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사진 안 바꾸면 죽는 병 걸림
어느 날부터 강나비는 알파카 타령을 시작했다.
"알파카 보러 가고 싶다."
"알파카? 갑자기?"
"알파카 너무 귀엽더라."
알파카를 보고 싶다 하니 보여줘야 한다. 김용주는 근처에서 알파카를 볼 수 있는 키즈카페를 찾았다.
"여기 알파카 있단다. 보러 갈 건가."
"아니"
"알파카 보고 싶다며."
"여기 아니다."
"그럼 어딘데."
"몰라. 막 알파카 옆에서 먹이도 주고 같이 사진도 찍고 산책도 하던데."
싸한 기운이 뒤통수를 타고 올라왔다. 설마.
"그걸 어디서 봤는데."
"테레비에 나오든데."
"거기가 어딘데. 이름이 안 나오드나."
"몰라. 아무튼 거기 가고 싶다."
또 시작이다.
강나비는 TV를 보다 마음에 든 장소에는 반드시 가야 했다. '무시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한 번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갈 때까지 노래를 부르기 때문에 빨리 데려가는 게 상책이다. 가고 싶은 곳의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찾아내야 한다. 주로 <생생정X>, <6시내고X>, <생방송오늘저X>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온 곳이다. 너무 막연한 정보로 찾아야 할 때는 방송을 본 요일의 프로그램 내용을 다 뒤져서 찾아낼 때도 있다.
"홍천에 있는 알파카월X?"
"맞다! 홍천에 있다고 했다."
드디어 장소를 특정하고 나면, 그곳에 가기 위해 숙박시설을 찾는다. <알파카X드>에 가기 좋은 최적의 숙소를 검색하고, 홍천까지 간 김에 둘러볼 다른 관광지를 탐색한다. 너무 비싸다고 투덜거리거나 맛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을, 가격 대비 맛이 좋으면서도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 식당을 끼니 수만큼 골라 놓아야 한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삼 대가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찾는 일이다. 강나비와 김소장에 사위와 손자, 손녀를 포함한 김용주의 식구들이 모두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주로 회원제로 운영되는 리조트를 '핫딜'이 뜰 때 예약하기도 하고, 펜션이나 <에어비X비>를 이용하기도 한다. 최대 인원이 6인 이상이며 방이 따로 분리되어 있고 화장실이 두 개는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눈이 빠질 것 같은 검색을 거쳐 강나비의 기준 금액을 넘지 않을 정도의, 그러니까 너무 비싸지 않은 할인가에 숙소를 예약하면 다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 가면 사진을 백 장씩 찍어준다. 한 장소에서 강나비의 독사진, 강나비와 김소장의 사진, 강나비와 김소장과 손주들의 사진, 여섯 명이 다 함께 찍은 사진을 모두 휴대전화 사진 앨범에 담아야만 다음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낮 동안 여행이 끝나면 숙소에 입실한 강나비가 하는 중요한 의식이 있다.
바로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을 바꾸는 일이다. 자기 사진만 바꾸는 게 아니라 김소장의 프로필 사진도 손수 바꾼다. 거기에 요즘은 아무도 쓰지 않는 것 같은 <카카오스토X>에도 꼬박꼬박 여행 간 사진과 짧은 글을 올리곤 한다. 강나비의 프로필 사진은 이미 몇백 개가 쌓여 있었다. 그날 밤 강나비의 프로필은 알파카 옆에서 손녀와 함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으로 바뀌었다.
"뭘 그렇게 맨날 사진을 바꾸노."
"그래야 내가 어디 갔는지 알지. 우리 나이는 다 남의 프사만 들여다보고 있다."
"남들은 안 그럴 거 같은데."
"아니다. 우리 모임 가면 내 사진 보고 어디 갔냐고 묻고 자랑하고 그런다. 남들도 다 어디 놀러 갔다 온 사진 올리고."
강나비에게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일은 우리가 <인스타그X>에 여행 사진을 올리는 것과 같다. 엄마들의 SNS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SNS의 가장 큰 기능을 떠올려봤을 때,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강나비의 목적은 필연적으로 '자랑'이다.
"이거 봐봐라. 여기는 어딘고? 야는 지난달에도 홍콩을 가더니 해외여행을 또 갔다 왔네. 여기 어딘지 찾아봐라. 나도 가고 싶다."
