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몰래 손 잡는 사이

어느 70대 노부부 이야기

by 김용주


"세상에 자기 남편이 마음에 쏙 드는 여자가 어디 있냐."


대부도에 있는 카페로 가는 차 안에서 각자의 남편을 주제로 한 대화를 나누다 강나비가 한 말이다.


당장 강나비와 김소장의 두근두근 로맨스를 늘어놓을 것처럼 예고해 놓고 이런 말로 시작하는 이유는, TV에 가끔 등장해 "우리 영감은 아직도 잘 생겼지."라고 말하며 백발의 주름진 얼굴도 한없이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그런 할머니는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다.


이미 강나비와 김소장의 첫 만남과 연애사에 이어 조건을 뛰어넘은 결혼과 간병이라는 사연까지 다 소개해놓고 아직도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할 말이 남았는지 의아할지도 모른다. 한 편으로는 강나비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들이 크거나 작거나 결국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사랑의 시작은 얼마나 반짝거리는가. 설렘 가득한 시간을 지나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위기를 극복한 뒤 결혼까지 하게 되면 결실을 맺는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흥미가 사라진다. 보통의 로맨스 소설이 결혼으로 끝나는 이유가 있다.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출산과 육아 이야기는 짧게 외전에서나 보게 된다.


왜 그토록 가슴 설레는 사랑을 하던 주인공들의 육아이야기는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각자의 사랑과 연애에는 모두 특별한 사연과 설렘이 있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대부분 비슷하고 평범하게 육아를 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출산과 육아부터는 공감과 감동 또는 가족애의 영역이지, '연인 사이의 사랑'의 영역이라고 읽히지는 않는다.


"원래 아기 키울 때가 부부 사이가 제일 나빠."

"그럼 언제 좋아지는데요?"

"애들 다 크고 나면?"


직장 선배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땐, '젊어서 사이 나쁘다가 다 늙어서 남편이랑 사이좋아져서 뭐 해?'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어른들의 말은 늘 그렇듯 틀린 게 없다.


우리는 강나비라는 50년대생 여자의 삶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따라왔고 그녀의 성장과 연애, 결혼, 출산, 육아, 투병, 투자는 물론이고 엄마로서, 며느리로서, 할머니로서의 어떻게 살았는지, 혼자만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했는지, 원하는 것은 어떻게 이루는지 지켜보았다.


결국에는, 그렇다.

가정을 이루고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 은퇴한 노부부는 이제 다시 둘만 남았다.

로맨스는 통상 결혼으로 본편을 마무리 짓지만 인생은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뒤이어 흘러간다. 돌고 돌아 다시 강나비와 김소장의 로맨스로 돌아왔다. 그것이 70대 노부부의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김소장은 매우 헌신적인 사람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특성이 있다. 50년대에 태어난 경상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강나비도 경상도 사람이긴 마찬가지다. 연애할 땐 달랐겠지만 최소한 딸이 기억하는 시간부터는 서로를 향해 다정하게 애정 표현을 하는 일은 없었다. 강나비는 딸에게 심심치 않게 남편에 대한 흉을 보았고, 딸은 또 곧이곧대로 들었다.


'둘은 정말 잘 안 맞아. 엄마는 너무 외향적이고 아빠는 너무 내향인이고,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 유일한 계획형 인간인데 엄마는 너무 충동적이고. 성격은 완전 반대에다 저렇게 자주 싸우면서 어떻게 그 오랜 시간을 같이 살았지?'


부모의 결혼 생활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을 가슴에 품었던 김용주는 자녀를 둘이나 낳고 한참을 키우고 나서야 두 사람 사이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어? 저기 할매, 할배다!"


차를 타고 가던 중, 강나비와 김소장의 뒷모습을 발견한 손자와 손녀가 소리쳤다. 김용주도 두 사람을 발견하고 인사를 하기 위해 조수석 창을 내렸다. 그런데 뒷모습이 전혀 생각했던 그림이 아니었다. 강나비와 김소장이 손을 잡고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강나비!"

"할매! 할배!"


딸과 손녀의 목소리를 들은 강나비가 돌아보았다. 손자와 손녀가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딸의 가족을 발견하자, 두 사람은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출발하자 김용주는 어이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니 둘이 뭐 하는 거야?"

"왜?"

"손을 잡고 걸어가던데?"

"여보 몰랐어?"


김용주의 남편이 웃으며 조수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두 분 원래 걸어갈 때 손잡고 가셔."

"어어?"

"그래서 내가 나이 들어서도 어머님 아버님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고 했잖아."

"아니 근데 왜 우리가 보면 손을 또 놔?"

"자식한테 보이기는 좀 쑥스러우신가 보지."

"그렇다고 손을 몰래 잡고 다녀 왜."


이번에도 두 사람을 더 잘 파악한 사람은 사위 쪽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영X 남편 쓰러져서 병원 실려간 지 일주일 만에 죽었대."


얼마 전 강나비의 친구는 남편의 부고를 알렸다.


"오래 고생 안 하고 편하게 빨리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단다. 어째 그럴 수가 있노."

"뭐 깨어나지도 못하는데 오래 병원에 있으면 자식들만 고생이니 그런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남의 일이니 무심하게 말하는 딸을 보는 강나비의 눈이 벌써 그렁그렁했다.


