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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자녀, 부모가 상처받지 않는 3가지 마인드셋

by 김은재

“뭐래.”

“어쩌라고.”

“왜.”

“내 일에 간섭하지 마.”

“진짜 그러지 좀 마.”

“내가 알아서 한다고.”

“쫌!!!!”


10대 자녀를 키우다 보면, 종종 날 선 말투와 차가운 태도를 마주하게 된다.


거친 말, 흘겨보는 흰 눈자위, 가팔라지고 격앙된 목소리. 부모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태도. 이제는 부모보다는 친구를 최고인 줄 알기.


이 모든 것들이 종합 재앙 세트처럼 따라온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당황하거나 상처받기 쉽다.


KakaoTalk_20241227_143746976_10.jpg ⓒ MBC 무한도전, 자녀가 10대가 되면 거칠어진다. 자연의 섭리다.

어릴 때 아이들은 엄마 껌딱지다. 엄마가 화장실을 갈 때조차 엄마를 찾아, 엄마들을 강제 오픈 배변 행위자로 만들었던 존재였다.


엄마가 지칠 때까지 집착하고 맹목적 애정을 주던 그 꼬맹이는 이제 사라졌다.


대신 방문을 열자마자, 부모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는 낯선 생명체가 있다.


“나가.”


뭐야? 내가 바퀴벌레야? 마치 혐오스러운 바퀴 벌레를 보듯, 부모가 빨리 나가주기만을 바란다.


그런 아이의 눈빛을 대할 때, 마음이 쿵 내려앉지 않을 부모는 없다. 부모가 당황함에 주저하면 다시 한번 아이가 쐐기를 박는다.


“내 방에서 나가라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부모는 아이가 자기와 멀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아직 손 갈 데가 많은 아이인데, 부모로서의 통제력을 잃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는 건 당연하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부모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너 나가서도 그렇게 싸가지없이 말하고 다니니?”라고 호되게 야단을 쳐야 할까?


아니면 “이 방이 왜 니 거야? 이거 엄마 아빠 집이야.”라고 치사하게 우겨야 할까? 아직도 부모는 네 존재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주장해야 할까?


이뿐만이 아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의존하던 마음의 공간을 슬슬 줄여나간다.


내 중3 아들도 그렇다.


친구들 생일에는 정성껏 생일 선물 기프티콘을 고르면서, 내 생일에는 내가 읍소하며 엎드려 절 받듯, 선물을 받아내야 한다. 아이는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도, 활동도 먼저 제한을 둔다.


얼마 전 아들에게 영화 보러 가자고 했더니. “내가, 엄마랑 영화를? 왜?”라고 어이없어했다. 대신 저녁에 친구가 잠깐 나오라고 부르니 영하의 날씨에도 뽀르르 나갔다.


이렇게 부모와 거리를 서서히 만들어 가는 아이들, 까칠해진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섭섭하다고 하소연하지 않고, 배신감 느낀다고 허탈해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


당연히 있다.


이제부터 10대가 되어 갑자기 거리감 느껴지는 아이에게 상처받지 않는 원칙 세 가지 마인드셋을 소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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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아이가 자기만의 세상을 탐색해 나갈 때, 부모는 이를 격려해 주어야 한다. 부모는 통제자가 아니라 격려자가 되어야 한다.



1. 첫 번째 마인드셋: 아이의 행동을 배신이 아니라 성장으로 받아들여라


#가족 여행 대신 축구 대항전을 간다고?


동료가 하소연을 했다. 중3 둘째 아이가 가족을 배신했단다.


5월 재량휴업일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그 가족은 해 년마다 동해안에 펜션을 잡고 2박 3일 여행을 했다. 매년 되풀이되는 연례행사였다. 그런데 중3 둘째 아이가 이렇게 얘기했단다.


여행 가는 날이 학교별 축구 대항전이랑 겹쳤어. 내가 주전인데, 빠질 수가 없어. 나, 가족 여행 안 가면 안 돼?”하면서 엄마 눈치를 보더란다.


아이는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제일 축구를 잘한다는 평을 들었고, 학교 대항전에 꼭 나가고 싶어 했다.


그 동료는 아이를 화가 나서 아이를 나무랐다고 했다.


“정말 실망이다. 어떻게 가족 여행을 안 가겠다는 말을 해? 넌 더 이상 가족이 중요하지 않구나! 이건 배신이야, 배신!


