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생각

by 김은하

오랫만에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광주 갈 일이 있다. 00 백화점으로 6시까지 나올 수 있겠냐?”

“그래. 저녁이라도 같이하게.”

“오빠는 선약이 있어서 식사같이 못하고 새언니랑 만나서 해라.”

“그래. 알겠어.”

백화점에 갈 일이 거의 없던 나는 대충 옷을 챙겨 입었다. 지하철을 타고 약속장소로 갔다. 나는 약속 시각보다 좀 일찍 나서는 버릇이 있다. 삼십 분 정도 일찍 출발하면 한 시간 정도의 마음의 여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퇴근 시간이라 도로는 거의 주차장이다. 모두가 저렇게 분초를 아끼면서 사는데 난 너무 한가한 건 아닌지 마음의 여유라는 것이 조금은 생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만큼 새언니의 고운 모습이 보인다.

“언니!”

나는 작은 키에 까치발을 들고 두 손을 흔들며 언니를 불렀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용케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언니는 빙긋 웃으며 다가온다.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면서도 꿋꿋하고 씩씩한 언니가 늘 고맙다.

“무슨 일로 이 먼 지방까지 오셨대요?”

“우리 고모 얼굴 보고 싶어서 왔지.”

새언니와 나는 죽이 잘 맞는다. 아가씨라고 부르던 호칭은 조카가 태어나 고모라고 부르자 언니도 자연스럽게 나를 고모라고 부른다. 무뚝뚝한 오빠 옆에서 마음 고생하는 새언니를 보면 늘 고맙고 안쓰럽다.

“언니! 뭐 먹고 싶어요. 맛난 거 사 줄게요”

“밥은 좀 있다 먹고 우선 오빠의 특명이 있어요.”

“특명! 뭔데요.”

“고모 만나서 이쁜 옷 한 벌 사주고 오랬어요.”

“나 옷 많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옷 없어서 홀라당 벗고 다닐까 봐!”

어려서는 언니 옷을 받아 입고 자랐다. 그리고 결혼해서는 세 명의 시누이가 거의 계절마다 옷을 보내준다. 넉넉하지 못한 내 형편을 아는 가족들은 늘 내게 여러모로 도움을 주려고 애쓴다. 결국 나는 새언니 고집에 옷 한 벌을 골랐다.

“고마워요. 언니!”

새언니는 나와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마음 씀씀이가 항상 어른스럽다. 보푸라기 핀 낡은 옷을 입고서도 나에게는 새 옷을 사주며 환하게 웃는 새언니가 맘에 걸려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오빠 부부는 아들을 한 명만 두었다. 아이 문제로 친정엄마에게 잔소리 듣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하지만 내가 나설 문제는 아닌듯해서 못 들은 척 넘기곤 했었다. 어느 날 새언니가 나를 붙들고 하소연을 했다.

“나도 00 동생을 왜 안 보고 싶겠어요? 근데 오빠가 동생 많은 것이 힘들었나 봐요. 00가 혼자 외롭더라도 동생 없이 하나만 잘 키우고 싶다는 것을 어떡해요.”

얼마나 동생들이 힘에 부쳤으면 ‘내 자식만은 동생 없이 키우고 싶었을까?’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커다란 돌덩이처럼 묵직한 것이 내 가슴을 짓눌러왔다.

오빠는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으로 중학생 때부터 새벽 단잠을 깨워가며 신문 배달을 했다. 그러면서도 우등상을 놓치지 않아 힘든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어린 동생들에게는 신문 배달해서 받은 돈으로 루팡의 기암성이나 셜록 홈스 책을 사서 읽게 해주었다. 책을 통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해주었다. 내가 추리소설에 흠뻑 빠진 것도 오빠 덕분이었다. 그 시절 오빠가 사준 뽀빠이 별사탕은 새하얀 눈꽃처럼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하지만 자상하던 오빠는 언제부턴가 말이 줄어들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서로 얼굴 보는 것이 어렵기도 했다. 너무 말이 없어 답답할 정도로 입을 닫고 살았다. 장남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들을 말이 없다고 모를 동생들도 아닌데 오빠의 입은 좀체 열릴줄 몰랐다.

부모님의 길고 길었던 투병 기간에도 오빠는 말없이 장남의 자리를 버텨주었다. 내가 장남인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썼던 것도 오빠의 슬픈 눈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의 빈자리까지 채워주며 형제들을 이끌어 주던 오빠가 요즘 많이 힘들어해서 마음이 편치 않다.

가슴 아픈 역사 속에 이 땅의 많은 오빠는 비단 구두 사 온다던 누이와의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하고 슬픈 동요로만 불리고 있다. 하지만 나의 오빠는 이제 장남이란 그 어깨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를 소망한다. 장남이 아닌 한 사람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길 소망한다. 장난기 많던 오빠의 넉넉했던 그 미소를 부디 잊지 말기를 소망한다.


오빠!

옷 고마워.

옷 입을 때마다 오빠 생각하면서 예쁘게 잘 입을게.

난 가끔 힘들 때 다락방에서 공부하던 오빠 생각 많이 해. ‘다락방에 있던 그 작은 창문 곁에서 오빠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온통 어둠뿐이던 풍경 속에서 그 창문 밖으로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보며 여린 마음을 추슬렀을 오빠 생각을 해. 우리 형제들 그 배고프던 시절도 참 잘 견뎠다.

조금만 더 힘내라는 말이 너무 초라해 보이지만 다시 한 번 힘내서 버텨보자.

오빠!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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