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혼자 등산할 때는 가죽 장갑이 필수

중년 여자가 산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살아남는 법

by 김용주

나는 목청이 아주 크다. 일행과 떨어졌을 때 배에 힘을 주고 소리 지르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소스라치는 문제가 있지만 말이다. 술을 먹으면 친구들에게 '길거리에서 소리 지르기 금지'를 당하거나, 카페와 지하철 등에서 "말하는 소리가 지나치게 잘 들린다"는 지적을 받은 일도 있다. 볼륨 조절이 잘 안 되던 어린 시절의 일이다. 지금까지 시끄러울 것이라는 오해가 없길 바란다.


목소리도 유전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가족끼리 목소리가 비슷해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의 목소리는 누구를 닮았을까? 이쯤이면 강나비와 김소장 중에 누구일지 답이 뻔하다. 강나비는 목청이라면 세계 제일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압도적인 성량을 자랑한다. 넓은 공간에 쩌렁쩌렁 울리는 커다란 소리는 강나비가 가진 무기 중에 하나였다.


강나비에게는 인생에서 이 무기를 가장 잘 써먹었던 순간이 있었다.


'모든 안전수칙은 피로 쓰인 것'이라는 말이 있듯, 요즘은 혼자 산에 가면 위험하다는 걸 누구나 다 안다. 그간 사건사고가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산에 혼자 가겠다는 사람을 붙잡고 안 된다고 일장연설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예전에는 중년 여성 혼자 동네 뒷산을 슬슬 오르는 일이 흔했다.


강나비는 자주 산에 혼자 올랐다. 다이어트에 등산만 한 게 없었다. 언덕 위에 있던 집에 살 때라, 정말로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었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30분에서 4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작고 낮은 산이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가족들과 다 함께 오르기도 하던 익숙하고 편안한 동네 뒷산. 무서울 게 없는 산에 혼자 오른, 특별할 것 없던 날이었다.


그날의 날씨는 등산하기 적당했다. 김소장은 출근했고, 딸과 아들 모두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중이라 시간도 여유로웠다. 단풍이 거의 다 진 늦가을. 산을 오르면서 땀이 나고 더워지면 딱 좋아질 정도로 쌀쌀했다. 등산복에 조끼와 바람막이를 겹쳐 입었다. 손이 시린 게 싫어서 얇은 가죽장갑도 착용했다. 이 가죽장갑이 신의 한 수였다.


낮은 산이어도 길은 여러 갈래를 품고 있다. 동네에서 출발해 산을 넘어가면 딸이 다니던 고등학교로 통하는 길도 나왔다. 고등학교 쪽으로 산을 내려가 버리면 큰길로 다시 한 시간은 빙 돌아서 걸어와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시작과 끝이 너무 멀어져서 잘 선택하지 않는 코스였다.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절을 끼고 올라가는 입구에서 출발해 같은 곳으로 내려오곤 했다.


강나비는 그날 정상에 올랐다가, 고등학교가 있는 쪽 길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등산의 목적에 다이어트도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먼 길로 돌아가 많이 걷고 싶었다. 말은 내려간다고 하지만 산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 이제 내리막 한 번, 오르막 한 번이면 대로가 나올 참이었다.


산을 타는 내내 혼자였다. 낙엽 밟는 소리만 사락사락 들렸다. 힘이 약간 빠진 상태로 늦가을의 흔적이 밟히며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는 중에, 문득 다른 박자의 소리가 들렸다.


산을 오르내리며 흘렸던 땀이 순식간에 식었다.


귀 뒤쪽 솜털부터 시작해서 온몸의 털이 아주 빠른 속도로 일어서면서 경고처럼 찌릿한 소름이 등줄기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낯선 팔이 목을 휘감고 등 뒤로 차가운 금속이 닿았다.


"......!!"

"조용히 하고 따라와."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등에 닿았던 금속이 앞쪽으로 이동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칼이었다. 과도 정도 크기에 손잡이가 따로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칼 든 강도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항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목숨을 건질 수 있을까? 남자가 여자보다 완력이 센 게 당연한데 칼까지 든 상황에서 저항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에 처할 것을 상상해 보면, 자신이 없다. 일단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력해질 것만 같다.


그런데 강나비가 누구인가. 어릴 때도 누가 시비를 걸면 고무신을 벗어 귀싸대기를 날리고, 남자 친척과 매일같이 몸싸움을 하던 사람이 아닌가.


'이대로 따라가면 죽는다.'


판단은 본능이 내렸다. 위협을 당하자마자 바로 체중을 실어 그 남자를 뒤로 떠밀었다. 내리막길이었지만 비스듬히 서 있던 덕에 각도를 틀면서 밀었더니 남자의 무게중심이 무너지면서 아래로 함께 구르게 되었다. 켜켜이 쌓인 낙엽 위를 엎치락뒤치락하며 구르다 멈췄을 때는 강나비가 바닥에 깔린 상태였다.