동료는 그런 생각을 한 아들이 괘씸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한탄했다.


그깟 축구가 뭐가 중요하다고, 축구는 점심시간에도, 주말에도 할 수 있는데, 가족 여행을 안 간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족 여행을 빠진다는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섭섭하다고 했다. 그때 내가 해 준 말은 이것이었다.


“배신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것이니 축하해 줘야 할 일 같아요.”


<인사이듯 아웃 2>를 극장에서 보았다. 같이 영화를 보던 내 또래 부모들이 일제히 탄식하던 장면이 있었다.


영화 시작에 사춘기를 맞이한 라일리의 뇌 풍경이 펼쳐졌다. 1편에서는 풍성하고 화려하던 라일리 두뇌 속 ‘가족 섬’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대신 ‘우정 섬’이 화려하게 변해 있었다. 이 장면을 보던 수많은 부모들이 동시에 “아!”하고 깨달음의 소리를 냈다.


‘우리 애만 그런 게 아니구나.’


맞다.


10대가 되면 아이는 가족 이외의 관계를 중시한다.


오죽하면 심리 치료사 존 브래드쇼가 청소년기 친구 관계를 '또래 관계 부모'라고 했을까.


10대 아이에게는 또래 관계에게 인정받는 것이 부모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중요하다.


이게 인간의 보편적 성장 원리다. 그걸 배신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인간은 평생 동안 시기마다 8개의 발달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청소년기에는 ‘소속감’을 느끼며, 세상을 ‘탐색’하는 과제를 실행해야 한다.


동료의 아이는 축구를 하면서 ‘소속감’을 느끼고, 축구를 하면서 자신과 친구들과 세상을 ‘탐색’하는 과제를 훌륭히 수행하려던 것뿐이다.


청소년기의 가장 큰 욕구는 부모로부터 독립하하는 준비를 하는 것이다.


아들이 아기 때,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가 기억난다.


친정 식구들과 남편이 모여서 아이가 뒤집는 걸 손뼉 치며 응원하던 게 기억난다.

무척이나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 뒤로도 아이는 혼자 걷기, 혼자 밥 먹기, 학교에 혼자 등하교하기, 숙제 스스로 하기 등등 크고 작은 과제를 하나씩 완수해 나가며 성장하고 있다.


그런 과제처럼 10대에 해야 하는 과제가 바로 ‘부모로부터 독립 준비’인 것이다. 걷기, 말하기 등 과제를 할 때는 부모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쳐준다.


그러나 자녀가 독립하려는 과제를 시도하면 부모가 씁쓸해한다.


나는 내 아이의 양육 목표를 ‘입시’로 잡고 있지 않다. ‘독립’으로 잡고 있다.


내 아이가 언젠가는 내 품에서 경제적, 정서적으로 온전히 독립하게 만들어 주는 것.


많은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가 ‘독립’을 부모의 양육 목표로 말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아이가 10대가 되어 밖에서 친구를 사귀고, 취미에 몰두하는 걸 보고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가 이를 통해 가족 밖에서 자기가 뭘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어떤 사람들과 있을 때 편안한지 찾는 걸 격려한다.


10대에게 이제는 부모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는 부모 이외의 세상을 탐색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시간을 통해 아이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발견하고, 사회적 스킬을 배운다. 정서적 자존감도 얻는다. 이런 경험은 성숙한 어른이 되는데 중요한 자원이 된다.


10대의 독립 투쟁을 응원해 주자. 당연히 친구 관계가 가족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취미가 가족 활동보다 우선시 될 수 있다.


그럴 때, 그런 욕구를 배신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아이가 자연스럽게 잘 커가고 있구나.’라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중3 아들이 나와 영화를 안 본다고 할 때도, 나는 속으로 ‘어, 다 컸네.’라고 기특해했다.


결국 동료의 아이는 가족 여행 대신 축구 대항전을 나갔다. 그 아이는 축구 대항전을 허락해 준 엄마를 다시 봤다며 무척이나 고마워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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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사춘기 아이들이 까칠한 건, 12월 초 날씨가 추운 것과 같은 자연의 섭리!




2. 두 번째 마인드셋: 사춘기를 12월 초 날씨라고 생각하라.


아들이 중2 때, 무척 말을 날카롭게 했다. 마치 잘 간 회칼을 마구 휘두르는 느낌으로 말을 한달까.


