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강나비의 황혼 육아

딸 잘 키워놨더니 손주나 보고 있다

by 김용주

김소장의 생일 기념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


"손자가 그렇게 예뻐요?"


그날따라 김용주의 퇴근이 늦었다. 강나비는 돌보던 손자를 김용주에게 넘겨주지 못하고 한정식 집으로 데려갔다. 손자에게 밥을 먹이는 강나비와 김소장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나 보다. 초대받은 동네 사람에게서 그런 질문이 나온 것을 보면.


"......?"


김용주는 약간 어정쩡한 순간에 등장했다. 강나비가 질문을 받고 대답하기 직전에 한정식집 단체방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이렇게 사랑하는 존재가 또 있었나 싶어요."


강나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 뭐야 그럼 나는?"


세상에서 강나비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믿고 있던 김용주는 배신감에 인사도 잊었다.


'나보다 내 아들을, 손자를 더 사랑한단 말이야?'


나를 제일 사랑하는 게 아니었다니?!

김용주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몸을 떨었지만 이제 집안의 패권은 넘어간 후였다.


김용주의 첫째 아들은 아주 순했다. 그럼에도 김용주는 육아를 견딜 수 없었다. 주제가 '육아 재능 없는 김용주가 겪은 고난의 시간'이 아닌 '강나비의 황혼육아'이기 때문에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쓸 수는 없고, 서울에 살던 김용주가 강나비 옆에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인천으로 이사 왔으며 다섯 살 터울의 망나니를 낳았다고 축약해 보겠다.


이미 둘째 딸이 아닌 망나니라고 쓴 시점에서 예상했겠지만, 첫째 손자의 집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강나비가 적수를 만났다."


김소장은 손녀를 두고 그렇게 평했다. 물론 김소장 또한 손녀에게 한 주먹거리였다.

증조할아버지의 비호 아래 황제처럼 군림하던 강나비의 어린 시절을 재현하듯, 강나비의 손녀는 집안의 일인자가 되었다.


이 글의 목적이 유치원생 여자아이의 파탄난 인성을 고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긴 이야기를 늘어놓지는 못하지만, 성질머리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살아온 강나비와 김용주도 감당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고만 기록해 둔다.

누굴 탓하겠는가. 아무리 봐도 강나비로부터 김용주를 거쳐 내려온 모계유전의 결과인데.


김용주에게 "꼭 너 같은 딸 낳아라."라는 축복을 내렸던 강나비는 그 업보를 자기가 함께 나눠져야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머, 용주 엄마! 오랜만이야."


유모차에 손주를 태우고 나간 어느 날, 쇼핑몰에서 누군가 강나비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딸이 학교 다닐 때 어울렸던 학부모였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각자 자녀가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근황을 나누었다.


"용주는? 어디 갔어?"

"육아휴직 끝나고 복직해서 지금은 출근했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직장도 다니고 딸 잘 키웠네."

"딸 잘 키워봤자 뭐 해."


이거 보라며, 강나비는 끌고 있던 유모차를 앞으로 쑥 내밀었다.


'잘 키워봤자 딸은 일하러 나가고 나는 손주나 보고 있다.'


그런 뜻이었다.


그 '잘 키운 딸'이 원한 상황은 아니었다.

김용주는 서른 정도가 될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고 아기도 낳지 않겠다는 다짐을 굽히지 않았다.


"봐봐. 강나비가 나를 이렇게 공들여서 잘 키워놨는데 내가 결혼해서 남의 집 애나 낳아줘야겠어? 애 낳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애 키우느라 내 인생 다 보낼 텐데, 그럼 난 뭐 하러 그렇게 힘들게 공부했어?"


김용주의 논리적인 말에 강나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김용주는 그 말을 하필 인생을 바쳐 딸을 키운 엄마에게 뱉은 것을 곧 후회했다. 그런 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는 의도였는지 강나비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아이가 주는 기쁨과 사랑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김용주는 당연히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던 김용주가 마음을 바꾼 이유는 하나였다.


'내 DNA를 남겨야겠다.'


김용주는 자신의 모든 면에 만족했기 때문에 유전자를 반드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강나비는 손주를 품에 안을 수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키워준다고 자식을 낳으라던 강나비는 막상 손주를 돌보더니 육아에 얽매여 너무나 힘들고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고 여겼다. 미디어에서 접하는 황혼육아에 대한 영상을 보고 자기 일처럼 깊게 공감하면서, 마치 노년의 자유를 잃은 사람처럼.


김용주의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김용주에게 엄마란 육아를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강나비는 육아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애 목욕시킬 줄 모른다. 기저귀도 거의 안 갈아봤다."

"그럼 나 키울 땐 그걸 누가 했는데?"

"니 아빠가 했지. 니 아빠가 목욕시키고 기저귀 갈고 다 해서 난 몇 번 갈아본 적도 없다."


강나비의 가장 큰 역할은 아이를 '보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지켜보는 것 말이다.

육아서적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려 드는 강나비를 교육하느라 진을 뺀 사연까지는 공유하지 않겠다.


김용주는 일찍 출근하는 대신 퇴근이 빨랐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이가 하원할 때는 집에 도착했다. 조부모 찬스를 쓰기 위해 아기가 있는 집이나 근처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김용주도 처음에는 강나비를 서울로 소환하는 것을 고려해 보았다. 그러나 강나비에게는 생활환경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김용주는 남편이 판교로 출퇴근하는데도 불구하고 인천으로 이사했다. 참고로 인천에서 판교까지 걸리는 출퇴근 시간은 왕복 4시간 정도이다.


