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엄마가 죽긴 왜 죽어 백 살까지 살아야지

손녀의 똥을 보고 죽음을 생각하다

by 김용주


여름이었다. 보령 주말 농장에 잡초가 무성했다.

강나비의 남동생은 보령으로 오는 길에 따로 사가야 하는 것이 있는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잡초를 뽑느라 전화기를 마당의 평상에 내려두었던 강나비는 전화벨소리에 몸을 움직였지만, 마침 평상에 있던 김소장이 한 발 빨랐다.


김소장은 강나비의 전화를 대신 받았다.


"여보세요."

- 매형?


받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 누나는요?

"죽었다."


이것이 바로 마이너스 백 점짜리 사건이었다.


강나비는 잡초를 뽑고 전화를 받으러 오다 바로 뒤에서 이 통화 내용을 들었다. 어찌나 서럽던지 눈물을 펑펑 쏟았다.


김소장은 가끔 뭐에 씐 사람처럼 그런 재미도 없고 납득도 안 되는 장난을 쳤다. 유치원생 손녀가 소리를 지르며 주먹질을 할 때까지 하지 말라는 장난을 칠 때도 있었다.


하필이면 장난의 타이밍이 정말, 매우, 좋지 않았다.


"내가 아무래도 몸이 좀 이상하다. 검사를 받아야 될 거 같다."


그 무렵 강나비는 암 전조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남편을 향해 또 미친 소리를 아무렇게나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을 수도 있지만, 몸이 이상해서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알아보던 와중이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진 때에 김소장이 강나비를 두고 "죽었다"라고 말하는 걸 듣자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아빠는 엄마 죽기를 기다리고 있나 보다."


그날 오후 동생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는 불이 났다. 김소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 지금 심정이 어떤 지부터 시작해서, 말이 씨가 된다고 했고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고 했는데 죽었다는 소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건 죽기를 바라고 있는 거라며 분노와 실의에 찬 메시지가 답장을 할 새도 없이 쌓였다.


"정리를 좀 해야겠구나 싶드라. 외갓집 재산 남은 거 삼촌 앞으로 내려주고 이모 돈도 넘기고. 그렇게 쉽게 죽었단 소리를 한다는 건 곧 일어날 수도 있으니 미리 마음가짐 가지라고 알려주는 거다."


강나비는 이미 유서까지 작성할 태세였다.


"아빤 정 뗄 것도 없는데."


모든 이야기는 김소장도 함께 있는 단톡방에 쏟아졌다. 김소장도 강나비의 메시지를 다 읽었을 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단이 잘못 나오면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는 소리다. 이제 굳이 엄마 없어도 될 나이니. 엄마 죽으면 용주가 동생 보살피고 챙겨주고."

"엄마가 죽긴 왜 죽어. 백 살까지 살아야지."


김용주와 동생은 아빠는 그런 소리를 왜 하냐고 나무라고, 엄마 없이 어떻게 사냐고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이거 화해를 할 수는 있는 건가? 아빠는 왜 잘 나가다가 한 번씩 꼭 이렇게 마이너스 백 점짜리 똥볼을 차지?'


걱정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은 이틀 뒤에 함께 을왕리까지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이후의 상황을 들은 바가 없어 이 최악의 갈등이 어떻게 봉합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강나비는 이후 대장내시경을 받았고 용종을 뗐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강나비는 병든 닭처럼 기운을 잃었다. 입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며 해외여행 계획도 취소했다. 다행히 조직검사 결과, 대장암은 아니었다.


결과가 나오자 강나비는 그제야 왜 그렇게 죽을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며 심각해졌는지 이유를 말했다.

모든 시작은 손녀의 똥이었다. 더러운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손녀가 너무 건강한 똥을 싸는 게 발단이었다.


어느 날 김용주가 없는 상태에서 손녀가 큰일을 보게 되었다. 강나비는 손녀의 엉덩이를 닦아 주다가 손녀가 배출한 대변을 처음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내가 병원 가서 의사한테 그랬다. 우리 손녀가 유치원생인데 똥이 팔뚝만 한데 내 똥은 너무 가늘다고. 테레비 보니까 똥이 너무 가늘면 대장암 가능성이 있다고 하대."


