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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Dec 14. 2022

행동에 옮기기를 주저하는 당신에게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2

행동에 옮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아니, 잠깐만. 

'내가 저녁에 밥을 먹고 롤을 한다.' 이런 일차원적이고 가벼운 행동 말고 말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기점이 될지도 모르는 행동. 그것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냔 말이다.  


종종 사람들은 지나간 청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곤 한다. 나도 동의한다. 나 역시 20대의 첫 시작 지점에서 미친 황소처럼 날뛰며 살았던 그날이 그립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싶다.


어떻게 그렇게 살았냐고? 


눈에 뵈는 게 없으니까. (ㅋㅋㅋ)


웃으라고 한 소리이긴 하다만 진짜다. 20살 청춘에게 있어서 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20년 푹 쌓였던 족쇄가 풀리고 성인이라는 타이틀의 무게가 아직 깃털처럼 가벼울 때아닌가. 


이때 우리는 뭔가를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그것이 도전이 되고 열정이 되어서 성취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나이를 먹을 대로 먹고 세상을 조금 알 것 같다 보니 이건 뭐 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가까스로 지켜낸 나의 돈벌이 수단은 놓치면 금방이라도 내가 건설해 놓은 세계가 무너질 것 같지 않은가? 로버트가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았던 저 시점도 어떻게 보면 로버트에게 있어서 위와 같은 시기에 시작한 부동산 투자 시점이었다. 


그와 우리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로버트는 어렸을 때부터 부자 아버지로부터 생각을 행동에 옮기는 훈련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는 자세가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뿐.


그렇다면 행동은 버릇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든 행동으로 옮겨 부딪치고 깎이고 돌파하는 것 말이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쥐고 있는 어차피 사라질 모래성을 견고한 콘크리트 건물이라고 믿고 있는 착각에서 벗어난다면 말이다. 


나라면 차라리 모래성을 150개 쌓아보겠다. 그렇다면 그중에 한 둘은 조금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 단단한 모래성의 차이점을 분석하고 또 다른 단단한 모래성을 1500개 쌓아보겠다. 난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위들을 전략적으로 반복한 사람들이 지금의 부자들이라고 믿는다. 


정답은 행동이다. 행동 말이다.



행동을 막는 건 애석하게도 사람이다. 


당신 주변에 있는 사람 말이다. 당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문제일 때가 많다. 이런 경험이 있는가? 나에겐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들이 있다. 대학에 들어가고 2년 정도는 자주 만났다. 그러다가 직장을 갖고 일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왜일까? 답은 하나였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의 바운더리 안에서 경험을 쌓고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며 나이를 먹어갔고 나는 부딪치고 깨지면서 사생결단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바라보는 시야와 사고의 격차가 생기고 나에게는 나의 발버둥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또 다른 도전적 미치광이들이 새로운 친구가 되었다. 


이제 나의 학창 시절 동창들은 추억의 향수일 뿐 1년에 한 번도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 되었다. 음... 아, 너무한 거 아니냐고? 그럴 수 있다만 그전에 당신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돌아보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2라는 책을 검색하고 이런 글을 살펴보는 당신은 아마 부자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그런 당신에게 이런 의견이 도움이 되겠는가, 부자에 관심이 없는 현생 충실 월급 노동자 친구들의 의견이 도움이 되겠는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이 말을 전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우리가 만약 이 책을 통해서 동일한 가르침을 얻었다면 모두가 다 로버트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지 않는가? 20년이 넘는 가르침의 과정(교육)을 겪으면서 우리는 똑똑하거나 적어도 인성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각자의 가치관과 인생이 다르지 않은가? 그럼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받은 교육을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한 정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우리 입맛대로 해석하고 받아들여 내면화 시킨 뒤 허우적대고 발버둥 치다가 또 다른 동기부여 건더기들을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런 인생을 산 당신들이 나의 말을 듣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다만 내 역할은 당신의 마음에 동기부여의 열기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뿐이다. 


정답이지 않은가?

과거 나는 사람이 고쳐진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2년 반을 넘게 청년들에게 사명감을 지니고 인성교육을 진행했었다. 전국 팔도 다 다니면서 3천여 명의 청년들을 만났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이 변함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저을 때가 더 많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발전은 가능하다. 그러니 교육은 강요할 필요가 전혀 없다. 받아들이는 사람이 교육하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만 하되 거기에 나와 같은 사명감을 입힐 필요가 전혀 없다. 


기대하되 기대하지 않는다.

이 줄다리기를 잘 해나가다 보면 갈릴레오가 말하는 저 문장의 진정한 의미와 방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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