우리 아들의 주특기는 눈 흘기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지 마.”라고 말하며 쏘아붙이기.


내가 뭐라고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말을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항적으로 “뭐? 뭐?”라고 한 게 기본값이었다. 아. 다시 떠올려도 재수 없다.


그래도 나는 아이의 이런 태도 때문에 아이와 싸우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사춘기는 12월 초 날씨다’라는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12월 초는 원래 춥다. 우리는 12월이 되어서, 반 팔을 입고 나와서 왜 춥냐고 투덜대지 않는다.


적당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두꺼운 스웨터, 패딩을 준비해서 외출한다.


준비를 단단히 한다고 해서 안 추운가? 아니다. 춥다.


그래도 추위에 떨지는 않는다. 그리고 ‘왜 이 계절엔 이렇게 추워?’라고 억울해하지 않는다. ‘그냥 초겨울이니까 춥지’라고 그러려니 한다.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가끔 12월 날씨가 봄날처럼 포근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때는 그냥 고마워하면 된다. 날씨가 다시 매섭게 추워진다면? 다시 옷을 껴입으면 된다.


봄이 아닌데, 왜 12월이 따뜻하지 않냐고 투덜대면 안 된다. 나만 스트레스받는다.


사춘기 대하는 아이들 마음도 이와 같다.


교실에서 사춘기 아이들을 지도할 때, 나는 “얘들은 12월 초 날씨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대하고 있다.


왜 그들이 12월 초 날씨 같은지는 10대의 뇌 공부를 하고 나서 완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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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10대의 뇌 사정을 알게 되면, 분노보다는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된다.



서울대 소아청소년정신과 김붕년 교수는 <10대 놀라운 뇌 불안한 뇌 아픈 뇌>에서 10대 뇌의 특징을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전두엽 리모델링으로 전두엽 기능이 미숙하다는 점을 꼽는다. 전두엽이 미숙하면 상황 이해력이 떨어지고 분노와 공격성이 올라간다. 부정적 감정의 발작 버튼이 수시로 눌린다.


계획을 세우거나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해진다. 상황을 멀리 못 보고, 충동 조절을 못 하고 인내심, 집중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인다. 자기 행동 결과를 예측 못 하고 충동적 행동만 한다. 멀리 내다보는 행동보다는 당장 눈앞의 문제만 생각한다.


아, 우리 집에 있는 '거칠고 모자라 보이는' 아이의 특징 아닌가!


딱한 건 더 있다. 10대 뇌의 두 번째 특징인데,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되어 편도체를 예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자애들은 짜증이 늘고, 남자애들은 공격 성향이 는다. 공포, 불안, 예민성이 증가한다.


작은 위협도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여기고 공격성이 증가한다.


교실에서 날뛰던 그 아이들, 거칠게 굴던 내 아이가 그런 모습을 보인 게, ‘리모델링 중인 뇌 탓이다’라고 여기니 화가 안 났다.


또 다른 뇌과학 책을 읽다가, '10대 남자애들의 뇌는 블랙아웃을 경험한다’라는 구절을 읽고 탄식한 적도 있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을 못하고 멍하게 있던 많은 남자애들이 떠올랐다.


고1 담임을 할 때, 항상 멍하게 있어 별명이 '멍돌이'였던 부반장이 생각난다. 그때는 그 애가 유난히 집중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뇌의 모든 전원이 내려진 블랙아웃 상태였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지금 그 '멍돌이'는 영등포구에서 맛집 사장님이 되어 돈 잘 벌고 잘 살고 있다.


또 뇌과학 책을 읽다 보니, 남자애들의 뇌가 여자애들의 뇌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감정을 조절해 주는 호르몬은 안 나오고, 충동성과 공격성을 부르는 호르몬은 왕성하게 분비된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아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갖게 된다.


이런 변화를 ‘아이 네 탓이다’라고 생각하면 오해가 싹트고 미움이 싹튼다.


그러니 관점을 바꿔 보자. 10대 애들이 부모에게 분노하고 짜증 내고,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단순히 부모가 미워서가 아니라고 이해해야 한다.


아이가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아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성 판단, 감정 조절 뇌 기능이 그 시기에 일시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모를 골탕 먹이려고, 화나게 하려고, 반항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학생들을 지도하며 체득한, 대한민국 가정의 평화를 지켜주는 수칙 하나를 제안한다.


‘아이의 표정, 말투로 혼내지 않는다.


