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할머니가 되어서 이 검은 머리가 온통 새하얗게 변해 있으면 좋겠다.”
싱글 맘으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어디 녹록한 일이겠는가? 악마에게 영혼을 내어주는 파우스트처럼 이 초라한 젊음을 내어주고서라도 고단한 내일을 애써 피하고 싶은 삶의 절박함 앞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해줄 수 없었다.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 속에 그녀도 지금쯤 흰머리가 많이 보일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소원을 이루었다고 축하라도 해주어야 할지, 그저 서로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웃어주어야 할지, 씁쓸한 미소만 입가에 머문다.
나는 오십 고개를 넘으면서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자꾸 흰머리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신경이 쓰였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뒤적이며 족집게로 뽑기도 했다. ‘흰머리 뽑아내다가 대머리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다시 염색약을 샀다. 사용설명서를 몇 번씩 읽고 또 읽었다. 염색한다고 화장실을 한바탕 뒤집어 놓기도 했다. 집안에 가득한 염색약 냄새로 여름에는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하지만 겨울에는 환기조차 어려웠다. 눈까지 따가운 요즘은 별수 없이 미장원에서 염색한다.
외할머니와 친정 엄마를 떠올리면 온통 새하얀 백발의 흰머리가 기억난다. 두 분은 염색을 거의 안 하셨다. 눈송이를 둘러쓴 것 같은 새하얀 백발의 머리를 보고 있으면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외할머니와 엄마의 백발은 자연스럽게 바라보면서 정작 나의 흰머리는 서둘러 감추는 것이 언제부터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직 할머니가 될 나이는 아니라고 에둘러 보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가끔 염색이 늦어져 흰머리가 눈에 많이 띄면 애교쟁이 아들은 “우리 엄마 왜 이리 늙었어.” 하며 꼬옥 안아주기까지 한다. 엄마가 늙어 보이면 자식들 걱정시키는 것 같아 아이들 오기 전에 서둘러 염색할 때도 있었다.
문득 염색에 대한 나의 불편한 마음이 혹시 ‘내가 아직 흰머리에 익숙해지지 않아서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오십 년을 보아서 익숙해 있는 검은색의 머리 색깔이 어느덧 내 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더욱 흰색 머리가 낯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검은색의 머리가 흰색으로 변하는 인생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내 문제로 받아들이기는 불편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문제를 바라보는 여유보다는 서둘러 염색을 하며 감추고 외면하는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묻게 되었다. 익숙했던 것도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 그 변한 것마저도 다시 익숙해질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낀 것이다.
남편에게 먼저 동의를 구했다.
“여보 나 이제 염색 안 하고 싶어. 그런데 머리 허연 마누라가 당신에게 창피할 것 같으면 다시 염색할게.”
남편은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 편한대로 해. 난 당신 머리 색깔이 무슨 색이든 상관없어.”
하며 미소를 짓는다. 우리는 결혼식 주례사의 흔해 빠진 대사였던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집에 있던 염색약도 모두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넣었다. 매달 하던 염색을 그만둔 지 서너 달 정도 된다. 거울 앞에 서면 아직 흰머리 울렁증은 있다. 흰머리가 조금씩 익숙해짐도 느낀다. 하지만 ‘흰머리가 좋다.’라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못 하겠다. 아주 천천히 언젠가는 마음이 열리게 될 것이다.
사라져가는 검은 머리에게도 인사를 잊지 않는다.
“반백 년을 함께 해준 검은 머리야! 우리 지금 헤어지는 것이 아니야. 어느덧 인생의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푸르렀던 은행잎이 황금색으로 변해도 여전히 은행잎이듯이 우리도 여전히 함께 있어.”
아마도 얼마 동안 흰머리 가슴앓이는 있겠지만 내 머리가 무슨 색이든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이다. 흰 머리와 검은 머리로 구별 지으며 흰색은 안 되고 검은색만 되는 이분법보다는 자연스럽게 흰색과 검은색의 머리를 함께 바라볼 것이다.
내가 나를 바라보듯이, 그 또한 나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였듯이,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
내게 허락된 시간 앞에 더욱 숙연해짐을 느끼며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