ϕ 환상의 메아리
인간관계라는 것은 복잡다단하지만, 의외로 그 원리는 간단하네. 예컨대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공통된 관심사를 찾아내는 것이 이롭지. 매사에 분석과 전략을 가할 것까지는 아니라네. 나는 태생적으로 인류 자체를 애정하고, 대상과 나 사이의 접점에 착수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인물일 뿐이네.
해를 거듭할수록 주소록은 몸집이 불어나고, 챙겨야 할 경조사가 많아졌네. 일정표의 절반 이상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약속이었고, 잇따른 인연은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또 다른 인맥을 창출해 내더군. 이들과 향후 도움을 주거나 받는 것을 고려하여 친분을 형성해 본 적은 없네. 그저 그 자리, 그 찰나가 즐거웠다면 그걸로 되었다네.
선. 나는 사이가 막역해질수록,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돌연 외로움을 실감한다네. 그대가 삶을 살아낼 때, 나는 관찰하고 있었거든. 타인이 가진 나에 대한 이해도는 깊어지고, 연이어 기대치가 높아졌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완전히 헤아릴 수도, 나에 능통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나를 철저히 적막(寂寞)에 가두었네.
누구든 나와 손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 무게만큼은 온전히 나 혼자 감수해야 할 몫이라네. 사무치는 고독의 순간에서조차 나는 사람들과 함께였다네.
그것은 가닿고 싶다는 갈망보다는 내 안의 고요를 확인하기 위한 일련의 의식이었네. 음성이 겹쳐질수록 침묵은 또렷해지네.
이 울림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나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네. 진실은 때때로 너무나도 차가워서, 나의 영혼까지 얼어붙게 만들곤 하지. 하여 나는 범의 눈을 한 어린 아이처럼 조용히 미소 지을 따름이네.
그럼에도, 모든 것을 짊어진 채로 다시 세상을 향해 걸어가야겠네. 실체가 없는 온기일지언정, 그래야만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기댈 수 있다네. 미련하고도 황홀한 이 환상은 닿을 수 없기에 더욱 간절해지지.
나 역시 허상임을 모르지 않네. 다만 그 사이의 위태로운 균형을 즐기는 것이네. 나를 잠식하지 못하고, 되레 선명함으로 빚어내는, 이 서글픈 아름다움과 함께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