그러니까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딸의 동네로 불려 가 육아와 집안일에 치이면서 외로워하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말이다. 집안일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저녁 식사준비는 퇴근하고 온 김용주가 했다.


저녁 준비하는 동안 손주를 돌보는 역할은 거의 김소장이 담당했다.

김용주의 둘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때에는 김소장이 퇴직하고 재취업을 한 상태였다. 새벽 5시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인천에서 김포까지 출근했다가 딸의 집으로 퇴근하면 오후 5시쯤이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 온 김소장이 5시부터 아이들과 놀아주고, 김용주가 차린 저녁을 먹고 나서 그 설거지까지 다 했다.

김용주가 시킨 일은 아니었다. 아빠에게 설거지를 시킬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았다.


"설거지는 이서방 담당인데 이서방이 퇴근하고 와서 하게 놔두소 왜."

"어떻게 처가식구들 밥 먹은 설거지를 이서방한테 시키노."


김소장은 딸을 잘 알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사위가 퇴근하고 와서 10시가 넘은 시간에 지친 몸으로 처가 식구들이 먹고 쌓아 둔 설거지를 해야 한다. 심지어 먹지도 않았는데. 내 딸은 자기가 하겠다고 해도 절대 설거지를 할 인간이 아니다.'


짠한 사위를 생각하며 김소장은 늘 설거지를 했다.

사실 육아에 도움을 받고 있으니 설거지 정도야 해도 되는 거 아닌가? 맞벌이에 육아까지 하는 김용주와 처가 식구들 덕분에 자기 자식 잘 키우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당당한 모녀와 달리 김소장은 사위에게 감정 이입을 한 모양이었다.


아이들과 놀아주고, 집 치우고, 설거지하는 노동 시간은 김소장이 훨씬 많았지만 당시 조부모 시세로 매달 전달한 돌봄비는 당연히 강나비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김소장이 생활비를 안 줘서 강나비가 쓸 돈이 필요한 거 아니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김소장이 공무원 생활을 하는 내내 받은 모든 월급을 강나비가 관리했고, 퇴직하고 받는 연금 또한 강나비가 관리한다. 연금은 생활비로 쓰고 김용주가 주는 돈은 강나비의 부수입이다. 혹시 김소장이 돈 한 푼 못 받고 착취당하느라 자기가 쓸 용돈을 벌기 위해 새벽 5시에 출근했던 거 아니냐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김소장에게 퇴직하고 쓰라고 강나비가 목돈을 주었지만 아까워서 못 쓰고 돈 벌러 나간 것이니 안타까운 마음은 거두길 바란다.


지금은 김소장도 완전히 일을 그만두었고, 강나비를 보조하며 손주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강나비가 주인공이라 '강나비의 황혼육아'인 것이지, 실제로 황혼육아를 하고 있는 사람은 김소장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김소장의 황혼육아'라는 제목은 없다. 원래 이야기란 주인공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법이다.


여기서 주인공이 되었다고 한 번 가정해 보자.


[아침에 딸의 집에 도착해 사위와 함께 아이들을 먹이고 입힌다. 아침 식사는 딸이 준비해 두고 출근했다. 초등학생 손자는 학교에 알아서 가고, 손녀는 유치원 버스에 태우고 나면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손녀가 하원할 시간이 되면 딸이 퇴근하고 와서 차려주는 저녁을 먹는다. 치우고 설거지하고 손주와 놀아주는 것은 거의 남편이 한다. 보통은 6시, 아무리 늦어도 7시 전에 딸의 집에서 탈출한다. 저녁 약속이 있으면 손주들의 상황과 상관없이 언제든 자유롭게 사라진다. 평일에 일이 있으면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사위가 휴가를 낸다.]


'이 정도면 남들처럼 노년을 갈아 넣은 황혼육아는 아닌 것 같은데.'


김용주는 강나비와 마찬가지로 자기 입장에서 생각했다.


강나비가 황혼육아를 하면서 희생하고 있는 것은 맞다. 아예 손주를 봐주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강나비는 김용주에게 자기가 봐줄 테니 아기를 낳으라고 했고, 황혼육아로 얻는 이득도 제법 있었다.


"엄마가 애들 봐주시니 얼마나 좋아. 잘해드려."

"제가 서울 사는 거 포기하고 엄마 옆으로 이사 와서 저는 서울로 남편은 판교로 출퇴근하는 데다, 엄마 고생 안 시키려고 밥도 다 해 먹이고, 이렇게 귀여운 손주들도 매일 볼 수 있는데요?"


김용주는 선배들의 형식적인 말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자신의 희생과 노력을 늘어놓곤 했다. 다시 말하면 강나비에게 김용주가 제공하는 대가였다.


손주들을 항상 볼 수 있는 기쁨, 주방과 요리로부터의 해방, 가까이 있는 딸과 사위의 노동력을 언제든 가용할 수 있는 권리,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어디든 데려다주는 이동 수단,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돈과 각종 선물.


그리고 여행.


"거기다 저희 엄마 여행 다니는 거 좋아하고 가고 싶다는 곳도 진짜 많아서 제가 한 달에 한 번은 모시고 놀러 다녀요. 국내 여행도 많이 가고, 해외도 많이 가고요. 저보다 더한 효녀도 없을 걸요."


김용주는 자신했다.

강나비만큼 딸, 사위, 손주들과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은 정말 흔치 않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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