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피아 Mar 17. 2021

머리를 짧게 자른 날

머리가 많이 길어져서 머리를 자르고 왔다.

원래 숏컷트이긴 하지만, 머리가 하도 빨리 자라는 통에 적당한 시기를 놓치면 목덜미를 덮곤 한다. 이번에도 석 달만에 미장원을 갔더니 머리가 제법 길어져 있어서, 평상시 늘 하던 길이까지 잘랐는데도 꽤 많이 짧아졌다.


집에 오니 딸이 하는 말, '머리 잘랐네.' '영화에 나오는 사람 같다'

아부 안 하기로 대쪽 같은 딸이기에 기대를 잔뜩 하고 물어보았다. '무슨 영화?'

'포뇨', '벼랑 위의 포뇨의 그 포뇨?', '응'

뭐, 포뇨라니 과히 나쁜 비교는 아니로군. 어, 근데 포뇨 머리는 나보다 긴 단발인데, 포뇨 엄마는 아주아주 긴 머리이고. 그럼 누가 있나?

'포뇨에서 누구?', '거기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 중에 있어' 그리고는 쐐기를 박는다. '그중에서 성질 나쁜 할머니'

뭐, 이런 @!%*같으니라구. 하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고3이다.

대략 여기에 할머니들을 닮았나보다. 내가


저녁에 김치찌개를 끓였다.

적당히 익은 김장김치에 돼지고기 넣고, 두부 넣고 간을 보니 딱 막았다. 거기에 계란말이까지. 흐음 이 정도면 손색이 없군.

딸이 한 숟가락 뜨자마자 물어본다. '엄마, 설탕 넣었어?', '아니, 엄마 단 거 안 좋아하잖아. 설탕은 안 넣었어', '설탕을 넣어야지 김치 꿈꿈한 맛이 없어지지'

아니 먹기 싫으면 먹지를 말던가. 한 그릇 다 먹을 거면서 웬 잔소리야.

속으로만 궁시렁거렸다.

그녀는 고3이다.

그리고, 그녀가 맞다.(다음부터는 꼬박꼬박 설탕을 넣는다)


오십견 때문에 가끔 비명도 못 지를 정도로 아파서 쩔쩔맨다.

평상시에는 괜찮다가도 어떤 동작을 하면 삐끗하는지 누가 어깨를 비튼 것처럼 아플 때가 있는데, 그때는 어쩔 도리 없이 아픈 어깨를 부여잡고 한동안 끙끙거리는 수밖에는 없다. 약도 먹고 물리치료도 자주 가고 스트레칭도 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해보지만, 조금 나아졌다가 그대로를 반복한다.


나만 나이를 피해 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막상 나이 오십이라고 정말 오십견이 찾아오고 오늘은 어디가 더 아파지고 하니, 마음이 쓸쓸해졌다. 이러면서 갱년기에 마음고생을 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딸은 살 뺀다고 동영상을 보면서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 나는 따라 하고 싶어도 어깨 때문에 시도도 못하는 동작들이 꽤 많다. '아고 오십견 때문에 엄마는 하고 싶어도 못하겠다' 쓸쓸하게 퇴장을 했다.


화장실 간다고 딸이 안방을 지나가면서 한마디 툭한다.

'엄마, 내가 찾아봤더니 등근육이 약하면 어깨가 아픈 거래. 여기 내가 따라 하는 유튜브 동영상 찾은 거 보내줄게. 꾸준하게 해 봐'

동네 사람들, 우리 딸 엄마 생각하는 것 좀 보세요. 우리 딸이 이래요. 동네 사람들.

하루에도 엄마를 들었다 놨다 하는 아주 귀신같은 녀석이다.

그녀는 고3이다.

그리고, 그녀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나는 그녀의 엄마인 것이 너무 좋다.(부디 이 마음 오래가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약사가 물었다. '고3인데 뭘 먹이시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