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뜻인지 묻지마, 몰라, 리뷰도 아냐
왜 이 책을 샀지?
나도 잘 모르겠다.
표지 색이 묘하게 내가 좋아하는 민트색이라서...? 아니면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이라는 문구가 나를 끌어당겨서? 여전히 후킹 따위에 주댕이를 벌리고 냅다 물어버리니, 문제가 심각하다고 다시금 느낀다.
니체라는 양반의 철학적 사상들을 어나니머스라는 분이 나름 엮어 펼쳐낸 책의 50페이지 가량을 읽고 덮으면서, 나는 내가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이 단순 무식한 반복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더하고 덜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1월, 이제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고, 격전의 시간들이 지나갔다. 1월과 2월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나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들었고, 상황과 구설수들에 휘둘리면서 종국엔 사주라던지, MBTI 따위로 확장되기까지 했다.
왜 올해는 삼재인건지, 난 분명 다시 I성향으로 돌아선 것 같은데 여전히 E라고 뜨는 건지, 도대체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서,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위버멘시의 미끼도 안낀 낚시 바늘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누구의 시선도 아닌,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선언"
나는 현재, 렌탈 영업에 몸답고 있는 2개월차 따끈 따끈한 신입이다.
어렸을 때 부터 영업이라는 것을 경험해보고 싶었고(왜?), 이전 회사에서 영업부 대리까지 했었지만 여전히 영업에 대해서는 오리 무중이어서(그 회사는 왜 그만 뒀냐고!)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다시 상경했다.
여기서 내가 '상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서울로 올라갔다 이런 표현은 아니지만, 내가 있었던 곳이 전라남도 광양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올라가는 것 말고는 길이 없어 (내려가면 바다여) 다소 과한 상경이라는 표현을 썼다.
몇몇 분들은 눈치 챘겠지만 나는 '다시'라고 표현 했고, 내가 왜 광양이라는 태어나 처음 들어본 곳에 가서 일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경험들을 했는지 언젠가 그 썰들을 풀어드릴 날이 오리라.
나름 괜찮은 페이,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영업을 경험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도전한 이 곳은 무너지기 직전인 위태로운 곳이었고, 그 속에서 나는 생각보다 나약한 녀석이었다.
나는 굉장히 사회화가 잘 된, 이타적이고 책임감이 높은 병신이다.
그래서 내 윗 사람들이 볼 때 나는 아주 이용해 먹기 좋은 녀석이다. 의지도 있고, 열정도 있다. 출신이 군바리 새끼여서 그런지 명령을 하면 기깔 나게 수행해 낸다. 틀을 정하면 그 틀 안에서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 내려고 하고, 기한을 칼같이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상하간에 예의를 중요시 하는데다, 어느정도 성과도 낸다.
무리한 제안을 해도, 그것이 나에게 손해가 된다고 해도 나에게 내려진 지시라면 일단 하고 후에 결과와 함께 애로 사항을 보고 하는 편이다만 그 조차도 상대방이 불편할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요즘 세상에 장기까지 다 털릴 법한 상 병신이다.
이 대목에서 나와 같은 인재(이 인재가 나에게는 다른 해석이 될 수가 있다, 재앙같은 존재)를 탐내는 선배님들이 계실 수 있겠다. 아무거나 던지면 다 물고 낚여 갈테니 던져만 놓으셔라.
어느 조직이든, 누구든 이런 친구 하나 쯤은 데려다 쓰고 싶었을 테고, 무리해서 도전이랍시고 개념없게 새로운 직장을 선택한 나는 그 직장의 상황이 위태로워지자 후달려지기 시작했다. 흩어지는 조직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다양한 말로 나를 소위 꼬시기 시작했고, 이 괴랄한 FA시장에 던져진 나는 갈팡질팡 지랄염병을 혼자 다하면서 어디 하나 제대로 된 거절을 하지 못하고 음식점 앞에 서 있는 바람 덜들어간 풍선 인간 마냥 휘둘렸다.
왜 나는 이리, 지독하게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와 그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걸까.
누군가는 불러주는게 어디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보다도 내가 그들에 의해서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게 됐다.
나는 휘둘릴수밖에 없는 '수준' 인가.
나 스스로 내 인생의 핸들을 내가 꽉 쥐고 엑셀과 브레이크, 좌우 차선을 넘나들고 가끔은 스포츠 모드로 달릴 수 있는 수준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던져진 선택지들, 나에게 좋은 제안을 해주신 모든 사람들이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그 모든 조건들에 시시각각 휘둘리면서, 거기에서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했던 선택을 다시 번복하고 지옥에 빠진 것 마냥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의 극을 달리고 있는 내가
너무 한심해 보였다.
나는 내 인생을 스스로 이끌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 문장의 무게를 몰랐었기에 사람들 앞에서 멍청이 같이 지껄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인생을 나 스스로 이끌어가고 싶다면, 나 자신이 상처받고 쓰러지고, 고통스러워하고 외로워도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며 여전히 나를 끌고 가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아직 다 깨닫지도 못했어 심지어)
그저 그런 선택지들에 흔들릴 필요없이, 쿨하게 "저는 여기까지, 더 이상 이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처럼 말이다.
그러기엔 나는 여전히 너무나 작은 존재다.
여전히
그래서 위버멘시.
저 후킹 한마디에 꽂혀 냅다 산 책을
50페이지 중간 정도 읽다가
에라이, 글이나 써야겠다.
노트북을 펼쳐서 여기까지 왔다.
책에 대한 이야기는 안할거냐고? 궁금하면 할 의향은 있지만, 여기까지 읽어본 바, 특별히 할 말은 없다. 내 마음에 경종을 울리기엔 너무나 반복적이고 원론적이다. 그저, 멈추지 말란다. 인생을 나아가는 길을 말이다. 다 읽고 나면, 또 마음이 바뀔지도, 세상에 정답은 없으니까.
주저리 주저리 또 한번 뱉어내면서, 이번 달엔 더 많은 글들을 남겨보고 싶다.
기록을 하기에 좋은 시간이어서, 마침 저 책이 나에게 오래된 노트북을 펼쳐 보라고 갑자기 꼬셔서,
비오니까, 그러니까, 그래서 그랬나보다. 대충 이 말, 저 말, 주절거렸나보다.
지금은 어떻게 됐냐고?
어느정도 결론은 내렸지만, 최종 선택은 또 3개월 정도 밀린 상태다.
나름 잘 정리했고, 아쉬움도 남았지만 와씨, 여기까지 쓰면서 지난 시간 복기해보면 위버멘시에서 나왔던 말 문장처럼 나도 "단단해"지고 있었구나 싶다.
좀 가르쳐주라.
잘 거절하는 법, 잘 미움 받을 용기, 나를 더 이기적이게 만드는 법.
역시 이건, 누가 가르쳐 줄 순 없을 것 같고.
인생이라는 녀석과 파도처럼 부딪치며 깨달아 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