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주식 한 번만 더 하면 이혼이야!

공포에 사고 환희에 팔아라

by 김용주

내가 5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소풍 가는 날이었다. 나에게는 소풍 기념 특별 용돈 이천 원에, 비상금 삼천 원을 더해 무려 오천 원이 있었다. 천 원은 주머니에, 나머지 사천 원은 각각 이천 원씩 나누어 양말 속에 숨긴 채 소풍 가는 버스를 탔다. 김소장은 돈이 없어 소풍 때 사이다도 한 병 못 사 먹었다고 했지만, 나는 돈이 있어도 사 먹지 않았다. 친구들이 음료수나 간식을 먹을 때도 꾹 참았다.


"용주 너는 뭐 안 마셔?"

"나 돈 없어."


그저 때를 기다렸다.


소풍이 끝나고 학교 앞에서 각자 개별 하교를 하는 그 시간. 기다리던 나의 '때'였다.


"만루 홈런!"


때가 되자 나는 학생들 코 묻은 돈을 털어먹던 학교 앞 문구점의 사행성 기계 앞에 앉았다. 백 원을 넣으면 불이 들어오는 야구게임이었다. 안타를 치면 점수만큼 문구점에서 쓸 수 있는 티켓을 뱉었는데, 만루홈런을 치면 무려 스무 장이 나왔다. 5학년이 칠 수 있는 가장 큰 대박이었다. 종이 티켓은 문구점에서 물건을 바꾸면 한 장당 백 원의 가치가 있었지만, 현금으로 바꾸면 두 장 당 백 원으로 교환해 줬다.


소풍 가서 도시락 외엔 아무것도 사 먹지 않고 야구 게임 기계에 돈을 넣고 연타를 쳤다. 미리 조절해 둔 확률 게임이고, 동전 넣은 사람이 잘해서 되는 게 아니었지만 도파민에 몸을 던진 5학년 짜리가 알 게 뭔가.


일확천금을 꿈꾸며 눈이 벌게진 열두 살은 그 기계 속으로 먹을 거 안 먹고 아낀 피 같은 오천 원을 다 털어 넣었다. 안타도 꽤 치고 만루홈런도 두 번이나 성공해서 문구점의 학용품을 쓸어 담을 수 있었지만, 손에는 지우개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보상으로 나온 티켓으로 문구점을 터는 대신 반값에 후려친 동전으로 바꿔서 마지막 하나까지 전부 밀어 넣고 나서야 손을 털고 일어났다.


그렇게 어리석은 어린 시절 일화에도 교훈은 남았다.


'나는 이런 도박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중간에 멈출 수도 없고 조절할 수 없었다. 중간에 돈을 아무리 따도 다 잃을 때까지 써버리는 인간이었다니. 다시는 이런 게임을 하지 말아야지.'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친교를 목적으로 하는 게임을 제외하고는 두 번 다시 혼자 하는 도박성 게임을 시도하지 않았다. 딱히 자책하는 일도 없었다.


'도박하는 시간 동안 내가 즐거웠으니 그 즐거움을 위한 게임값을 지불한 걸로 치면 된다.'


엄청난 정신 승리를 하며 그날 있었던 일을 강나비에게 말했더니, 강나비는 그 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성인이 되어 주식에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 "너는 절대 주식을 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나의 타고난 본능에 내재된 도박사 기질은 누구를 닮았을까? 당연히 김소장은 아니다.


김소장은 한 때 주식이라면 이를 갈았다.


강나비는 공무원 월급으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해서 부업을 하다 어느 정도 자금이 모이자 주식을 시작했다. 김소장은 전혀 주식을 할 만한 배포가 없는 사람이라 강나비가 사둔 주식이 뭐가 있는지도 잘 몰랐다. 강나비가 아픈 기간 동안 모든 주식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오히려 잘 된 일 아닌가? 주식은 장투가 답이 아니던가? 요즘 주식 시장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흐뭇한 결과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강나비가 아파서 없던 사이에 IMF가 터졌다는 데 있다.


집으로 돌아온 강나비는 무엇보다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주식 때문에 망연자실했다. "주식이 그 꼴이 났으면 빨리 팔았어야지!"라고 소리쳐도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상장폐지되어 버린 주식도 많았다. 주식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김소장은 다시는 주식에 손도 대지 말라고 했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강나비가 아니다. 한국이 망한다고 떠들고 주가가 바닥을 치는 와중에, 다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야수의 심장이었다.


"주식을 또 샀나? 사지 말라고 했잖아. 그만 사라고. 전부 다 휴지쪼가리 돼 가 이 난리가 났는데 망하고 싶어서 주식을 또 하나!"

"이만큼 내렸으면 다시 오른다. 좀 기다려 봐라."

"그만하라고 했다. 주식 한 번만 더 하면 이혼이다!"


