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보령 주말농장 살인사건

기름값이 더 들어도 포기할 수 없는 농사의 재미

by 김용주

"할매, 할매. 보령 지네 얘기 해줘."

"또?"

"응. 너무 재밌어."


강나비가 딸의 식구와 여행 가서 잠자리를 함께 할 때면 외손녀가 항상 요구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보령 지네 이야기>이다.


"할매가 보령 집에 갔는데 수챗구멍에 이만한 지네가 나타난 거야. 발이 이렇게 많이 달려서 얼마나 징그러운지. 보자마자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어. 여보!! 지네 나왔다!!"

"여보가 하비야?"

"응. 하비를 불렀어. 그랬더니 하비가 X수야! 누나가 지네 나왔단다! 이러고 서울하비를 불렀지."


여기서 '하비'는 '할배'를 어린아이 발음으로 부르는 말이다. '서울하비'는 강나비의 남동생으로 유치원생에게 5촌 당숙의 개념이 어려우니 지역명에 할아버지를 붙여서 구분하는 명칭이다.


"이히히히히. 그래서 서울하비가 지네를 잡았어?"

"아니이- 그랬더니 서울하비가 영X형! 지네 잡으소! 하고 불렀어. 서울하비랑 같이 일하는 김천하비 있잖아. 그래서 김천하비가 집게를 들고 가서 지네를 잡아 밭으로 휙 던졌지."

"꺄하하하하하."


유치원생 손녀는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들을 때마다 까르르 웃느라 숨이 넘어갔다. 어른들 귀에는 권력의 위계대로 하청을 주고 또 하청을 주는 이야기로 들려서 다른 의미로 웃겼지만 말이다.


지네도 살고, 천장에서는 쥐가 찍찍거리는 소리도 들려오는 이 자연친화적인 보령 시골집은 강나비가 지인에게 빌려준 돈 대신 받은 집이었다. 시골에서 자란 강나비에게는 주말 농장에 대한 계획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빚 대신 시골집을 받기로 합의한 데에는 도시 남자 김소장의 시골살이에 대한 로망이 한몫했다.


강나비는 보령 집을 인수하자마자 마당에 있던 커다란 나무들을 싹 베어냈다. 동네 사람들은 크고 좋은 나무가 잘려 나가는 것을 아까워하며 발을 동동 굴렀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당에는 평상을 놓고 밭을 만들어 여러 작물을 심었다. 작물은 긴 기간을 두고 이것저것 심어보며 선택했다. 감자, 고구마는 물론이고 상추, 케일, 양파, 대파, 고추, 무, 배추, 참깨, 들깨, 무화과와 살구나무까지. 일생 꿈꾸던 대로 직접 작물을 키우고 농사를 지으면서 김소장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농작물은 손이 너무 많이 가는데 너무 쉽게 죽는다. 농약은 필수불가결이고, 인터넷의 지식은 농사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당연히 나는 다 알고 있었지. 어릴 때부터 농사지었는데."

"그럼 아빠한테 말을 해주지 왜."

"내 말을 듣나. 인터넷에서 보고 그대로 하더만.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내 속만 터지지."


둘은 여전히 잘 맞지 않았다.


그 손 많이 가는 일을 누가 다 할까? 혹시 강나비는 지시만 하고 김소장만 허리가 끊어져 나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가? 반은 맞았다.


강나비가 주로 지시를 담당하긴 하지만 김소장 말고도 부릴 일손은 많았다. 동생부터 집안 친척 오빠에, 인천에서 가깝게 지내는 동네 아저씨와 아주머니까지. 일꾼들을 우르르 몰고 보령에 데려가 실컷 일을 시키고 난 뒤에는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밭에서 기른 상추와 고추, 마늘을 따서 먹였다. 물론 고기 하나로 일꾼을 유혹한 것은 아니다. 함께 키운 작물은 재배하고 나면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이걸 누가 다 먹노. 이래 많이 가져오면 어짜라고."

"니 친구들 줘라 왜."


농사가 너무 잘 되어 딸의 친구들까지 감자를 한 박스씩 얻어먹은 해도 있었다.


직접 농사지어 먹거리를 마련할 수 있으니 보령 주말 농장은 가계에 큰 보탬이 되었을까? 글쎄올시다. 주말마다 인천에서 보령을 오가는 기름값을 생각하면 결코 이득이라고 할 수 없다. 공기 좋은 산 중턱에 주말마다 머물며 직접 농작물 키워 먹는 재미가 주유비를 잊게 만드는 것이다.


20년을 넘게 보령에 다니다 보니 열 가구도 채 안 되는 동네 사람들과 친해져서 주중에 대신 물을 뿌려주거나 집을 살펴주는 사람도 생겼지만, 그 사이에 곤란한 일도 겪었다.


"이게 뭐로? 이 사람은 누군데 우리 집에 왜 압류를 걸었노. 아는 사람이라?"


