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꼭 너 같은 딸 낳아라

그럼 너무 좋지 왜?

by 김용주

"어디, 꼭 너 같은 딸 낳아 봐라!"


엄마와 싸우면서 이런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딸이 얼마나 될까.

강나비 또한 어릴 때 엄마에게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강나비는 생각했다고 한다.


'나 같은 딸이면 좋은 거 아닌가?'


강나비에게 '나 같은 딸'이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형태의 딸이었으리라.

그리고 강나비는 꼭 자기 같은 딸, 김용주를 낳았다.


키워보니 김용주는 정말 강나비와 비슷했다. 성격은 거의 빼다 박았다.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났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자기 말이 맞다고 무조건 우기는 부분이 특히.

김용주는 얼굴은 김소장을 닮았으나 체형은 강나비와 똑같았다. 입맛이 똑같아서 같은 체형이 된 것인지, 이미 그런 체형으로 타고나서 입맛도 비슷해진 건지는 알 수 없으나 강나비는 김용주가 위로는 크지 않고 옆으로만 커 나가는데 불안함을 느꼈다.


"우리 같은 사람은 평생 입간수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유롭게 입맛을 풀어두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았던 강나비는 딸을 붙잡고 신신당부했다.

김용주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 또한 강나비를 닮았기 때문이다.

강나비는 김용주를 키우면서 '꼭 너 같은 딸'이라는 말이 축복의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 엄마는 계모인 거 같아요."


김용주는 선교원에 다니던 시절, 동네방네 엄마를 비방하는 말을 하고 다녔다. 아주 어릴 때부터 패륜아의 싹이 보였다. 미취학 아동이어도 자신을 비난하는 거 같은 낌새가 느껴지면 도끼눈을 뜨고 달려들던 딸에게 늦은 사춘기가 왔을 땐 정말 가관이었다.


가장 큰 피해자는 김소장이었다. 질풍노도의 딸과 싸우다 화가 난 김소장이 한 마디 하자, 고등학생이던 김용주는 아빠의 어깨를 주먹으로 세게 후려쳤다. 부모가 쉽게 체벌을 행하던 시절에 손 한 번 대지 않고 곱게 키운 딸에게 돌려받은 보답이 주먹질이라니. 김소장은 기가 막히고 상처받은 얼굴로 물러났다. 다행히 김용주도 완전히 이지를 잃지는 않아서 패륜적 폭행은 거기서 끝이 났다.


대신 버르장머리가 사라졌다. 김용주는 갑자기 강나비를 본명 세 글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유도 딱히 없었다. 어느 날 강나비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고 싶으니까 실행했다.


"어이, 강나비! 어디 가?"


밖에서 강나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주변 어른들이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김용주를 돌아보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워낙에 자기중심적이라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십 대 초중반 '엄마의 부재'로 인해 감정을 제대로 다루는 법을 모르고 자기만의 세상으로 깊게 파고 들어갔던 터라 그대로 성인이 되었다면 어떤 존재가 되었을지 확신할 수 없다.


강나비는 그런 김용주를 어떻게 인간으로 만들었는가.

뻔하지만 언제나 답은 사랑과 믿음이다.


김용주가 지금의 직업을 가지기 위한 시험이 두 달 정도 남았을 때였다. 직강을 듣던 대학 동기들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온라인 수업을 듣는 동안, 김용주는 노량진으로 갔다. 강사 선생님이 유머를 곁들여 찰떡같이 설명을 하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노량진에 가면 천 원짜리 저녁을 먹고 선생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있으면 가끔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받았다.


"크면서 엄마한테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뭐야?"


아마 김용주의 아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숙제했어?"가 아닐까. 선생님이 기대한 답도 그런 범주였을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라', 또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대답이 수업 맥락 상 맞기도 했다.


그러나 김용주는 갑자기 주목을 받은 탓에 질문의 의도를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뒤에 앉은 모든 수강생들이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온 강의실이 답을 기다리고 있고 뒤통수가 간질거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엄마에게 제일 많이 들은 말이라면......


"고, 공주야, 요......"

"푸학학학 공주래!"


뒤에 앉아 있던 남학생들의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선생님께도 큰 웃음을 드릴 수 있어서 나름대로 보람찼다고 해두자.


강나비는 자기 이름을 불러대는 딸을 '공주'라고 불렀다. 다정하고 애틋하게 대하는 딸도 아닌데 부르는 호칭에조차 사랑을 담았으니, 김용주를 구성하는 부분에 강나비의 사랑이 닿지 않은 곳이 있었겠는가.


김용주는 '엄마의 사랑'에 대해 생각할 때면 통화나 메일 끝에 늘 꼬리표처럼 붙던 "사랑해."란 말보다, 강나비와 싸우던 어느 날을 먼저 떠올린다.


평소와 다름없이 서로 자기 입장만 말하며 싸우던 날이었다. 김용주는 언제나처럼 바락바락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고, 그러다 분을 이기지 못해 눈물이 터졌다.

