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듣는 플레이리스트에 악뮤에서 솔로 앨범을 낸 수현 양의 'Alien'이 들어있다. K팝스타를 원래 좋아했었고, 이미 완성된 가수보다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는 악뮤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였다.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매력적이었고, 특히 동생 수현 양은 청량한 목소리와 자신감 있는 태도 때문에 좋아하고 있었다. 이번에 솔로 앨범이 나왔다고 해서 들어봤더니, 역시는 역시였다. 독특하고 재치 있는 가사는 여전했지만 엄마가 딸이 외계인이라고 고백하는 내용이 놀랍지는 않았다.
우리 집에도 있는 일이다. 딸이 외계인.
서로가 대화하기가 어렵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점점 가둬둘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가는 너의 힘과 목소리'
노래 가사와는 반대로, 우리 집 외계인의 목소리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작다. 원래도 작은 데다가 혼잣말인지 나에게 말하는 것인지 노상 헷갈린다. 딸이 말을 할라치면, 나도 모르게 딸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딸이 말했는데 내가 한 번에 못 알아듣고 두 번 심지어 세 번까지 물어보면, '아, 됐어' 짜증을 내고는 한동안 닫힌 입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보다 더하다. 분명히 셋이 같이 있을 때 한 말인데, 나중에 내게 따로 물어본다. '아까 뭐라고 말한 거야?' '지금 화가 난 거야?' 말도 못 알아들었을뿐더러, 지금 딸의 기분이 어떤지도 파악이 안 된다. 나는 딸 언어영역에서 듣기 평가만 신경 쓰면 되지만, 남편은 구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 낙제점수이다.
하지만, 자기주장은 더 커지고 분명해졌다. 딸이 잔소리를 할 때는 더 집중해야 한다. 대부분 맞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부대찌개 사리는 라면보다 당면이다', '김치찜에 있는 김치는 손으로 찢어서 밥에 싸 먹어야 맛있다.' '차에서 냄새나는데 커피 찌꺼기를 갔다 놓아야 한다', '그렇게 입고 나가려고 하느냐' 적재적소 잔소리가 분야별로 다양하다. 내가 맞고 딸이 틀리는 말도 있지만, 세상 다 안다는 듯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는 모양이 귀여워서 지는 척한다.
딸은 어렸을 때부터 자기주장이 강했다. 세상 제일 귀여운 5살 딸에게 입히고 싶었던 꽃무늬 카디건도 끝내 입지 않아서, 새것으로 다른 집 딸내미에게 넘겨졌다. 그래도 엄마 말을 조용히 듣기만 하던 여자아이에서, 조근조근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내는 외계인으로 성장한 것이 나는 기쁘고 짠하다.
딸이 애기였을 때부터 주문처럼 외우던 말을 오늘도 한다. 효력이 없는 줄 알면서도 '더 크지 말아라. 더 크지 말아라'
'네게 특별한 힘이 있단 걸 알게 했으니 '
내가 이 노래에서 좋아하는 파트이다. 특히 '알게했 으니'에서 비틀어진 박자와 수현의 목소리가 합쳐져 묘한 분위기가 나온다.
모든 딸은 엄마에게 특별하다.
처음 태어나던 날 여자대 여자로서 눈을 마주치던 순간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바지만 입겠다고 선언했던 때에도 그 고집이 마음에 들었다.
나한테 담임선생님 전화번호, 언제 연락할지,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다 정해주고, '자, 그럼 이대로 해봐'라고 말했을 때, 나는 파안대소했다. 따님 말을 따라 하면 크게 잘못될 일이 없다는 것을 안 순간이다.
나는 오늘도 외계인과 성공적인 교신을 시도한다
중간고사가 며칠 남지 않은 외계인은 평소보다 기분이 별로다. 세상 시험공부를 혼자서 다 하기 때문이다. 평상시보다 주파수를 더 높였다. 못 알아듣는 말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일요일 아침 방문도 열리지 않더니, 점심때쯤에서야 한층 구겨진 얼굴로 나타났다.
'공부하느라 힘들지' 첫 교신이다.
'아니야.' 당황했다. 공부해도 힘들지가 않다는 뜻인가?
'뭐?'
'공부를 하나도 안했다구'
'아, 공부 안 하느라 힘들지'
'공부를 왜 안 했어?'보다는 성공적인 교신 같지만, 왠지 진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너와의 교신이 늘 성공하진 않지만, 엄마도 외계인이기 때문에 괜찮아. 엄마도 할머니의 딸, 또 다른 외계인이거든. 외계인끼리만 사는 곳에는 우리가 주인이고, 지구 사람이 외계인이지.
네가 엄마와 달라서, 그래서 특별해서 엄마는 네가 좋단다. 어디 한번 판을 뒤집으러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