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투리 쓰는 예쁜 아줌마

자아도취일까 자존감이 높은 걸까

by 김용주

"어머, 애기들이 사투리를 쓰네요. 너무 귀엽다."


동네 사람이 한 말에 강나비는 충격을 받았다.


"우리 애들이 사투리를 써요?"

"어...... 그렇죠? 경상도 사투리 아니에요?"

"아닌데 서울말인데......"


강나비는 안동에서 나고 자라 결혼 후 부산으로 가면서 안동사투리와 부산사투리가 섞인 억양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인천으로 오면서 사투리를 고쳤다. 동네 사람이 애들이 사투리를 쓴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자신도 아이들도 서울말을 쓰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수도권 사람들 귀에 그렇게 들릴 리가 있었겠는가.


나와 동생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표준어를 쓰지만, 아직도 가족끼리는 사투리를 쓴다. 밖에 있어도 가족과 통화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투리가 나온다.


"용주씨 엄마랑 통화할 땐 사투리 쓰네? 고향이 어딘데?"

"부산이요. 근데 거의 인천에서 자랐어요."

"부산 사투리처럼 들리진 않던데? 부산 가면 사투리 막 써?"

"아니요? 부산 가면 사투리 안 쓰죠."

"응?"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쓴다. 우리는 이제 부산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다. 집에서 부모가 쓰는 말을 따라 하다가 말투가 굳어진 것인데, 이미 사투리 쓰던 사람이 표준말을 쓰겠다고 고친 말이 본보기였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경상도가 느껴지는 억양이라고 하지만 경상도 사람들이 들으면, "뭐 저런 근본 없는 말투를 쓰느냐"고 할 법한, 이것저것 뒤섞인 혼종이다. 부산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면 이 애매한 사투리를 쓰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표준어로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산에 가면 정석의 표준어를 쓰고, 수도권에 오면 이상한 사투리를 자신 있게 쓴다. 아마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상경한 집의 2세대 정도라면 어디 사투리라고 정의할 수 없는 고유의 말투를 집마다 지니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강나비의 이야기를 쓰면서 평소 말투를 그대로 쓰다 보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안동 사투리로 들릴 만한 대사를 썼지만, 이야기 속 강나비의 나이가 들어 갈수록 안동 사투리도 아니고 부산 사투리도 아니고 두 지역의 사투리가 섞인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표준어도 아닌 무언가를 쓰게 된 것이다. 내가 들리는 대로 쓰는 것이라 어쩔 수가 없다.


어쨌든 인천은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동네 사람들은 스스로 표준어를 쓴다고 생각하던 강나비를 '저거 어디 사투리지? 이상한데?'라는 의심 없이 '사투리 쓰는 예쁜 새댁'이라고 불렀다.


갑자기 굳이 '예쁜'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는 건, 사투리 쓰는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대놓고 '예쁜 아줌마'에 집중해 보겠다는 뜻이다. 궁금하지도 않은 70대 할머니의 젊은 시절 미모에 대한 찬사를 듣게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외모 그 자체보다는 높은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포장할 심산이기 때문이다.


강나비가 오랫동안 살던 집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고, 언덕 아래를 내려와서도 한참 걸어야 버스정류장이 나왔다. 버스를 타려면 반드시 지나가야 했던 언덕 밑 화장품 가게 사장님은 강나비가 지나가면 꼭 문을 열고 나와 "예쁜 아줌마 어디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럴 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유, 무슨 말씀이세요."라거나, "어머, 사장님이 더 예뻐요." 등의 대답을 기대했는가? 나는 자라면서 누가 예쁘다고 하는 말에 강나비가 수줍어하거나 아니라고 부정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그저 상대방이 그런 말을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였다.


결혼식 날, 강나비는 예식장 대여 드레스 중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한 벌을 입었다. 가장 싼 시간대여서 그랬는지, 다른 신부들이 먼저 드레스를 골라서 이상한 드레스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사진으로 봐도 정말 촌스러운 디자인이었다. 가장 못난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에게 누군가 말했다.


"야야, 나비 니가 여기 신부 중에 제일로 예쁘다. 드레스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신랑도 친정 엄마도 아닌 시어머니가 한 말이다. 드레스가 너무 후져서 기를 살려준 말이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강나비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두고 그날 결혼하는 열 명의 신부 중에 제일 예쁘다고 말할 만큼 내가 예뻤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쁘다고 하는 말에는 다른 의도를 의심하는 법이 없었다.


중학생이던 딸 친구의 엄마를 길에서 만난 날이었다. 칼자국이 난 눈을 보여주며 한 말이 기가 막혔다.


"나 지난주에 쌍꺼풀 수술했는데 너무 아프더라. 나는 이 정도 두께로 수술을 해도 이렇게 아팠는데 나비는 쌍꺼풀을 그렇게 두껍게 만들려니 얼마나 아팠을까? 수술받는데 나비 생각이 나는 거야."


성형 수술은 물론 돈이 아까워서 피부과 시술 한 번 받은 적이 없었다. 강나비는 억울했지만 '내 쌍꺼풀이 수술한 쌍꺼풀처럼 부자연스러운가?'라고 생각하는 대신, '내 쌍꺼풀이 너무 진하고 예뻐서 사람들이 수술했다고 오해한다.'는 주제를 담은 에피소드로 알차게 써먹었다.


"니 선교원 다닐 때 그림 대회 상 받으러 63 빌딩 갔을 때도 기념 촬영하는데 거기 사진 찍는 사람이 진짜 선생님들 놔두고 나보고 선생님 가운데로 서세요, 했다니까. 내가 아무리 봐도 애기 엄마 같아 보이진 않았던 거지."


사진 기사의 작은 오해도 놓치지 않았다. 이제 슬슬 강나비의 사고 과정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스스로 매우 예쁘고, 어려 보인다는 확고한 신념을 기반으로 한다.


어느 날은 집에 들어와 씩씩거리면서 김소장에게 말했다.


"집에 오다가 어떤 유치원생 애가 내 옆에서 걸어오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나보고 걔 엄마냐고 하잖아. 그 아저씨는 눈이 삐었나. 어디 내가 유치원생 엄마처럼 보이노."


김소장은 기가 차서 할 말을 잃었다. 딸이 이미 대학생이었다. 사십 대 후반에도 자신이 아가씨로 보일 거라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외모에 집중해서 풀어보았지만 강나비의 자기만족은 외모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본인의 외모, 인성, 지성, 체력 등 자신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에 한 치의 모자람도 느끼지 못하고 깊이 사랑한다. 스스로 내리는 판단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게 끝없는 자기 긍정으로 70여 년을 살아온 사람이니 어떤 시련이든 헤쳐 나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자기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면 교과서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지금이야 갱년기에 찐 살을 빼지 못해서 친한 동네 지인들에게 "나비는 엉덩이가 꼭 외국여자 같다."는 말을 듣지만, 강나비의 나이가 꽤 들 때까지도 남자들의 관심이 줄을 이었다. 당연히 그 관심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비 남편이 너무 부럽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이 얼굴을 본다는 거잖아."


동창회에 나가서 남자 동창에게 약간 부담스러운 말을 듣는 것까지는 김소장의 질투를 유발할 소재로 쓰일 만한 정도였지만, 밤길에 강나비의 얼굴만 보고 뒤따라온 외국인 노동자가 길을 막고 어눌한 한국어로 시간 있냐고 물을 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없어! 나 결혼했어! 저리 가!"


무서워한 것 치고는 크게 소리치며 잘 대처했지만 말이다.


그중 최악은 산에서 마주친 남자였다. 물론 그에 대한 강나비의 대처도 정말이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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