그러니까 강나비는 몸이 자그마한 손녀의 똥은 팔뚝만 한데, 자기 똥은 너무 가늘어서 대장암, 혹은 직장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걱정을 한 거였다. 죽을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운 와중에 남편이 "죽었다."라고 말한 걸 들었으니. 강나비에게도, 김소장에게도 최악의 장난이었다.


손녀의 똥 때문에 벌어진 눈물 바람의 해프닝이었으나, 강나비는 이제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가 쉽지는 않다. 상속 문제로 스무 살부터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 강나비가 보기에는 동생들 중 누구도 자기만큼 일처리를 잘 해낼 것 같지 않다. 동생들은 한 집도 빠지지 않고 다들 걱정거리가 있다. 떠난 뒤에 어떤 문제를 누구에게 맡겨야 할지도 고민하자면 머리가 터져나간다. 최근에는 아들의 결혼 문제로 속앓이를 하느라 뜬 눈으로 며칠 밤을 지새웠다.


"그래도 이만큼 편하게 걱정 없이 사는 사람도 없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심각한 걱정거리가 있는 집도 없을 것 같은데도, 강나비는 늘 자신의 사정이 제일 낫고 제일 마음 편하다며 스스로 자기 인생을 올려치고 다독였다. 삶에 대한 태도가 이보다 더 긍정적일 수는 없다.


"내가 복이 많다."


걱정거리 중 하나에 시달리는 전화를 받고 나서도 강나비는 바람 빠진 풍선 같은 표정으로 말하곤 한다. 누가 봐도 스트레스와 환멸로 가득한 목소리로도, 말만은 늘 그랬다. 내가 복이 참 많다.


하루라도 조용히 넘어가는 날이 없고, 늘 새로운 사건 사고가 터지고, 각자의 성토를 들어주느라 강박적으로 전화기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그럼에도 동생들과 우애 좋게 모여서 자주 놀러 다닌다.


"우리 10월에 거제도 갈 거니까 숙소 알아봐라."

"우리가 몇 명인데."

"열한 명."


물론 숙소 예약은 김용주가 한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엄마랑 여행을 다녀?"

"엄마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할 수 있을 때 같이 시간 보내야지. 나중에 돌아가시고 더 잘할 걸 그랬다며 후회하지 말고."


처음 그 말을 한 지도 십 년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친구들에게 하던 말을 실천해 왔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엄마와 여행을 나만큼 많이 다닌 사람은 정말 흔치 않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이 정도면 나중에 '엄마한테 더 잘할 걸', 하는 후회는 몰라도 최소한 '엄마랑 같이 여행 좀 더 다닐 걸' 하는 후회가 남지는 않으리라.


엄마가 없는 이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곳이지만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언젠가는 이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70대 엄마와 나 사이에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아직 엄마가 세상의 전부인 내 아이에게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린 시절을 함께 해주어야 하고, 맞벌이를 이어가기 위해 한참 일해야 할 시기이기도 하고,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엄마와의 시간도 소중하게 보내야 한다. 어느 것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를 갉아 소모하는 수밖에 없다. 과부하로 녹아내리는 머리와 피곤에 찌든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움직이는 나날을 이어가면서도 늘 생각한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정말로, 얼마나 남았을까.

내게 아직 기운이 있는 시간이, 아이에게 내가 필요한 시간이,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이렇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어느 지점에 가서 내가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몰아세우며 우선순위를 매겼다. 최소한 지난 2년간의 휴직 기간 동안에는 엄마가 우선순위였다.

노인들의 촛불이 꺼지는 것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언제 꺼질지 몰라 마음 한 편에 불안함을 심어둔 나와는 다르게, 엄마가 앞으로 살면 얼마나 살겠냐는 말을 할 때마다 아빠는 말한다.


"걱정 마라. 니 엄마는 저 기세면 백 살까지 살 거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의 엄마 나이가 되어서도 엄마가 먹고 싶다는 거 입에 넣어 주고, 가고 싶다는 데 데려가고, 사고 싶다는 거 전부 품에 안겨 줄 수 있길 바란다.

끝까지 엄마가 주인공인 인생을 살다 갈 수 있도록.


나이를 이만큼 먹고도 나는 여전히 언제까지나 엄마와 함께 하는 인생을 꿈꾸고 그린다.

남아 있는 시간을 다 쓰고 난 뒤에 어떤 마음일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버텨낼 수 있을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의 엄마이니까.


사랑하는 나의 강나비가 주인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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