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만 빼고
얼마 전 오랫동안 보관했던 가방을 정리했다.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 번번이 다시 옷장 속으로 들어가던 노란 가방도 드디어 최후를 맞이했다. 지금은 너무 안 어울려서 도저히 들 수 없지만, 반짝거리는 에나멜 가방을 사던 기억은 생생하다.
그날은 조금 떨렸다. 기쁨 때문인지, 흥분 때문인지, 그런 큰돈을 써보는 게 처음이라 긴장해서인지.
"할부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이, 일시불이요."
이십 대 중후반이던 나는 명동 롯X백화점 1층 <러브X> 매장에서 카드를 내밀며 이를 꽉 물고 대답했다. 평소 좋아하던 가방 브랜드 <러브X>의 노란색 원통 가방. 처음으로 백화점에서 산, 20퍼센트 할인해서도 무려 27만 원이나 하던 비싼 가방이었다.
나는 대학도, 직업을 갖기 위한 시험도 재수 없이 지나가 스물 네 살에 첫 월급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돈을 벌게 되어 들뜬 딸에게 강나비는 말했다.
"통장 나한테 맡겨라."
"...... 무슨 소리야, 그럼 나는?"
"용돈 받아 써야지. 30만 원씩."
과외를 할 수 있었던 대학생 때가 오히려 더 풍족했다.
나는 돈 버는 직장인이면서 한 달 30만 원의 돈으로 인천에서 서울까지 출퇴근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밥도 커피도 사 먹고, 옷도 사 입고, 가방도 신발도 샀고, 남은 돈은 저금했다. 부평 지하상가의 도움이 컸다. 아무 신발이나 골라도 만 원, 새로 나온 예쁜 신상 가방도 만 원이면 충분했다. 만 원이 넘는 가방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볼 수 없었다.
강나비에게 맡긴 월급 통장은 몇 년 뒤, 인천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걸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었던 내가 자취를 시작하면서 돌려받았다. 그 길로 백화점으로 달려가 갖고 싶던 가방을 샀다. 그게 노란색 <러브 X> 가방이다. 유행이 너무 빨리 지나가 얼마 못 들었지만, 처음으로 산 비싼 가방이라는 애착에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최소한의 지출로 사회초년생의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연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집에서 일터까지 편도 1시간 40분 거리였다. 데이트도 안 했으니 돈 쓸 시간도 명분도 없었다. 청춘을 일에 적응하는 데 바친 대가로 손에 넣은 것은 월급에서 딱 30만 원씩 빠진 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통장이었다.
강나비는 딸의 월급통장에 모인 돈에, 증여세 없이 줄 수 있는 오천만 원을 더해 서울의 빌라를 샀다. 딸은 7년 동안 반지하 빌라에서 곰팡이와 동고동락했다. 아들의 명의로도 집을 샀다. 1호선 백운역 근처에 있던 빌라였다.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 둔 천만 원에 오천만 원을 증여해서 구매자금을 만들었다. 두 빌라 모두 재개발을 기대한 물건이었다.
갑자기 왜 미래가 불투명한 재개발에 눈독을 들이게 된 것일까.
강나비의 첫 부동산 투자는 가좌동에 있던 주공 아파트였다. 주식 투자에도 발을 동동 구르던 김소장은 애가 타서 그걸 왜 사냐고 매달렸지만 강나비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전세 낀 매물에 천만 원을 투자해 소유주가 되었다. 시간이 흐른 뒤 아파트가 재개발된다는 소식에 천만 원이 올랐다. 투자금의 두 배가 된 셈이다. 그러자 김소장은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하나 더 사두지. 그 좋은 걸 하나밖에 안 샀나."
"사지 말라고 난리 칠 땐 언제고 이제 와서 그러는데."
"니가 언제부터 내 말을 들었다고."
재개발에 대한 경험이 없었던 강나비는 두 배의 수익률에 쾌재를 부르며 홀랑 팔아버렸다. 그 후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새 아파트가 들어서고 난 뒤에는 새 아파트를 받아서 팔든지 살든지 했어야 한다고 후회를 했지만, 재개발 물건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부동산은 기다림이다. 강나비가 내린 결론이었다. 가만히 계산해 보았다. 돈을 모아서 나중에 아들 딸에게 현금을 증여하면 증여세를 많이 내게 되니, 미리 증여가 가능한 적은 돈으로 빌라를 사두었다가 재개발이 되면 증여세 없이 자식들에게 한 밑천을 마련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강나비의 시도는 성공했다. 반 정도만.