“너 지금 알았다고 말하는 애 표정이 그게 뭐야?”

“왜 말투가 그렇게 까칠해?”


이런 건 정말 세상 쓸데없는 소모적인 싸움이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따끔하게 혼내고 아이가 받아들였다면, 그것으로 끝!


아이는 이미 자기가 잘못한 걸 알고 있다.


내 마음에 흡족할 때까지 상냥한 표정과 말투로 애들이 부모를 대해 줘야 한다는 생각만 버려도 싸울 일이 확 준다.


그때는 그걸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아이가 예의 없이 말하고 표정 짓는 걸, 내버려 두어 밖에서도 그러면 어떡하냐고? 집에서의 아이와 사회적 가면을 쓴 아이들의 행동은 다르다.


즉, 웬만한 애들은 밖에서 잘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집 밖에서 교사들이나 친구들과 갈등이 있는 아이들은 절대 말투나 표정을 고치라고 닦달한다고 좋아지지 않는다.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이런 아이들이 ‘트러블 메이커’가 된 데는 다른 심리학적 이유가 있다.


아들이 중3이 되었을 때, 그런 말을 한 적 있다.


“6학년 때는 아주 조그맣게 느껴졌던 감정이 중2 때는 정말 크게 느껴져서 나도 당황했어.”


아이들도 그런 자기 모습에 자기도 속으로 당황하고 있다. 자기 마음을 자기도 못 다스려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이런 아이들을 따뜻한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봐 주어야 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짜증을 내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 후, 조금 있다가 싱글벙글 웃으며 "오늘 간식이 뭐야?"라고 말할 때, "너 이중인격자니? 지킬 박사와 하이드 납셨네.”라고 비꼬면 안 된다.


“엄마한테 그렇게 말해 놓고 간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라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그럴 때는 웃으면서 “뭐 먹고 싶어? 준비해 줄게.”라고 말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리고 기쁜 소식 하나!


부모가 이 시기를 흉터 없이 잘 참아주고 견뎌내면, 반드시 12월 날씨는 끝이 난다는 사실!


사춘기는 긴 터널이다.


이 터널은 반드시 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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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사춘기는 터널, 반드시 끝이 있다.


프롤로그에 나온 민우가 고2가 되었을 때, 민우와 엄마를 커피숍에서 따로 만난 적 있다.


청소년 도서를 쓰는 작가의 마음으로 그 모자가 현재는 어떻게 지내는지 인터뷰를 했다.


3년의 시간이 흐르고 만난, 민우 엄마는 꼭 딴 사람 같았다. 민우 엄마를 보고 내가 건넨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정말 민우 엄마 맞으세요?”


온몸에 힘이 빠져 흐느껴 울고 괴로워하던 민우 엄마는 온 데 간 데 없고 생기 있는 엄마가 나를 맞았다. 민우와는 지금 정말 잘 지내고 있다고 했고, 민우도 고등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었다.


민우 엄마는 민우가 당시 그랬던 걸 회상해 보았다. 중 2 겨울 봄방학 때부터 애가 변해서 딱 1년 후 괜찮아졌다고 했다.


민우만 그런 게 아니다. 딱 1년, 대게 시기는 중2 때, 아이들은 사춘기를 겪는다. 지난 학교 근무하던 때, 모범생이던 고1 여학생을 인터뷰한 적 있다. 자기가 중2 때 얼마나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 담담하게 말했다.


당시 그 아이 모습으로는 그 아이가 그렇게 사고 치고 다니는 ‘일진’이었다는 것이 연상하기 힘들었다. 아이는 극 중3 어느 순간, 방황하던 마음을 딱 정리되었다고 했다.


“선생님, 지금도 그때 놀던 아이들이 동네 공원에서 담배 피우자고 연락 오거든요? 이것 보세요. 근데 저는 이제 답 안 해요. 저, 대학 가야죠.”


아이의 눈빛이 고요한 호수처럼 차분했다.


이 시기, 부모가 갑자기 돌변한 아이 때문에 상처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누구보다 힘든 건 생애 처음 자기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아이 그 자신이다.


그런 아이와 싸우지 않아도 될 사안으로 싸워서, 아이 마음에 상처 내지 않으면 된다. 부모가 안절부절못하며 부모의 불안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는다면 괜찮다.


아이를 조금 더 넉넉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받아주면서 이 시기를 견뎌보자.