자기가 남의 프로필 사진을 지켜보고 있으니, 남들도 자기 프로필 사진을 보며 부러워할 것이라며.
"얘는 칠순을 이렇게 했드라. 나도 칠순 때 현수막을 이런 식으로 걸어라. 이래 하니까 보기 좋네."
'이래서 SNS를 끊어야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는 건가.'
다른 사람의 <인스타X램>을 보면서도 부러워해 본 적 없던 김용주는 그제야 SNS의 폐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충동을 사람으로 만들면 너네 엄마임."
김용주가 동생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강나비는 충동을 조절할 수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MBTI를 좋아하는 사람의 눈으로 본다면 "확신의 대문자 P"라고 말할 것이다. 뒷받침할 사례를 하나만 소개한다.
김용주가 중학생일 때 일이었다.
"우리 제주도 갔다 올게."
강나비는 김용주와 동생을 앉혀 놓고 제주 여행을 선언했다. 제주도에 가본 적이 없으니 여행을 해야겠는데 학교를 빠질 수 없는 학생들은 놔두고 김소장과 둘이서 제주도에 다녀오겠다는 말이었다.
"언제 가는데?"
"지금."
"근데 그걸 왜 지금 말해?"
"지금 결정했으니까."
정말로, 그날 결정한 일이었다. 강나비는 중학생 아이 둘만 집에 두고 갈 순 없으니 막내 이모를 집에 불러다 놓고 밤 배를 타기 위해 출발했다. 언제 돌아온다는 계획도 없었다. 잘 안 맞는 둘은 배를 타고 오래 걸려 떠난 제주도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싸우고 집으로 금방 돌아왔다.
충동의 현신에게 밤 열두 시에 보쌈을 먹으라는 계시가 내리면 옆에서 아무리 참고 다음 날 먹으라고 말려도 "도저히 못 참겠다 보쌈!" 하고 외치며 새벽 한 시에 배달 집으로 전화를 거는 일은 너무 흔해서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한다.
그런 강나비의 충동은 김용주가 아이를 낳고 인천으로 이사오자 날개를 달았다.
일요일 아침 자고 있는 딸의 집에 들이닥쳐 갑자기 춘천에 있는 <제이드가X>에 가자고 온 식구를 깨운 일이 있었다. TV에서 <제이드X든>에 단풍이 예쁘게 들었다고 나왔는데 다음 주면 다 질 테니 당장 가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김용주는 당연히 화가 났지만, 아무리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 강나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빠른 실행을 재촉했다. 가겠다고 마음먹었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 거기에 딸의 짜증과 역정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딸도 저항할 수 없는데 사위가 힘이 있을 리가 있나. 다행히 온 식구 중 김소장만이 계획형 인간이기에 '오늘 갈 곳을 오늘 결정하는 여행'에도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순순히 끌려 다녔다. 처음에는 사위도 힘들었을 테지만, 충동에 몸을 맡긴 장모님의 딸과 같이 살려면 적응해야지 어쩌겠는가. 김용주의 남편도 빠르게 익숙해져서 처가 식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지난해에는 같이 여행 다녀야 된다며 그의 출퇴근용 차를 7인승으로 바꾸었다.
강나비는 뭔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참지 못했다. 게다가 먹고 싶다고 하면 먹여주고, 가고 싶다고 하면 데려가는 딸이 있다. 김용주가 육아 휴직을 하자 강나비는 아주 신이 났다. 손주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간 낮 시간의 일정 부분을 자기를 위해 할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부도에 카페가 그렇게 좋단다. 발리 느낌 나게 꾸며 놓은 데가 있대."
"내 운전실력으로는 대부도까지는 못 간다."
강나비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소장은 초보가 운전하는 차를 무서워서 어떻게 타냐고 손을 내저었지만 강나비는 '남들이 가봤다고 자랑한 곳'에 갈 수 있다면 목숨을 담보로 거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결국 김용주는 강나비를 태워 대부도의 카페로 달렸다. 그날이 첫 장거리 운전에 도전한 날이었다.