강나비는 그런 딸을 가만히 바라보다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이구 얘는 우는 것도 이래 귀엽노."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김용주는 그 말을 들은 장소와 날씨는 물론이고, 커다란 둥근 점이 그려진 하얀 반팔티에 회색 바지를 입고 머리를 틀어 올려 동그랗게 묶었던 것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아무리 패악을 부리고 있어도 엄마는 나를 귀여워한다.'


서로 싫은 꼴로 물고 뜯으며 싸우던 순간에도 느낄 수 있는 사랑이었다.

김용주에게 부모의 사랑은 정말이지 충분했다. 차고 넘칠 만큼 받았다.


사랑의 다음 차례는 믿음이다.


김용주의 고등학교 동아리는 애니메이션 부였다. 2학년 2학기. 곧 수험생이 되는 시점에 김용주는 아주 바빴다. 공부 때문이 아니라, 축제 준비 때문이었다. 만화를 실은 회지도 발행해야 했고, 코스프레를 위해 옷도 만들어야 했다. 공부는 안 하고 야자 시간 내내 만화 그리고 가죽 옷감 바느질만 하고 있었으니 성적이 유지됐을 리가. 김용주의 전교 등수는 무려 백 등이나 떨어졌다.


곧 고3이 되는 중요한 시기였고, 공부 잘하는 자식에게 기대를 건 부모가 성적표를 대하는 태도는 마냥 여유로울 수 없다. 전교 등수를 세도 친구들의 반 등수보다 높았던 딸의 성적이 백 등이나 떨어졌는데 강나비의 반응은 어땠을까?


"......."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성적표를 받아 든 강나비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렸다. 인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김용주는 축제가 끝나고 나서는 정신을 차려 다시 전교 등수를 말아 올렸다. 김용주의 대학 동기들은 모두 공부라면 한 가닥 했던 친구들이기에 이 이야기를 듣고는 놀라워했다.


강나비는 전전긍긍하지 않고 딸을 믿었다.


'내 딸이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다만 김용주 자체에 대한 믿음보다는 '내 딸'이라서 잘할 거라는 믿음이 더 컸을 것이다.

어디에 방점이 찍혔건,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김용주는 알아서 잘했다.

그러나 거짓말도 잘했다. 이 시점에도 멀쩡한 인간이 되려면 멀었다.


김용주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독서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코스프레 행사장으로 떠났다. 두 번이나 나왔는데 혹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설명하자면, 코스프레란 만화 캐릭터처럼 옷을 입고 꾸미는 것이다.


잠깐, 고3 때도 그러고 있었다고? 2학년 때 전교 등수 백 등 떨어지고 나서 정신을 차린 게 아니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인간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강나비는 딸의 행선지를 눈치챘지만 제지하지 않고 기다렸다. 김용주는 집에 돌아와서 사실은 공부하지 않고 코스프레 행사에 다녀왔다고 고백했다. 정직한 행동이었다기보다는, 이미 다녀왔으니 말한다고 못 갈 일이 없고 혼나도 상관없기 때문이었다.


강나비는 고3이 어딜 갔다 오냐고 혼내지는 않고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알고 있었다. 니 나갈 때 롱부츠 들고 가더라만. 독서실 가는 아가 부츠를 왜 들고 나가겠노."

"...... 알고 있었나."

"우리 딸은 거짓말은 안 하지. 뭐 무슨 짓을 해도 나중에는 다 이실직고하니까."


만약 계속해서 속아주었다면 김용주도 부모를 무시했을지 모른다. '내가 다 알고 있지만 너를 믿기 때문에 눈 감아주고 있다.'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기 때문에 김용주는 강나비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너를 믿고 있다'라고 꾸준히 신호를 보내는 게 '어디서 부모한테 거짓말을 하고 속이냐'고 윽박지르는 것보다 더욱 강력했다.


물론 이런 일들이 있자마자 바로 인간이 된 것은 아니다.

강나비와 김소장은 김용주에게 사랑을 넘치게 쏟아붓고, 믿음으로 감싼 뒤 오랫동안 기다렸다. 김용주가 인간이 되는 데 오래 걸렸다는 뜻이다.


"내 딸이 왜? 처음부터 똑똑하고 착하고 예쁜 딸이었는데?!"


강나비가 듣는다면 펄쩍 뛰겠지만, 김용주에게는 아직 양심이 남아 있기에 그 후로도 셀 수 없이 부모의 속을 까맣게 태우고 뒤집은 일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 같은 딸'이면 좋은 거 아니냐던 강나비는 똑같은 딸을 키우다 보니 어느새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다.

딸을 향한 이해심이 아니라 엄마를 향한 이해심이 극에 달한 어느 날, 마침내 그 말을 내뱉고 만다.


"꼭 니 같은 딸 낳아라."


김용주는 사고 과정이 강나비와 똑같았기 때문에, 그 말을 처음 들었어도 대답이 정해져 있었다.


"그럼 너무 좋지 왜?!"


그리고 김용주 또한 그렇게 바라던 똑같은 딸을 낳았다.

당연히 낳고 보니 망나니였다.

문제는 그 망나니 외손주 육아가 강나비의 몫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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