자녀는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자기를 묵묵히 지지해 주는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반드시 이 혼란의 시기는 지나간다는 걸 믿자.



3. 세 번째 마인드셋: 아이의 양가감정을 알아봐 주자.


국어 교사다 보니, 아이들 독서 지도를 할 때가 많다. 사춘기 여학생들이 폭발적으로 좋아한 책이 있다.


바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책이다. 이 책이 유행할 때 한 반에 몇 명은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작가에게 큰 공감과 위로를 얻었다고 하면서.


사실 어른들이 이 책을 읽으면 “어쩌라고?”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 가령 이런 식이다. 글쓴이가 어떤 모임에 간 상황.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단다. 그런데 막상 주목을 받게 되자 그 시선이 너무 싫었단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지?” 바로 이 지점에서 아이들이 열광했다. 작가가 자기의 양가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주었기 때문이란다. 사춘기 아이들이 딱 그런 마음이니까!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부모에게 간섭받기는 싫지만, 부모에게 사랑은 받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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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식대학,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이 저렇다. "부모를 좋아해. 하지만! 증오해..."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는 사춘기의 모순적 태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사춘기란 하루는 부모를 증오하면서도, 하루는 부모와 진정으로 가슴 깊은 대화하길 바란다."


만약 자녀가 대화를 하자고 했는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일이 발생했다고 치자.


그럼 부모는 이것을 “이제 내 아이가 나랑 소통하기를 원하지 않는구나.”라고 받아들이고 혼자서 좌절하고 슬퍼하면 안 된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구나.”라고 자녀의 생각을 존중해 주면 된다.


대신 “언제든 네가 필요한 때, 말하고 싶을 때, 나한테 와. 내가 들어줄게.”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이면, 아이는 반드시 부모에게 기대 온다.


그럴 때 부모가 경멸의 눈으로 “너 잘났다며? 네가 달 알아서 한다며? 그런 걸 엄마한테 왜 물어봐?”라고 빈정거려서는 안 된다.


“너 아까는 문 쾅 닫고 나한테 나가라며? 왜 갑자기 나한테 웃으면서 와? 너 혹시 필요한 거 있니?”라고 아이의 자연스러운 양가감정을 비난해서도 안 된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랬구나. 같이 얘기해 보자.”라고 따뜻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


독립해 보고자 애를 쓰고 있는 이 아이들에게는 아직은 부모라는 절대적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결론 : 관계의 주도권은 어른에게 있다.


내가 수천 명 아이들을 학교 현장에서, 그리고 강연장에서 만나고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관계의 주도권은 어른에게 있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갈등이 생겨서 힘들다면? 반드시 어른이 아이에게 맞춰줘야 한다. 성장 수준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 눈높이로 가서, 돕고 성장을 끌어 주어야 한다. 자녀에게 부모의 수준까지 올라오라고 할 수 없다.


사춘기 자녀와의 갈등 속에서도 부모가 관계를 주도하고 이해와 지지를 유지한다면, 이 시기를 훌륭히 넘어설 수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현상이 아니라 본질을 보아야 한다.


10대라는 폭풍적인 성장의 시기라는 본질을 이해하면 상처받을 일이 없다.


변해버린 아이 때문에 화가 치밀고, 상처받는 마음이 든다면 이 세 가지 마인드셋을 떠올려 보자.


아이를 믿고, 스스로를 지키자.


아이에게 상처받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를 성장시키는 부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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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아이의 변화는 아이가 변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변할 때 생긴다.




<오늘 글 요약 : 갑자기 멀어진 사춘기 자녀, 부모가 상처받지 않는 3가지 원칙>


1. 첫 번째 마인드셋 : 아이의 행동을 배신이 아니라 성장으로 받아들여 보세요.


– 자녀의 독립 욕구를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격려해 주세요.


2. 두 번째 마인드셋 : 사춘기를 12월 초 날씨라고 생각해 보세요.


- 사춘기는 뇌의 발달 과정으로 일시적으로 예민해지는 시기, 반드시 끝나는 터널입니다.


3. 세 번째 마인드셋 : 아이의 양가감정을 알아봐 주세요.


- 부모를 밀어내면서도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복잡한 마음을 인정하고 따뜻하게 지지해 주세요.


관계의 주도권은 어른인 부모에게 있으니까요.


아이에게 상처받는 부모가 아니라, 아이를 성장시키는 부모가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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