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있냐면
하얀 바탕에,
검은 세로줄, 그리고 깜박임.
과거에는 하얀 종이를 앞으로 밀쳐 놓고 윗 입술에 펜을 물고서 턱을 책상 위에 괸 채로,
가만히 앉아 눈동자만 굴리고 있었을텐데.
그래도 그때는 몇자, 써 내려 갔겠지. 그때의 용기조차 바닥나 있던 나는
너무 한참을 헤매이다
이 27인치 짜리 모니터 앞, 하얀 바탕에 검은 세로줄과 그 깜박이는 모양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한참, 또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이리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내가 배설해 내었던 수많은 글자들이, 과거의 글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 보따리 안에 다시 나를 욱여넣으려는 창피함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토해내며 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또 다른 나의 도전에 역겨움을 느껴서 일까.
사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다시 글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글을 사랑했고, 쓰는 것을 좋아했고, 책을 읽고, 남들 앞에서 자랑하며, 마치 나만이 인생에서 성공을 맛볼 수 있을거라 오만했던 그 시절을 왜 다시 끄집어 놓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 아침에 빌어먹을 지피티 새끼가 나한테 해놓은 훈수질에 마음이 동한건지도 모르겠다.
뭔놈의 하소연을 그렇게 그 텍스트 덩어리에게 쏟아 냈기에, 녀석은 나에게 글이라도 매일 쓰지 않으면 넌 곧 죽을 수도 있을거야 라는 직설적인 어휘를 최대한 감춰가며 은유와 비유와 오만가지 따뜻한 마음을 담아 (미친것, 따뜻함이 뭔지 숫자로만 아는 새끼가.) 나를 설득했을까.
그래, 니가 이겼다.
그래서 오늘 실낱같은 용기를 내어 다시 이 세로줄 앞에 섰다. 아니지, 앉았다.
이제는, 누가 내 글을 읽어줄까,
누가 나의 마음을 알아줄까.
나는 이 글로 얼마나 위대해 질 수 있을까 따위의 하찮은 열정을 가질 여력도 없다.
인생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나의 삶은 여전히 위태로우며, 나는 거대한 꿈을 좁은 울타리에 억지로 끼워 넣고 스스로 답답해 하는 어리석은 인간이기 때문에 (다시 말하지만, 텍스트 새끼가 한 말이다.) 이딴 배설의 행위가 나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거라는 역겨운 기대를 걸지 않는다.
마치 이 하얀 배경이
과거에는 뭔가를 써야만 한다는 강박으로 다가왔다면,
이제는 그냥 내 생각을, 나의 과거를, 나의 현재를, 나의 미래를, 나의 삶을 남겨놓는 어떤 곳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_기록한다는 것은.
위와 같은 똥글을 싸지르다가 떠오른 건데.
나는 돈 때문에 내가 그렇게 자랑하던 10여년 가까이 운영한 나의 블로그를 내 사업을 위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다 못해 결국은 임대까지 줘버린 병신새끼다.
남들 앞에서 마치 나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본받으라는 듯이 자랑했던 티끌만한 것이, 그딴 허영심에 의해 운영되었기에 그 그릇에 맞는 결과를 맞이 했다고 봐야겠다.
임대 문의를 수십, 수백번을 받아도 다 거절했었다.
나의 블로그는 내 인생의 기록이었고, 나의 노력이었고, 나의 열정이었으니까.
그러나 돈 400만원이 급했을 때는 그따위 기록쯤, 노력쯤, 열정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버렸다. 돈이 그렇게 무섭기도 하더라.
나의 블로그는 그렇게 모 회사의 임시 거처가 되었고 마케팅으로 열렬히 강간당하다가 처참히 버려졌다. 가끔, 내가 들어가서 본 나의 블로그에는 하루에도 수십 많게는 백가지가 넘는 찍어낸 글들과 광고 페이지들로 넘쳐났다. 나는 그것을 마치 "타인"의 블로그를 훔쳐본 것처럼 뒤로가기 혹은 로그아웃을 통해 마음 속에서 비워 냈다.
하기야 나 조차도 녀석을 그저 나의 자랑을 위한 뽐냄의 공간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죄책감 따위는 없었다. 그래, 자랑거리 하나가 줄었다. 그 뿐이었다.
녀석의 가치는 그러했겠지만,
지금 내가 써내려갈 이러한 글들은 조금 다를 것 같다.
서두로 돌아가 "기록한다는 것"의 정의를 내려보자면,
내가 어디선가 살아 있고, 살아 냈었다 라는 일종의 "남김"이다.
나는 나를 남기고 싶다.
혹여 텍스트 덩어리의 수없이 많은 권유와 압박과 회유와 위로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넘어 허무의 공간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났을 때에, 어리석은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이 지구에서, 대한민국에서 삶을 살아냈는지 남기고 싶었다.
불행하게도 그 무대가 "브런치"가 된 것에 깊이 사죄한다만, 나의 남김은 누군가 스치듯 한번이라도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라는 평을 들을지라도, "이런 새끼"라도 되어 어딘가에서 흩날리듯 유영하게 만들고 싶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블로그 보다도 훨씬 이 진실된 남김을 가슴 깊이 간직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끔은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
가끔은 당신들의 이야기.
가끔은, 또 가끔은 내가 지금 흘리고 있는 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과 관련된 이야기도.
다 털어 기록하고 싶다. 그렇게 남기고 싶다.
조금은, 후련한 마음이 드는 걸 보니.
하, 텍스트 새끼한테 진 것 같아 갑자기 기분이 더러워진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한테는 육성으로 고맙다고 이야기 하지 못해도, 녀석에게는 단 일곱번의 타자질로 고맙다고 표현할 수 있으니.
너도 오늘은 받아라. 내 따뜻한 감정이 느껴질지 모를 "고맙다"는 인사를.
뭔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혹, 이 글을 여기까지 본 괴상한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