김소장은 공무원이 딱 어울리는 소심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아내가 아파도 오랜 시간을 버틴 사람인데 주식 때문에 이혼이라는 초강수를 꺼냈으니, 김소장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은 건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한 번만 더 하면 이혼 이랬는데......, 이걸 깨, 말아?'


은행 앞에서 강나비는 김소장 명의로 된 예금 통장을 들고 고민했다. 그러나 강나비는 강나비다. 고민의 시간이 있었지만 결국은 눈을 딱 감고 김소장 명의의 예금 통장을 해지했다. 아내가 아파서 재산을 날리는 와중에도 자식들 미래를 걱정해 눈물겹게 한 푼 두 푼 모아둔 김소장의 예금이 주식에 태워졌다. 지금이야 예금만 하면 거지가 된다며 많은 사람들이 주식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 투자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주식에 손을 대면 패가망신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대기업도 망해서 줄줄이 도산했으니 경제 상황은 공포 그 자체였다.


'공포에 사고 환희에 팔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외국 사람이 한 말이라 번역하는 과정에서 환희 대신 탐욕을 쓰기도 하지만, 여기서 집중할 것은 '공포'이다. 강나비는 말 그대로 이 '공포'에 주식을 정신없이 사모았다. 주로 증권주였다고 한다.


특정 주식을 언급하기에는 조심스러우니 지금은 없어진 <럭X증권> 하나만 예를 들어 보겠다. 강나비는 이 <럭X증권> 주식을 980원에 샀다.


과연 얼마에 팔았을까?


이혼을 각오할 정도로 사활을 걸었던 이 증권주를 강나비는 18900원에 매도했다. 잘못해서 0 하나를 더 붙인 것이 아니다. 20배에 가까운 수익률이었다. 장기투자를 한 것도 아니고 단기간에 20배의 수익률이라니, 허황된 이야기 같은가? IMF 때 곤두박질쳤던 주가가 100배까지 오른 주식도 있었다. 물론 강나비도 그 주식을 샀지만 100배 까지는 기다리지 못하고 10배 정도에서 팔았다고 한다.


그렇게 도박에 가까운 수를 두어, 결론적으로는 아픈 동안 날린 재산을 복구하면서 재산을 불릴 밑천을 다시 마련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증권사 어플은커녕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주식꾼들이 증권사에 나가서 전광판에 뜬 주식 시세를 보며 바로 주문을 넣던 시절이다. 강나비는 증권사에 매일같이 출근하며 만난 사람들과 친해졌는데, 그들 대부분이 본명 대신 나비라고 불렀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딱 하나 아쉬운 게 그거다. 그때 같이 주식하던 사람들이 다 같이 강남에 집을 가서 이사 가자고 했는데, 니 아빠가 인천시 공무원이잖아. 직장은 못 옮기는데 강남에서 인천까지 출퇴근을 어째 하노. 그래서 못 갔다. 그때 강남 갔으면 우리도 부자 됐을지 모를 일이지."


그때 증권사에 드나들던 사람들 중 강남으로 가지 않고 인천에 남은 사람들과는 지금까지도 자주 만나는 사이다.


"나는 머리에 주식코드가 가득 차 있었서 다른 건 안 외워진다."


꽤 오랜 세월 강나비의 일상은 주식에 맞춰 있었다. 오후 3시 반이 되어 주식장이 끝나야 비로소 몸을 움직였다. 아주 잘 벌 땐 1년에 김소장 연봉만큼 벌 때도 있었고, 당연히 폭락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처참한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래도 강나비가 꾸준히 주식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건, 절대 대출해서 주식 투자금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빌린 돈으로 주식 거래를 하지 않으니 크게 물렸어도 갚을 돈이 아니라서 조급하게 손절매를 치지 않아도 되어 안정적인 투자가 가능했다.


강나비가 '절대 주식을 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던 딸은 아직까지 주식에 손도 대지 않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강나비만큼은 큰돈은 아니어도 용돈으로 주식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 말라던 주식에 손을 댄 이유는 강나비의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아이고 야야, 코인 할 거면 차라리 주식을 해라."


그렇게 됐다.


강나비의 딸에게도 코인과 주식에 관한 사연이 연재를 해도 될 만큼 많지만 굳이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보유한 주식이 떨어지는 것보다, 약간의 수익을 보고 팔아버린 주식이 훨훨 날아가는 걸 지켜보며 돈을 더 벌 수 있었는데 못 벌었다는 걸 더욱 괴로워하는 딸에게 해준 말로 마무리한다.


"얼마가 됐든 수익이 났으면 된 거다. 니한테서 사간 사람도 먹어야지."


강나비는 주식으로 인생역전을 할 만큼 큰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계에 보탬이 될 정도로는 꾸준히 수익을 냈다. 강나비의 인심은 주로 주식으로 여유롭게 만든 곳간에서 났다.


그리고 곳간에 돈이 좀 쌓이자 부동산에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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