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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Oct 31. 2020

딸이 시험을 망쳤다. 다음 엄마의 말 중 적절한 것은?

나를 위한 중간고사

1) 그러길래 마지막까지 계속 봐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어쩐지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는 평상시보다 더 공부하기 싫다고 징징거렸다. 으레 하는 투정이겠거니 싶었는데, 시험을 보고 난 딸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다.  

내가 좀 더 봐줬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공부해'라고 한마디 하기는 쉽지만, 아이를 공부를 '하게 만들' 수는 없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는 것은 말이다.  나도 많이 해봐서 안다. '네, 공부할게요'라고 대답은 해도, 얼마든지 딴생각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고, 그리고 그 시간은 또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공부는 해야겠고, 하기는 죽어도 싫고, 앉아만 있으면 또 공부를 안 하고 있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받고.

항상 나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내가 끼어 들어서 그래도 애를 공부하게 만들어야 하나?' '그것은 가능한 일인지?' '가능하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자주 이 질문을 되뇐다는 것은, 그만큼 답변이 확실하지 않다는 이다. 오늘은 이렇게 생각이 들다가도 내일은 또 마음이 흔들린다.

그래도 매번 생각하면 답은 같다.

'아이를 푸시해서 공부를 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하는 마음. 온전히 딸의 인생이다. '시험을 위해 노력한 것도, 그래서 나온 시험 결과도 그녀의 결정과 선택으로 두어야겠다'는 생각.
그녀의 시험성적은 내가 이룬 성취가 아니라는 판단.

2) 그래도, 완전 망친 건 아니지?

딸이 한 말이 시험 결과가 나오기 전 일종의 연막작전인지, 몇 개 실수를 과장하는 것인지, 진짜로 망했는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일말의 희망이 있는지 넌지시 찔러보는 표현. 그러다가 정말로 망친 거면, 아이를 두 번 상처 받게 하는 질문이 될 것 같다.  역시 그렇게 물어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봤겠지'라는 생각과 제발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딸은 공부를 제법 한다.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잘하는 아이어서 거기에 대한 기본적인 기대치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딸의 말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딸이 공부를 못 하면 뭐가 바뀌나?' 생각을 해 보았다. 정말로 1초 만에 드는 생각은 그래도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라는 거. 그 사실은 딸의 시험성적과는 아무 상관없이 늘 참이다. 내가 딸을 사랑하는 정확히 이십삼만구천세 가지 이유 중에, 공부는 원래 포함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사랑에 빠졌었고, 그때 딸은 응애응애 우는 것 밖에는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 그래프처럼, 중간에 꺾여도 결국은 올라가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나보다. 모든 엄마들이 원하는 그래프 아닐까? 이런 아름다운 꺾은선

3)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하나도 안 중요해.

나름 좋은 엄마란 강박관념을 갖고 이렇게 말할 뻔했다. 그러나, 이 말이 딸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까? 내가 이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시험 점수가 정말로 딸에게 무의미해지지는 않는다. 정말로 시험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딸이 노력하고 애쓴 시간이 다 헛수고가 된다.

늘 어렵다. 딸의 감정을 읽어주기, 무엇이 중요한지 가려내기.


4) 그, 그래. 그랬구나.

사실, 이게 나의 반응이었다. 내가 눈치가 없어서인지 크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훅 들어온 딸의 고백에 나는 이렇게 더듬거리고,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딸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서, 한참이 심난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이게 얼마를 못 봤길래 망쳤다고 하나. 벌써 고2 2학기인데, 여기서 틀어지면 큰일 나는데. 순식간에 현실적인 고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내 마음속에는 그래도 대학교 이름이 아이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었던 거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보험처럼 좀 더 좋은 대학에 가야 마음이 놓이는 그런 마음.

나도 어쩔 수 없구나. 그래도 '웬만히는 하겠지'라는 기본을 깔고, '아이가 먼저다', '믿어야 한다'는 그런 말들을 했구나. 나 자신에 대한 배신감과 딸에 대한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그래도, 딸에게 별다르게 반응하지 않은 건 잘했다 싶었다. '이게 무슨 말이지?'라고 상황 파악을 하는 동안 버퍼링이 걸려서 딸에게 뭐라고 말할 시간을 놓친 듯하다.

그래도, 딸이 말해줘서 좋았다. 시험 성적이 좋건 나쁘건 엄마에게 말해준다는 사실 자체가 고마왔다. 우리는 시험을 망쳐도 말할 수 있는 사이구나. 아까의 걱정은 어디 가고,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아, 딸은 시험을 망쳤다는데 엄마는 갱년기인 것 같다. 이 망할 놈의 감정 기복.


엄마도 불안하다.

나라고 매번 확고한 교육철학이 있어서, 아무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다. 작은 일에도 마음이 덜컹하고, 사교육을 더 시킬까, 잔소리를 해야 하나 늘 고민한다. 그래도 늘 질문한다. 그래서 돌고 돌아 같은 답을 얻고는 또 하루를 보낸다.

아이의 인생이다. 지금 내가 옆에서 잔소리를 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엄마가 옆에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지금 혼자 하게 두자. 공부도 혼자 하고, 결과도 혼자 받고, 자신만의 성적표를 납득 수 있는 아이면 되었다.

내가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러보지만, 또 언제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때도 똑같이 질문하고 똑같은 답을 얻을 것 같다.


'시험을 망쳐서 많이 속상하고 화나지?'

주말 늦잠을 자고 있는 딸이 깨면, '이렇게 말을 건네봐야지' 하고 속으로 계속 연습 중이다. 나름 야심 차게 준비한 멘트이다. 딸이 너무 감동받으면 어쩌나 벌써부터 나혼자 설레발이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뭐래?'이런 반응이 나올지도 모른다. 서로 되게 어색하게 끝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말해주고 싶다. 네 마음을 알 것 같다고. 엄마도 그런 마음 들 때 많다고.

성공할 수 있을까? 모두들 자고 있는 토요일 아침에, 괜히 나 혼자 부산스러웠다 긴장되었다가 그런다. 그러면서 갑자기 뜬금없이 행복해졌다. 뭐지? 이 느닷없는 감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딸이 시험을 망친 이후의 엄마의 행복감'이라고 하겠다. 아마도 '오늘 아침도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겠다'하는 마음인 것 같다.


그럼 되었다. 다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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