"아니 나는 그렇게는 못할 거 같다. 나는 니 아빠가 쓰러지면 눈을 못 떠도 어떻게든 살아만 있어 달라고, 죽지만 말고 오래 옆에 있어달라고 기도할 거 같다."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노부부에게는 이미 사라지거나, 작아지거나, 꺼졌거나, 혹은 아주 옅은 기운만 남아있다고 생각했던, 사랑이 보이는 순간. 너무 안 맞아서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싸우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열 번째에 불쑥 꺼내는 사랑.


'뭐, 아직 그렇게 좋은가? 근데 왜 평소에는 사이 나쁜 척하지?'


김용주는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또 무심하게 지나쳐 온 시간들을 떠올려 보면 기억 속에 그런 지점들이 있었다. 여기 어딘가에 사랑이 있다고 찍어주는, 어떤 지점, 어떤 순간.


가장 멀리 떨어진 어느 지점에는 김용주가 중학생일 때 약 때문에 몸이 부은 강나비의 머리를 감겨주던 김소장의 모습이 흐릿하게 자리를 차지한다.


어느 장면은 작년에 다녀온 여행지 리조트 게임장에 남아 있다. 김소장은 열띠게 농구공을 넣고 나서 의기양양한 얼굴로 돌아본다.


"봤냐, 강나비."


물론 이미 그 자리에 강나비는 없다. 결과를 궁금해하지도 않는 나이 든 여자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노인의 마음만이 빈자리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


어떤 사랑은 강나비의 동창회가 열리는 지방으로 태워다 주는 길 위에, 그리고 강나비가 동창들과 놀고 있는 숙소 옆 방에 홀로 잠들어 기다리는 외로움 안에도 있다.


강나비의 충동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같은 편에서 한숨을 쉬다가도, 딸이 강나비를 공격하면 "왜 엄마를 잡냐"며 방어하며 바로 등을 돌리는 배신에도 있다.


어딜 가자면 가고, 먹자면 먹고, 사자면 사고, 하자면 하는 모든 선택을 따르는 발걸음에도 녹아있다.


김소장의 사랑만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잘 눈여겨보면 강나비의 사랑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니 내가 니 아빠랑 허X만 <식X>에 나왔다는 집에 밥을 먹으러 갔거든. 근데 어쩐지 손님이 별로 없더니만 맛이 그냥 그런 거야. 그래서 그냥저냥 먹고 나왔는데 아빠가 나오더니, 큭, 크크큭."

"뭐. 왜. 뭐라고 했는데."

"니, 흐흑, 아빠가, 흑크, 허영X 머리털을 다 뽑고 싶다고, 크흐흐흡아하하하하!"


강나비는 그 이야기를 하며 숨도 못 쉬고 웃었다. 그날 하루 종일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배를 잡고 웃다가 눈물을 찔끔 흘리는 지경이었다. 그 이후로도 <X객> 이야기만 나오면 처음 웃는 사람처럼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가족들의 어리둥절한 반응은 안중에도 없었다.


'웃음 코드가 맞는다는 게 이런 건가.'


아무리 가족 깍지를 끼고 후하게 봐도 김소장은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융통성 없고 꽉 막힌 공무원의 전형이라면 모를까. 그런데도 강나비는 김소장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 그렇게 숨이 넘어가게 웃어댔다.


"크,으하하하학."

"갑자기 왜 웃노."


손주들과 밥을 먹던 강나비가 갑자기 혼자 배를 잡고 웃었다.


"니 아빠가, 크흐흐핫, 내가 먹던 숟가락으로, 으하하하하하하."


웃느라 분절된 말들을 겨우 조합해 보면, 강나비가 먹던 숟가락인 줄 모르고 김소장이 그 숟가락으로 밥을 먹었다는 거였다.


"할매, 뭐가 웃긴 거야?"


손자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지만 강나비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사레가 들 정도로 웃었다. 정말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둘만이 통하는 어떤 세상이 있는 듯하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항상 웃고 사니 좋지 않겠는가. 강나비의 인생은 지루하거나 심심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덕적도를 가야겠다."

"무슨 갑자기 왜 덕적도를 가노.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며칠 전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당연히 덕적도를 가겠다는 쪽이 강나비였다. 갑자기 섬에 가는 일이 성사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며 저녁을 준비하고 보니, 김소장이 어딘가로 들어가는 법을 검색하며 수첩에 적고 있었다.


"뭔데 그게."

"덕적도 가는 방법."

"거길 왜 가는데."

"엄마가 간다잖아."


'강나비가 간다고 했다.' 하나로 김소장의 다음 행동이 결정된다. 방향이 잡히면 실행을 위한 계획도 그의 몫이다. 알다시피 강나비에게는 계획이란 게 없다.


강나비의 이야기를 듣는 주변의 사람들 중 "강나비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마음먹은 일에는 주저함이 없고, 안되면 무리하게 몰아붙여서라도 반드시 해내고, 뭔가 찜찜해도 "아이고, 됐다. 그게 최선이다. 잊아뿔자."라며 후회는 남기지 않는 인생.


김소장의 뒷받침이 있어서 강나비가 그렇게 살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렇게 잘해주는 남편인데 왜 강나비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왜 잘 나가다 한 번씩 꼭 그렇게 싸우는 걸까?


답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김소장은 그런 사람이다. 평소에 가산점을 1점, 2점씩 차곡차곡 쌓아 올리다가, 한 번에 백점을 깎아먹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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