강나비는 이번에도 고민하지 않았다.


"사람 살려!!"


강나비의 목청이 엄청나게 크다고 한 것을 기억하는가? 예상치 못한 큰 소리에 놀란 남자는 손에 쥐고 있던 칼을 쳐들었다. 강나비는 눈을 질끈 감는 대신 자신의 몸을 깔고 앉은 남자가 내리찍는 칼을 손으로 받았다. 손에 가죽장갑을 끼고 있어서 가능했다. 이 가죽장갑이 신의 한 수였다고 미리 언질을 준 이유가 여기 있다.


"이익!!"


남자는 당황해서 순간 힘이 빠진 모양이었다.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칼날을 잡은 강나비는 그대로 칼을 뺏어서 멀리 던졌다. 혼자 등산하던 아줌마에게 칼을 뺏길 거라고, 그 강도는 상상이나 했을까?


남자가 얼빠진 틈을 타, 강나비는 또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더 이상 손에 쥔 무기가 없어진 남자는 주먹으로 강나비의 얼굴을 내리쳤다. '빡' 소리가 났다. 얼마나 아프던지 눈이 핑 돌았다. 눈앞에 별이 번쩍한다는 게 어떤 말인지 바로 깨달았다.


"사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려 하자 남자는 강나비의 입을 틀어막았다. 강나비는 거세게 발버둥 쳤다.


이제 끝인가? 춥고, 힘도 빠지고, 산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이렇게 죽는 건가?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 다시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김소장이 산에 혼자 가지 말라고 할 땐 걱정을 사서 한다고 코웃음 쳤는데.......


그때였다.


"거기, 누구 있어요?"


저 멀리 오르막길의 끝에서, 어떤 아저씨가 모습을 보였다. 나뭇가지와 낙엽을 헤치며 강나비가 깔려 있는 쪽으로 상황을 살피며 내려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본 강도는 강나비를 두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어? 괜찮아요?!"


남자가 도망가는 것을 보자, 아저씨는 빠르게 뛰어 내려와 강나비를 일으켜 주었다.


"아니 저기 위에서 걸어가는데 사람 살려하는 소리가 들리잖아요. 잘못 들었나 긴가민가하고 있는데 소리가 또 들리길래 와봤더니...... 아이고, 큰일 날 뻔했네."


죽다 살아난 강나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뒤로는 어떻게 걸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에 가서 신고하고 난 뒤, 퍼렇게 멍이 든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산에서 강도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자 김소장은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게 산에를 왜 혼자 가냐고! 가지 말라고 했잖아! 혼자 산에 다니는 거 위험하다고!"

"내가 지금 얼굴에 멍이 이렇게 들어가 아파 죽겠는데 산에 혼자 간 게 중요하나! 한낮이라 괜찮을 줄 알았지!"

"저 윗동네 살던 아줌마가 산에 혼자 갔다가 강도 만나서 죽었다니까! 그게 얼마나 됐다고 산에 혼자 가노!"

"...... 그래?"

"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니 사람이 죽어나가도 모르고 앉았지. 다시는 혼자 산에 가지 마라!"


대낮에 산에서 강도에게 살해당한 사건에 대한 소문이 온 동네를 휩쓸고 있었는데, 강나비만 몰랐다. 분명 들었을 텐데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이다. 알고도 산에 깄다면 김소장의 잔소리가 몇 배로 늘어났을 테니 알았으면서 몰랐던 척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말이다.


그 후 강나비는 경찰서에 불려 다녔다. 경찰은 처음에는 강나비의 말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산에서 혼자 강도를 만난 중년 여자가 강도에게서 칼을 빼앗아 던지고 살아났다니, 누가 믿겠는가. 경찰들은 함께 산에 가서 강나비가 던져 버린 칼을 발견하고 나서야 사건을 인정했다. 강나비는 죽을 뻔한 피해자를 몇 번이나 오라 가라 한다고 괜히 신고했다며 불평을 늘어놓았으나, 그 후로 산에 강도가 출몰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놈이 미친놈이지, 그런 미친놈 때문에 내가 산에도 못 가네."


강나비는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다시 혼자 산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도 동네 뒷산일지언정 늘 김소장과 함께 간다. 그러면서도 딸에게 교훈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니도 산에 갈 때는 가죽장갑을 꼭 껴야 된다."

"내가 산을 왜 가노."


이 이야기를 들었던 고등학생 딸은 "우리 엄마가 산에서 강도를 물리쳤다. 역시 엄마를 이길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라고 깔깔거리며 친구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일이다. 강나비가 그날 가죽장갑을 끼지 않았거나, 목소리가 조금 작았거나,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나, 무서워서 떨었다면 꼼짝없이 죽었지 모를 일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더니, 산에서 강도를 만나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 돌아오는 사람이 바로 강나비였다.


그렇게 강나비는 뉴스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일을 경험해 본 사람이 되었다. 살인 사건은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다. 강나비의 주말 농장이 있는 동네에서도 살인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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