ϕ 너의 이름은
집필이라는 행위는 익숙하지만 까다롭다네. 그저 일어나고, 발생하고, 쏟아지면 그만인 현상(現象)을 가만히 응시하고, 완고히 도려내고, 신출귀몰하는 존재의 언어라는 형상으로나마 적어 내리는 것이네.
초안은 가장 날것인 동시에 가장 낯선 모습을 하고 있네. 문장은 지나칠 정도로 집요하거나 무모할 정도로 직설적이지. 퇴고와 수정을 거치어 과함을 덜어 내고, 결핍을 채워 넣는다네. 정말이지 딱 맞는 단어를 발견하는 순간의 쾌감이란. 이는 관철된 적 없는 유일함만을 고집하는 혼자만의 여정인 셈이네.
물론 전 과정에 세세히 규칙을 세우거나 마땅한 체계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네. 적어도 창작에 있어 판단형적 사고는 잘 통하지 않더군. 최선은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발현되는 것이고, 성공은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출현하는 것이네.
기운 채 차오르던 잔과 달과 밤을 견디어 마침내 몰입에 들어서면, 그이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 반겨 주네. 기를 쓰고 샘터를 헤매지 않아도 우리는 반드시 서로를 알아본다네. 기록은 쓰인 적 없으나 기억하고 있고, 이름은 말해진 적 없으나 불러낼 수 있네. 서사가 소멸된 자리에는 감각만이 남아 있다네.
나의 이러한 선택들이 내내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여겨 왔네. 별것 아닌 물체에 정성 들인 서사를 태우고, 무심히 지나칠 법한 풍경에 의미를 덧대는 작업. 이를 거듭할수록 세계는 투명해지고, 자아는 명징해졌네.
글쎄. 꼭 하지 않아도 되었을, 그러나 해야만 했던 말들을 늘어놓는 짓을 언제쯤 그만두고 싶어질지 모르겠네. 어떤 일에서든 최악을 먼저 상정하고, 어느 관계에서든 끝을 눈치채는 이 지긋지긋한 성정은, 한시도 나를 내버려 두는 법이 없다네.
선. 나에게는 더 이상 숨어들 그림자도, 감추고픈 진심도 없네. 과거는 계승되나 나를 좀먹지 못하고, 미래는 태동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환생인 것이네. 지켜야 할 내가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서 있는 나만이 존재하네.
그래. 이제는 정말로 떠나야 할 시간이야.
누구에게나 응답을 기대하지 않음에도
기꺼이 말을 건네고 싶은 순간이 있다.
마침내 우리의 서사는 완결되었고,
나의 이야기는 비로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