김용주는 휴직 중에 강나비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데려갔다. 덕분에 운전실력이 강제로 늘었다. 강화도, 일산, 송도, 영종도, 대부도 등 차로 한 시간 반 이내에 있는 유명한 대형 카페나 가볼 만한 곳을 찾아 열심히 달렸다. 둘째 딸이 하원하기 전까지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초스피드 당일치기 여행 같은 나들이를 최소 한 주에 한 번은 데려가야 했다. 개인 일정으로 바빠 아무 데도 가지 않은 채 2주에 넘어가면 강나비의 불만이 형체를 띄고 김용주의 어깨에 내려앉았기 때문에 간격을 면밀히 확인해야 했다.
여섯 명이 함께 숙박을 하는 여행은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은 떠났다. 국내여행은 물론, 대만, 홍콩, 후쿠오카, 오사카, 교토, 사이판, 다낭 등의 해외여행도 다녔다. 날 좋은 5월에 제주 2주 살기를 함께 하기도 했다.
"그게 무슨 육아 휴직이냐 효도 휴직이지."
친구들은 김용주에게 말했다. 패륜아가 결혼하더니 희대의 효녀가 되었다며.
물론 노인과 아이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 김용주에게도 동력은 있다. 강나비가 대는 여행비이다. 여행을 기념하는 명분이 무엇이냐에 따라 전부를 다 낼 때도 있고 반 정도만 낼 때도 있다. 김용주는 돈값은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라, 늘 받은 돈만큼은 열심히 움직였다.
강나비의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일은 김용주의 몫이지만, 여행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하는 일은 김소장의 몫이다. 무슨 말이냐면, 강나비의 수발을 드는 역할이라는 뜻이다.
3박 4일로 포항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아직 김용주가 7인승 차를 구입하기 전이라 각자 차량을 따로 굴려야 했다. 김용주와 남편은 번갈아 운전이 가능하지만, 강나비는 면허가 없기 때문에 김소장 혼자 네 시간 반을 운전해서 포항 관광을 하고 예약한 풀빌라에 도착했다. 기나긴 운전에 지친 김소장은 방에 들어가 누웠다. 가장 중요한 끼니 해결을 위해 김용주가 움직일 차례였다.
"나 애들 먹일 저녁거리 공수하러 다녀오니 우리 쓸 그릇 좀 씻어 놓으소. 이서방은 애들이 산책 나가자고 해서 나갔다 와야 된다. "
"......"
"엄마."
"알았다."
"아빠 시키지 말고."
그러자 강나비의 사위가 나가려던 준비를 멈추고 싱크대 앞에서 섰다.
"놔둬. 산책 나간다며."
"내가 하고 나갈게."
"그냥 놔두라니까."
"그럼 아버님 보고 하라는 소리잖아."
사위는 난처한 듯 웃었다. 그는 자신의 장인과 장모를 잘 알았다.
'이건 뭐. 장인은 자기가 설거지 안 하면 사위가 한다고 걱정하고, 사위는 자기가 안 하면 장인어른이 한다고 걱정하고. 서로 뭐가 그렇게 애틋해?'
김용주는 황당한 기분으로 남편을 밖으로 내몰았다. 양심이 있으면 최소한 네 시간 반을 운전하고 나서 쉬는 김소장에게 시키진 않을 것이라는 그릇된 판단에서였다.
강나비와 김소장을 더 잘 파악한 사람은 딸이 아닌 사위였다. 김용주는 목적을 이루고 돌아와 김소장이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마주했다.
"아니, 저녁 먹을 그릇 좀 씻어 놓으라니까 그것도 안 하고 또 아빠 시켰나"
강나비는 엎드린 채로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가만있어. 내 지금 바쁘다."
"뭐 하는데."
"카스에 사진 올려야 된다."
그러니까, 여행 간 사진을 골라서 <카카오스X리>에 올려야 해서 바쁘단 소리였다. 당장 그 사진 올리는 게 급하다고 혼자 운전한 사람을 잠시 누워 있지도 못하게 하다니. 받는 게 저렇게 익숙하고 당당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도 저 정도는 아닌데.'
김용주가 아는 선에서는 강나비를 뛰어넘을 사람이 없었다.
강나비를 주인공으로 쓰는 이 이야기의 장르는 무엇일까? 한 여자의 일대기일까? 한 사람의 일생에 70년의 사회 변화를 담은 시대극일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피어오르는 성장물일까?
강나비가 주인공인 이야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로맨스일 수밖에 없다.
김소장을 남편으로 두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