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밀어드릴까?”
소리 나는 곳으로 얼른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어머님이 날 빤히 쳐다보며 묻고 있었다.
“아 네 어머니! 제가 먼저 등을 밀어 드릴게요.”
자리에서 후다닥 일어선 나는 낯선 어머니의 뽀얀 등을 한참 밀어드렸다. 잠시 후 그분도 내 등 구석구석 밀어주면서, 비누칠로 마무리까지 해주신다. 등을 밀어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우유 하나를 건네며 수줍게 웃으시는 모습이 참 곱다. 기계에만 맡겨지던 내 등이 오랜만에 따뜻한 사람의 체온을 느껴보는 것 같다.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인심은 목욕탕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목욕탕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던 인정이 사라져 갔다. 삭막해져 가는 목욕탕 인심에 몇 번의 낯 뜨거운 거절도 익숙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오백 원짜리 동전 하나면 삼분 정도 말없이 등을 밀어주는 기계가 훨씬 더 속 편하다. 주변머리 없는 내 성격 탓도 있지만 서로 어울려 등을 밀어줄 만큼 가까운 목욕탕 친구도 없으니 기계가 더 편하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목욕탕 오는 분들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다. 덕분에 오십 대인 나는 목욕탕에서 때 아닌 “새댁” 소리를 듣는 귀 호강을 할 때도 있다. 아이들 보기가 귀한 요즘에 가끔 아이들이 목욕탕에서 뛰어 놀기도 한다. 하지만 거의 세신(때밀이 아주머니)에 아이를 맡긴다. 아이를 붙잡고 때와 씨름하는 젊은 엄마들의 모습을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목욕탕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면서 지나간 기억의 저편으로 훌쩍 건너가 본다.
우리는 일 년에 몇 번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 엄마는 우리를 주로 집에서 연탄불에 물을 데워 씻기셨다. 하지만 추운 겨울날은 고만고만한 아이들을 앞세우고 동네 목욕탕으로 원정을 가셨다. 엄마와 목욕 가는 날은 우리에게 고행의 날이었다. 목욕탕에서 엄마의 모습은 천하장사였다. 씻지 않으려고 도망 다니는 나와 동생들을 붙잡아서 한 사람씩 머리 감겨서, 비누칠하고, 온탕에 집어넣고, 다시 순서대로 불러내서 때를 밀어준 후, 비누칠로 마무리까지 하신다. 그리고 몰래 빨래까지 하셨다. 아프다고 도망치다가도 천하장사 같은 엄마 손에 붙잡히면 얼마나 때를 세게 미는지 눈물이 찔끔거려지고 입에서는 “아야” 하는 곡소리가 저절로 났다. 우리들의 여린 피부는 천하장사 엄마의 손길이 지나가면 붉은색 꽃물이 들었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우리를 울리는 일은 따로 있었다. 나와 동생들이 물에 퉁퉁하게 불은 손가락으로 장난치며 놀고 있으면 동네 아줌마들이 가까이 와서 넌지시 묻는다.
“너희 엄마 계모지?”
그러면 우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악을 써댔다.
“아니에요. 우리 엄마 진짜예요. 계모 아니에요.”
우리들을 놀리려고 한 장난이었을 텐데 어린 우리는 엄마한테 달려가 다시 확인까지 했다.
“엄마! 우리 엄마 맞지? 계모 아니지?”
그러면 엄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그래. 너희들 엄마 맞아. 계모 아니야.”
하고 대답까지 친절하게 해주셨다. 우리는 자랑스레 눈물을 훔치며, 그것 보란 듯이 우리를 놀리던 아줌마들을 째려보았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결혼한 엄마는 서른도 되기 전에 두 살 터울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유난히도 고았던 엄마와 상반되는 철부지 아이들의 모습은 목욕탕 아줌마들의 상상 나래를 한없이 자극했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를 먼저 씻긴 후 늦은 목욕을 하셨다. 가끔 언니와 내가 엄마 등을 밀어드렸다. 언젠가 엄마는
“우리 은하가 많이 컸구나! 이제 손힘도 세어졌네!”
하며 미소 지어 주셨다. 나는 칭찬이 더 듣고 싶어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보드라운 등을 힘껏 밀어 드렸다.
엄마의 그 희미한 미소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어린 나는 알 수 없었다. 내 힘이 세어지면 엄마 힘은 약해진다는 것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내 손으로 자식들을 키워 보고서야 ‘어미 힘이 약해지는 그때부터 자식이 자란다.’라는 역설의 이치를 이제야 깨닫는 것을.
나는 목욕을 좋아한다. 엄마와의 아련한 추억들은 물안개처럼 희미하게 기억 속으로 흩어져간다. 잊혀져가는 기억의 단편들이 안타깝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 것 같은 느낌들은 허깨비의 중얼거림처럼 혼잣말이 되어 뱅뱅 입안을 맴돈다. 목욕탕에 가득한 수증기처럼 눈앞이 자꾸만 흐릿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