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남은 커피 한 모금을 비우고 거리로 나선다. 차가운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는다. 한없이 가라앉아만 가는 내 기분과는 담을 쌓은 듯 거리는 온통 연분홍빛 벚꽃이 흐드러져 있다.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문자를 보낸다.
“새언니! 엄마 기일이 언제인가요?”
버스 정류장 앞에서 답장을 받는다.
“이달 마지막 주로 알고 있는데 정확한 날은 다시 연락할게요.”
나는 천천히 다시 답장을 보낸다.
“급한 건 아니에요. 벚꽃이 피는 걸 보니 엄마 기일이 다가오겠구나 싶어서요.”
생각이 많아진 나는 버스 정류장을 뒤로하고 계속 걸음을 옮긴다. 벚꽃을 바라보며 혼자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엄마….”
하얀 시트가 엄마의 얼굴을 덮었다. 엄마의 사망 시간을 알리는 의사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나의 시선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모난 중환자실의 열린 창문 사이로 커다란 벚꽃 나무가 보였다.
열심히 뛰어가는 교복 입은 지각생의 머리 위로 함박눈처럼 쏟아지던 새하얀 꽃잎들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가고 있는데 너무나도 잔잔하고 무심한 듯 흐르던 피아노 선율처럼 나는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방금 내 인생에서 사랑이란 걸 알게 해 주고 감사란 걸 깨닫게 해 주었던 소중했던 한 사람과 이별을 했다. 하지만 세상은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말없이 벚꽃만 눈이 부시게 흩날리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에게 벚꽃이 핀다는 것은 가슴 속에 또 하나의 작은 울음이 피어나는 것이었다. 어쩌면 벚꽃에 맘이 뺏겨 엄마와의 이별에 충실하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라도 숨어서 실컷 울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울음이 아닌 그 어떤 것으로도 삼킬 수 없을 것 같은 설움이 차곡차곡 가슴을 짓눌러 가는 시간이다.
해마다 벚꽃으로 다가오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되는 시간이다. 그리움이었고 서러움이었다. 안타까움이 소용돌이치는 순간들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글로 남기면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장면 장면으로 모으면 한편의 영화가 될 것이다. 나는 문득 나에게 주어졌던 시간을 모아서 아름다운 엔딩을 준비하고 싶어진다.
‘내 아이들에게 나는 과연 어떤 엔딩으로 기억될까?’ 나는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나의 뒷모습을 생각해 본다. 좌충우돌이었고 실수투성이의 어설프기만 했던 엄마의 삶을 아이들은 어떤 엔딩으로 기억해 줄지 입 안이 씁쓸해진다.
봄의 모퉁이를 지나면서 소리 없이 피었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벚꽃 같은 인생들을 조용히 바라본다. ‘어쩌면 엄마도 굴곡 많았던 자신의 삶을 벚꽃처럼 아름답게 자식들이 추억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벚꽃 앞에서 흐느끼는 것을 바라지는 않으실 것 같다. 슬프고 아픈 만큼 기쁘고 아름다웠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나는 갑자기 힘이 잔뜩 들어간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한다.
“여보! 벚꽃 다 지기 전에 우리 꽃구경 갑시다.”
남편은 알 듯 모를 듯한 옅은 미소로 답을 보낸다.
벚꽃처럼 단아했고 조용했던 한 사람을 추억한다. 이 깊은 슬픔 속에서도 봄의 찬란함을 노래한다. 벚꽃 인생들의 춤은 아름답다.
새하얀 꽃잎이 눈송이처럼 춤을 춘다. 하늘로 땅으로 흩어진다. 인생의 찰나 같은 순간들이 어지럽게 부서져 날린다. 엄마의 인생도 벚꽃처럼 눈부시던 삶이었다. 분명 그렇게 기억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