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Transformation

by 김은채

도무지 달갑지가 않은 ‘인복’이다. 남들이 믿는 인연이라는 선물은, 보이지 않는 투쟁의 산물이었다. 밝음을 몰고 다니며 온기를 퍼뜨리는 계절을 염원하며, 감히 지지 않는 다정을 꿈꿨다.




농익은 친절은 타고난 다정과 구분할 수 없다. 타인의 기호는 나의 호好보다 높고 불호보다 낮다.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가까스로 남들 하는 만큼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가 터득한 생존 방식이었다.




나는 곧잘 외사랑에 빠지곤 했다. 모든 이에게서 좋아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를 발견하는 건 천성이었고, 이를 흡수하여 내 식으로 써먹는 건 천명이었다.


익살 한 모금, 지혜 한 조각, 열정 한 방울, 낭만 한 송이, 긍정 한 움큼. 온갖 미덕을 그러모아, 나는 단 하나의 완벽한 자화상을 탄생시켰다.


예쁨을 독차지하겠다거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제법 거창해 보였다. 그저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는, 막연하고도 절박한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맞춤형 페르소나. 내게는 다케이치도 없었다. 해방감을 자유로이 만끽하며 세상과 기쁘게 어울렸다.


세상의 모든 요구가 내 수중에 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나는 속절없이 전락했다.




나를 얽어매는 것은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정상과 비정상, 반응과 반항을 규정하고 후자의 것들을 숙청하는 곳. 세상과 나 사이에는 어떠한 타협도, 단념도 없었다.


이에 호평이 난무할수록 호흡이 가빠졌고, 칭송이 깊어질수록 척살이 떠올랐다. 찬사는 역겨움을, 숭배는 구토감을 증폭시켰다.




공허로의 낙하. 속임이 아니라 속박임을 깨달았다. 진정 나를 갉아먹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가 없는 세상은 살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견고한 거짓이 무너지고, 무참無慙히 드러난 진실.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한 가지 생각만은 확고부동했다. 나는 다시 나로 살아야 한다는 것 — 이름 없는 존재. 타인의 명명보다 멀리, 자아의 부름에 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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