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린 나

by Logun

#1. 나의 아버지는 해군이셨다.


나의 어린 시절, 가장 큰 파도는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바다에서 파도와 싸우신 분이셨다. 그리고 그 파도는 온전히 나에게도 밀려오고 때로는 쓸려가면서 어린 내 마음을 뒤흔들곤 했다. 아버지는 세상과 싸우신 분이셨다. 그 시대, 군대는 아버지의 세상이었고 아버지는 그 세상에서 온전히 모든 것들과 싸워내셨다. 격동의 시절 80년대 후반부터 군 생활을 해 오셨던 아버지는 33년의 길고 치열한 시간을 군대 안에서 보내셨다. 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는 나에게 아버지의 복무기간은 가히 놀라운 시간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는 먹고살기 위해서 군인을 선택하셨다고 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고, 꿈이 있었지만 집안 형편상 인문 고등학교를 나온 자신에게 대학을 보내줄 수 없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서울로 상경하여 공장을 전전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다 삼촌이 군대 가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돈도 준다는 말에 경상남도 진해까지 한참을 달려 해군으로 입대했다고 했다. 군인이 어떤 세계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그만하면 먹고살겠다 싶은 그 마음에 군인이 되셨다고.


그 당시에는 세상이 그랬다. 서민의 삶은 고단했고 먹고살기 힘든 집들이 태반이었다. 지금도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만 그래도 참 좋아진 세상이라고 어른들이 말씀하시는데 아버지는 그런 어른들의 젊은 날을 살았던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그럼에도 열정적으로 군 생활을 하셨다. 배에서 포를 쏘는 임무를 수행하시다가 컴퓨터가 막 군대에 들어오던 시절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 새로운 것에 도전하셨고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셨다. 물론 그 사이에 수많은 난관들이 존재했고 어려움과 고통들을 감내해야 했다.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던 이야기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 배에서 복무했던 때의 일인데 휴가를 나가기 위해서는 당시 자신의 선배들에게 휴가를 다녀오겠노라 신고를 했어야 했다. 해군의 제복은 종류도 다양하고 소위 ‘멋’도 난다. 그중에서도 흰색 제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밝은 하얀색이 특징인데 그 옷을 입고 배 곳곳에 ‘일부로’ 숨어있는 선배들을 수색하다시피 찾아내어 신고를 하고 나가야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의 숨바꼭질 끝에 모든 선배들에게 신고를 하고 밖으로 나오면 하얀 옷은 군데군데 지저분해져 있었으며 오후 늦게야 넘어서야 진해 벗어나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탈 수 있었고, 당시 아버지의 고향은 강원도였기 때문에 거의 휴가의 하루를 온전히 날려버리는 것과 같았다.


지금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었다고 아버지는 껄껄 웃으셨다. 그리곤 요즘 군인들 복무여건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신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말이 되었던 시절 아버지는 그렇게 해군으로서 살아가셨다.


#2. 군인이 되어라.


아버지는 내게 군인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꿈이 작가였고, 작가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다. 사실 중학교 시절에 당시 유행했던 판타지 소설을 인터넷 사이트에 연재 중이었는데 그 소설이 나름 조회수도 많았고 인기도 있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고등학교를 가지 않고 글을 쓰며 살겠다고 당당히 밝힌 적이 있다. 그때부터 아버지와의 극명한 대립이 시작됐다.


군인 아버지 하면 딱딱하고 엄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나의 아버지는 그렇지 않은 분이셨다. 차분하셨고 또 나의 생각을 존중해주실 줄 아는 분이셨다. 그렇기에 나 역시도 그 시절 아버지와의 대립 속에 나만의 주장을 무턱대고 밀고 나갈 수 없었다. 아마 아버지께서 우리의 상상 속 딱딱하고 무뚝뚝한 모습이었다면 나도 모를 반항심에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조목조목 나의 의견에 반대되는 ‘현실’을 알려주셨다. 나는 그 무서운 ‘현실’에 나의 ‘이상’이 처참히 부서지는 것을 느끼면서 작지만 원대했던 꿈은 어쩔 수 없이 고이 접어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려 보내야 했다. 미래의 어느 날 내가 주워 돌이켜 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군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냥 회사원인 줄 알았다. 나는 지나가는 빨간 자동차를 운전하고 싶었고 그래서 장래희망에 소방관이라고 적었었다. 한참을 소방관이었던 나의 꿈이 작가가 됐을 무렵에 나는 군인을 생각해보게 됐다. 해군이 아닌 육군 부사관으로서의 삶을 생각해보게 됐다. 대학도 그에 관련된 전문대 특수 학과를 결정하게 됐고 고등학교 3년을 그 대학 생각하면서 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적어내라고 했을 때 나는 당당히 내가 가고자 하는 군 관련 전문대를 하나만 적어 냈고 선생님은 나를 특이한 녀석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그때는 그것이 옳은 길이라 믿었다. 아버지의 설득은 상당히 신뢰가 갔으며 나 역 서서히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안정성을 갈망했다.


