까지 70km라고 적혀 있다.

어디 씻을 만한 곳이 없느냐고 했더니, 조금만 돌아가면 방목장이 있는데, 그 가운데 소들에게 먹일 물을 받아놓는 큰 풀장이 있단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거기서 수영이라도 하란다. 나는 상태가 어떤가 한번 둘러보러 간다.

소들이 방목장을 벗어나지 않도록 쳐놓은 전기 선줄 아래로 몸을 숙이고 들어가서 찾은 큰 풀장은, 그래 그 남자의 말마따나 크다고는 하겠다만 이건 물이끼 잔뜩 끼고 벌레들이 꼬여 있어서 발 씻기에도 더러워 보인다. 에이, 실패!

그 풀장은 씻을만한 곳이 못되더라고 하니 오스피탈레로가 뒤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다. 집 뒷벽에 물 저장탱크가 있고 싱크대를 하나 세워 두었는데, 여자들은 거기서 간단히 씻으란다. 싱크대 위에는 절대 마시지도 말고 빨래도 하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나는 수도꼭지를 틀어 그 물로 양치하고 수건을 적셔 겨드랑이 땀을 닦아냈다. 아까보다는 살만하다.

저녁을 준다고 하니, 저녁 시간까지 마당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오스피탈레로가 내어준 산딸기를 먹었다. 차가운 산바람이 닦아내지 못한 곳의 땀도 다 말려 주었다. 씻지 않았는데도 몸은 가삭가삭 상쾌헤졌다. 우리는 이걸 바람샤워라고 불렀다.

오늘 이곳에서 자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일곱 명이다. 나, 경연, 이베타, 벨기에 할머니와 손자, 국적을 알 수 없는 할아버지, 그리고 밤늦게, 오랜 노숙 생활자에게서나 날법한 진한 향기를 풍기며 왔다가 잠만 살짝 자고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게 떠나버려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남자까지.

벨기에 할머니는 산티아고 길을 걷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시다. 다섯 번째란다. 올해는 학교에서 문제를 좀 겪고 있는 손자 녀석과 이 길을 걷고 있다.

산딸기를 먹으며 다음 길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나는 며칠 전 오스피탈레로로 일한 적이 있다는 스페인 여자와 같은 알베르게에 묵으며 같이 저녁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녀가 써준 메모를 꺼내 들고 뭘 좀 물어볼 참이다. 그녀가 산티아고 순레길에는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알베르게가 세 곳 있다며 냅킨에 적어주었었다.


1. Manjarin

2. Avefenix

3.(기억나지 않는다. 그 냅킨을 기념품으로 계속 챙겨 오다가, 여행 마지막 날에 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1번은 이미 지났다고 했고, 2번은 어디쯤에 있을까?"

이베타가 눈을 반짝이며 소리친다.

"아니야, 여기가 바로 만하린(Manjarin)이야!"

"뭐? 여기가 만하린이야?"

내가 어딘지도 모르고 머물러 가려던 곳이 바로 그녀가 적어줬던 그곳이었다. 신비롭게 느껴졌다. (만하린은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에 등장하는 곳이다. 이 길을 걷기 전에 <순례자>를 읽다 알았다. 긴 지명과 환상적인 내용 때문에 잘 읽히지 않았다. 만하린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오스피탈레로로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 스페인 아줌마가 그러는데, 파울로 코엘료는 이 길을 걷지도 않고 순례자라는 책을 섰단다. 그의 부인이 다 걷고서 경험을 전해주었으니 순전히 진실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베타가 가이드북을 가져와 찾아보더니 아베페닉스(Avefenix)를 찾아낸다. 그러더니, 이곳도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아베페닉스에서도 만나잔다.

"에? 또? 이런 경험은 한 번만으로 족해."

나는 아베페닉스도 만하린처럼 전기도 안 들어오고 물도 안 나오는 곳인 줄 알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1400m의 고지라 시간이 갈수록 바람의 차갑기가 예사롭지 않다. 아래위로 덧입고도 추위서 건물 안으로 들어와 웅기종기 앉아서 저녁을 기다리기로 한다. 경연은 오늘밤 매우 추울 것이라며 자신의 폴라폴리스티를 빌려준다. 비옷도 입고 자란다. "뭐 그 정도까지야 춥겠어요?" 했지만, 바람을 느껴보니 그걸로 되겠나 싶어졌다.

저녁 식탁이 다 차려졌다는 종이 울린다. 얼른 식탁에 둘러앉는다. 전기가 안 들어오다 보니 건물 내부는 어두컴컴하다. 맛있지는 않았지만 이 산꼭대기에서 바깥바람을 피하는 것만도 다행인데, 저녁까지 먹여주니 고마울 따름. 또 배불리도 먹었다.

이 집의 주인장 토마스도 마을에 내려갔다가 저녁 시간에 올라와서 우리와 같이 식사할 수 있었다. 토마스는 방목하는 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는데, 지금은 깡그리 잊어버렸다. 우리가 올라온 산길의 뒤편으로는 차가 다닐만한 길이 닦여있는데, 토마스는 차로 마을에서 이곳까지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었다.

만하린에는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다. 살찐 고양이는 제법 인물이 좋다. 개는 오후 나절에 한번 풀렸다. 컹컹컹 사납게 짖으면서 뛰어 돌아다녀서 식겁을 했다. 나는 얼른 테이블 위로 뛰어 올라가서는 누가 좀 도와달라고 소리를 쳤다. (이렇게 개를 겁내는 내가 개들이 풀려 어슬렁거리는 갈리시아 지방을 아무렇잖게 통과했다는 것은 참 기특하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화장실엘 꼭 다니와야 한다. 이베타가 따라가 주겠다고 했지만, 내가 그녀를 깨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화장실은 길 건너의 무너지다만 돌담 옆에 나무로 지어져 있는데 그래도 문은 단단히 잘 달려 있다. 삐걱 열고 들어가는데,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식이다. 과거 한국의 시골 동네에서 많이 봤던 푸세식이다. 볼일을 보고는 재를 한번 가져다 뿌리고 뚜껑을 닫아달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나는 소변만 봤기 때문에 재를 뿌리지 않았는데, 대변을 보면 그 모양새가 더럽기 때문에 하얀 재를 뿌려달라는 것인 것 같다.


새벽녘, 비옷까지 돌돌 말았는데도 춥다. 몸을 까짓것 웅크려보지만 계속 춥다. 이베타가 일어나 화장실에 가는 모양이다. 나도 뇨기(尿氣)가 느껴져 아까부터 깨어있었기 때문에 얼른 그녀를 따라 나가면 될 것이지만, 추워서 도저히 침낭 밖으로 몸을 빼지 못하겠다. 그냥 참기로 한다. 추위는 그만큼 막강했다.

아침에 일어나 경연의 옷을 벗어주고 감사의 말을 전한다. 경연 씨가 같이 있지 않았으면 난 어쩔 삔 했냐면서. 그는 내게 옷을 다 내어주고는 안 되겠다 싶었던지 바람이 덜 들이치는 1층으로 내려가서 잤단다. 그래도 춥더란다.

나중에서야 들었는데, 경연과 이메타는 밤에 화장실에 가기 위해 나왔다가 하늘의 은하수를 보았단다. 그렇게 근사한 장면은 다시없을 거라고 했다. 나도 오줌 누러 갔었어야 했다. 아주 어릴 때 합천에서 은하수를 단 한번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대단한 아름다움이었었다. 전기가 없는 산꼭대기에서 보는 은하수는 얼마나 멋졌을 것인가! 나만 그걸 못 보았다니 안타깝다.

"이놈의 인내심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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