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좀 이상한 날이었다.
무려 남자친구 할머니의 소풍길에 나도 따라가게 됐으니까.
할머니께서 오래 살아오신 마을 언덕 위에서
우리는 어색한 첫 인사를 나눴다.
사람보다 바람이 더 많을 것 같은 동네에는
새벽 이슬을 품은 보리밭이 길게 누워 있었다.
관광버스 탑승자 명단에 어느덧 내 이름을 올리고
낯선 어르신들 틈에 섞여 앉아 있었다.
의무도, 간곡한 부탁도 아니었는데
그냥 따라가보고 싶었다.
마음 속 여백이 많은 요즘,
내게 이런 하루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게만 느껴졌다.
진심은 때로 허술한 사이에서 자라는 법이니까.
좋아하는 사람의 하루에 작게라도 붙어 있고 싶었던 익숙한 마음 하나와
누군가의 보호자를 감당하고 싶던 낯선 마음은 뒤엉켜
나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았다.
할머니는 내게 말을 많이 걸지 않으셨다.
하지만 조용함 안에서도 어떤 종류의 다정함은 설명없이 건너온다.
식사 때마다 많이, 더 먹으라며 몇번이고 반복하시던 말씀은
더 곁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다.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할머니는 작게 말씀하셨다.
“너희 아니었으면, 나 오늘 못 갔어.”
그날 나는 낯선 마을길을 걸으며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마음을 배웠다.
내가 알지 못했던 누군가의 오랜 생을 조금은 애틋하게 바라보게 된 하루.
나는 여전히 쉬는 중이라
예고없이 스며든 다정함에
조용히 마음을 풀어놓기도 한다.
어쩌면 휴식은 멈춤이 아니라
마음을 다시 따라가 보는 연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