아니.

그래, 솔직히 말하면 사실은 일종의 회피였다. 작가가 되겠다고 말한 것은 무턱대고 치밀어 오른 욕구와 갈망이었다.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정말 너무나 즐거웠고 행복했기에 당연히 이런 직업을 갖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작가로 살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라고 믿었다. 그것은 나의 ‘이상’이었다. 아마 그때의 나는 순백이었던 것 같다. 세상이 어떤 건지,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TV 속 동물의 왕국에서나 보던 적자생존의 사파리가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도 알지 못하고 오직 하고 싶다는 의지만 있었던 도화지였다. 그리고 도화지 같던 ‘이상’ 앞에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면밀히 드러난 ‘현실’은 어느새 겹겹이 칠해져 두려움이 되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와 ‘열정’이 나에게는 없었다. 무엇보다 또래 친구들이 고민하는 취업과 나아갈 대학에 대한 걱정 없이 고등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나는 그렇게 나를 낮추고 만족했다.


#3. 그 시절의 나.


스스로에 대한 회피는 적당한 만족감을 주었다. 포기라는 이름을 포장해 나는 성취를 얻어냈다. 고등학교 시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성적을 받고 자연스럽게 누구보다 먼저 수시에 합격했다. 종종 야간 자율학습을 도망치기도 했고 수능 당일에는 오전 10시에 일어나 PC방에 가는 쾌거 아닌 쾌거를 달성했다. 마음속에 ‘나도 하면 되는구나’하는 자신감을 가졌지만 그것은 나 스스로 나 자신을 낮춰낸 결과였다.


비록 꺾일지언정 높이 비상해도 좋을 뜨거운 나이에 나는 이미 적당한 높이에서 적당한 온도를 즐기며 적당한 삶을 위해서 나아가고 있었다. 나의 바다는 잔잔했고 적절한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에 몸을 맡기고 펼쳐질 적절한 인생을 기대했다.


“나는 포기한 것이 아니야.”


가끔 내 가슴속에서 이런 문장이 회오리쳤지만 억지로 그것을 외면하면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을 미적지근하게 보내고 말았다. 단 한 번도 담대히 칼을 뽑아보지 못한 그날의 내가 사무치게 후회되기도 한다. 역사를 바꿀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 역사 속의 선택을 논해보곤 한다. 나도 그날의 선택을 논해본다. 내가 만약 군인이 되지 않고, 고등학교를 가지 않으며 작가로서 더욱더 노력했다면 나는 행복했을까? 지금의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혹시 다른 세계가 있다면, 그곳의 또 다른 내가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면 묻고 싶다. “너는 행복하니?”라고 말이다. 그럴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기에 나는 평생을 이런 물음표를 달고 살아갈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미대에 진학한 내 친구였다. 친구는 나보다 공부도 잘했고 내가 다니던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훨씬 똑똑한 친구들이 모여 있다는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나 친구는 그림을 좋아했다. 중학교 때 내가 끄적거려 놓은 소설들에 등장인물을 종종 그려주곤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글과 그림으로 소통했고 녀석은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자신의 소신대로 미대에 합격했다. 만화를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또 나처럼 안정된 삶을 선택하지도 않았지만 이제 막 취업을 준비하는 그이지만 나는 그가 부러웠다. 그는 소신이 있었고 나에겐 없는 용기가 내 두려움의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분명 그와 나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오히려 그가 나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이런 고민들과 서로의 삶에 대한 비교 아닌 비교가 우리 청춘들 속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참 너무나 쉽게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한다. 그 시절의 나도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명확했다.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없었다. 아마 미친놈처럼 매달릴 수 있었고 경주마처럼 달려볼 수 있었지만 나는 미친놈도, 경주마도 되지 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그 시절에 나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뜨겁기만 할 것 같던 10대의 끝. 20대의 시작 선에서 나는 빨리도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고 ‘현실’을 직시했고 나 스스로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단정 지으며 쳐다보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그랬고, 지금의 나는 가끔 그때의 나를 후회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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