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할수록 견고해지는

Identity

by 김은채

팔자는 배부른데 필자가 목마른 탓에, 나는 원체 무용無用하고 반짝이는 것들을 추종했다. 꿈, 향, 벗, 밀도, 재치, 감도, 자기애, 사회성, 둔감함, 뭐 이런 것들. 애정에는 결핍이 깃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먹구름을 물리치기에 해가 너무 짧고, 삶까지 사랑하기에 밤이 너무 길다. 찬란함이 무색하게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고, 무취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취향은 논리와 사고를 요하지 않는다. 이는 신원 미상의 존재를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존재는 욕망하고, 욕망은 존재를 증명한다. 존재는 욕망할수록 한정되고, 존재를 한정할수록 욕망은 무한해진다.


나는 나의 존재를 납득할 만한 ‘정의’들을 필요로 했다. 미궁에서, 막연함에서 벗어나 좌표를 찍고, 스스로를 규명하고자 했다.




배움의 창 너머의 시도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 춘春, 보헤미안, 19-4052, 바위, 그리고 팔레트. 나는 빈틈없는 설계도를 바탕으로 나라는 왕국을 창설했고, 외부의 동요와 따가운 시선에도 보란 듯이 견실해졌다.




이렇게 해피,


엔딩,


이라는 착각.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잘 짜인 좋음’을 소모했다. 숨 쉬듯 내뱉는 확언을 따라 살았다.


문득 이성을 차릴 새도 없이 불쑥 튀어나오는 의구심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공간을, 문체를, 사람을, 영화를, 미감을 치밀히 파고들수록 외려 난제에 빠졌다.


나의 편린들은 서로 어긋나며 고유성을 가로막았다. 취향은, 나고 자란 대로 표출하는 해방의 도구가 아니라, 되는 만큼만 허락되는 편협한 족쇄나 다름없었다. 안락함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예측 불능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억압하는 것.




어쩌면 나는 취향이라는 환상에 빠져, 나도 모르게 나를 기만했던 것이다.




회고를 위해서는 궤도라는 발자취를 남길 필요가 있다고들 한다. 이는 어제와 오늘을 유영하며 내일로 나아가려는 과정에 의의가 있다.


이에 반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미완을 자각하고서야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 바야흐로 미진한 강박과 완결된 망상에서 벗어나 지각된 부정의 미학.




고백하건대,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유별난 내가 유일하게 확신하는 나의 유난스러움이다.


그리하여 나는 습관의 총체가 아닌, 간극으로 존재한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충돌하고 화합한다. 규정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이토록 선명한 모순으로.

이전 05화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