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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Nov 14. 2016

진흙탕 속에 진주같은 영화

영화 [스플릿]

 당신이 만약에 이 영화에 대해 잘 몰랐다면, 그랬다면 이 사람이 왜 글의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아무리 봐도 도박에 관련된 영화 같은데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어느 순간 혜성처럼 나타난 <타짜>는 대한민국 영화계에 자극적인 소재를 누가 누가 더 찾나에 혈안이 되게 만들었고 그 이후에 쏟아져 나온 한국 영화의 흥행순위에는 꼭 더 자극적이고 신랄한 소재들을 다룬 영화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극단적인 맛에 취한 대중들이 보기에, 그래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포스터를 통해 그 내용이 적잖이 그려졌었다. 보자마자 <신의 한수> 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바둑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도박으로 연결시킨, 나에게 있어서는 저런 것으로도 도박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색다른 깨달음을 전달해 준 영화. 이 영화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며 그런 나를 반성하고 또 반성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영화는 너무 담백하고 또 기특했다. 



 요즘은 SNS로 전파되지 않는 것들이 없다. 어떤 영화들은 나오기 6개월 전부터 소문이 자자하다. 그 스케일이나 영화에 들어간 비용, 짜릿한 부분만 뽑아내는 예고편 리스트들에 우리 마음은 이미 쿵쾅댄다. 거기에 배우진들은 또 어떤가? 대한민국의 내노라 하는 흥행 보증 수표, 그들이 떡하니 스크린에 등장한다. 팬들은 모두 한껏 열린 마음으로 이미 보지도 못한 영화들에 손을 벌리고 환영하며 무조건 재밌을 거라고 같이 보러 갈 사람을 #태그 한다. 

 이 영화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나도 SNS를 즐겨 보는 편이지만 생각보다 스플릿을 SNS 상에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CGV 영화 순서에 20위 안에 들어있지도 않았던 영화였다. 거기에 배우진들은 오랜만에 스크린에 등장한 유지태씨 말고는 우리가 흔히 말하던 보증된 인재들이 없었다. 

 이런 통설적인 부분들만 봐도 과연 괜찮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볼링이라는 영화와 접목시키기 힘든 스포츠에 도박을 입힌데다가 크게 홍보를 많이 한것도 아니고 배우진도 허술한 것 같은데? 하는 건방진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는다.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스플릿>은 정말 도박과 현실과 인물들 사이의 갈등관계를 이제까지 접해본 어떤 영화들보다 잘 풀어 내고 오히려 마음속에 따뜻함까지 채워주었다. 보고 나면 공허한 가슴에 대한민국에 대한 불신만 쌓이는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너무도 그럴 것 같았던 영화가 오히려 이런 모습을 보여주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스플릿>이 비추고 있는 세상은 역시 각박하고 잔인하다. 잘나가던 볼링 국가대표 철종은 다리를 다쳐 절고 타락한 삶을 살고 있으며 아버지의 유산인 볼링장을 지키기 위해 빌린 돈을 갚으려는 희진은 궁지에 내몰린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이용당하며 거기에 정신적인 장애까지 안고 있는 영훈은 그저 할머니에게 배운대로 볼링을 치며 퍼펙트게임을 원하는 보살핌 없이는 살수 없는 20대 청년이다. 

 이 세명의 삶은 말그대로 그들의 위치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한다. 도박 말고는 돈을 벌 방법이 없는 그들에게 가진 능력이라고는 볼링의 실력 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삶의 가혹한 흐름 속에서 버티는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런 그들의 삶에 영화는 모든 것을 바쳤다. 도박의 자극적인 향기보다, 그 독한 소재보다 이들 세명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철종이 희진과 지내며 영훈을 만나 자극을 받고 변해가며 또한 자신의 트라우마와 과거를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절대로 몰입감을 잃게 하지 않는 스토리 라인과 영훈이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복잡미묘한 감정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나를 만족스럽게 해주었다. 중간 중간 깔아놓은 복선들이 어느 순간 생각치도 못하게 회수될 때는 속으로 탄성이 나오고 볼링의 스트라이크가 하나하나 쳐질때마다 응원하고 두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며 그들의 연기에 만족하고 환호한다. 그들의 삶에 오마주 되어서 고뇌하고 슬퍼하며 안타까워 울기도 한다. 이렇다할 큰 임팩트는 없을지언정 영화만의 느낌은 끝까지 잡아 나가고 결국은 영화가 끝나고 따뜻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오게 된다. 



 느와르 물로 위장한 휴먼드라마 <스플릿>이 당신을 기다린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발버둥 치고 있는 삶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이겨내는 순간이 아름답다. 

 영훈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영화 2시간 동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그를 보며 느꼈을 철종의 감정을 희진의 감정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지칠대로 지친 한 주 속에서 또다시 자극적인 것으로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기 보다 앞서 이야기한 이 담백하고 기특한 영화 <스플릿>과 함께 2시간동안 울고 웃으면서 보냈으면 좋겠다. 

 기억은 명확히 나진 않지만 마무리는 철종의 대사로 하고 싶다. 



퍼펙트 게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다는 영훈에게 철종이
" 퍼펙트 게임은 하늘에서 주는 것이 아니고 네가 네 볼을 믿으면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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