가장 황당한 일은 그 집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압류를 걸어서 집이 넘어갈 뻔한 일이었다. 알고 보니 압류를 건 이는 김소장과 이름이 같은 사람에게 돈을 떼인 인부였다. 공사를 해주고 돈을 못 받은 사정은 안된 일이나 본인 확인도 하지 않고 이름만 같은 엉뚱한 사람 집에 압류를 걸어 빚을 받아내려 했다니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이 압류를 푸는 과정도 만만치 않아 뒷목 잡을 일이 매우 많았다. 절차를 무시하고 지인의 편의를 쉽게 봐주는 시골 공무원을 지탄하는 글도 한 편 나올 뻔했으나, 강나비가 관공서 찾아다니며 소리치고 뒤집어엎어서 해결했다고만 밝혀두겠다.


보령 집은 강나비에게 수많은 에피소드를 선물해 주었다. 온 동네 가축을 물어뜯어 죽이는 사나운 개와 개보다 더 사나운 주인이 동네 사람들과 싸운 이야기며,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키우던 귀여운 새와 새끼들이 창문 앞에서 인사하듯 눈을 맞추고 다 함께 날아간 이야기라든지, 백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더니 자식들이 결혼하던 해에만 꽃을 피운 식물 이야기 등 하나하나 풀자면 끝이 없다. 그중 단연 최고는 역시 앞서 예고했던 살인 사건이다.


강나비의 딸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 취업할 즈음 보령에 집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집에 별장이 생겼어."

"오- 놀러 가자!"


철없이 별장이 생겼다며 친구들을 우르르 끌고 가 고기를 구워 먹고 놀기도 하고, 일터에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직장동료 S씨는 공짜로 쓸 수 있다는 말에 그 보령 집을 자신의 대학 동아리 엠티 장소로 잡았다. 강나비의 딸은 자기 집도 아니면서 흔쾌히 빌려주기로 했고, 그녀도 잘 모르는 십수 명의 사람들이 보령 집으로 놀러 가는 일이 벌어졌다.


지금은 보령 집이 괜찮아졌지만, 초반에는 수도 공사를 하지 않아서 길 건너 앞 집에서 물을 틀어줘야만 했다. 당시 동네 사람들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썼는데, 주중에는 강나비의 집에 사람이 없으니 물을 틀어 두면 낭비만 될 뿐이었다. 따라서 평소에는 잠가 두었다가 사람이 오면 밸브를 풀어 물이 나오게 하곤 했다.


아주 간단한 문제였다. 그냥 앞 집에 가서, "저희 앞 집에 왔으니까 물 좀 틀어주세요."라고 말 한마디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방도 세 칸이고, 화장실도 집 안에 있고 이불도 넉넉했다. 졸업한 대학 동아리 선배의, 직장 동료의, 부모님의 주말 농장에 엠티를 온 젊은 여자와 남자들은 마당에서 구워 먹을 고기와 술을 잔뜩 사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날 뉴스에는 하루 종일 보령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나오고 있었다.


어떤 할아버지가 음식에 청산가리를 타서 아내와 동네 사람 둘까지 모두 세 명을 살해한 사건이었다. 아무리 시골이라도 보령이 얼마나 큰 도시인데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젊은이들 엠티에 지장이 가겠는가.


문제는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할머니의 집이, 바로 강나비의 보령 집 길 건너에 있었다는 것이다.


앞 집에 가서 물을 틀어달라고 해야만 물을 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그 뉴스에 나오는 청산가리 먹여서 죽인 할머니 집이 앞 집이에요. 그 집 할머니는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는 붙잡혀 가셨는데 자식들이 집에 와 있대요. 가서 물 틀어달라고 하세요."


강나비의 딸에게 연락을 받은 S씨는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물을 틀어달라고 말해야 하는 저 앞집 사람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어머니를 죽인 범인이 아버지라 경찰에 잡혀 간 상황이라고?'


"누구 앞 집에 가서 물 틀어달라고 말하고 올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들은 무서워서 덜덜 떨었다고 한다. 물이 나오지 않으니 아무도 씻지 못했다. 화장실도 최대한 참았다. 마당에 푸세식 화장실이 하나 있긴 했는데, 그 화장실을 사용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얼굴도 모르는 그들은 두렵고 더러운 끔찍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자마자 짐을 꾸려 서울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S씨와 후배들에게 추억으로 남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당시에 집을 공짜로 빌려 주고도 좋은 기억을 선물해주지 못한 강나비의 딸은 좀 시무룩해졌다. 그 후로는 강나비도 일꾼 중 하나인 남동생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보령 집을 빌려주지 않는다.


딱 한 번, 부산에 사는 강나비의 시집 식구들을 보령 집에 초대해서 다 함께 모인 적이 있었다. 그때 강나비의 시어머니는 80대의 몸으로도 "나비는 반찬 하나도 할 줄 모른다." 라며 직접 만든 반찬을 싸들고 보령으로 왔다.


60대의 며느리를 두고 반찬 하나 할 줄 모른다며 80대 시어머니가 반찬 셔틀을 자처하게 만들었던, 강나비는 그녀의 시어머니에게 어떤 며느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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