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당키나 할까

Orbit

by 김은채

자기혐오는 확실히 유용하다. 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자의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가차없이 존재를 끌어다 관성에 앉히는, 기이한 원동력으로 작동한다.




성실한 보살핌보다 게으른 자기애가 빨랐다.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장난감 대신 신의信疑와 충동을 가지고 놀았다.


여타 싸움과는 달리 승패도, 항복도 없는 방어적 투쟁이 일찍이 계속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칼부림이 일었다. 미워하지 않으려면 죽도록 싫어해야 했다.




보통의 척도와 공인된 질서가 자멸한 세계. 카오스는 자칫 규칙을 어기고 어지러이 활보하는 독단으로 비추어지곤 했다.


나는 다만 섬찟하게 황홀했던 태양빛에 다다르기 위해 완고함이라는 날개가 필요했을 뿐이다.




지학志學의 시간을 거슬러 상처를 유예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형벌로만 단단해질 수 있다고 믿었고, 끝내 나는 나를 파괴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잔인하고도 순수한 신뢰는 나를 말렸고, 내몰았고, 때때로 구원했다.




어쩌면 늘상 정점에서 삐딱선을 타게 되는 것도 같다.




나는, 내가 유약할 때 삶이 꼭 내 것 같다. 통제만이 나를 숨 쉬게 했고, 숨 가쁘게 했고, 숨 막히게 했다.


그래서인지 당최 결핍을 놓을 수가 없다. 자책과 자학과 자수를 들먹이며 흠잡을 데 없는 일상에 꼭 비집고 들어가 앉는다. 그렇게 뒤틀린 욕망을 대가로 낙원을 내주는 셈이다.




도망가야 한다. 떠나지 못하게.

— 멍청하긴.


멀리해야 한다. 멀어지지 못하게.

— 변한 것은 없다.


그러니 나는 행복해지려면 자살해야 한다.

—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허나 삶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멋쩍게 포기하지도, 뻔뻔히 집착하지도 못하게 자꾸만 기복과 역동성과 희로애락을 선사한다.




필시 이해와 오해가 공존하는 세상이라면, 나는 변수가 되겠다. 꿋꿋한 기개로 맞서겠다. 기꺼이 감당하겠다. 마음껏 사랑하고, 얼마든지 미움받겠다.


어설퍼도 좋다. 삐끗해도 괜찮다. 넘어져도 상관없다. 망설이지 않겠다. 피하지도, 굽히지도 않겠다. 태어난 대로 사랑받고, 타고난 대로 살아가겠다.







결국 너는 자라 내가 되었다. 상처를 헤집고 피를 토하며 절망을 껴안던 네 모든 날들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억한다. 영원이라는 게 정말 있다면, 회귀라는 게 정말 된다면, 꼭 전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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