아들의 명의로 샀던 빌라는 재개발이 결정되자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완공되었다. 그럼에도 재개발이란 진행하는 동안 시간이 많이 걸리기 마련이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참고 견디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재개발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좋지. 분담금을 나눠 내야 되는데, 그 사이에 니네가 번 돈을 모아서 분담금 내는 거라고 증빙이 되잖아."
"아, 그럼 증여를 안 해도 되니까."
"거기다 모자란 돈이 있어도 십 년 지나면 또 오천 증여할 수 있잖아. 재개발 아무리 빨라도 십 년 넘게 걸리는데 부모가 돈만 있으면 자식한테 한 밑천 만들어주기 얼마나 좋노."
강나비는 오히려 그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말했다. 결혼할 때 한 푼도 지원 못 받은 게 한이었는지, 늘 자기 자식에게는 기반을 마련해 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 같았다. 그 덕에 강나비의 아들은 결국 증여세 없이 대출 없는 역세권 신축 아파트에 혼자 살게 되었다. 송도도 청라도 아닌 인천 지역의 아파트라 서울 집값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다.
기다림은 한 번 더 달콤한 열매를 주었다. 인천에서 처음 지은 이층 집이 있던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갔다. 이 집은 사실 강나비의 아들 명의로 된 빌라가 처음 재개발 소식이 나오기 훨씬 전에 재개발이 결정되었지만 삽은 한참 뒤에 떴다.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을 거치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대단지 신축아파트가 들어섰다.
"왜 전부 재개발되는데 내 집만!"
강나비의 딸은 절규했다.
그 집은 2호선 홍대역에서 가깝고, 언덕 없는 깨끗한 평지에, 큰길 바로 옆 골목에 있는 빌라라서 위치가 아주 좋았다. 공항전철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두 배로 집값이 오른 적이 있었으나, 강나비의 딸은 '이 동네 재개발되면 집값이 얼마야.'라는 탐욕에 눈이 멀어 집을 팔지 않고 버텼다.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집값은 잠깐 특수를 누린 뒤, 다시 떨어져 십 년 넘게 제자리다.
기다리면 언젠가 재개발이 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아마 그곳을 직접 보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 동네는 상권이 발달하면서 핫플레이스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집 근처에 온갖 카페와 맛집에 들어섰다. 길이 좁고 주변이 좀 낙후되어 있어야 재개발 가능성이 높다. 동네가 너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핫플이 되어 버린 곳에 위치한 빌라는 재개발을 꿈꿀 수 없다. 입지가 지나치게 좋은 것이 단점이다.
무일푼으로 인천에 자리 잡던 시절, 월세도 겨우 얻어 사는 강나비에게 외할머니는 "꼭 아파트를 사라."며 집을 구할 돈을 주셨다고 한다. 당신은 한 번도 아파트에 살아 본 적이 없으면서도 1980년대에 반드시 아파트를 사라고 말하던 부잣집 딸의 통찰력이란. 그러나 강나비의 선택은 아파트가 아니었다. 언덕 위에 있던 주택을 샀다. 그 집에 살다 돈을 모아 이층 집을 짓고 세월이 흐른 뒤 재개발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강나비는 자녀들이 독립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아파트를 샀다. 누누이 말하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는다.
"아파트가 이렇게 편한 거였다니, 진작 엄마 말 들을 걸 그랬다."
지금 강나비와 김소장이 살고 있는 그 첫 아파트는 얼마 전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또 재건축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강나비가 찍은 부동산은 모두 재개발, 재건축이 되는 결말을 맞이한다.
내 집만 빼고.
내 집은 재개발 목록에 끼지 못했고 강나비의 부동산 투자도 집값이 싼 인천에 집중되어 아쉬운 점이 있지만, 노후를 좀 더 든든하게 만들어 준 것만은 확실하다. 부모의 노후대비는 자녀에게 큰 힘이 되기 마련이니 일단 나도 재개발의 수혜를 받은 것으로 치고 마무리하겠다.
지금까지 강나비가 어떤 고난을 거쳐 성장했는지 큰 줄기를 지켜보았으니 잠깐 사소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혹시 지금까지 강나비의 사투리가 좀 이상하거나 어색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