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이 좋은 날이다. 나는 텅 빈 놀이터 옆을 지나간다. 알맞게 불어오는 바람만 주인 없는 빈 그네를 흔들흔들, 삐그덕 삐그덕하며 울리고 있다. 자리 비운 놀이터의 주인들은 지금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란 것을 하고 있으렷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아이들이 키만 한 가방을 둘러업고 유치원 버스에 태워지는 모습을 가끔 본다. 사람 노릇 하며 사는 것이 무엇이 그리도 바쁜 건지 걸음마장이부터 머리 하얀 백발의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종종걸음이다.
나는 세 살 때 보성에 사시던 외할머니에게 보내졌다. 어렸을 때 내 별명은 인형이었다. 인형처럼 예뻐서가 아니고 인형처럼 움직이지 않아서 지어진 별명이라고 했다. 외할머니가 읍내 장에라도 가시면 볕이 따뜻한 담벼락에 기대서서 꼼짝을 안 하고 할머니를 기다렸다고 외삼촌이 말해주었다. 내 이름을 부르시던 어른들은 별로 기억이 없다. 하지만
“니가 필순이 딸이냐?”
하시며 엄마의 이름을 부르시던 어른들은 기억이 난다. 외할머니가 사시던 마을은 거의 친척들이 모여 사셨다. 아마도 엄마를 기억하는 친척 어르신들은 내 모습에서 엄마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 바로 앞집은 큰할아버지 댁이었다. 큰집은 오빠들이 많았다. 오빠들과 나는 숨바꼭질 놀이를 자주 했다. 마당이 넓고 집이 컸던 큰집은 숨을 곳도 아주 많았다. 장독대 뒤에, 외양간 짚더미 속에, 냄새나는 헛간 뒤에, 급할 때는 거미줄투성이인 마루 밑까지 숨어들곤 했다.
몇 해 전 외할머니 산소에 들렀을 때 큰할아버지 댁에 갔었다. 할아버지의 담뱃대 치는 소리도, 무섭기만 했던 마당의 우물도 사라지고, 바짝 마른 감나무만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세월에 시달린 것은 나만이 아니었나 보다.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이는 마당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돌아섰다.
나는 여덟 살이 되던 해에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나와 광주 집으로 돌아왔다. 내게는 오빠와 언니가 있었고 내 밑으로 남동생 두 명이 있었다. 피부병이 심했던 오빠는 방학이 되면 외할머니 댁으로 와서 나와 같이 지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은 모두 낯설었다.
특히 엄마랑 아빠도 나에게 익숙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한꺼번에 변해버린 낯선 환경도 힘들었다. 보고 싶은 할머니가 눈에 안 보인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나이였다. 나는 밤마다 이불에 세계 지도를 그렸다. 그때는 아이들이 오줌을 싸면 키를 둘러쓰고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보내지기도 했었다. 어린 나는 할머니한테 데려다 달라고 많이 울었다.
어느 날은 해가 져도 내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 엄마 아빠가 온 동네를 내 이름을 부르며 찾아다녔다고 한다. 결국 나를 못 찾고 집에 돌아온 부모님은 벽장문을 열고 깜짝 놀라셨다. 그토록 찾던 내가 벽장 안에서 웅크리고 잠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나를 혼내지 않으셨다. 잠든 나를 벽장에서 끄집어내려 이부자리에 눕히며 엄마는 많이 우셨다고 했다.
왜 그 어둡고 무서운 벽장에 기어들어갔는지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할머니를 부르며 울다 잠이 든 것 같다. 그 후로도 나의 다락방 숨바꼭질은 몇 번 더 이어졌다. 결국 부모님은 방학이 되면 나를 서울로 이사 가신 할머니께 다시 보내 주셨다. 내가 “엄마” 소리를 처음 한 것은 집으로 돌아오고 2년 후 즈음이었다.
내가 엄마를 부르지 않는 동안 마음 착한 언니가 엄마와 나 사이의 가교 역활을 해주었다. 엄마가 낯설었다기보다는 어쩌면 나만 가족에게서 떨어뜨려 놓은 섭섭함의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학교에서는 친구들을 두들겨 패고 집에서는 언니를 괴롭혔다. 엄마는 선생님께 자주 불려 다니셨다. 엄마가 학교에 오면 친구들은 또 약을 올렸다.
“니네 엄마 술집 다니지.”
그럼 나는 친구에게 다시 주먹질을 했다. 엄마는 내가 엇나갈 때마다 당신이 나를 키우지 못한 시간을 마음 아파했다. 그래서 자주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난 인생의 텅 빈 놀이터 한가운데 오롯이 혼자 서있는 기분이다. 이제 난 어른이 되었는데, 더는 나랑 놀아 줄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왜 난 여전히 어쩌지 못하는 아이처럼 이 텅 빈 놀이터에 혼자 서있는 기분일까? 왜 여전히 어둡고 칙칙한 벽장으로 기어들고 싶은 아이처럼 숨고만 싶어질까? 내가 진정 찾아 헤매는 것은 무엇이었기에 오늘도 이 긴 숨바꼭질을 멈추지 못하고 있는 걸까?
언젠가 이 깊은 외로움의 끝에 서면 어렴 풋 이라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내 안에서 질문들이 쏟아지는 밤이다. 익숙한 어두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