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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Jun 03. 2017

누군가를 대신해 원치 않을 지옥으로 나아가다.

영화 <대립군>

  대립군.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때는 마치 왕과 대립하거나 혹은 왜군과 대립하는 병사들, 어쩌면 의병을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립군의 대립. 그 의미는 생각보다 어두웠다. 

 돈 많고 부유한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군역을 대신해주고 그 돈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 그들을 대립군이라고 지칭한다. 즉, 누군가를 대신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것도 정당한 모습이 아니라 부정한 모습으로. 그들이 하는 대립질, 그 허깨비의 인생은 죽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 그들의 자식이 다시 그 대립 군역을 이어받는다. 그들에게 현실은 지옥 그 자체다. 그런데 마침 진짜 지옥이 찾아왔다. 바로 임진왜란이다. 

 선조는 나라를 버렸다. 그는 그의 아들 광해를 피신한 평양에서 세자로 책봉하고 그를 '대립' 왕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서로 다른 이의 명패를 대신 달고 전쟁에 나선다. 당신은 이 영화 어떻게 보았는가?



 물론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실제와는 다른 점이 많다고들 한다. 역사에 대해 박학다식하진 않은 나이기에 여기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 않다. 영화는 하나의 문화적 요소이고 심각한 왜곡이나 거짓이 아니라면 그 범위 안에서 감독과 배우가 표현하고 나타내고자 한 바가 비록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드러나더라도 어느 정도 감안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선조가 임진왜란에 도읍인 한양을 버리고 도망친 사실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당대의 영웅 이순신 장군이 그 시기에 왜군을 벌벌 떨게 만들었고 권율 장군이 육지에서 분전했으며 모든 것을 버린 왕을 대신해서 광해군이 한반도에서 의병들을 소집하고 지휘했다. 광해군은 평양에서 선조의 명에 의해 세자에 책봉됐지만 그 이면에는 나라를 버리고 떠나는 조정의 어떤 명분을 위해서 임이 분명했고 광해군은 아버지를 대신한 어쩌면 죽어도 그만인 조선의 왕세자였다.

 선조는 질투가 많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아니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자신은 적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한 신경이 온통 곤두서 있었고 광해군 역시 적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적통을 이으려는 그의 노력이 역사 속에서 보이곤 한다. 또한 적통이 아닌 그의 피해 의식도 역사에서 종종 비친다. 

 그랬던 선조가 거의 버리다시피했던 조선이 몇몇의 영웅들에 의해 되 살아나기 시작했으며 민심은 그들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런 민심 중에 한 축은 그의 아들 광해군이 차지하고 있었다. 선조에게 광해군은 버려진 자식에서 라이벌의 존재로 변해 있던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그때 당시의 상황이다. 그 안에 광해군이 어떤 모습으로 아버지의 명을 받았고 어떤 모습으로 활동했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립"의 모습과 더불어 "진정한 왕"의 모습이었다.



 지금부터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영화의 감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당시의 광해군도 그리고 당시의 대립군들도 같은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임무를 대신해서 목숨을 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선택권이 없는 삶이었다. 
 이정재의 굵직한 목소리가 그렇게 가슴을 때린다. 대립군들의 모습과 그들의 대사들이 그렇게 마음을 시리게 한다. 
 자신들의 식솔을 위해 살아남기 힘든 전장 속에서 몸을 던져 생을 연명하는 대립군의 현실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대립군은 말 그대로 누군가를 대신해서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일종의 불법적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현재의 불법 체류자들을 약점 잡아 부려먹는 몇몇 악덕 업주처럼 그들을 부려먹는 관아의 관료들이 밉고 또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뭐가 다른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조선 시대는 그런 사회였을까?
 
 북쪽으로는 언제나 오랑캐들이 몰려들고 바다에는 왜놈들이 날뛰며 육지에는 관료들의 횡포에 고개를 들 수조차 없는 그런 사회에서 살아야 했던 우리의 선조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갔을까? 

 그런 대립군과 함께 급히 세자로 책봉되어 어쩌다 보니 임진왜란을 막아내야 했던 광해군이 겪었을 당혹감은 어땠을까? 태평성대에 왕세자가 되어도 권력의 소용돌이라고 일컬어지는 조정에서 자기 앞가림하기에 급급했을 텐데 나라가 거의 망했다시피 되어버린 비극의 시대에서 왕의 어처구니없는 조치도 기꺼이 이겨내야 했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모든 것에 어리숙하고 모든 것이 공포 그 자체였던 영화 속 광해군은 뒤틀리고 흔들리는 마음속에서도 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리고 정립되지 않는 정신으로 그는 임진왜란 속에서 진정한 왕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간다. 
 그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어느새 자신의 백성을 잃는 것이 되었다. 그는 그렇게 왕의 깃발 속 두 마리의 용. 그 의미를 스스로 느끼고 깨닫게 된다. 비록 역사적 사실과 크게 다른 모습일지라도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말과 같다. 나라의 주인은 하나가 아니다. 그 나라의 모든 사람이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9 할이다. 

 모든 배우가 정말 혼연일체로 그 몫을 다 해냈고 정말 덕분에 완전히 몰입해서 보게 되었다. 그 당시의 시대상을 잘 표현해 냈고 역사적 사실과 다를지라도 당시 백성들의 처지가 어땠을지 많이 공감되었다. 감초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력도 좋았고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몇몇 배우들의 모습도 반가웠다.  

 이 영화 정말 즐겁게, 또 슬프고 원통하게 봤다. 이 사회에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대립'의 존재도 재점검해 볼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을 떠나 그 안에 이들이 담고자 했던 의미를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어떨까. 

 feat. 김큰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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