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3 아이덴티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인간의 질병 중에 하나. 내가 개인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했던 질병이었고 그래서 알아보기도 했던 질병이었다. 예전에 한 살인마에 관련된 영상을 본적 있는데 그가 인터뷰 중에 다양한 표정을 지었던 모습이 생각난다. 마치 그 안에 엄청나게 많은 인격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런 인간의 정신적 질병인 ‘해리성 장애’는 다중인격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다중 인격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나라는 존재 외에 내 정신 안에 다른 인격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그 다른 존재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인격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며 또한 본래의 인격이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어느 순간 눈 떠보면 며칠, 몇 달, 몇 년이 지나 늙어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해리성 장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23 아이덴티티’는 한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의 미친 연기력과 함께 널리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3 아이덴티티’는 앞서 말한 대로 해리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다중인격자의 살인과 범죄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광고만 봐서는 충분히 그렇게 느껴진다. 제목 그대로 23개의 인격이 존재한다. 메인 인격은 영화 중간에 등장하지만 몇 년 동안 잠들어 있다. 그를 지키는 나머지 인격들이 그의 몸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와 협력하며 살아간다.
‘불빛’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23개의 인격들은 하나의 방에서 밖으로 드러날 수 있는 의자를 가운데 두고 빙 둘러앉아 있는데 이 ‘불빛’을 가진 자가 인격으로 외부에 드러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가진 ‘배니’가 메인 인격인 ‘케빈’을 보호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를 해 가면서 인격들끼리 드러나는 순간들을 조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많은 인격 가운데서도 ‘패거리’라고 배척받는 3명의 인격이 ‘불빛’의 힘을 빼앗으면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즉, 3명의 소녀가 그들에 의해서 잡혀간 것이다.
영화 속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이 다중 인격에 대한 이야기였다. ‘케빈’을 담당하며 수많은 다중 인격자들을 관리해 주던 박사의 대사 속에서 다중 인격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그들의 삶은 어떠한지에 대해서 소소한 정보들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이 특별한 인격들은 남녀노소 국적과 성향까지 완전히 다르게 갈리며 그렇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메인 인격인 ‘케빈’의 등장 장면이었다. 눈앞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 자신이 한 일임에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또한 자신이 제일 최근에 기억했던 시간이 몇 년 전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당황하는 표정과 함께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살지 못하는 남자. 과연 어떤 기분일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 3명의 ‘패거리’가 궁극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비스트’라고 불리는 24번째 인격을 깨우는 것이다. 그의 먹이가 될 3명의 소녀를 잡아 놓고 그들은 의식을 준비한다. 영화는 색다른 가설을 제기한다. 인격에 따라 한 인간의 능력이 변화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이 ‘비스트’라는 존재는 인격들끼리 조우했을 때 키가 2m가 넘고 온몸이 근육질로 되어 있으며 무엇도 뚫지 못하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고 비유된다. 이 ‘비스트’가 등장한다면 메인 인격이자 몸의 주인인 ‘케빈’을 온전히 지킬 수 있다고 판단 한 것이다.
사실 이 ‘비스트’라는 존재 전까지는 영화에 대한 몰입도나 맥어보이의 연기력에 꾸준히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스트’의 등장으로 산통방통 다 깨졌다.
지킬 앤 하이드처럼 실제로 막강한 능력을 가지고 등장한 24번째 인격 ‘비스트’는 산탄총을 맞고도 잔 스크래치만 나는 경이로운 신체능력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혼돈의 도가니를 선사한다. 결말이 되어서야 ‘과연 이 영화는 영웅을 탄생시키려는 전초전인 것인가?’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어쩌면 후속작을 마블에서 제작할지도 모르겠다.
기대만큼이나 맥어보이의 연기력은 가히 대단했다. 어린 소년의 모습부터 냉혹하면서도 매혹적인 여자의 모습, 결벽증을 가진 남자, 그리고 야성미 넘치는 ‘비스트’의 모습까지. 순간순간을 넘나들며 다양한 인격들을 표출해 내는 그가 실제로 다중인격이 아닐까 의심될 만큼 매력적이고 놀라웠다.
특히 박사를 안심시키기 위해 ‘데니스’라고 하는 결벽증을 가진 인격이 이 인격들을 진정시키고 있었던 ‘배니’라고 하는 인격을 연기하다가 들통 나자 본연의 ‘데니스’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의 표정연기는 기가 막혔다. 그 몇 초간의 적막 속에서 얼굴 표정이 천천히 ‘배니’에서 ‘데니스’로 변해가는 디테일한 연기력은 누가 봐도 손뼉 칠 만 했다. 맥어보이는 이번 영화로 확실히 자신의 연기 능력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조금만 더 현실적으로 이 다중인격에 대해서 다뤄줬다면 더 좋았겠다는 개인적인 평을 남기고 싶다. 굳이 ‘비스트’라는 인격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충분히 다중인격 환자들의 고난이나 혹은 그 위험성에 대해서 소름 끼치게 전달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보다도 맥어보이의 연기력과 매력 넘치는 상대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의 모습을 봤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feat. 김큰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